글 김성곤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3년 9월 8일
ISBN: 978-89-374-2717-6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27x188 · 420쪽
가격: 18,000원
분야 한국 문학
이어령이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말들에 대한 보고서
『이어령 읽기』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어령 읽기』는 문학평론가 김성곤이 문학, 문화, 문명, 예술, 인생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어령과 나눈 대화의 기록으로, 이어령 선생이 암 투병 중일 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기적으로 만나 대화한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정리해 완성한 이어령론이다.
김성곤에게 멘토와도 같았던 이어령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의연한 태도로 성찰과 혜안이 깃든 비교문화론, 인류문명론, 동서문학론을 펼쳤다. 각 주제에 대한 이어령의 말과 그 말에 대한 김성곤의 의견이 더해지며 완성된 ‘이어령론’이자 ‘이어령이 남긴 말들에 대한 보고서’인 이 책은 넓은 의미의 대화를 지향한다. 이 책을 읽는 누구나가 저자의 자리에 서서 이어령의 말을 독해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길어올릴 수 있다.
평생에 걸쳐 자신의 문학적 유산을 가꿔 온 이어령이 변화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주옥같은 메시지들은 일상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본질에 대한 질문을 자주 잊고 사는 우리에게 드물고도 귀한 대화의 희열을 선사할 것이다.
이어령 교수를 떠나보내며 9
서문 23
1부 바람과 물결 사이에서 본 문학, 문명, 문화
문학이란 무엇인가? _이어령 31
문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 _김성곤 39
지식인은 누구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_이어령 59
지식인과 작가의 본질과 본분 _김성곤 69
한국은 대륙 문명과 해양 문명의 연결점 _이어령 83
중국과 일본 사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한국 _김성곤 93
동서 문화의 융합과 퓨전 _이어령 133
동서 문화의 이해와 오역이 초래하는 오해 _김성곤 156
2부 인공지능
인공지능, 디지로그, 생명사상 _이어령 167
인공지능 시대의 전망과 문제점 _김성곤 181
드론의 시점 _이어령 205
드론과 메타버스 시대의 도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_김성곤 210
현대의 은둔: 정보로부터의 도피 _이어령 213
이름 짓기와 정보 쓰레기, 그리고 탈진실 시대의 도래 _김성곤 220
‘꼬부랑 할머니’의 무한한 가능성 _이어령 226
‘꼬부랑 할머니’와 『아라비안나이트』 _김성곤 231
3부 이성, 자연, 문명
이성주의와 신비주의, 종(鐘)의 의미, 시작과 엔딩, 그릇 _이어령 237
종(鐘)의 상징, 현대의 폐차장,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담는 그릇 _김성곤 247
인간, 문화, 언어, 곤충 _이어령 254
프로메테우스, 에피메테우스, 판도라 _김성곤 274
오리엔탈리즘, 디아스포라,「파친코」와 디아스포라 _김성곤 278
자연과 문명: 「청산별곡」과 「헌화가」 _이어령 310
주자학 유교: 한국인의 과거 지향성과 당파성의 근원 _김성곤 325
과거로 되돌아가기, 귀족문화 _이어령 330
산업자본주의와 비인간화 _김성곤 340
4부 생명사상
생명 사상, 생명자본주의, 기호 _이어령 349
포스트모던 기호학: 기호는 거짓일 수도 있어 _김성곤 357
허먼 멜빌, 고양이 _이어령 363
고양이와 개를 통해 본 한국 문화 _김성곤 367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읽기 _김성곤 373
살만 루슈디의 『광대 샬리마르』 읽기 _김성곤 380
애니그마와 암호 해독 _이어령 384
엔트로피, 열림과 닫힘 _김성곤 393
우주선과 한반도 _이어령 400
트로피로서의 한반도 _김성곤 408
나가면서: 이어령 교수를 기억하며 413
■ 문학이란 무엇인가?
대화의 시작은 이어령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문학이다. 이어령은 문학을 일컬어 “유서가 아니라 유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문서로 쓰인 논리적인 학문이 아니다. 문학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비상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로 하는 유언과도 같은 문학을 다만 ‘공부’하고 있는 이 시대의 경직된 학습 태도는 문학에 어울리지 않는다. “여러분은 유서를 공부하고 있어요. 유서는 문구나 자구 하나 하나를 고치고 도장 찍는 것인데, 문학이나 인문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어령의 문학론에 대한 김성곤의 응답은 우리 마음속의 대답이기도 하다. 작가란 누구이고 문학의 의미란 무엇일까. 이러한 질문은 정의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화두로 뻗어나간다.
■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일찍이 『디지로그』라는 책을 통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만남에 주목했던 이어령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태도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어령은 인공지능 시대의 시작을 말이 가축화되고 기계화되는 과정에 비유한다. 말이 등장할 시기에 말과 경쟁하는 사람, 말 위에 올라타는 사람, 말을 가축으로 만드는 사람, 짐을 풀어서 내리는 사람 등이 있었듯 인공지능 시대에도 이 기술을 둘러싸고 다양한 사람들이 생겨날 것이며, 그때 우리는 문명에 끌려가지 말고 문명에 올라타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김성곤 평론가는 영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인공지능과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인간 삶에 이용되면서도 오용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할 지점들을 참조한다. 인공지능이라는 전대미문의 변화 역시 긴 역사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대처하지 못할 것이 없다.
■ 생명 자본주의 시대의 중심 가치는 무엇인가?
이어령 교수는 생명 자본주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자본주의는 물질 자본주의이고, 증식하지 않는 것을 증식하는 것처럼 하는 유사 캐피털리즘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생명 자본은 무엇일까. 교육, 문화, 문학 같은 것들이 바로 생명 자본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은 무한대의 소비와 생산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비용이 예정되거나 한정된 것이 아니며 과잉 생산되는 것도 아니다. 공기와 같고 물과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김성곤 교수의 해석은 생명 자본의 현실화와 가능성에 더 힘을 실어 준다. 끊임없이 증식하는 자본처럼 교양과 학식과 고매한 인격으로 불어나는 생명이라면, 그것은 분명 가치 있는 생명 자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그것이다.
두 사람의 문학 비평가가 나누는 대화답게 이 책은 문학을 문화와 문명과 연결하는 빛나는 통찰들로 가득하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청산별곡」의 진짜 의미에서부터 『파친코』 이면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이어령 교수와 김성곤 평론가의 해박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이 빚어낸 이 책은 이어령 교수가 남기고 간 문학적, 문화적, 문명사적 유언과도 같다. 이제 독자인 우리가 유서가 아니라 유언을 듣는 태도로 그가 남긴 말들을 곱씹어볼 차례다.
■ 본문에서
“몇 가지 토픽을 만들어 서로 상의하고 교류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으면 합니다. 앞으로 한국이 나아가야 할 진로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해 논해도 좋을 듯합니다. 가령 양극화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이 있을 때에 정면으로 이야기하면 이해관계로 인해 불리해도 내 편이면 눈을 감고, 유리해도 내 편이 아니면 눈을 감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런 상태의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나 지식인들이 우리의 대화를 읽으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리라고 생각합니다.” (28쪽)
“Literature를 ‘문학’이라고 번역한 것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문학은 학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문예’라고 번역했더라면 훨씬 더 나을 뻔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쓸데없는 소모전인 참여문학 논쟁이 훨씬 더 줄어들 뻔했으니까요. 쓸데없는 ‘학’이라는 말이 ‘문’에 붙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예술을 창조하기보다는 이념이나 이론에 경도되는 결과를 초래했어요. ‘문’이란 사실 art나 craft인데 ‘학’이 붙어 그리스 시대의 logic이나 logos 가 된 것이지요. 이렇게 번역이 잘못된 결과, 개념이 잘못 전달되어 문학이 마치 과학 같은 경직된 학문이 되고 말았어요. Humanities를 ‘인문학’으로 번역한 것도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했지요.” (32쪽)
“지식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제동을 거는 사람들입니다. 비록 자기가 지지하는 정보라 할지라도 그래야 합니다. 지식인은 정치인에게 아부하거나 정치인의 옹호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식인은 언제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아야 하고, 시대의 트렌드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60쪽)
초록이라는 것은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고, 인간의 원초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유대인 지역이나 중근동에서는 초원을 그리워하는 초원 문화가 있었지요. 그러니까 도시화되고 산업화되더라도 초원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거고요. 그래서 당구대도 초록색이고, 농구 코트도 초록색이에요. 그러니까 초록색은 현실 공간이 아닌, 의식주 공간이 아닌 상상의 공간, 즉 잃어버린 초원의 공간이 되는 거지요. (142쪽)
모든 분야에 메이저와 마이너가 있듯이, 인공지능이 만들어 놓은 메이저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오차 하나 없이 완벽한 현상이 될 것입니다. 가상현실이 아닌 현재에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이런 상황들이 앞으로 올지 안 올지는 알 수 없지만, 서울에서 벌어졌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으로 인해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봅니다. 서양인들이 만들어 낸 인공지능과 우리의 이야기가 어떻게 동반자로써 기능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7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