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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의 당신


첨부파일


서지 정보

김요일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11년 3월 4일

ISBN: 978-89-374-8350-9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24쪽

가격: 8,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72

분야 민음의 시 172


책소개

이 시집의 출현에 나는 응당 심장을 낮출 수밖에 없다. ―함민복(시인)
그가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삶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생을 온 마음으로 연주하며 지금에 이른
김요일의 시는 보다 넓고 깊어졌다. ―박정대(시인)

 
  1990년 《세계의 문학》에 「자유무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김요일. 그는 1993년 EBS에서 방영된 ‘1990년대를 여는 시인들’ 특집에 장석남․함민복․ 함성호․김중식과 함께 선정되는 등 1990년대 대표 주자로 기대를 모았으나, 1994년 실험 장시 『붉은 기호등』의 출간으로 문단의 엇갈린 평가를 받으며 ‘시적 불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4년 하재봉․성귀수․주종환과 홍대 앞 클럽 ‘발전소’에서 국내 최초의 집단 시 퍼포먼스를 갖는 등 실험 대상으로서의 시에 대한 모색을 하기도 하였으나, 실험으로서의 시에 대한 한계에 직면하면서 2003년까지 10년 동안 절필했다.
  『애초의 당신』에 실린 작품들은 등단작 「자유무덤」을 제외하고는 모두 2003년 이후에 쓰인 시들이다. 『붉은 기호등』이 실험적인 한 편의 장시를 출간한 것이었으니, 시집 『애초의 당신』은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 등단 22년을 맞이한 시인 김요일의 첫 詩集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절필 이전과 이후의 그 시적 변모는 실로 놀라울 정도다.
  문학평론가 김춘식은 김요일의 최근 시적 경향에 대해 “현실을 부유하는 몽상가이면서 동시에 방랑가, 경계인, 망명자”라고 시적 특징을 규정한 바 있다. 이제 우리는 “묶인 배의 빈 그물처럼” “비린 흔적만 가득”(「묶인 배」)한 지상에서, 이 시대의 영원한 방랑자 김요일이 들려주는 가장 애절한 사랑 시편의 매혹에 빠져 “터진 듯 쏟아 내리는 별빛 속에도 묻어오지 않으시고/ 전생의 전생에도 보이지 않으시는” “처음의 줄기이자 분열의 마지막인”(「애초의 당신」) 당신에게 당도하게 될 것이다.


편집자 리뷰

■ 실험과 혁명의 기수, 사랑을 노래하다
―유랑을 마친 집시, 고요한 난파자, 실패한 혁명가, 그리고 낭만적 음악가의 모습으로
 
  김요일의 작품에는 방랑과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망명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 특히 존재의 숙명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 구원에 대해서도 그는 천국과 지옥의 경계와 구분 자체를 아예 지워 버린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안의 장르”(「무인도」)처럼 김요일의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 기표와 같다. 실패한 혁명가처럼 기억 속에서만 현현하는 것, 태양과 바람의 경계에 서 있는 그것이 김요일의 구원이고 시적 아우라이다. 따라서 김요일에게 시란 ‘떠도는 기표’이며 ‘실패가 예정된 혁명’이다. 이방인이 되기 위해 스스로 실패를 기획하고 패배를 자초하는 역설이 한 시인의 영혼 속에서 이처럼 구원으로 뿌리 깊게 자리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얼마나 기막힌 역설인가.
  김요일은 이렇게 고백한다. “다 지나왔으므로/ 껍데기만 남았으므로// 하루하루가 장례였네”(「풍장」)라고. 그리고 「동화―오빠는 풍각쟁이」에서는 “기호를 잃었다 메타포도 벌레 먹었다 지긋지긋했다 상징도 의미도 죄다 쉰 냄새났다 내다 버렸다 썩어 갔다 곯아 갔다 한 10년 그렇게 구린내 진동했다 구더기가 바글바글 끓었다”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시절 동안 시인은 “배가 고”프고 “입안에 침이 고”(「동화―오빠는 풍각쟁이」)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김요일은 “시간의 처음에서/ 지상의 맨 끝까지/ 혀 밑에 고이는 싱그러운 침보다 달게/ 고이는 당신”(「세레나데」)을, “저물지 않는 별과 달/ 물의 꿈이 피워 낸 모든 꽃의 무덤인/ 당신”(「물의 무덤」)을 노래한다. “아아, 당신을 위해 평생을 울 수 있다면”(「거짓말」)이라고, “그냥/ 쓸쓸한 별의 벼랑 끝에서 잠시/ 아찔, 했을 뿐/ 황홀, 했을 뿐// 뿐,”(「뿐,」)이라고 가슴 절절하게 말이다.
  “들끓는 내면이 들끓지 않는 외부의 고요한 형식을 빌려 표출되”는 김요일의 사랑 시편에 대해 시인 박정대는 작품 해설에서 담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담배의 내용인 불꽃과 담배의 형식인 연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서로 길항하며 아슬아슬하게 존재한다. 들끓는 불꽃 내부의 소용돌이를 담배 연기는 아주 담담하고 고요한 형식으로 세상의 한편에 풀어놓는다. 담배 연기의 고요와 무심함을 들여다보면 그것이 통과해 온 불꽃의 아비규환을 망각하기 쉬운데, 김요일의 시 또한 형식과 내용 측면에서 여러 가지가 닮아 있다. 무심하고 고요한 듯 풀어놓은 그의 사랑 시편에는 일촉즉발의 순간들, 험준한 생의 질곡을 무수히 넘나든 자의 상처가 고요히 배어 있다. 가수의 발성법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의 이러한 작품들이 내는 목소리는 진성이 아닌 가성이다. 가성으로 부르는 그의 시들은 듣는 이의 심금을 쥐어뜯는다. 왜냐하면 고통과 단말마의 순간조차 고요함으로 정제된, 무심한 듯 표현된 그의 시의 사소한 풍경들이 독자들의 시선의 감정을 헝클어 놓기 때문이다. 
 
  거기 계세요, 제가 갈게요
  당신은 바다에서 가장 높은 산
  시장에서 제법 쓸쓸해 보이는 나무들도 샀구요,
  당신과 어울릴 만한 음악도 골랐어요
 
  붉은 꽃으로 치장한 통통배 타고 가장 높이 계신 당신께 오를 거예요
  깃발도 달고, 꽹과리도 두드리며
  멀리 계신 당신 쉽게 손 흔들 수 있도록
  시끌벅적 밀물 타고 갈 거예요
 
  당신의 연안(沿岸)은 모두의 피난처
  안달 난 새들은 같은 방향의 화살표로 날아들겠지요
  당신 치맛자락엔 검으나 부드러운 몽돌을 내려놓을 거구요,
  차고 단 샘물도 넣어 드릴게요
 
  가만 가만 거기에만 계세요
  교회 종 떼어 당신 목에 걸어 둘래요
  꿈밖으로 떠밀려 가도 알아챌 수 있도록
  색색의 부표로 당신을 휘감겠어요
 
  거기 계세요
  태양과 바람의 경계에서 가장 상처 깊은 뿌리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피안(彼岸)의 장르인
  당신
                                          ―「무인도」 전문
 
  진성이 아닌 가성으로 사랑을 노래한 「무인도」, 「선물」, 「꽃싸움」, 「소풍」 등은 소릿결(음성적 이미지)과 무늿결(시각적 이미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절창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것은 어깨와 목에 모두 힘을 뺀 듯한 그의 창법에 삶의 신산한 아픔과 고통이 차분하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신랄한 조소와 비명으로, 시대의 구조적 모순에 억눌린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고스란히 드러냈던 『붉은 기호등』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이 사랑 노래들은 이번 시집 『애초의 당신』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후광처럼 거느리며 절망과 신음으로 가득한 작품들 또한 새로운 관점으로 읽게 만든다. 묘한 생기와 빛을 불어넣은 이토록 빼어난 사랑의 진경에 당신의 동공은 잠시 흔들리게 될 것이다.
 
 
■ 추천의 말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남호 선생에게 무리한 부탁까지 하여―이 선생이 한 호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는 걸 내가 떼를 쓰다시피 하여 투고한 호에 바로 등단하게 되었다!― 등단을 시켜 놓은 내 애제자. 그렇게 등단을 시켜 놓은 이놈이 또 고집은 얼마나 센 놈인지, 내 말도 잘 안 들을 때가 많았다. 그래, 요일아, 어차피 예술가는 고집도 좀 있어야 한다. 요일아, 제발 나를 이겨 다오. 제발 나를 좀 이겨 다오! 그러던 그가 이제 20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닫았던 「말문」을 다시 열고서. 그래, 요일아, 이젠 모든 걸 다 용서한다. 「낮술」의 저 시도 때도 못 되는 저 ‘진술’까지도 다 용서한다.(「체 게바라에게」) 보라, 이제는 「낮술」에서는 안 보이던 시와 때까지가 「대략, 난감」에서는 다 보이고 있질 않은가. 시는 시이기 때문에 시여야 하고 시는 또한 시이기 때문에 때여야 하는 것. 무정한 독자들에게도 떼를 쓰지 않고 이제는 때에 맞춰 때를 들이댈 줄도 알게 된 우리 시인. 요즘처럼 잡지나 하면서 꿩도 먹고 알도 먹고 하는 펭귄 시인들이 너무나도 많은 우리 시단에서 우리 시인 김요일은 이젠 차라리 위장까지도 다 잘라 내고 나서는 선언하는 것이다! “평생 제 이름 파먹으며 꾸벅거리는 떼, 거지들”(「떼 비둘기」)
―박남철(시인)

  시집을 읽고 나니 긴긴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다. 마음에 침처럼 꽂힌 시편들을 뽑아 본다. “살아 있는 죽음 속에/ 죽어 가는 삶이 퍼덕이는 풍경이” 한 땀 한 땀 문신으로 푸르뎅뎅 새겨진다. 통증에 동반되는, 울을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쾌감의 진저리가 섧다. 시인은 잔인하게도 삶의 비애를 다정히 들려준다. 시 편편이 그물망으로 짜이며 어렝이가 되어 뒤척뒤척 삶을 걸러 준다. 시간의 지방과 살이 빠져나가고 검불 같은 추억이 얼기설기 남는다. 읽는 자의 삶을 이리 냉철하게 간추려 놓는 시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놀랍고 밉다. 시인이 간파한 것처럼 “우리 사랑은 소멸에 대한 설명”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쓸쓸한 맘에 외투 깃 여미고 “푸른 달빛 속의/ 사자 한 마리” 만나 보러 가고 싶게 만드는 이 시집의 출현에 나는 응당 심장을 낮출 수밖에 없다. 
―함민복(시인)
 
 
■ 작품 해설 중에서

  그의 시는 오랜 유랑과 순례를 마친 집시의 모습으로, 거친 바다의 풍랑을 헤치고 밀항에 성공한 고요한 난파자의 모습으로, 실패한 혁명군의 어깨를 다독이는 낭만적 음악가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삶의 속살을 나직한 목소리로 전해 주는 그의 시들은 들끓는 내면의 풍경을 단아하고 정제된 목소리로 보여 준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의 시들과 함께 여행하다 보면 우리는 문득 아바나와 아프리카와 북회귀선을 지나 삶의 피안인 당신에게 이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의 시들은, 그가 꿈꾸는 ‘당신’에게로 닿기 위한 긴 노정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박정대(시인)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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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일

1990년 《세계의 문학》에 「자유무덤」 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실험 장시집 『붉은 기호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