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41년을 맞은 한국 현대시의 거장 조정권우리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말 한 송이”를 들고 최후의 시 언어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
“가장 높은 정신은 가장 추운 곳을 향하는 법.” 고결한 성품의 시, 깊이 있는 사유의 시를 전개해 온 조정권이 여덟 번째 시집 『고요로의 초대』를 출간했다. 『떠도는 몸들』 이후 6년 만의 시집이다.1977년 출간한 첫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이래 조정권은 얼음처럼 차갑고 맑은 정신의 높이를 추구해 왔다. 그의 시집은 시대의 비속성에 물들지 않는 기품과 위엄을 보여 주며, “내 마음은/ 다시 태어나도 추운 김으로 올 것”이라는 시구처럼 칼날 같은 감각, 고도의 집중력, 나태의 조그만 틈입도 허용치 않는 철저한 고집이 절면마다 배어 있다.『고요로의 초대』에서 조정권은 ‘고요’와 ‘불면’을 관통해 최후의 시 언어에 다가간다. 해석할 수도, 번역할 수도 없는 말 한 송이에는 정신의 새로운 윤리를 창조하기 위해 끝없이 혁신을 반복하는 시인의 치열한 각성이 담겨 있다. 어떤 유파로부터도 자유로운 1인의 종교를 추구하는 독생(獨生)의 시. 그렇게 우리는 한국 현대시가 결여한 지점을 개척해 나가는 그의 시를 다시 한 번 목격할 것이다.
■ 『산정묘지』 이후 20년…… 다시, 새로운 ‘높이’의 시인이 탄생하다
조정권은 스스로를 벼랑 끝에 내모는 이의 목소리처럼 차갑고 매서우면서도 그만큼이나 곧고 맑은 노래를 들려주었다. “높고 차고 청정한 것에 대한 견인주의적 동경”(유종호), “강철의 정신”(최동호), “어둠의 중심”(황현산), “결빙의 시학”(남진우)으로 호명되는 그의 시학은 이번 시집 『고요로의 초대』에서 ‘시은’과 ‘독생’의 키워드를 발판 삼아 자기 성찰을 지속한다.
외로움은 시인들의 은둔지.외로움은 신성한 성당.(중략)시인은 1인 교주이자그 자신이 1인 신도.시는 신이 없는 종교.그 속에서 독생(獨生)하는 언어.시은(市隱)하는 언어. — 「은둔지」에서
1인 교주이자 1인 신도임을 천명한 시인의 은둔은 도피로서의 은둔이 아니라 세속 속에서의 투철한 은둔, 즉 ‘시은(市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정권의 시는 일찌감치 관념론의 함정을 비껴간다. 그의 치열한 정신적 투쟁은 현실과 언어의 긴장 사이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동물의 털모자를 쓸 자격은 동물들 그들”이라며 “교황님이 착용하시는 담비 털모자 좀 벗으시라” 하고,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방석을 깔고 어떤 어머니가 생수병을 든 채” 부르는 노래를 “밟고 지나갈 순 없다”는 시를 두고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 할 수 있을까? 그의 시는 자본주의적 일상을 인지하되 인정하기는 거부하는 방식으로 현실과의 긴장 관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정권의 시가 고전적인 견인주의를 넘어 독창적인 ‘현대성’의 성취로 도약하는 지점을 발견한다.
■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뜻도 없는 말 한 송이로 수렴하는 구도의 여정
새로운 높이로 나아가는 『고요로의 초대』의 시편들은 어떤 가치나 관념을 목표하지 않는다. 어디를 향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님을 추구하며 끝없는 자기 분화와 분열을 감내한다. 그렇게 “오랜 세월 수신지 없는 편지처럼 떠돌”고 “나를 쓰러뜨리며 일으킨” 끝에 마침내 도달하는 것은 아무 뜻도 없는 텅 빈 언어이다. 그 언어는 “인간의 말이 아니라 새의 말”이어서 “어디다 발표할 게 아니”지만 각성을 일으키듯 “내 머리통을 패는” 그 무엇이다. 문자화할 수 없는 관념의 문제는 가히 낯설지 않은 시제(詩題)이다. 그러나 조정권은 이 비인칭의 언어를 옹호하며 나아가 그것의 ‘아무것도 아님’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말 한 송이 들고/ 찾아간다.아무런 뜻도 없는 말 한 송이 들고아무도 아니고 아무도 아닌 그분을 뵈러(중략)아무 뜻도 없는말 한 송이는1만 년 동안 햇빛이 돋보기로 들여다본 씨앗 같고무성하게 자란 관목의 먼 조상 같다. — 「문안」에서
적막한 은둔 속에서 시편이 추구하는 미학적, 정신적 차원은 “無의 꽃을 피워” 내는 경지에 이른다. 이것은 비어 있음으로 해서 어떤 의미에도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언어, 곧 ‘독생(獨生)’하는 언어이다. ‘독생’은 아무것도 아닌 말 한 마디의 ‘있음’을 드러내며 시인의 정신적 탐험을 구도의 여정으로 전환한다. 어떤 관념도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풍경은 그래서 견고하고 또 선명하다. 이제 “무거운 머리”도, “헐벗은 두 손”도 내려놓자. 모든 해석이 무화된, 허기진 시간과 침묵하는 공간으로 들어가자. 『고요로의 초대』는 ‘아무것도 아님’으로 오히려 풍요롭게 채워진 고요의 시공간으로 우리를 이끄는 청아한 초대장이다.
■ 작품 해설에서
조정권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어떤 독생의 언어, 어떤 유파로부터도 자유로운 1인의 종교를 추구한 독생의 시로 호명할 수 있다. 현실과 언어 사이의 독생, 세속과 신성 사이의 시은으로서의 시. 조정권의 시에서 정신의 높이에 대한 지향은 고전적인 규범에 대한 수락이 아니라 정신의 새로운 윤리를 스스로 창조하기 위한 끝없는 자기 혁신의 과정을 의미하며, 그런 맥락에서 현대성의 미학적 기획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그곳에서 다시 새로운 ‘높이’의 시인이 탄생한다. — 이광호(문학평론가·서울예대 교수)
■ 추천의 말
우리는 헐벗고 허기졌다. 우리는 늘 폭식하므로. 대지와 자연과 신을 알지 못하므로. 우리는 삶에 대해 목례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가만히 있지 못하므로 더 많이 혼자 있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결국 마지막에 우리의 삶은 반송될 것이다. 그 누군가에 의해. 나는 내 곁에 한 번도 누워 본 적 없다. 이제 고백하오니 유기견 같은 이 삶을, 생각과 일들의 발생을 “금하옵소서.” 속세에서 은둔하게 하소서. 내 속에 독생(獨生)하는 성스러운 나를 기르게 하소서. 금은(金銀)의 소리가 나게 하소서. 빙화(氷花)가 되게 하소서. 목불상과 수도원이 되게 하소서. 나를 너무 쉽게 용서하지 않게 장미의 주먹으로 내려치소서.이 기다란 문장들을 나에게 배송해 준 이 고독한 시집에게 첫 번째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 문태준(시인)20년 전, 한국문학사의 산정(山頂)이 높아졌습니다. 『산정묘지』에서 차고 맵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강한 영혼들, 이를테면 벼랑 끝에 몸을 두고 내려오는 길을 부숴 버린 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세상의 길을 끊어 낸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그리움은 우리의 영혼을 고양시켰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의 어느, 어느 골목에서 지금 막 도착한 초대장을 뜯어보았습니다. 내가 나를 마중 나가야 할 시간은 그렇게 세상의 길 속으로 찾아왔습니다. 『고요로의 초대』는 그 시간의 이름이며 주인의 옷매무새며 손님의 발걸음이며 그 모든 나의 느낌입니다. 오랫동안 그리워했습니다. 문득 나는 내게 그런 말을 해 주고 싶어졌습니다. 그의 시집을 읽은 오늘 밤이라면 조금 더 뒤척이면서 나는 내 손을 잡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면은 영혼의 시달림이면서 보살핌입니다. 세상의 장터에서도, 불면의 침상에서도 고요의 문을 두드리는 영혼을 가졌으므로 나는 나의 이상(以上)이며 자연입니다. 새로 도착한 그의 언어가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 김행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