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움’을 자긍심 삼는
페미니즘 문학의 혁명성
‘진짜 페미니즘’을 구분하는
혐오와 배타주의를 넘어
‘페미니즘들’의 대화를 향하는
새로운 페미니즘 서사의 정치학
“너 페미야?” 네 음절이 상징하듯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그 자체로 낙인이 되었다. 미투 운동 이후 페미니즘은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이론이자 운동으로 부상했지만 곧 거대한 백래시가 이어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무분별한 혐오와 더불어 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 진짜 여성과 가짜 여성, 페미니즘을 말할 수 있는 이와 말해서는 안 되는 이를 구분하는 배타주의가 떠올랐다. ‘민음의 비평’ 시리즈로 출간된 문학평론가 심진경의 네 번째 비평집 『더러운 페미니즘』은 이처럼 페미니즘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분노와 혐오의 말들에서 시작한다. 페미니즘 앞에 붙은 ‘더럽다’라는 수식어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999년 등단한 이후 꾸준히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문학비평을 써 온 심진경은 올바르고 순수한 페미니즘은 없으며, 다양한 입장과 정체성에서 나오는 ‘페미니즘들’을 긍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여성 억압만이 아니라 성적, 정치적, 경제적 지형 속에서 발생하는 다른 모든 종류의 억압과 차별에 저항할 수 있을 때, 페미니즘 앞에 붙은 ‘더러운’이라는 수식어는 수치심이 아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될 것이다.
1부의 글들은 마치 “페미니즘 표준 약관”이 있는 것처럼 ‘올바른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며 젠더 고정관념을 재생산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페미니즘 서사의 정치학을 만들어 가려는 시도다. 심진경은 젠더 이분법을 교란하는 다양한 주체들을 그리는 동시대 문학작품들을 분석하며 성차별적 사회 구조를 바꿔 갈 새로운 관점들을 보여 준다. 문학 속에 페미니즘을 규정하는 답은 없으나,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페미니즘을 다루는 문학작품은 독자들에게 여러 페미니즘들 사이에서 파생되는 질문을 곱씹게 한다.
2부는 폭력과 여성 섹슈얼리티를 다룬다. 여성 섹슈얼리티가 금기시되거나 여성혐오적으로 재현되는 상황에서,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재현은 또다시 폭력의 문제를 건드리고, 폭력을 이야기할 때 섹슈얼리티 문제를 피해 가기 어렵다. 2부의 글들은 폭력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새로운 재현의 시도들을 분석하며, 폭력과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여성’을 매개로 작동하는지 보여 준다. 3부에서는 김혜순, 한강, 황정은, 박솔뫼 등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지금 문학에 영향을 미친 작가들의 작품을 분석한다. 탈정념 주체, 심리적 현실로서의 환상 등의 개념으로 작품들을 섬세하게 독해해 나가는 비평은 작가들의 문학적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4부에서는 식민지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작가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강경애 등의 소설과 삶을 보여 준다. 이는 여성과 여성 작가에 대한 틀에 박힌 재현에서 벗어나 자신과 여성들의 삶을 쓰기 위해 분투한 생존기다. 심진경은 강경애의 생애사를 들여다보고 나혜석과의 가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형식을 통해 당시 여성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그려 낸다. 5부에는 비평집 전체의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리뷰와 작품해설, 인터뷰를 모았다. 근현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톺아보며 동시대 작품들이 놓인 사회적 자리를 짚어 주는 『더러운 페미니즘』은 더 많은 페미니즘 서사의 필요성뿐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관점에 기반한 꼼꼼한 독해와 날카로운 비평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책머리에: ‘더러움’이 자긍심이 되도록 5
1부
새로운 페미니즘 서사의 정치학을 위하여 15
이것은 페미니즘이 아닌 것이 아니다 35
남성을 넘어, 여성을 지나, 떠오르는 레즈비언 ― 김멜라 소설을 중심
으로 54
‘진짜 페미니즘’을 넘어서 ― 윤이형의 『붕대 감기』가 페미니즘‘들’에
대해 말하는 방법 74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 트랜스젠더 트러블 86
2부
무서운 소설, 무서운 아이들 97
여성과 폭력, 혹은 쓰레기 아마조네스 116
성적 순진함의 역설 ― 1990년대 여성소설의 섹슈얼리티와 성폭력 134
1990년대 은희경 소설의 섹슈얼리티 155
거울 속에서 아버지를 보다 ― 다시 읽는 오정희 179
3부
홀로 함께 있음, 도래할 시의 공동체 ― 김혜순 시집 『피어라 돼지』에 기대어 199
극장적 세계와 탈정념 주체의 탄생 217
황정은 소설의 환상과 리얼 ― 『百의 그림자』와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중심으로 235
변신하는 주체와 심리적 현실로서의 환상 ― 한강의 『채식주의자』 다시 읽기 259
4부
여성 작가 생존기 ―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의 삶과 문학 273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 나혜석과의 가상 인터뷰 293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 ― 강경애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303
5부
아직은 모른다 ― 권여선의 『아직 멀었다는 말』과 강영숙의 『부림지구 벙커X』 317
어떤 고독사(孤獨史) ― 구병모의 『파과』 읽기 327
권여선과 함께 레가토를 ― 거두절미식 인터뷰 340
어쩔 수 없이, 사랑의 불가능성 ― 구경미의 『라오라오가 좋아』 356
몰락이 우리를 구원할지니 ― 최윤의 『오릭맨스티』 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