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유령문학
*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이승아, 소설가 권혜영 인터뷰
* 박민정, 이서아 단편소설, 이희주 경장편소설
* 정이현, 정은귀, 송지현 산문
* 코맥 매카시, 마틴 에이미스 추모
스티븐 킹의 소설 『나중에』에는 유령을 보는 소년이 등장한다. 주인공 제이미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본다. 그 능력 덕에 잃어버린 물건을 찾거나 엄마의 곤란을 해결해 주고, 범죄를 막을 힌트를 알아내기도 한다. 나는 이 소설이 무척 좋았는데, 이유는 이 소설이 매력적인 유령문학의 특징을 전부 갖추고 있어서인 것 같았다. 먼저 유령이 등장할 것. 그리고 유령을 보는 사람이 등장할 것. 또, 그 사실을 믿어 주는 사람이 등장할 것. 마지막으로 그 소설만의 ‘유령 규칙’을 가지고 있을 것. 『나중에』만의 유령규칙은 이런 것이다. “죽은 이들은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진실은 아주 엿같을 때가 있다.”
릿터 43호의 주제는 ‘유령문학’이다. 유령 같은 존재가 등장하는 문학은 왜 이렇게 좋을까? 하는 근거도 확신도 없는 물음이 시작이었다. 손에 잡히지 않고 자주 놓쳐서 갈고리 같은 물음표를 던져야 했다. 어디까지가 유령문학이지? 무서워야? 무섭지 않아도? 유령이 등장해야? 유령이 등장하지 않아도? 회의 내내 어 지금 잠깐 보였는데 또 안 보인다, 하고 안달하게 되는 과정이 마치 유령을 따라가는 멈출 듯 멈추지 않는 모험 같았다. 커버 스토리는 슬쩍 모습을 드러내는 유령과 같이 《릿터》 편집자, 구병모, 곽재식, 정지돈, 편혜영 소설가가 추천하는 ‘나의 유령문학’으로 문을 연다.
유령의 흰 자락을 보았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유령을 따라나설 차례다. ‘유령 쓰기’의 필자들은 유령을 통과하는 자신의 쓰기에 대해 말한다. 김애란 소설가는 시기에 따라 애호하는 작품이 변해 온 유령문학 유랑의 역사를 돌아본다. 임선우 소설가는 첫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 출간 이후 자신의 소설에 ‘환상’ 또는 ‘유령’이라는 수식이 붙을 때 어쩐지 머쓱해지던 마음을 고백한다. 김선오 시인은 시에서 언제 유령이 불려 나오는지, 유령을 소환해야 했던 시인들의 필요를 살핀다. 이어지는 ‘유령 읽기’는 유령이 있던 자리를 다시 생각해 보는 독법에 대해 다룬다. 소영현 평론가는 키티 크라우더의 『나와 없어』를 통해 대상을 상실함으로써 발생하는 유령과 남은 사람들의 시간에 주목한다. 없는 존재를 만들어 내기. 그것은 애도의 실패보다 변화하는 용기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지형 작가는 더 이상 무서운 유령은 가능하지 않고 슬픈 유령이 더 친근한 시대에, ‘섬찟한’ 유령문학을 소개한다. 몸을 얻은 저주와 몸과 마음을 잃어버리는 인간의 사정들.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에 대한 이야기다. 유령이 아닌데 유령처럼 취급되는 사람들도 있다. 정여온 작가는 『전쟁 같은 맛』을 읽으며, 세상에 기입되지 못한 엄마의 자리를 찾는다. 전쟁 같은 맛은 저자가 조현병에 걸린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쓴 어떤 폭력과 낙인의 역사다.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뿌리 깊은 낙인과 혐오는 죽음 없이도 그를 충분히 유령으로 만든다.
인터뷰 코너에서는 『동조자』, 『헌신자』를 출간한 소설가 비엣 타인 응우옌을, 소설가 정지돈이 만난다. 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난 두 소설가의 대화가 전부 인상깊었지만, 특히 베트남 사람이 아웃사이더가 아닌 소설을 쓰고자 한다는 작가의 발언 속, 한국이 베트남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아쉬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수희 작가가 진행하는 ‘첫 책을 내는 기분’에 초대된 작가는 『사랑 파먹기』를 출간한 권혜영 소설가다. 어느 날 갑자기 포토카드에서 최애 아이돌이 튀어나오는 「여분의 해마」 등, 입안에서 터지는 슈팅스타 아이스크림 같은 소설을 쓰는 권혜영 소설가의 ‘피곤한 인물들’, ‘지친 사랑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된다.
어쩐지 ‘유령문학’ 특집답게, 이번 호에 실린 소설은 기묘한 뒤틀림으로 우리를 긴장시킨다. 박민정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헤일리 하우스’는 부유층이 사는 타운하우스로 이루어진 동네의 영어 유치원 이름이다. 이 소설에는 유령은 없지만 유령의 목소리 같은 것이 있다. 한 가족의 입주 가정교사로서 헤일리 하우스의 기묘한 밤을 통과한 주인공을 시종일관 ‘너’라고 부르는 정체 모를 목소리다. 이서아의 단편소설 「초록 땅의 수혜자들」에는 죽은 ‘선영 선생님’의 시체가 든 관을 트럭에 싣고 달리는 진희와 진원, ‘나’가 등장한다. 진희가 원하는 것은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냉동 인간 기술로 인해 선영 선생님이 살아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올까? 그들은 기술의 수혜자가 될까?
이희주의 신작 장편소설 「나의 천사」의 첫 문장도 의미심장하다. “나, 천사를 봤어.” 이희주 세계 속의 천사는 로봇의 다른 말이다. 환희와 미리내, 그리고 ‘나’는 천사 중에서도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는 ‘자비천사’에 몰두한다. 자비천사에 대해서는 그를 보면 죽는다는 괴담이 돌기도 한다. 천사–유령–괴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듯하다. 그런 이야기에는 이유 없이 매혹된다는 점에서.
이번 호를 준비하며 소설가 코맥 매카시와 마틴 에이미스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정영목 번역가가 코맥 매카시를, 제프 다이어가 마틴 에이미스를 추모하며 쓴 글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그들이 작가의 글쓰기와 삶에 대한 기억으로 배짱과 문장을 꼽았다는 점이다. 죽은 작가는 오래 산다. 유령이 아니라 작품으로. 열렬히 작가를 사랑했던 이들이 다시 우리에게 그 작가를 건넨다. 문학이 발생시키는 이런 연결이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마법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유령문학이 아니라 문학유령이 있다면, 배짱과 문장을 알려 달라고 쫓아다니고 싶다.
2 — 3 Editor’s Note
9 Cover Story: 유령문학
12 — 16 김애란 나의 유령문학 유랑
17 — 20 임선우 유령 등장 깊은 잠
21 — 25 김선오 물로 자신의 백색을 헹구는 유령
28 — 33 정여온 누가 우리 엄마를 유령으로 만들었을까
34 — 37 이지형 세상의 잔해 속에서 유령들이 깨어난다
38 — 43 소영현 애도하는 유령: 엄마, 유령, 친구
47 Essay
48 — 53 이성민 무지개를 볼 때 최종회
54 — 59 정은귀 나의 에밀리 6회
60 — 63 송지현 경기도 생활 4회
64 — 68 정이현 table for two 8회
71 special Feature
72 — 74 정영목 코맥 매카시
75 — 77 제프 다이어 마틴 에이미스
79 Interview
80 — 90 비엣 타인 응우옌 X 정지돈 나는 휴머니즘을 믿지 않는다
92 — 103 이승아 X 안동선 막후의 설계자
104 — 114 권혜영 X 이수희 어느 현실주의자의 환상소설
119 Short Story
120 — 137 박민정 헤일리 하우스
138 — 164 이서아 초록 땅의 수혜자들
165 Novel
166 — 238 이희주 나의 천사
241 Poem
242 — 242 강보원 오후 네 시에 대한 생각
243 — 243 김이듬 내일 쓸 시
244 — 245 신이인 외계인의 시
246 — 246 이기성 아들들
249 Review
250 — 253 오후 《녹색평론》
254 — 259 김희선 『토끼 귀 살인사건』
260 — 262 이서수 『여덟 번째 방』
263 — 266 정기현 『고양이 대학살』
267 — 269 박혜진 『읽는 사람』
270 — 273 김지현 『개의 설계사』
274— 275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