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문보영, 강지혜, 소유정, 유계영, 정용준, 김연덕, 김남숙, 권민경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3년 7월 14일
ISBN: 978-89-374-1739-9
패키지: 소프트커버 · 변형판 113x188 · 100쪽
가격: 15,000원
분야 한국 문학
워터프루프북은?
워터프루프북은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버려지는 돌을 재활용한 친환경 방수 종이 ‘미네랄 페이퍼’로 제작되었습니다. 물에 완전 젖더라도 변형 없이 다시 말려서 보관할 수 있습니다. 해변가, 수영장, 계족, 욕조 등 습기에 구애 없이 워터프루프북을 마음껏 즐겨 보세요!
기다려지는 여름 친구가 된 워터프루프북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젊은 작가들의 일상과 문학론을 담은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의 산문을 모은 산문 앤솔러지로 돌아왔습니다.
문보영, 강지혜, 유계영, 소유정, 정용준, 김연덕, 김남숙, 권민경. 여덞 명의 이름 중 당신의 눈을 솔깃하게 하는 작가가 있나요? 동시대 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에 대해 솔직하게, 혹은 엉뚱하게 이야기하는 산문을 좋아하시나요? 문학은 애쓰지 않아도 이미 일상에 스며 있는 걸까요, 혹은 일상으로부터 애써 떨어져 나와 찾으러 가야 하는 걸까요? 문학은 누구에게, 왜, 어떻게, 이렇게 소중할까요? 삶과 문학에 대한 애정과 의지를 또박또박 적은 고백을 담은 올해의 워터프루프북은 ‘나의 친구’, ‘나의 문학’이라는 두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차례
『나의 문학』
문보영(시인)
시인기記 1 —낙엽 인간과의 만남 11
시인기記 2 —三 代의 시 수업 16
김남숙(소설가)
랄로 쿠라의 원형 23
5월에 쓴 소설 26
유계영(시인)
누구의 손입니까? 33
점과 백 38
소유정(문학평론가)
그 전화만큼은 보이스 피싱이 아닐 수 있다 45
세 개의 바늘 51
김연덕(시인)
2020년 12월 3일 57
2022년 2월 3일 60
정용준(소설가)
노력에 관한 몇 가지 생각 65
고속버스와 기차와 지하철에서 읽고 쓰기 73
강지혜(시인)
처음 쓰는 마음에 대해 79
섬에서 쓴 시 84
권민경(시인)
내 시에 든 것 89
빨간 물음표 94
『나의 문학』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문학’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 있습니다. 처음 시를 배우던 짜릿한 접속의 순간, 소설을 쓰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처음 썼던 아주 못 쓴 소설에 대한 기억, 노을에 대해 쓰려면 손에 대해 써야 하고 돌에 대해 말하려면 시에 대해 말해야 하는 ‘시적인’ 뒤바뀜의 순간, 등단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보이스피싱이라고 의심하고 뒤늦게야 펑펑 울었던 이상한 하루에 대한 기억,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왜 그런 모양인지 골똘히 고민하는 젊은 시인의 모습, ‘진짜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천천히 적어 보는 소설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 컴컴한 제주의 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들을 휴대폰에 녹음하는 섬에 사는 시인, 무엇보다 삶과 죽음 사이에 시가 있었구나 돌이켜 보게 된 시인의 고백까지.
문학은 대체로 우리가 홀로 있는 순간에 가까이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순간에 문학은 내가 혼자이면서도 혼자이지 않도록 친구가 되어 줍니다. 한편, 홀로 해야만 하는 문학이라는 외로운 방식을 기꺼이 함께 해 주는 친구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아주 소중하고 독특한 친구들의 얼굴에서 문학의 방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문학의 방식은 친구의 방식. 친구가 되어 주는 문학과 친구로부터 오는 문학. 문학과 친구는 이렇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의 삶이 고립되거나 튕겨나가지 않도록 해 줍니다. 문학과 친구의 닮은 점에 대해 쓴 원고를 선별하여 묶은 이번 워터프루프북은, 가능하다면 독자 여러분께서 두 권 모두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가장 문학에 대한 몰두가 열렬한 작가들에게, 친구와 문학은 겹치고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여름밤 모닥불을 바라보며 약간의 거리를 두고 둘러앉은 모습으로, 여덟 명의 작가들이 쓴 글 사이사이에 우리가 함께 앉는 상상을 합니다. 그때 ‘나의 문학’, ‘나의 친구’는 결국 연결되어 ‘나의-문학-친구’가 되겠지요.
■본문에서
『나의 문학』
나의 손이 하는 일 중 내가 가장 몰두하는 일은 아무래도 시를 쓰는 일인 것 같다. 나는 시가 다른 이에게 손을 펼쳐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가 당신을 깜짝 놀라게 하고 먼 데서 다가오는 자를 가까이 당겨 부르며 광폭에 휩싸인 자를 광기의 경계선까지만 건져 올리며 제정신 상태로 뒷걸음치게 할 뿐더러 사랑을 다정히 안기 위한 포옹이자 빼앗긴 나를 돌려받기 위한 저항, 단 하나의 몸짓 속에 숨어 있는 무한한 겹침, 환희에 찬순간을 더욱 번쩍이게 만드는 마찰, 삶과 만나고 헤어지게 하는 영혼의 속삭임이라고 믿었다.
―유계영, 「누구의 손입니까?」
내가 가진 바늘이 비평과 뜨개와 자수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비평과 뜨개와 자수는 지금 가장 열심히 내 삶을 굴리고 있는 것들이기도 하니까. 무엇보다 그것이 전부 손으로 하는 일이
라서 좋다. 부지런히 손을 놀린 후에야 얻는 한 편의 글과, 한 짝의 양말과, 하나의 소품이 좋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이 세 개의 바늘은 손에 꼭 쥐고 난 것이라 영영 잃어버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만일 셋 중 어느 것이든 바늘의 일이 시들해진다면, 그래서 하나의 바늘만 남게 된다면, 그것은 비평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소유정, 「세 개의 바늘」
어떤 사람이 소설을 쓰는가? 내면에 무엇인가 가득한 사람이 소설을 쓴다. 다른 사람이라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하며 세상을 보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 세계와 현상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품고 어느 것 하나 사소하고 일반적인 것으로 바라보지 않으며, 그렇게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쓴다. 그런 기질 속에는 엉뚱함과 고집이 있고, 의심하는 눈과 현상에 대한 회의감을 품고 있다.
―정용준, 「노력에 관한 몇 가지 생각」
불완전한 나와 내가 키우는 외로움이 걷잡을 수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주로 그럴 때 시가 써진다. 나와 타인이 함께 만들어내는 외로움, 나와 세계 사이에 도사리는 외로움, 나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외로움. 나는 혼자구나, 태어났을 때도 혼자였고 죽을 때도 혼자이고 죽어서도 혼자이겠구나, 하는 인식에까지 다다르면 시는 시작된다. 그렇게 시를 쓰고 있노라면, 시가 나에게서, 단 한 사람에게서 탄생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완전하다고 느껴진다.
―강지혜, 「처음 쓰는 마음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