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인선60] 두이노의 비가
시리즈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50주년 기념) 60 | 분야 세계시인선 60
“시로 이어지는 먼 길, 그 자체가 시적이다. 릴케는 시대의 궁핍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 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본문에서
● 모든 시인 중의 시인 릴케가 남긴 필생의 역작
인간 실존의 의미를 찾으려는 간절한 질문
근현대 시문학 정신의 거대한 원형으로 일컬어지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대표작 『두이노의 비가』가 민음사 세계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릴케는 이탈리아 두이노성에 머물며 첫 번째 비가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십 년의 세월에 걸쳐 열 편의 비가를 완성, 1923년 출간한다. 이후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를 사로잡은 필생의 역작 『두이노의 비가』의 탄생이다. 초판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이번 책은 독일어 원문과 번역문 외에 국내 최초로 전문(全文)에 대한 해설을 수록하였다. 번역과 해설을 맡은 독문학자이자 시인 김재혁 교수는 1980년대부터 40년간 몰두해 온 릴케 연구를 일단락 짓는다는 각오로 오랜 준비 끝에 문장 부호 하나하나의 운용 방식까지 고심하여 가장 정확하고 아름답게 벼린 결과물을 내놓았다.
내가 울부짖은들, 천사의 위계에서 대체
누가 내 목소리를 들어 줄까? 한 천사가 와락
나를 가슴에 끌어안으면, 나보다 강한 그의
존재로 말미암아 나 스러지고 말 텐데.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 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우리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파멸시키기를, 냉정히 뿌리치기 때문이다. 모든 천사는 무섭다.
―「제1비가」에서
릴케는 열 편의 비가를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인간 실존의 고독과 불안, 예술과 시인의 임무라는 문학의 영원한 주제를 탐구한다.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리를 받아 적었다는 첫 비가의 시작에서 그는 인간의 유한성과 결핍에 대비되는 완전무결한 천사의 이미지로 아름다움을 정의한다.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이 절대적 세계는 잔인하고 무섭다. 그러나 시인으로서는 절망할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해야만 하는 질문이 있다. 모든 비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려 아쉬운 마음을 그 시작점으로 삼는다. 비탄이 음악으로 변화할 때 슬픔에 젖은 이들은 상실을 극복하고, 죽음이 곁에 있어 삶의 의미는 도드라진다. 릴케의 시에는 본질적으로 불안하고 외로운 우리가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의미를 찾으려는 간절한 시도가 담겨 있다.
연인들아, 너희 서로에게 만족한 자들아, 너희에게 묻는다,
우리에 대해. 너희는 껴안고 있다. 증거라도 있는가?
보라, 나의 두 손이 서로를 알게 되거나,
나의 지친 얼굴이 두 손 안에서 쉴 때가
있다. 그러면 약간의 느낌이 온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감히 존재한다 할 수 있으랴?
그러나 상대가 압도되어
이제 그만 ― ; 이라고 간청할 때까지
상대방의 황홀감 속에서 성장하는 너희, 수확 철의
포도송이처럼 손길 아래서 더욱 무르익는 너희;
상대방이 우위를 점하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가끔
쇠락하는 너희: 너희에게 묻는다, 우리에 대해.
나는 안다, 그처럼 행복하게 서로 어루만지는 까닭은
애무하는 동안 너희 연인들이 만진 곳이 사라지지 않고,
너희가 거기서 순수한 영속을 느끼기 때문임을.
그리하여 너희들은 포옹으로부터 거의
영원을 기대한다. 그리고 하지만, 너희가
첫 눈길의 놀람과 창가의 그리움, 단 한 번
정원 사이로 함께한 너희의 첫 산책까지 겪어 낸다면,
연인들아, 그래도 너희는 그대로인가? 너희가
서로 입을 맞추고 ― : 꿀컥꿀컥 키스를 마시기 시작하면:
오 마시는 자는 얼마나 기이하게 그 행동에서 떠나고 있을까.
―「제2비가」에서
● 지난 백 년,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를 사로잡은 시집!
시를 쓰고 싶은 이들에게 전하는 즐거운 명령
릴케는 『두이노의 비가』에서 평생 천착해 왔던 자신의 예술론을 확립한다. 시인은 영원한 것은 없는 지상의 세계에서 별들의 세계, 열린 우주로 언어를 옮기는 이다. 외부 세계를 감지하는 주체로서 인간은 시간성과 무상성,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지상에서 살아가면서 내면에 받아들인 것들을 본질에 맞게 말로 표현하여 그것들을 무상성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시를 쓰라는, 표현하라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자 하는 이들에게 릴케의 이러한 명령은 여전히 가장 즐거운 응원이 될 것이다.
모든 존재는 한 번뿐, 단 한 번뿐. 한 번뿐, 더 이상은 없다.
우리도 한 번뿐. 다시는 없다. 그러나 이
한 번 있었다는 사실, 비록 단 한 번뿐이지만:
지상에 있었다는 것은 취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달려들어 그 일을 수행하려 하며,
그것을 우리의 소박한 두 손 안에, 넘치는 눈길 속에,
말 없는 가슴속에 간직하려 한다.
그것과 하나 되고자 한다. — 누구에게 주려고? 아니다,
모든 것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아, 우리는, 슬프다,
다른 연관 쪽으로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더디게 익힌 관찰도, 여기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아무것도.
우리는 고통을 가져간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존재의 무거움을 가져간다,
그러니까 사랑의 긴 경험을 가져간다, — 그래,
정말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가져간다. 그러나 훗날,
별들 사이로 가면 어쩔 건가: 별들은 더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니.
방랑자 역시 산비탈에서 계곡으로 가지고 돌아오는 것은
누구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한 줌의 흙이 아니라
어렵게 익힌 말, 순수한 말, 노랗고 파란 용담꽃 아니던가.
어쩌면 우리는 말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집,
다리, 샘, 성문, 항아리, 과일나무, 창문, —
잘해야: 기둥, 탑…. 하지만, 너는 알겠는가, 오 이것들을
말하기 위해, 사물들 스스로도 한 번도 진정으로
표현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제9비가」에서
릴케를 ‘모든 시인 중의 시인’이라 칭한 철학자 하이데거는 『두이노의 비가』를 주요 텍스트로 삼아 자신의 고유한 존재론을 확립했다. 영국의 시인 W. H. 오든,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대표 소설가 토머스 핀천 역시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작품으로 드러낸다. 한국의 시인 역시 마찬가지다. 김수영은 하이데거의 「릴케론」을 외워서 읊을 정도라고 고백했고, 윤동주는 「별 헤는 밤」에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인간 실존의 의미에 대해 끈질기게 질문하는 그의 간절함은 지난 백 년 동안 수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남겼다. 특유의 서정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으면서도 동시에 그 심원한 철학적 사유로 인류의 지적 여정을 크게 확대한 것이다.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니라 전체적 관점에서 존재의 근원적 바탕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드러내는 비가의 마지막 구절은 이것이 죽음과 슬픔의 노래가 아니라 삶에 대한 찬가임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그들, 영원히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하나의 비유를 일깨워 주었다면,
보라, 그들은 어쩌면 손가락으로 텅 빈 개암나무에, 매달린
겨울눈을 가리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비를 말했을까, 봄날 어두운 흙 위에 떨어지는. ―
그리고 상승하는 행복만을
생각하는 우리는,
어떤 행복한 것이 추락할 때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리라.
―「제10비가」에서
1부 두이노의 비가
제1비가 DIE ERSTE ELEGIE 8
제2비가 DIE ZWEITE ELEGIE 18
제3비가 DIE DRITTE ELEGIE 26
제4비가 DIE VIERTE ELEGIE 36
제5비가 DIE FUNFTE ELEGIE 44
제6비가 DIE SECHSTE ELEGIE 56
제7비가 DIE SIEBENTE ELEGIE 62
제8비가 DIE ACHTE ELEGIE 72
제9비가 DIE NEUNTE ELEGIE 80
제10비가 DIE ZEHNTE ELEGIE 90
작가 연보 105
2부 전문 해설
「제1비가」에 대해서 111
「제2비가」에 대해서 128
「제3비가」에 대해서 144
「제4비가」에 대해서 163
「제5비가」에 대해서 180
「제6비가」에 대해서 205
「제7비가」에 대해서 219
「제8비가」에 대해서 240
「제9비가」에 대해서 255
「제10비가」에 대해서 276
참고 문헌 303
옮긴이의 글: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듯이(김재혁)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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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이노의 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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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블링 | 2024.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