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꿈틀거리는 언어로 고백하는 아름다운 악행의 기록
당신의 가장 뜨겁고 은밀한 안쪽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유희와 우화적 상상력으로 현실의 음화를 그려”(문학평론가 김용희) 낸 첫 번째 시집 『108번째 사내』로 큰 주목을 받았던 이영주 시인이 5년 만에 두 번째 시집 『언니에게』로 돌아왔다. 그동안 한국 문학에서 어머니, 누이, 애인 등의 여성성은 많이 다뤄졌지만, ‘언니’라는 말은 문학적으로 거의 비어 있었다. 이성복 시인이 “언니라는 말의 내부. 한 번도 따라 들어가 본 적 없”는,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언니라는 말의 배꼽.”(「31 언니라는 말의 배꼽」,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이라고 표현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 이영주 시인은 이번 시집 안에 이 ‘언니’를 호출하여 “들어갈 수 없는 언니라는 말의 배꼽” 속으로 과감히 파고 들어간다. 이 시집에서 말하는 ‘언니’는 자매로서의 언니가 아닌, 내면의 규정할 수 없는 어떤 것, 그 은밀한 내부를 뜻한다. 그것은 블랑쇼의 말에 따라 ‘익명적 우리’, ‘밝힐 수 없는 공동체’와 같다. 그렇게 비밀을 나누는 가장 은밀한 암호가 바로, 언니이다.
이렇게 시 속에서 ‘언니’라 불리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변신을 하며, 자아와 동일화된 무수한 타자를 통해서 시인의 내면 풍경을 보여 준다.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대상이 또 다른 대상으로 전이되는 환유 구조를 통해 의미의 폭은 더욱더 확장된다. 이영주의 상상력은 현실과 환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그녀만의 독특한 시적 공간을 창출해 낸다.
■ 비밀을 나누는 가장 은밀한 암호, 언니
이영주의 시는 달, 웅덩이, 구멍, 주머니, 미로, 자궁, 배꼽, 버섯, 무덤, 납골당, 구덩이 등 어둡고 축축한 온갖 이미지들이 펼쳐지는 한 편의 잔혹 동화 같다. 축축하게 썩어 들어가는 모든 비밀의 공간에는 하나같이, 쪽문, 골목, 계단, 분화구, 하수도 등 은밀한 통로가 달려 있다.
그녀의 시는 존재이든 사물이든 그 자체의 ‘내부’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안쪽’, 소위 ‘기억’ 또는 ‘내면’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우리의 내부는 불화와 흔들림과 균열, 즉 깨진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주체의 가장 깊은 곳, 내부의 바닥을 들여다본다. 그 내부는 집요하게 들여다볼수록 분명해지기는커녕 더욱더 모호하고 안개에 휩싸인 것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어떠한 것도 규정할 수 없으며, 그 규정할 수 없음이 외부까지 이어진다. 본질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의 시에서는 사건들과 그 세부 묘사가 지나칠 만큼 디테일하게 기술된다. 그러나 그 디테일이 발달할수록 본질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고 그래서 더욱더 알 수 없는 ‘깊은 것’임을 드러낸다. 그것은 그녀가 완결된 세계상보다 발생과 소멸의 ‘과정’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시 안에는 소멸과 재생의 순간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부는 결국 외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고 외부는 또 다른 내부에 그 구성력을 뻗칠 수밖에 없고, 그러므로 우리는 내부와 외부의 알 수 없는 교합, 그 자체로 생성되는 질서로 인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내부와 외부는 배타적인 영역이 아니라 서로의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이영주는 외부로부터 내부를 사유하며, 내부로부터 외부를 꿈꾼다. 그것이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 태도이다.
겨울밤에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밖에서 안으로, 아무도 없는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차가운 칼날 같은 손잡이를 떼 낸다. 손잡이가 있으면 한 번쯤 돌려 보고 배꼽을 눌러 보고 기하학적으로 시선을 바꿔 볼 수 있을 텐데. 어머니가 방바닥에 늘어놓은 축축한 냄새들.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버섯들이 있었는데, 잠에서 깨면 어머니는 버섯 머리를 과도로 똑똑 따고 있었다. 손잡이를 어디에 붙여야 할까. 너는 아래쪽에 서 있다. 몸속이 어두워질 때마다 울음을 터트리는 이상한 반동. 축축하게 썩어 들어가는 안쪽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 너는 봉긋하게 솟은 버섯 같은 자신의 심장에 손잡이를 대고 안쪽을 열어 본다. 거꾸로 자라나는 버섯들이 잠에서 깨어 어머니의 머리를 똑똑 따 내고 있다. 네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바깥에 두고 온 손잡이를 어두워서 찾지 못할 때, 아무도 없는 안쪽이 버섯 모양으로 뒤집어질 때, 너는 성에 낀 202호 창문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언니에게」
시인은 은밀한 내부를 ‘언니’라고 부른다. ‘누이’가 문학적인 관습이었을 때, ‘언니’라는 말은 문학적으로 거의 비어 있었다. ‘언니’라는 말은 가족과 성(gender)을 뛰어넘는, 다정한 호명이다. 그것은 블랑쇼의 말에 따라 ‘익명적 우리’, ‘밝힐 수 없는 공동체’와 같다. ‘언니’는 바로, 비밀을 나누는 암호인 셈이다.
그녀의 시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창문’은 ‘밖’을 내다보는 ‘창’이자, ‘안’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밖에서 안으로’ 향하는 그녀의 시선은 또한 ‘뒤’를 돌아본다. 이영주의 시에서는 ‘안’과 ‘뒤’의 깊이를 그리워하는 것이 곧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것과 나란히 배치된다. “베란다에 서서 어둠 속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모르는 얼굴.”(「종이인형」) “어머니는 마지막 문 뒤에 있”(「성인식」)다. “박쥐처럼 새끼들에게 거꾸로 매달리는 법을 가르”친다. 그렇게 그녀는 창문에 거꾸로 매달려 ‘뒤집힌’ 세상을 ‘뒤집어’ 본다.
그녀의 시들은 단순한 제목 아래, 상상하기 힘든 기괴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 그러나 무언가 결론 내리지 않고 사건은 시 밖에서 계속 진행된다. 그녀의 문장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생성되는 동시에 지워지며, 또한 뒤 문장이 앞 문장을 지워 간다.
또한 시 속 화자는 여러 대상으로 다양하게 변신을 한다. 무생물을 생물로 불러오거나 생물을 무생물로 만드는 등 존재가 변환하고, 화자들이 끊임없이 변신한다. 그녀의 문장은 엽서나 편지를 쓰는 것, 활자에 대한 탐색 등으로 이어지는데 이것도 변신에 능한 화자가 자신을 발화하는 방식으로서 선택한 것이다. 이영주의 시는 이처럼 자아와 동일화된 무수한 타자를 통해서 시인의 내면 풍경을 보여 준다. 또한 계속해서 덧칠한 캔버스처럼, 이미지들이 끊임없이 중첩되어 형태는 사라지고 결국 어떤 뉘앙스만 남는다. 하나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대상이 또 다른 대상으로 전이되는 환유 구조를 통해 의미의 폭은 더욱더 확장된다. 이영주의 상상력은 현실과 환상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그녀만의 독특한 시적 공간을 창출해 낸다.
■ 안쪽으로 끝없이 열려 있는 시어들
이영주 시인의 ‘내향성(內向性)’은 ‘자폐적’이고 ‘폐쇄적’인 것, 즉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안쪽으로 ‘열려’ 있는 것이다. 흔히 ‘상처’라 불리는 것들, 그 강렬했던 접촉의 순간, 그 “찰나의 떨림”(「전기해파리」)을 살려내어, 세계를 자각하고 활성화하며, 무감각한 나를 흔들어 깨운다. “아프기 시작한 곳이 고향이야.”(「여름의 귀향」) “허벅지에 길게 그어진 칼자국”에서 “음악이 시작되었다고”(「깔링」) 말하며, 그녀의 시는 통증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심화시키고 악화시키고자 한다.
그녀의 시에서는 종종 과거의 사건들이 현재형으로 서술된다. 그녀의 시에서 과거라는 시간은 지나가 버린 시간이 아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오는 과거의 시간은 행복한 시간이 아닌, “철책이 세워진 운동장, 왼쪽 뺨에 남은 손자국, 피 묻은 롤러스케이트”(「나의 인사」), “아무리 올라가도 짐승의 빛 안”(「음악의 내부」), “내 등에서 몇 세기 전의 울음이 잠자고 있는지도 모른다. (……) 몇 세기 전의 고통은 어떤 말로 타인에게 전달되었을까.”(「장마」) 등 고통의 시간이다. 그것은 이 사건들의 트라우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드러내 준다. 또한 그녀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시의 주체들을 일부러 사물화한다. 이러한 무정(無情)한 명사들이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린 저무는 사람들. 생일은 미리 말해 주자. 젖은 바람 부는 계절에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자. 머리를 빡빡 민 사람이 오랫동안 편지를 쓴다. 몸을 보니 여자였구나. 상점 주인은 창밖의 간판을 세다가 저무는 사람. 단 한 명의 노파도 없는 비 오는 골목으로 음악을 흘려보낸다.
지느러미를 감추고 들어와야 해. 여자인 줄 알았는데 그림자를 보니 물고기구나. 상점에는 푸른 비늘이 가득 찬다. 그녀가 달력을 넘기는 동안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 노파를 보고 싶은 계절이야. 생일을 견디며 물고기들이 모서리에 지느러미를 비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린 비린내를 풍기는 물건들. 물고기인 줄 알았는데 장화를 벗고 보니 딱딱한 계단이구나. 그녀는 문 밖의 발들을 바라보다 밤늦도록 저문다.
고무장화를 신자. 태풍이 오기 전에 생일을 미리 말하자. 바람이 젖은 달력을 찢는다. 계단 밑, 붉은 웅덩이 속에 머리를 빡빡 민 노파가 잠들어 있다.
—「저무는 사람」
여자의 몸, 비린내를 풍기는 물고기, 딱딱한 계단, 그리고 노파. 이것들은 이번 시집의 주요 오브제들이다. 그녀의 시에서 삶과 죽음, 그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삶의 영원한 주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붙어 있다. 그녀는 죽음의 가능성을 존재의 조건으로 드러낸다. 죽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망각한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우린 저무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 죽음이 바로 우리 존재의 거울인 셈이다.
그녀의 시에서 “우리는 불투과성 물체가 아니”라 “무릎을 적시는 썩은 물이 되어 너를 통과”(「폐교의 연혁」)하는 존재다. 우리는 액체나 기체가 되어 “사방을 버리고 안쪽과 바깥쪽을 왔다 갔다 하”며(「월식」) 통과하고 흐르고 섞여 들어간다. 또한 이 시집에서는 “썩기 시작한다.// 형태를 얻기 직전에 너의 이야기를 하려고.”(「월식」), “축축하게 썩어 들어가는 안쪽을 언니라고 부르고 싶어.”(「언니에게」)처럼 ‘부패’의 장면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나’라는 개별성이 사라지고, ‘우리’가 되는 연금술이다.
“등을 구부려/ 욕조 바깥으로 뻗어나간 발목을 쥐어 본다./ 내 몸의 끝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굴뚝의 성장담」) 그렇게 그녀의 시어들은 도무지 그 끝을 알 수 없이 열려 있다.
■ 작품 해설에서
언니라는 말은 비밀을 나누는 암호다. 은밀한 내부에 시인이 붙인 이름이 ‘언니’다. ‘언니’는 “밖에서 안으로” 발화된다. “축축하게 썩어 들어가는 안쪽”이 언니라고 불리며, “축축한 냄새들”과 그런 냄새를 피우는 “버섯들”이 ‘언니’라고 호명된다. (……) 아, “안쪽이 버섯 모양으로 뒤집어”진다. 그것은 ‘안’이 ‘밖’이 되는 순간. 이때, “성에 낀 202호 창문을 언니라고 부르”자. 안쪽이 뒤집어진 버섯 언니, 언니라는 창문을 좀 열까? 언니는 나의 가장 안쪽에서 저 바깥을 환기한다. ‘언니라는 말의 내부’는 외부를, 타인을 창문처럼 달고 있다. — 김행숙(시인)
■ 추천의 말
여기 이런 시인이 있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를, 푸르게 방황하고 유려하게 왕복하는 시인. 저무는 사람 곁에서 함께 저물며 빛나는 시인. 이영주는 가장 어두운 심해에서 해파리가 되어 자체 발광을 한다. 딱딱한 벽돌이 꾸는 꿈을, 구부정하게 잠든 애인을, 성에 낀 202호 창문을, 비둘기의 부러진 한쪽 날개를, 얻어맞은 왼쪽 뺨을, 자살에 실패한 밤을 보살핀다. 휘어지고, 흐느끼고, 깨물고, 만져 보고, 흔들리고, 실족하고, 떠난다. 시인은 지나간 20세기의 천변 하류에서 물고기가 된다. 우리가 살아 내야 할 21세기에서 아름답게 악행을 퍼트린다. 이 방황과 왕복은, 아름다워지는 것보다 훨씬 더 찬란한 착란의 시간이 된다. 나는 시인의 방황을 따라가다, 우리 시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발견하게 됐다. 21세기를 열며 우리 시가 잃어버렸던 한 조각이 이 시집에는 들어 있었다. — 김소연(시인)
그녀의 시는 입김들로 수런거린다. 이 독특한 입김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우리가 말 뒤로 숨어 온 세계에 대해, 우리가 말을 고르며 감추어 온 세계에 대해 그녀는 자꾸만 “달콤해지려는 종족”처럼 딴청을 피우듯 입김을 부린다. “저는 문 뒤에 있었어요.”라고, “묵을 곳은 분화구밖에 없”다고, “집에서 길을 잃었”다고. 문장의 재봉선을 지워 버리고 사라져 버리는 이 세계를 일컬어 ‘그녀의 입김의 세계’라고 부르기 위해선 우리가 그동안 몰라보았던 그녀만의 독특한 진화의 방식에 한번쯤 참여해 보아야 한다. 오직 “다른 통로로 가기 위해”그녀는 “하루 종일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단어들의 혈액형’을 바꾸고, 조용히 “어두운 색깔로 폭죽을” 터뜨리며 자신의 문장 속에 새로운 시어들을 동거시켜 왔다. 그녀와 동거 중인 이 시어들을 그녀의 “동거녀”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그리하여 “아무리 올라가도 짐승의 빛 안이라니”라고 자신이 어떤 미개에 와 있는지를 처연히 고백하는 그녀의 입김을 어떤 화자의, 허구라고, 어떤 악행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입김들을 그녀가 아무도 모르는 숲에서 재봉하고 있는 날개라고 부르련다. 독자들이여, 부탁이니 이 시집 속 페이지마다 위독한 유전자를 살피시라, 꼭. — 김경주(시인)
1부
물고기가 된다는 것
전기해파리
달에 가는 여러 가지 방법
첫사랑
저무는 사람
빛나는 사람
나의 인사
뒤
동생의 진화론
박쥐우산을 가진 소년—장이지 시인에게
결혼기념일
흰 소를 타고 여름으로 오는 아침
나선상의 아리아
루시안의 날개
동거녀
최국희 약국
력(曆)의 기원
2부
언니에게
설탕을 먹는 저녁
자살법
왼쪽 뺨을 내밀라
소녀는 던진다
봉인
교련 시간
자율 학습 시간
성인식
문장론
장마
일기예보
활자들이 길게 타오르며 태양으로 올라간다
미래안(未來眼)
음악의 내부
베개
벨라지오 모텔
3부
여름의 귀향
연대기
휴일
전시회장의 개
공
옥탑방
사령선
해바라기
한랭전선
굴뚝의 성장담
폐교의 연혁
종이인형
깔링
마트료시카 나이테
꼬리를 쓰다듬는 밤
하늘 위에 떠 있는 DJ에게
월식
달 속의 도시
외국어를 말할 수 없습니다
무덤 파는 남자
생일
한밤의 질주
작품 해설_ 김행숙
언니와 물고기와 계단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