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네치아에서 죽다」 원작 소설,
토마스 만의 가장 완벽한 노벨레
사랑하는 자 안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자 안에는 신이 없으므로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이다. -본문에서
그의 두 눈은 저기, 푸른 바다의 가장자리에 있는 고귀한 형상을 얼싸안았다. 그리고 그는 열렬한 황홀감에 빠져서 이 형상을 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 자체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그 아름다움이란 신의 사고로서의 형식이고, 정신 속에서만 생동하는 유일하고도 순정한 완전성이었다. 그 완전한 아름다움의 비유적 모상이 하나의 인간으로 화해 여기, 경쾌하고도 아리땁게 우뚝 서서 경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도취였다. 마침내 늙어 가는 예술가는 주저할 것도 없이, 아니, 탐욕적으로 그 도취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본문에서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토마스 만의 가장 성공적인 단편 소설로 꼽히는데, 그 까닭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가히 단편 소설이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완결성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해설」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의 가장 훌륭한 작품! -《커커스 리뷰》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본질적으로 죽음, 유혹과 불멸의 힘을 발휘하는 죽음에 대한 욕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나의 관심을 끈 문제는 바로 예술가의 모호성, 완벽한 예술에 대한 집착이 불러오는 비극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질서와 타락으로서의 열정이야말로 내 소설의 진정한 주제였습니다.” 토마스 만(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와의 대담에서)
토마스 만은 20세기 독일 문학의 정점으로 불리는 거장이다. “가장 위대한 작가”라는 루카치 죄르지의 평가에 걸맞게 토마스 만은 독일어가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 정묘한 문장으로 이뤄진 산문의 극치를 보여 줬으며, 가히 번역이 불가능할 만큼 섬세하고 심오한 특유의 만연체를 선뵈면서도 결코 균형감과 무결한 구성, 주제 의식을 놓치지 않았다. 또 역사, 사상, 예술을 하나의 작품으로 종합하는, 총체적 문학 세계를 보여 준 토마스 만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양심’이라는 별명처럼 반전과 세계 평화를 표방하며 인본주의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했고, 더불어 독일인으로서 나치즘의 잔학성을 끊임없이 반성했다. 이러한 그의 의지와 성취는 일찍이 노벨 문학상을 통해 인정받았으며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마의 산』 그리고 『파우스트 박사』는 20세기 세계 문학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번에 ‘쏜살 문고’로 소개하는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토마스 만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 주는 걸작이자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에 의해 영화화되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노벨레다. 독일어의 예술적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의 완성도(쏜살 문고 판본을 새로 감수한 안삼환 교수는 “가히 단편 소설이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완결성”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와 ‘타치오’로 분한 세기의 미소년 비에른 안드레센 덕분에 충분히 유명한 작품이지만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그보다 훨씬 깊고 흥미로운 심연을 지니고 있다. 먼저 이 작품은 토마스 만의 문학적 전회를 뚜렷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보여 줄 뿐 아니라 상반된 가치관의 격돌을 과감할 만큼 직접적으로 형상화해 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앞선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토니오 크뢰거」에서 다룬 예술가적 고뇌는 방황 끝에 바야흐로 파국으로, 아니 분연한 선택과 실존적 투쟁으로 치달으며 일종의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예술과 함께 토마스 만을 옭아맨 또 하나의 굴레, 즉 욕망과 육체의 문제를 직시했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본질적으로 죽음, 유혹과 불멸의 힘을 발휘하는 죽음에 대한 욕망의 이야기”라고 언급하며 “베르테르는 권총으로 자살했지만 괴테는 살아남았으니, 이 작품은 기묘한 도덕적 자기 징벌”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예술가 토마스 만과 인간 토마스 만의 번뇌를 중첩시키며 장엄한 그리스 비극적 구성으로, 아름다움과 욕정으로 부패해 가는 베네치아를 무대로, 삶과 죽음 그리고 신성과 타락의 음영으로 그려 낸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치명적인 우화이자 불후의 고전이다. 게다가 『베네치아에서 죽다』는 훗날 완성될 『마의 산』과 『파우스트 박사』 같은 희대의 명작은 물론, 심지어 최후의 소설 『기만』까지 예고하고 있으므로 토마스 만의 웅대한 문학 세계로 나아가는 데에 더없이 완벽한 진입로가 되어 주리라.
명망 높은 초로의 작가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는 한평생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온 고된 창작에 시달리던 중 머리를 식히고자 무심히 도심을 배회한다. 바로 그 순간, 이국적인 행색의 낯선 인물을 맞닥뜨리게 되고 아셴바흐는 돌연 거친 불안과 충동에 사로잡힌다. 무엇을 예감했던가? 그는 그간의 일상을 뒤로하고, 오직 훌륭한 작가로서 살아온 고리타분한 삶을 등지고 죽음처럼 단 한 번뿐인 일탈을 감행한다. 그렇다면 이제 떠나야 한다, 예전의 모든 것들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아셴바흐는 우연 같은 필연의 노예가 되어 불길한 습기와 육욕을 충동질하는 태양과 까마득한 피안을 동경하게 하는 바다로 가득한 베네치아로 향한다. 처음 그는 베네치아의 속물적 분위기에 악취를 느끼지만 차츰 그 타락한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기다리며 한 폴란드인 가족을 유심히 관찰하던 아셴바흐는 타치오라는 아름다운 소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아셴바흐는 소년이 완벽하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흠칫 놀랐다. 창백하면서도 우아하고, 내성적 면모가 엿보이는 얼굴은 연한 금발에 감싸여 있었다. 곧게 뻗은 코와 사랑스러운 입술, 우아하고 신성한 진지함이 깃든 그의 얼굴은 가장 고귀했던 시대의 그리스 조각품을 연상시켰다. 가장 완벽하게 형식미를 실현해 낸 모습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셴바흐는 타치오한테, 아니 미(美)의 현현인 신성한 존재에게 정신없이 빠져들고, 급기야 관심은 동경으로, 동경은 애정으로, 애정은 집착으로 검게 물들어 간다. 늙어 버린 스스로의 거죽을 혐오하며, 타치오라는 아름다움을 좇아 죽음으로 타오르는 베네치아의 미로를 방황하는 아셴바흐의 운명은 이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추천의 말(윤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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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안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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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살문고] 베네치아에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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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양이 | 2024.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