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란씨

배지영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10년 2월 5일 | ISBN 978-89-374-8298-4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05 · 344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단호하고, 
섬뜩하고, 
발칙하다!

21세기 한국소설의 돌연변이, 새로운 리얼리즘의 부활을 예고하는 작가 배지영의 첫 소설집
익숙한 일상의 작은 틈에서 흐르는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 어둠과 광기
기발한 상상력, 생생하고 다채로운 언어로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다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로 등단하여 “새로운 리얼리즘의 부활을 예고”(소설가 조성기)하며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 온 배지영의 첫 번째 소설집 『오란씨』가 출간되었다. 독백적이고 자폐적인 근래 한국 소설에서 배지영은 정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면서도 톡톡 튀는 문체와 해학,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 주는 보기 드문 작가다. 배지영의 작품 속 현실은 익숙하되 낯설며, 친숙하되 섬뜩하다. 특히 생생하고 야성적이며 다채로운 언어로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를 섬뜩할 정도로 실감 나게 그려 낸다. 그가 보여 주는 공포의 공간은 특별한 곳이 아닌, 늘 우리가 이용하는 버스, 안식처인 집, 일하는 회사, 퇴근길에 한잔하기 위해 들른 술집 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 공간이다. 그런 공간 안에서 공중변소, 개백정, 덜 죽어 날뛰는 개, 창녀, 학대받는 아이들, 근친상간, 동성연애, 간악하게 속이는 인간과 순진하게 속는 인간 등 현실에서 외면하고자 하는 어두운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배지영은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 우리 사회의 어둠과 광기, 개인의 본능적 욕망과 괴물성을 입체적으로 보여 주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신뢰를 안고 있다. 신예다운 참신함과 신예답지 않은 성찰의 깊이가 매혹적으로 뒤섞인 『오란씨』는 21세기 한국소설에 시원하고 상큼한 청량제가 될 것이다.

편집자 리뷰

■ 신예다운 참신함과 신예답지 않은 성찰의 깊이로
       불안과 공포에 잠식당하는 현대인의 영혼을 깨우다
 
혼잣말에 가까울 만큼 독백적이고 자폐적인 요즈음 한국 소설 속에서 배지영은 현실을 끌어안으면서 해학과 상상력을 잃지 않는 탄력성을 보여 주는 보기 드문 작가다.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번영의 허상 속에 공중변소의 내용물 같은 사회의 모순과 어둠이 침전되어 있는 현실을 작중인물들의 생생한 성격 창조와 흥미로운 욕망의 중층 구도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냈다.”(소설가 조성기)라는 평가를 받은 표제작 「오란씨」는 88서울올림픽을 배경으로 서울 변두리 지역의 공중변소를 둘러싼 밑바닥 인생들을 박진감 있는 문체로 시원스럽게 그려 낸 작품이다.
배지영의 소설들은 주제와 기법이 다양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정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면서도 톡톡 튀는 문체와 기발한 상상력은 이야기의 긴장을 끝까지 끌고 간다.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 우리 사회의 어둠과 광기, 개인의 본능적 욕망과 괴물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신뢰를 안고 있다. 현대인의 불안이나 공포는 낯선 곳에서 오지 않는다. 익숙하고 편안하며 일상적인 것들의 작은 틈에서 온다. 배지영의 작품 속 현실은 익숙하되 낯설며, 친숙하되 섬뜩하다. 특히 생생하고 야성적이며 다채로운 언어로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를 섬뜩할 정도로 실감 나게 그려 내며, 한국 소설 문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간다.
배지영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운 리얼리즘’이라 불릴 만큼, 익숙하되 낯설다는 것이다. 배지영의 소설에는 이전 소설들에서 자주 보아 왔던 익숙하고 친숙한 풍경들이 많이 등장한다. 표제작 「오란씨」는 서울 변두리인 ‘모래내’의 풍경과 서울이 뱉어 내고 폐기 처분한 밑바닥 인생들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였다. 똥, 쓰레기, 시체, 창녀, 깡패, 개백정 등이 한자리에 모인 변두리는 통제하기 힘든 야성과 광기로 가득 찬 카오스적 공간이 된다. 그러나 변두리는 무시무시한 욕망과 충동으로 가득찬 곳인 한편, 매혹적인 열기와 활력이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변두리는 중심부가 인간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억압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인가를 읽어 내는 데 적합한 장소인 것이다. 이는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윤흥길), 「엄마의 말뚝」(박완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어둠의 자식들」(황석영) 등 서울 변두리를 무대로 한 이전의 여러 소설들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 풍경들이 만들어 낸 세계는 무척 낯설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세계상을 재현한다. 배지영의 소설이 현재의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도식으로 읽어 내며, 전혀 다른 횡단면으로 분할하고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오란씨」가 변두리, 즉 주변부의 얘기라면, 「버스―슬로셔터 No. 1」과 「몽타주―슬로셔터 No. 2」는 도심 한복판, 즉 중심부를 떠다니는 불안과 공포를 그린 작품이다. 존재론적인 불안과 그 불안의 기원을 인정하지 않으려 폭력 사회의 불안 속으로 도피하여 공포들에 압도된 채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의 형식’을 다루고 있다. 그런가 하면 「파파라치―슬로셔터 No. 3」와 「어느 살인자의 편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약육강식의 법칙에 기계적으로 순응하며 저항하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 오직 생존을 위한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인간들을 그려 낸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희생양이자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괴물인 것이다.
배지영 소설집 『오란씨』는 변두리로 내몰린 자들과, 가까스로 중심부에 매달려 있는 존재들의 불안과 공포, 어둠과 광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충격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파국을 향해 치닫는 세상을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는 힘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도 한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 오란씨.” 우리의 향수와 추억을 자극하는 과일향 청량음료, 오란씨. 신예다운 참신함과 신예답지 않은 성찰의 깊이가 매혹적으로 뒤섞인, 새로운 리얼리즘의 탄생, 21세기 한국소설의 돌연변이, 배지영은, ‘오란씨’다.
 
 
■ 추천의 말
 
자본주의가 주는 효용성과 편이성에 의해 당신의 삶은 더 안락해졌는가. 아니다. 배지영의 대답은 그렇다.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세계의 이면엔 오늘도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이 난무한다. 이 폭력적이고 동물적인 세계엔 출구가 없다. 생생하고 야성적이며 속도감 있게 다가오는 배지영의 문장들은 오늘의 안락과 평화가 기실 얼마나 허황되고 교묘한 거짓말로 짜여 있는지를 가차 없이 증언하고 있다. 당신이 걷고 있는 발밑을 지금 보라. 혹 위태로운 칼날 위가 아닌가. 배지영이 환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단호하고, 섬뜩하고, 발칙하다.
― 박범신(소설가, 명지대 문창과 교수)

■ 작품 해설에서
 
21세기 한국 소설의 한 돌연변이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배지영의 소설은 신예의 소설답게 세상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횡단면으로 분할하고 재구성한다. 배지영 소설은 익숙하되 낯설며, 친숙하되 섬뜩하다. 이는 전적으로 배지영의 소설이 현재의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분할하고 전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지영 소설은 기존의 보편성에 고착되어 있어 자유로워 보이면서도 자유롭지 않은 삶의 디테일들을 자신만의 새로운 도식에 기반한 혁신적인 이야기 안에 풍요롭게 통합해 낸다. 우리가 배지영 소설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쓰레기로 뱉어진 모더니티의 추방자들을 통해, 그리고 가까스로 모더니티의 중심부에 매달려 있는 존재들의 불안과 괴물성을 통해, 『오란씨』는 모더니티 전반이 얼마나 큰 위기에 처해 있는가를 충격적으로 보여 주는 한편, 파국을 향해 치닫는 모더니티를 위기에서 구원할 수 있는 힘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오란씨』에는 신예답지 않은 성찰의 깊이와 신예만이 가질 수 있는 이야기의 혁신성이 아주 매혹적으로 뒤섞여 있다.
― 류보선(문학평론가, 군산대 국문과 교수)
 

■ 본문 중에서
 
그는 형처럼 하늘을 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차창 위로 별을 바라보았다.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오오 오란씨.’
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자는 자고로 오란씨 같은 거야, 이렇게 먹고 버리는 거야. 그치만 딱 한 사람한테는 별도 따 주고 모든 걸 다 주는 거야. 그게 남자야.’
그는 목이 말랐다. 왜 그날 설희가 준 오란씨는 먹으면 먹을수록 목이 말랐는지 알 것 같았다. 파인애플 향이 나는 오렌지 탄산음료 오란씨가 못 견디게 마시고 싶었다.           
―「오란씨」 73~74쪽

이제야 확연해지는 듯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빠른 속도로 달리는, 유리창이 있는 덫일 뿐이었다. 덫에 두 발목이 꼭 붙들려 버렸다. 전화를 받던 것도, 정류장을 지나쳐 온 것도, 교통 정보를 듣지 못하게 한 것도, 다리가 잠겼다는 것도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설령 내가 시체가 되어 발견되더라도 영원히 미제로 남아선 안 되었다. 시체로 도로변 풀숲에 버려질 내 모습을 떠올리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는 볼펜을 꺼냈다. 최대한 그가 눈치채지 않도록 나는 가방을 무릎 위에 세웠다. 그리고 의자 시트 위에다 내 이름과 후대폰 번호를 적은 후 sos라고 적었다. 누군가 이 번호로 장난 전화라도 건다면 수신자 통화 기록이나 문자메시지가 온 것이 단서가 될지 몰랐다. 그렇다면 반드시 전화가 올 수 있도록 써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내키지 않았지만, sex라고 썼고 다시 그 앞에다 bus라고 썼다. 버스 섹스라니.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운전사가 눈치채지 않도록 열심히 유리창에 손자국을 냈다. 지문이 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아래에 또 sos라고 썼다.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버스―슬로셔터 No. 1」 94쪽
 
몽타주를 주머니에서 꺼내 자주 들여다봤다. 유리문 옆에 붙어 있는 거울을 바라보며 모자챙을 바로잡았다. 자꾸 보니 몽타주 얼굴은 나와도 조금 닮은 것 같았다.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어 내렸다. 시계를 봤다. 아직 교대 시간은 10분 정도 남았다. 나는 화장실을 갔다. 정장을 말쑥하게 입은 중년 남자가 나오면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신경이 곤두섰다. 몽타주 속의 인물과 조금 닮은 것도 같았다. 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지나쳐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구두 속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을 기억해 보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문득 나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몽타주―슬로셔터 No. 2」 133~134쪽
 
아무리 지독한 냄새라도 한참 맡고 있으면 익숙해집니다. 불운이나 불행도 오랫동안 계속되면 익숙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를 단 한 번이라도 맡거나, 전혀 다른 냄새로 환기된 다음 후각은 예민해지고 맙니다. 그것은 운명과 참 비슷합니다. 
냄새에 대한 생각도 사람마다 달라서 누구에게는 ‘악취’일 수 있는 것이 누구에게는 향기로운 냄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살인자의 편지」 173쪽

목차

오란씨   
버스—슬로셔터 No. 1   
몽타주—슬로셔터 No. 2   
파파라치—슬로셔터 No. 3   
어느 살인자의 편지   
검정 원피스를 입다   
새의 노래   
 
작가의 말   
작품 해설_ 열려 있(다고 가장하)는 사회와 그 적들_ 류보선

작가 소개

배지영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란씨」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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