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성창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9년 10월 30일
ISBN: 978-89-374-2668-1
패키지: 반양장 · 신국판 152x225mm · 340쪽
가격: 18,000원
한국 문학의 안과 밖을 가로지르다
―국가와 국가, 근대와 탈근대, 언어와 문학 사이의 경계를 넘어서
오늘날 한국 문학은 어떤 공간에 위치해야 하는가. 언제나 이론의 첨단에 서서 한국 문학의 새로운 비평적 준거를 제시해 온 서울대 국문과 박성창 교수가 6년 만에 한국 문학의 변화된 좌표를 찾는 새 비평집을 발표했다. 그간의 진지한 모색과 연구 성과가 응집된 이 책에서 저자는 시야를 세계로 확대, 세계 문학과의 교섭·소통을 통한 보편성과 한국 문학 고유의 특수성을 아울러 갖춘 우리 문학의 새로운 위치를 치열하게 탐색하면서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안에서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기 위한 해법을 찾고 있다.
이 같은 과제에 대해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안은 바로 ‘글로컬’이라는 공간 개념이다. ‘글로벌’과 ‘로컬’의 합성어인 ‘글로컬’은 세계 안의 일부로 자신을 인식하는 사고와 그 안에서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의식이 하나된 것이다. 저자는 한국 문학이 바로 이러한 공간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와 세계의 경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나아가 그 경계를 뛰어넘는 것, 그것이 ‘글로컬 시대의 한국 문학’이라는 비전인 것이다.
현장과 이론을 동시에 조망하며 한국 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민음사가 야심차게 기획한 ‘민음의 비평’ 시리즈의 두 번째 출간작인 이 책은 오늘날,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리거나 반대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 한국 문학을 쓰고, 읽고, 비평하는 행위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뛰어난 전범이 될 것이다.
머리말
I장 한국 문학의 세계화, 그 진정성을 묻다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다시 생각한다
‘한류’로 되짚어 본 한국 문학의 세계화
문학·국경·세계화-황석영과 강영숙의 소설을 중심으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인가―1950년대 비평에 나타난 세계주의의 양상
2장 세계 문학의 진화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정체성
세계문학(론)은 가능한가―세계문학론의 비판적 검토
세계 문학의 고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누구를 위해서 쓰는가―21세기 문학과 독서의 운명
3장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접촉, 교환, 유통
우리들의 사랑에 무엇이 남았는가―구조주의와 한국 문학
포스트 담론과 1990년대 비평의 주체성
2000년대 비평과 한국 문학의 지형도
한국 문학과 외국 문학의 어느 행복한 만남―정명환의 비교문학적 고찰
생태학적 비평의 가능성―정현종과 게리 스나이더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 문학의 과잉과 결핍―서울이라는 괴물과의 대결
찾아보기
■ 접촉, 교환, 유통을 통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
세계를 품으며 우리 자신을 잃지 않는 ‘글로컬’이라는 공간 안에서 한국 문학이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안과 밖’을 ‘가로지르는’ 모험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여기서 ‘가로지르다’라는 말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공간들을 단순히 병렬적으로 배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사이에 벌어지는 ‘접촉’, ‘교환’, ‘유통’의 양상들은 공간의 병치라는 단순한 도식을 뛰어넘어 보다 복합적인 논리의 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안과 밖’이라는 용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안과 밖’ 역시 마치 회전문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선명하게 그 경계를 가를 수 없다. ‘경계’라는 용어는 이 비평집의 핵심어 가운데 하나로, 저자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국경),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 사이의 경계,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 수사학(언어)과 문학 사이의 경계 등에 주목하며 한국 문학의 위도와 경도를 재설정하려 한다. 『글로컬 시대의 한국 문학』은 다음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이 문제를 조망하고 있다.
― 세계 문학의 진화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정체성
외국 문학이 실시간으로 소개되며, 커다란 영향력을 독자에게 행사하고, 그만큼 번역이 활성화되어 있는 우리 현실에서, 한국 문학과 외국 문학을 떼어 놓고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것이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을 단순한 이항 대립 구조로 설정하는 관점이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저자는 ‘접촉’, ‘교환’, ‘유통’ 등의 용어들을 통해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을 매개하는 역학 관계를 설명한다.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의 장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어 있으며 나아가 세계 문학에 대한 논의가 재조정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영향과 수용이라는 전통적인 비교문학적 사유의 틀을 넘어서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을 하나의 유기적인 연결체로 보는 시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시각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일방적인 표현을 지양하고 우리의 보편성을 탐구하여 한국 문학이 일반 문학으로서의 보편성을 가지고 세계 문학에 독자의 위치를 점해야만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일례로 최근 들어 특히 주목을 모으고 있는 한류의 경우, 자칫 폐쇄적 민족주의로 빠질 수 있는 문화 우월주의로서 한류를 의식하는 관점을 버리고 동아시아 문화의 상호 교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와 같은 의식 아래에서만 세계 속에서의 진정한 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저자는 또한 한국 문학 현장에서 진정한 세계주의와 허구적 세계주의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문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세계화의 허상과 진실을 드러내고자 한다. 예컨대 작품의 무대가 ‘세계화’되고 작중 인물들이 다양한 국적과 혈통을 지닌 인물들로 설정되었다고 해서 그 작품이나 작가가 ‘세계 문학적’ 차원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2000년대 문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인 ‘탈국경 서사’를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편 그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표현에서 감지되는 구호의 차원을 걷어내고, 오늘날,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문학의 세계화’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세계주의와 관련된 가장 고답적인 명제가 한국 문학에 등장한 시기와 비평적 논리 틀을 형성한 시기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을 통해 진정한 세계 문학의 의미를 소급해 낸 것이다. 그는 한국 문학이 진정한 세계화의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세계화(literary globalization)’라고 부르는 획일화된, 시장 중심적 문학의 유통과 구분되는 ‘다른 어떤’ 문학적 지점을 지향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 탈근대 이후 2000년대 문학의 지형도
마지막으로 저자는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 문학은 연구나 창작의 측면 모두에서 100년 가까이 한국 문학을 이끌어 온, 한국 문학의 ‘근대성’을 추동했던 핵심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반성한다. 민족, 근대, 남성, 계급 등 한국 문학의 모더니티를 이끈 개념들을 주목하며 그는 특히 한국 문학 연구와 비평의 영역에서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양상들을 면밀히 관찰한다. 기든스는 근대성의 제도를 그 앞에 놓인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거대한 권력을 지닌 통제 불가능한 괴물에 비유하였다. 서구 발 세계화 담론은 근대성이 서유럽에서 기원했고, 이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근대성’이라는 개념에는 서구 중심의 근대성 단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기존의 근대성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어 복수적 의미에서 지구적 근대성들(modernities)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현상들을 발견하고 그 성격을 규명해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문학 창작 현장에서도 이와 같은 근대성의 탈구축과 관련된 새로운 문학적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예컨대 한유주나 편혜영, 김중혁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근대성의 익숙한 범주를 잣대로 삼아 살펴볼 경우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저자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문학의 ‘정체성’이 새롭게 구성되고 있는 오늘, 우리만의 근대성과 우리만의 모더니티에 대한 비평적 탐색을 보여 주고 있다.
■ 세계 속의 한국 문학, 한국 안의 세계 문학
한국 문학이 세계 문학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세계 문학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또한 그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이어야만 할 것인가.
이 질문들에 대해 저자는 ‘우리’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 중심의 세계 문학 안에 편입되고자 하는 강박적인 의식과 역으로 특수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세계와 분리되는 결과를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고 명쾌하게 지적한다. 그는 한국 문학이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갖춘 ‘일반 문학’으로서, 세계 안에 함께해야 한다는 ‘Win-Win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시즌이 오면, 우리는 한국 문학의 세계적 위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한국 문학의 위상은 진정한 오직 이 같은 전략의 성공하에서만 비로소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와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각도를 견지하고 세계 속의 한국 문학, 한국 안의 세계 문학을 인식할 것을 역설하고 있는 이 책은 ‘글로컬’ 시대, 한국 문학이 찾아야 할 명확한 좌표를 비추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번 비평집에서 ‘한국 문학과 세계 문학’이라는 주제가 한국 문학의 외연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면서 한국 문학 비평의 실제 작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국 문학이 그 자체로 완결되는 자족적 실체가 아니라, 안과 밖을 가로지르며 세계 문학과 끊임없이 교섭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점 또한 유념하고자 했다.
‘글로컬’은 ‘글로벌’과 ‘로컬’의 이항 대립을 해체하면서 생산적인 방식으로 재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다. ‘글로벌 시대의 한국 문학’은 자칫 한국 문학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서구 중심의 세계 문학 속으로 한국 문학이 들어가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은연중에 시사한다. 글로벌 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상업적 성격의 ‘세계 문학’에 대한 검토도 새로운 각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주제, 형식, 언어, 스토리의 유형 등이 전 지구를 통해 점진적으로 획일화되고 규범화되는 ‘세계 문학’과 구분되는 세계 문학 공간의 가능성이 ‘글로컬’의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탐구되어야 한다.
한편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국 문학의 ‘로컬’한 성격을 강조하는 것 또한 지나치게 편향된 문제의식의 소산이다. 글로벌과 로컬이 추상적 보편주의의 차원에서 만나는 것을 경계하면서 로컬리티에 대한 탐색이 세계적인 좌표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문학의 탈식민주의적 전략이 세계적 보편주의와 다시 만날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새로운 관점에서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그 상위 지점에 ‘글로컬 시대’라는 명칭을 부여하고, 그러한 시대에 한국 문학이 보여 주는 다양한 면모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본문 중에서
■ 민음의 비평을 펴내며
비평은 무덤의 문을 여는 덴마크의 왕자와도 같다. 그가 노래꾼들의 침묵한 두개골을 집어 들 때마다 해골은 작은 발전소처럼 고압의 전류를 방전하고, 사라진 혀는 돌아와 세상을 향해 무섭게 떠들기 시작한다. 오늘은 어떤 작품을 선택할 것인가? 어떻게 저 작은 발전소를 움직여 사람들의 정신을 놀라움 속에 감전시킬 것인가? 진지한 혀를 불태우는 세상의 모든 소음 속에 서서 해골을 집어 드는 이의 마음은 복잡하다.
민음의 비평은 바로 비평가의 이 힘겨운 선택이 이루어지는 자리다. 우리 시대의 풍부한 성과들이 놓여 있는 인문학적 좌표들을 빠짐없이 계산하고, 현금의 문학 생산 현장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양자를 하나의 통일적인 화두 아래 그러모으는 그런 비평집과 이 총서 안에서 조우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위원 박성창·김미현·서동욱
21세기는 삶에 대한 문학의 응전력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대이다. 자본의 전지구화에 따라 인간의 삶이 파편화되고, 개별적이고 고유해야 하는 문화적 토대가 붕괴되어 정신적 피폐함이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삶을 전체적으로 인식하고 반성하는 문학의 역할이 더욱더 클 수밖에 없다. 이에 (주)민음사는 계간 《세계의 문학》 편집위원인 박성창, 김미현, 서동욱과 함께 전지구화 시대에 고립된 게토이자 탈주의 진지인 한국 문학의 현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고민해 보는 장으로서 ‘민음의 비평’을 선보인다. ‘민음의 비평’은 그동안 한국 비평계의 관행으로 굳어진 “시기별 비평집”(한 비평가가 일정한 시기에 써낸 비평 모음)의 형식을 지양하고, “테마별 비평집”(한 비평가가 어떤 시기에 천착해 온 주제에 따른 비평 모음)을 지향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한국 문학의 다양한 모습을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도달한 깊이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민음의 비평’은 한국 문학의 젠더 문제를 다룬 김미현 교수의 『젠더 프리즘』을 필두로 하여, 강유정, 권혁웅, 박성창, 서동욱, 신형철, 우찬제, 허윤진 등의 저작을 매년 3~5권 정도 계속해서 펴낼 것이다. 더 나아가 문학 비평의 영역을 넘어 영화, 사진, 미술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문화의 위엄을 옹호하는 모든 비평 담론들을 포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