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와 바람과 영혼으로 직조한 김두안의 첫 시집. 호흡하는 순간, 결코 잊지 못할 그 ‘삶’의 체취.
시어가 가장 진실해지는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서정. 김두안의 시가 담지하고 있는 서정에는 포구에 짙게 밴 소금 냄새처럼, 한 번 호흡하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이 배어 있다. 어느 목수의 노동을 그린 「거미집」이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이래 삶의 주변부에 위치한 인물들을 소재로 한 일련의 시를 발표해 온 김두안은 ‘시의 진정성’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시인이다. “핑 쇳소리 내며 떨어”(「동박새」)지는 동백에 빨간 코팅 장갑을 끼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지고 “아직 탄력 있는 슬픔”(「탄력 있는 슬픔」)을 간직한 검은 새끼 고래가 어두운 눈을 한 채 경매에서 낙찰되는 순간이 그려진다. 이처럼 간결한 묘사가 그리는 감정선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다. 김두안의 서정은 ‘간결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품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다.그의 첫 시집 『달의 아가미』는 과장된 기교나 수사를 일체 배제한 간명한 시어를 정묘하게 배치하여 다른 무엇보다 언어 자체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는, 매우 순도 높은 시집이다. 덕분에 시어가 지향하는 주제들은 ‘날것’에 가까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나의 시는 포구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시인의 언급대로, 김두안의 시는 겨울 바다를 묵묵히 마주 보는 외진 포구를 닮아 있다. 적막하고 고독하지만 돌아보면 언제나 거기 있을 것만 같은, 드문 진실함이 배어 있는 것이다.
■ 견뎌 내야만 하는 생의 순간들
스산한 바람이 부는 도시 변두리,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국도 변, 그리고 폭설이 내린 부두에서, 일용직 노동자와 행상과 어부가 건조한 정경을 이룬다. 그들의 그림자에서는 ‘살아 본 자’만이 그려 낼 수 있는 먹먹한 애수가 드리워 있다.
눈발 속에서
배 한 척 동동 새어 나온다
눈 덮인 김 무덤을 싣고
밧줄 던져 주는
푸른 얼굴의 아버지
머리카락에 고드름이 달렸다
-「대머리 포구」에서
지극히 절제된 시어로 상황만을 묘사한 이 시에서 눈발이 날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부두 노동자의 신산한 노동과 추위는 순간, 숨 막힐 정도로 가깝게 다가온다. 균제와 소거를 통해 오직 강건한 줄기만을 남긴 그의 시에서는 놀라울 정도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적막하고 황폐한 ‘곳’에서 말없이 견뎌 나가는 생의 ‘순간’들. 김두안의 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오후”(「황사」)를 말하는 때조차 담담한 어조로,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이야기함으로써 묵묵히 살아 내는 삶의 본질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 시는 삶이 되고, 삶은 시가 된다
시의 섬세한 감정선과는 대조적으로 김두안은 투박한 시인이다. 그는 꾸미지 않으며 꾸밀 줄 모르고 솔직한 시선으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시화(詩化)할 뿐이다. 그가 살아온 바다에서는 ‘아버지가 부두에 밧줄을 매고’(「밧줄」), ‘어머니가 어느 염전의 소금을 긁으며’(「묵화)」, 그가 살아온 도시에서는 ‘대형 트럭에 죽어 가는 고양이’(「검은 고양이 K씨」)와 ‘테니스장 전등에 까맣게 타 죽은 벌레’(「외문 속으로」)가 황량하게 부유한다. 시에 담긴 노동, 정경, 비애는 전부 그가 살아온 역사에서 기인한 것들로, 단순한 시어이지만 그 깊이는 삶만큼 깊다.
뻘 밭에 김 말뚝을 세우고 배를 밀어낸다 뻘에 종아리를 박고 등으로 민다 섬 사이에 닻을 내린다 깍두기 국물에 밥 말아 먹고 낚싯줄을 던진다 (……) 낚싯대가 휘어진다 배가 출렁 달빛이 끊길 듯 팽팽하다 아버지 가시 등 휘어 오른다 팔뚝만 한 농어 뿌리째 뽑힌다 아가미가 끔벅끔벅 허공을 되새김질한다
-「달의 아가미」에서
어부는 배를 힘껏 밀어 바다에 나가고, 팔뚝만 한 농어의 끔벅이는 아가미에서 자신의 삶을 관조한다. 이렇듯 우리는 그의 시에서 한 행마다 담긴 생의 자취를 읽는다. 그 자취는 놀라울 정도로 진실하기에 감동은 어느 때보다 숙연하게 다가온다. 시를 읽은 우리의 생에 자취가 남을 만큼.
■ 작품 해설 중에서
김두안의 첫 번째 시집은 솔직하고 직접적이고 전면적이며 선명하다. 이것은 그의 시를 형성하는 기본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서 다루어지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며 지탱하고자 하지만 결국 밀려나는 자들로, 그들의 삶은 차가운 단어들에 의해 한 치의 여유도 없이 노출된다. 이들은 기존 개념상 \’민중\’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 인물들이 보여 주는 살아 있는 날들 동안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비극적 인식은 실제 경험에서 얻어진 것으로, 극대화된 비극성의 리얼리티를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삶의 구체적 경험에 바탕을 둔 차갑고 생생한 언어들은 비로소 내면의 울부짖음과 마주한다. 진지하고 묵직한 이 시대 민중시의 탄생이다.
– 문혜원(문학평론가 · 아주대 국문과 교수)
■ 추천의 말
김두안 시는 힘이 세다. 시에서 바람이 인다. 그는 뻘에 걸린 배를 등으로 밀어 본 사람이다. 상체의 힘에 의존하여 손으로 배를 밀 때의 한계를 체득한 사람이다. 시 밑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시를 밀 줄 아는 사람이다. 뚝심 센 그의 시 편편 곳곳에 새순 같은 섬세한 눈빛 돋아 감탄이 절로 난다. \”비늘 벗겨진 자리 그물 무늬 선명하다.\”라고 민어를 노래하기도 하고, \”날개는 허공을 얼마나 접었다 폈을까.\”라고 나비를 노래하기도 한다. 그는 길에서 물기를 만난다. 그 물기는 세파의 피처럼 붉고, 먼 고향의 밤처럼 검다. 그 물기들은 자작자작 그의 마음 밭에서 세월로 익어 \’슬픔의 탄력\’으로 빛난다. 그의 가슴에 그득 내재되어 있는 서정의 바다가 한없이 부럽다. 머지않아 그의 시들이 활화산처럼 분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함민복(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