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고향과 마을 사람들을 통해, 유년 시절 형성되어 성장한 후에도 그를 규정짓게 만드는 개인 특유의 ‘원형질’이 어떤 것인가를 서정성 넘치는 문체로 묘사한 장편소설.
엄창석 장편소설 『어린 연금술사』, 단편집 『황금색 발톱』 동시 출간
지난 1992년 소설집 『슬픈 열대』와 장편 『태를 기른 형제들』을 문단에 상재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던 엄창석 씨가 8년여 만에 신작 장편과 단편소설집을 동시에 출간하였다.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 문단의 주류적 경향과는 다소 거리가 먼 그의 작품들은 간간이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들을 제외하곤 책의 형태로서 서점의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다. 90년대 초반에 일었던 후일담 문학이기도 하고, 강한 사회 비판이기도 하였던 그의 초기작들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이제 드물 것이다. 90년대 초반과 중반 이후, 그리고 후반기에 우리의 문학이 그만큼 풍요롭고 다채로워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변화의 한복판에 서서, 깨어 있는 문제의식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음을 이번 두 작품에서 볼 수 있다.
이번에 각각 출간된 장편과 단편집의 색채는 사뭇 다르다. 전자를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후기자본주의의 온갖 병폐와 징후를 파헤친 연작소설이다.
아스팔트 밑에 깔린 잊혀진 영혼을 찾는 탐색
장편 『어린 연금술사』는 한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고향과 고향 마을 사람들 이야기이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의 고향의 산하를 글로 옮기는 작중화자이자, 어린 시절의 \’나\’가 주인공이다. \’나\’는 어느날 한 여자와의 실연(失戀)을 통해서 “내 속에 새겨져 있던 몇몇 상징들”과 마주치게 된다. 마치 옛사람들이 사물에 영혼을 심어놓은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유년의 어느 특정한 시절에 자신의 몸 안에 온갖 경험의 영혼을 새겨놓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작가는 영혼에 신비한 참여를 한다고 표현하였다. 실연을 겪은 후 무작정 장시간 도보를 하였던 \’나\’에게는 \’유년이 빚어놓은 영혼들이 불현듯 성년의 자기 삶을 숨가쁘게 한다\’.
작중화자인 열한 살의 \’나\’는 어린 시절에 부모와 떨어져 할머니와 단둘이 고향 마을에 살고 있다. 어느 날 고향 마을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트럭\’으로 이사해 온 미향의 이모. 그 여자의 출현은 마치 오랫동안 정전이 계속되어 왔던 조그만 우리 마을에 갑자기 전깃불이 들어온 것 같은 일이다. \’나\’에게 그 여자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 여자를 닮은 미향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조그만 해변가의 마을에는 이때부터 갖가지 일화들과 사건들이 펼쳐진다. 가령 학창 시절에 있을 법한 삼각관계, 이웃집 여자가 남편 없이 홀로 지내는 일, 또 그 여자를 사랑하는 이발사 최씨 등등. 한편, 동경에 유학 갔다가 정신 이상이 되어 돌아와 고향 뒷산에서 혼자 사는 \’까마귀\’라는 인물 역시 어린 시절 영혼의 상징 기둥이 된다. 그렇지만, 메인 테마는 미향이에게 맺혀져 있는 나의 짝사랑이 미향이 이모에 얽힌 사연으로 넘어갈 때이다.
미향이 이모는 읍내에서 어느 화가와 사랑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집안의 반대로 남자와 헤어지게 되고, 언니네 집인 서울약국네에 이사 온 것이다. 미향이 이모는 헤어진 남자에 대한 그리움으로 방황하다가 어느 날 해변가 등대 옆에서 벌거벗겨진 채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이때부터 마을은 평화롭고 고요하며 아름다운 고장이 아니라,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게 되며 삭막한 마을이 되어간다.
며칠이 지나고 미향이 이모를 죽인 살해범이 잡히는데 놀랍게도 \’까마귀\’라는 자이다. 미향이 이모가 죽었을 때, 옷이 벗겨져 있었는데 유일하게 팬티 하나가 없어졌던 것이 단서가 되었다. 그 팬티를 \’까마귀\’가 입고 있다가 잡혔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다소 의외였다. 왜냐하면 까마귀와 나는 예전에 산길에서 만났던 적이 있었고, 단 한번의 만남으로 인해 그가 결코 남을 살해할 인물이 아님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 가지로 예측해 보았다. 우선, 실제로 까마귀가 범인일 경우. 두번째는 그가 범인이 아니고 단지 현장 근처에 가 있다가 팬티 한 장만 가져갔을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가 사는 산속 움막에 누군가가 먹을 것과 함께 팬티를 갖다 놓았을 경우. 이렇게 예측을 하면서 \’나\’는 \’까마귀\’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까마귀\’의 살해 장면은 현장 검증이 이루어졌고, 순순히 따라하는 \’까마귀\’의 살해 장면은 그것을 지켜보는 모든 마을 사람들, 심지어 \’나\’에게까지도 실제로 살해했음을 느끼게 했다. 결국 \’까마귀\’는 미향 이모 살해범으로 잡혀갔으며, 흉흉했던 고향 마을은 몇 번의 화해 장면을 연출한 후 다시 예전의 고향 정경으로 되돌아간다. 미향과 미향의 식구들은 미향 이모가 죽은 후, 곧바로 고향 마을을 떠나게 되고, \’나\’ 역시 아버지가 교편을 잡고 있는 대구로 전학 가게 된다.
전학을 가는 날, 나는 대구로 가는 빨간 직행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서 버스가 시동을 걸어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나는 가방을 들고 총총히 버스에 다가갔다. 버스 문이 열렸다. 할머니가 먼저 버스에 올랐다. 할머니를 따라 버스 탑승구에 막 발을 올리려던 나는 추춤, 거렸다. 내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까마귀 소리였다. 귓전을 울리는 까마귀 소리는 그렇게 투명하고 청아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까아악 까악, 까아악 까악…… 내 귀에는 이런 소리로 들렸다. 잊으라 잊으라, 까아악 까악, 생을 잊으라…… -본문 중에서
아련해진 추억쯤으로 자리 잡혀 있는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되새긴 후,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 성인에게 유년은 기억을 통해서 존재하지 않고 의식 속에 숨어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년은 상징적이고, 때로는 환유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이런 환유를 그때 보았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단편집과는 다르게 이 장편소설을 평이한 서술체와 서정성 넘치는 문체로 썼다. 또한, 단편집에서는 굵은 이야기(거대 서사 혹은 거대 담론)가 있었다면, 이 장편은 잔잔히 진행되다가 찰나로 스쳐 지나가는 생의 짧은 이면들을 드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시적이기도 하다. 작가가 단편집을 통해 드러내려 했던 주제에 비하면 잔잔하지만, 아스팔트 밑으로 덮여버린 잊힌 영혼을 되찾게 해 준다.
프롤로그 – 열한 살의 신비한 참여1. 아름다움2. 성3. 빈곤과 부유4. 출산5. 지워지지 않는 무늬6. 신(神)7. 사랑8. 선과 악에필로그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