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엉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39 | 분야 오늘의 젊은 작가 39, 한국 문학
“비가 그쳤다는 걸 알았을 때 울음도 멈췄다.
반대일 수도 있다.”
‘본체’가 빠져나간 뒤 흐르는 원인 모를 눈물,
그리고 시작된 그치지 않는 비
내가 울 때마다 왜 세계도 함께 우는 걸까?
소설가 김홍의 신작 장편소설 『엉엉』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홍은 장편소설 『스모킹 오레오』,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등을 통해 엉뚱하고 널뛰는 상상력과 독특한 사유와 신념이 빛나는 작품 세계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무용해 보이는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인생을 거는 인물, 우연히 마주한 게르마늄 목걸이를 통해 좌절을 극복하고 행복을 만끽하는 화자, 총기 소지가 금지된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희대의 총기 사건 등 김홍의 서사는 무모한 속도로 내달리면서도 현실과 서사의 틈을 통해 번뜩이는 사유를 가능하게 만든다.
신작 장편소설 『엉엉』은 시도 때도 없이 원인 모를 눈물을 흘리는 화자의 이야기다. 어느 날 ‘본체’가 자신을 떠나간 이후로, 흐른다는 자각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내가 울 때마다 하늘에서도 비가 내린다. ‘나’의 눈물과 전국적 호우라는 기이한 접합 관계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소설 『엉엉』에서는 감히 예상할 수 없는 기묘한 일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화자의 눈물로부터 출발한 김홍의 소설이 뜻밖의 모험을 향해 멀리 내달릴 수 있는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이 각자의 슬픔에 매몰되어 무너지기보다, 자신이 슬픈 와중에도 상대의 슬픔을 헤아리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발문을 쓴 강보원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엉엉』은 “우리가 울음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쓰인” 소설이 아니다. 그보다는 “당신이 울지 않을 수 있어서” 시작된 소설이다. 슬픔에서 시작된 기이한 모험에 함께해 보자. 어느새 세계가 감추고 있던 수많은 표정들이 고개를 들 것이다.
■본체를 잃어버린 사람들
어둡고 습한 여름밤, ‘나’는 ‘본체’를 잃어버렸다. 더위와 악몽을 고스란히 견디던 밤에 본체는 내게서 스르르 일어나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듯 캐리어를 꺼내어 짐을 챙겨 떠나 버렸다. 본체가 빠져나갔다고 해서 ‘나’의 삶에 변한 것은 없었다. ‘나’는 똑같은 일터에 나가고, 같은 메뉴의 식사를 했으며 귀갓길에는 늘 그렇듯 ‘나’를 기다리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었다. 단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다는 것. 본체가 제방을 막고 있던 코르크라도 되었던 것처럼, ‘나’는 매일같이 이불을 갈아야 할 만큼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린다. ‘나’의 명의로 된 카드를 사용했다는 문자메시지 알림만이 생존 여부를 알릴 뿐 감감무소식이던 본체는 5년 만에 ‘나’에게 연락을 취한다. 곧 인천 공항으로 입국 예정이니 3시쯤 마중을 나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본체를 따라간 곳에 머물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나’는 곧 그들이 ‘나’처럼 본체를 잃어버린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혼자 매일 밤 눈물을 흘리는 대신, 그들의 기묘한 프로젝트에 함께하기로 한다.
■NG 모음처럼 이어지는 삶
본체와 재회한 뒤 거짓말처럼 닥쳐오는 괴이한 사건들. 그런데 ‘나’는 매번 당황하는 대신,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배우처럼 맞닥뜨리는 일마다 가뿐히 지나친다. 갑작스럽고 황당한 사건들 앞에서 ‘나’는 어떻게 이토록 침착한 걸까? “내 삶이 NG 모음으로 끝나기를 바란다. 방금 싸우던 사람도 그때는 같이 웃는다. (……) 지금까지 당신이 본 건 현실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은 ‘나’가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소망이 섞여 있는지 짐작게 한다. 이 모든 황당하고 억울한 일들은 연극과 같이 연출된 것이고, 이것들이 다 지나가고 나면 언젠가 내가 주인인 진짜 현실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 희망은 요원해 보이는데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나’는 마치 끝나지 않는 영화에 갇힌 배우 같다. 다 지나갈 것이라는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지독한 현실은 계속된다.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다.
■최후의 퍼즐 조각, 친구들
“우리는 사실 친구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친구는 생각을 바꾼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이 산에 오르게 만들 수도 있을 정도다.”라는 강보원 평론가의 말처럼, 친구라는 존재가 주는 힘은 강력하다. 수많은 사건들이 ‘나’를 지나쳐 가도 친구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킨다. 친구는 스스로 변하는 대신 ‘나’ 주변의 것들을 조금씩 바꾼다. 지독한 소란들 앞에서도 마냥 무덤덤하던 ‘나’는 본체를 따라간 곳에서 만난 사람들, 동사무소의 ‘슬사모’(슬픈 사람 모이세요)에서 만난 친구 ‘동그람’과 같이 친구라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는 생생한 감정을 내비친다. 섭섭해하고, 위로받고, 걱정한다. 친구들 역시 본체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우듯 ‘나’의 곁에 머문다. 소설의 끝에서 과연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있을까? ‘나’를 지나쳐 간 것들과 ‘나’에게 영원히 남아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엉엉』은 빠르게 변해 버리는 것과 영원을 사모하는 것, 둘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하염없는 눈물로 잇는다. 『엉엉』을 경유하여 각자의 영원에 대해 골몰해 보아도 좋겠다.
■ 「발문」에서
『엉엉』의 자동적 눈물은 세계의 슬픔과 직접 접합된 화자가 겪는 과부하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김홍은 이 소설이 우리가 울음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쓰인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반대로 말한다. 그것은 “당신이 울지 않을 수 있어서”라고.
―강보원(시인·문학평론가)
■본문 발췌
위태로운 건 과거만이 아니다. 미래를 조종하는 힘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무슨 교육 같은 것에 참석하라든가. 언제까지 돈 얼마를 어느 은행으로 부치라든가. 때가 됐으니 병원에 가서 검사대 위에 누우라든가. 문자로, 전화로, 메일로 날아드는 모든 메시지는 나의 다음 일정을 나보다 먼저 알고 있다. 가끔 나는 완전히 덫에 걸린 기분이 든다.
―11~12쪽
본체가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꽤 더운 밤이었다. 태풍이 지나가고 조금 시원해지는가 싶었는데, 젖은 나무들이 마르지 않아 습하기까지 했다.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고 침대는 혼자 잠들기에도 작았다. 하필이면 그때 본체가 내게서 일어난 거다. 그래서 본체가 일어난 건지도 모르겠다. 너무 더워서. 너무 덥고 좁아서. 그전까지는 본체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었다. 한 번도 내게서 떨어져 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1쪽
그렇게 한 나흘 울고 이제는 안 울어야지 생각했는데 이틀 더 울었다. 나가서는 안 울고 집에서만 울었다. 울고 있으면 꼭 비가 와서 내일 나갈 때 우산 챙겨 가야지 생각하곤 했다. 아침마다 까먹고 우산 없이 그냥 나갔는데 그럴 때마다 비가 안 와서 다행이야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 울고는 안 울었다.
(……) 하지만 울지 않는 날도 울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이 축축해졌다. 거의 항상 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딱히 울 일도 없는데.
―24~25쪽
누군가 모든 영화의 끝에 NG 모음이 붙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독의 욕망은 대체로 음험하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아무도 빠져나가지 않기를 원한다고. 불이 켜지고 영화관을 나선 뒤에도 현기증이 계속되기를 바랄 거라고. 공공 보건의 차원에서 NG 모음을 강제해야 한다고 했다. 나라면 아무도 웃지 않는 NG 모음을 붙일 것이다. 대사를 놓친 배우에게 화내는 스태프의 옆모습을 넣겠다. 같이 연기 못하겠다고 대본을 던지는 주연 배우를 넣을 것이다. (……) 하지만 나의 NG 모음은 모두 연출된 것이다. 바로 뒤에 NG 모음의 NG 모음이 붙어야 한다. 그 뒤에는 또 NG 모음의 NG 모음의 NG 모음이…….
그렇게 나의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183쪽
“바뀔 수도 있겠죠. 그래도 지금은 일단 안 바뀐다고 해 놓는 거야. 좀 센 척하면 어때요. 장담하는 거 좋지 않지만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되는 거예요. 이번에는 장담도 좀 해 보는 거죠. 한 번 싸우고 끝나는 게 세상에 어딨어요. 야구도 9회 하고 테니스도 한 세트에 여섯 게임 따야 돼요. 축구에는 로스 타임이 있고 승부차기도 있잖아요. 이번 경기 끝나면 다음 경기 또 있고…… 우리 같이 참호를 파요. 전선을 넓게 만들고 각 부문에 속속들이 침투하자고요. 그리고 기다려요. 꼭 개를 키워요. 고양이도 좋고요.”
―194쪽
엉엉 7
작가의 말 215
발문_미래가 너무 가까이 있다_강보원(시인·문학평론가) 219
독자 평점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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