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9호 외모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자!”
나는 어떻게 보이고 싶지? 얼굴, 몸매, 패션…… 뭘로 나를 내세울까? 집이나 직장, 세상보다는 외모 바꾸기가 쉬운 법. 가성비 투자처이자 평생 가꾸는 자원인 외모에서 개인적인 취향은 엄격한 사회적 기준과 만나 순식간에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고 만다. K–뷰티, K–팝이 선도하는 첨단 성형기술과 함께 가상과 현실을 어지럽게 넘나드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욕망, 고통, 희망을 어떻게 보정하면 좋을까?
속이야기보다 재미있는
겉모습의 인문학
지난 몇 년간 외모와 몸을 둘러싼 담론과 운동과 경험을 고백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주목받았다. 그런데 여전히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 인문잡지 《한편》은 외모지상주의를 누구나 비판하지만 누구도 빠져나오기 어려운 현실에서 시작한다.
외모는 그저 굴레일까? 외모를 언급하지 않고, 외모의 차이를 인지할 수 없는 세상이 살기 더 좋을까? 《한편》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모양”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따라 외모의 자리에 다양한 ‘보이는 것’을 넣어 봤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외면과 내면, 얄팍함과 깊이의 이분법을 가로지르며 사회학에서 인류학, 의학, 과학기술학, 장애학, 미학, 문화 비평까지 외모에 관한 열 편의 글을 실었다.
패션, 성형수술, 다이어트에서
바디프로필, 메타버스까지
2022년 신상 외모 이야기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로 이어졌다. 장애와 함께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하는가? 비장애인 배우는 장애인 연기를 어떻게 펼치는가? 다양한 논의 중에서 《한편》이 받아적은 생각거리는 이렇다. 이상하고 ‘못생긴’ 주인공도 등장할 수 있을까?
‘외모’ 편을 여는 김원영 작가의 「외모라는 실체에 관하여」는 누구든 외모를 초월할 수 없다는 문제를 직시한다. 추한 외모를 자기 정체성으로 삼는 것은 가능한가의 질문을 던지며 외모 가꾸기와 잘 살기를 연결하는 이 글은 ‘외모’ 편의 바탕을 이룬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활동가 일움의 「외모 통증 생존기」는 ‘외모 통증’이라는 문제를 꺼내 놓는다. 외모 강박을 토로하거나 꾸밈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는 일은 하나의 쳇바퀴를 이루고 있다. 꾸미려는 욕망을 억누르지 않고, 그 쾌락과 고통을 이야기하자는 제안이 ‘외모’ 편을 닫는다.
‘겉모습’ 이야기로 들어가면 아바타와 패션을 만난다. 여성학 연구자 김애라의 「메타버스 아바타의 상태」는 아바타 플랫폼인 ‘제페토’의 현장을 연구한 기록이다. ‘나만의’ 아바타로 걸그룹 체험을 하는 10대 유저는 과연 몸을 초월하는가? 메타버스에서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변함없는지를 확인해 보자. 패션 칼럼니스트 박세진의 「패션 역주행에 대처하는 법」은 하이패션 브랜드 ‘미우미우’의 로라이즈 룩을 비평한다. 자기 몸 긍정주의로 나아가는 패션의 거대한 흐름을 거슬러 ‘멋진’ 몸을 자랑하는 모종의 반동이라는 것. 겉모습 꾸미기를 둘러싼 즐거움과 수고로움을 함께 생각하는 두 편이다.
과학기술학자 임소연과 TV 교양프로그램 피디 안진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외모와 함께 작동하는 인종 개념을 살펴본다. 임소연의 「K–성형수술의 과학」은 인종‘과학’으로 등장한 성형수술의 발전사를 탐구한다. 오늘날 K-성형 과학은 ‘자연스러운 한국인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상적인 신체 비율을 상세하게 정의하는 과학기술과, 예뻐지기 위해 성형외과 문턱을 넘는 사람들이 맞물리는 현장 이야기를 필독할 것. 안진의 「왜 TV에는 백인만 나올까?」는 미디어의 인종 재현을 콘텐츠 생산자의 관점에서 성찰한다. 백인 스테레오타입 재생산과 방송가의 ‘성공 공식’은 무슨 관계일까? 제목에 담긴 질문의 답을 들으면 미디어 소비자들 또한 개선안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미디어에 포위된 우리가
‘얼굴을 잃지’ 않으려면?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이 들기까지 세상의 이미지, 스마트폰 이미지에 포위된 우리들. 너무 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정신을 잃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의료인류학 연구자 이민의 「전시되지 않는 몸들의 삶」은 비만이 의학적 범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비만 당사자의 언어로 포착한다. 체질량지수, 체성분 분석, 기성복 표준 사이즈 등 ‘평균적 몸’으로 정의되는 수치와 자기 전시 문화가 가린 몸들의 삶 이야기다. 노년내과 전문의 정희원의 「지속가능한 몸 만들기」는 ‘바디프로필’ 유행이 추구하는 신체 상태를 가감 없이 비판한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건강의 핵심은 몸의 균형이므로, 나이 듦에 대한 막연한 거부, 두려움을 구체적인 습관 만들기로 풀어 나가자는 실천편이다.
사회학자 박정호의 「얼굴을 잃지 않는 대화」는 현대인의 대화에서 핵심은 서로 ‘얼굴을 살리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쪽팔리는’, ‘체면을 잃는’, ‘망신당하는’ 상황은 왜 그토록 아찔할까? 이 글을 읽으면 얼굴에 ‘나’가 담긴다는 게 무슨 뜻인지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독립큐레이터 김현주의 「비누거품 아래, 죄와 부채」는 몸을 씻고 향을 더해 주는 비누를 들여다본다. 성형수술에서 추출한 제1세계인의 지방 조직으로 만든 비누가 있다. 목을 축이고 손을 씻을 물도 없는 제3세계를 상기하며 한 예술가가 제작한 비누다. 이때 비누거품이 씻어 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얼굴의 의미를 멀리까지 밀고 나가는 《한편》과 함께 더 많은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9호 ‘외모’에 적용된 글꼴은 청소년디자인제작전문그룹이 만든 NotCliche로, 큼직하고 부드러운 곡선이 표정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2023년 1월 ‘대학’을 주제로 계속된다.
9호를 펴내며 외모에 대해 이야기하자
김원영 외모라는 실체에 관하여
김애라 메타버스 아바타의 상태
박세진 패션 역주행에 대처하는 법
임소연 K–성형수술의 과학
안진 왜 TV에는 백인만 나올까?
이민 전시되지 않는 몸들의 삶
정희원 지속가능한 몸 만들기
박정호 얼굴을 잃지 않는 대화
김현주 비누거품 아래, 죄와 부채
일움 외모 통증 생존기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
도서 | 제목 | 댓글 | 작성자 | 날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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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책에 비해 쉽게 넘기기 어려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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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쥐스터 | 2023.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