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
글 심민아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2년 9월 9일
ISBN: 978-89-374-7338-8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7x188 · 236쪽
가격: 14,000원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38
분야 오늘의 젊은 작가 38
『아가씨와 빵』 심민아 시인 첫 소설
“나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
게임이 뭔지도 모른 채 게임 회사에 입사해
경쟁의 무한루프를 견디는 이유는 단 하나,
아름다운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다!
키코, 먹고살기, 어떤 멀미 7
판교, 취미의 품, 예술의 시절 55
근로계약서, 가슴, 미소녀의 추억 103
크레이지, 핫키, 시절과 추억과 미래 157
작가의 말 227
추천의 글 230
심민아의 첫 소설 『키코게임즈: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20년 첫 시집 『아가씨와 빵』을 낸 시인 심민아가 처음으로 발표하는 소설이다. 『아가씨와 빵』에는 생존의 징글징글함을 알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는 아가씨-시인의 시편들이 실렸다. 매일의 노동을 기꺼이 해내며 아름다움을 향해 가는 인물의 이야기는 소설에서도 이어진다.
『키코게임즈: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의 배경은 한국 게임 산업의 중심지인 판교. 주인공은 게임 기획자로 일하는 유라다. 매일 아침 판교행 만원 버스에 몸을 싣는 유라는 ‘취미와 광기’의 게임 회사에서 참을 수 없는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아름다운 것’을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환상 같은 게임 세계를 또렷한 현실 감각으로 돌파하고 현실을 견딜 아름다운 공상을 펼쳐 나간다. 『키코게임즈: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위트 있는 문장으로 현실과 환상을 가뿐하게 오가는 새로운 소설가의 탄생을 알린다.
게임 회사 ‘키코게임즈’에 입사한 유라. 키코게임즈는 게임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회사다. 문제는 유라가 심각한 ‘겜알못’이라는 것. ‘게임도 모르면서 게임 회사에 들어갔다가는 커리어만 꼬인다’는 동생의 만류에도 유라는 겁 없이 키코게임즈에 발을 들여놓는다. 키코게임즈는 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번번이 취업에 실패한 유라에게 우연히 굴러 들어온 기회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 운 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유라는 기획자로서의 커리어를 쌓아 보려고 한다. 하지만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가 집약된 세계는 거대한 멀미를 유발한다.
게임 디자이너, 게임 기획자, 게임 멘토…… 유라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게임 회사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려 노력한다. 하지만 동생의 우려대로 ‘애매한 일’을 맴도는 유라는 키코게임즈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는다. 키코의 게임을 진짜로 좋아할 수는 없는 이가 보는 회사의 풍경은 기이하다. 밤새 게임을 하다 퀭한 눈으로 출근하는 개발자들, 고해상의 우주를 최선을 다해 구현한 뒤 그것이 공격받고 부서지는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데 또다시 온 힘을 기울이는 디자이너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획하는 회사의 핵심 본부 ‘핫키’. 게임을 사랑하는 이들을 ‘꿈의 직장’으로 유혹해 이들의 자존감에 연료를 가득 채워 주는, 하지만 사실상 상상과 자유를 박탈해 가는 곳.
게임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유라는 여러 게임을 플레이해 본다. 사실 유라에게도 게임의 연대기가 있다. 베트남에서 살다 온 자신을 ‘조메콩’이라고 놀리며 왕따시키는 아이들에게서 벗어나 방과 후 오락실에서 했던 「펌프 잇 업」. 유라는 헤비메탈 음악에 맞추어 울부짖듯 발을 굴렀다. ‘너희는 본 적도 없는 메콩강이 얼마나 거대하고 아름다운지’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낯선 서울살이를 견디게 해 주었던 「프린세스 메이커」도 있다. 동생과 함께 플레이했던 게임 속 여자아이는 비록 공주는 못 되었을지언정 유라의 친구였다.
그런데 어린 시절 플레이했던 게임의 기억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성인이 되어 떠올린 「프린세스 메이커」는 여자아이에게 어른 남성의 성적 욕망을 투영했던 게임이다. 가슴을 2센티미터 자라게 해 준다는 마법의 약 ‘풍유환’은 어린 유라가 보기에도 어딘가 께름칙한 것이었다. 게다가 크고 아름다운 가슴에 대한 집착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무래도 전투에 임하기에는 불편해 보이는 노출 심한 옷을 입은 캐릭터와 그들의 ‘바스트 모핑’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낯설기만 한 미감과 뭐든 부수고 파괴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임 세계관 속에서 유라는 깊은 혼란에 빠진다. 현실이 그렇다면, 게임 업계를 떠나야 할까?
유라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유라에게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예술. 아름다운 것. 아름다움이 구현된 현실을 목격한 적도 있다. 어느 오래된 공연장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유라는 무대 위에 기어이 아름다운 것을 올렸던 사람들과 함께 일했다. 학교에서 배웠던, 멀게만 느껴지던 예술가와 손에 잡히지 않던 문학작품들을 움직이는 현실로 만들었던 사람들. 유라는 책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소용돌이 같았던 극장장실과 극장을 떠올린다.
공연의 시작 전 출입문을 닫을 때 느껴지던 “이상한 진공상태”, 암전 이후 무대가 밝혀지던 짧은 틈의 침묵,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오던 순간, 모두가 떠난 빈 공간에 오롯하게 켜져 있던 노란 전등을 바라보던 때. 그때 유라의 가슴에는 작고 둥그런 것이 자라났고 유라는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유라가 좋아하는 것, 만들고 싶은 것. 유라는 키코게임즈에서의 생활을 무사히 견뎌 자신만의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게임을 만들어 보기로 다짐한다. 유라는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 추천의 글
추천 [얼리 액세스 평가]
이 소설의 장르를 뭐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일단 WASD 키가 있으니 FPS(일인칭 슈팅). 반복되는 출퇴근 속에서 일상이 조금씩,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루프 물. 게임 포비아에서 게이머로, 게이머에서 게임 만드는 사람으로 레벨 업해 가는 육성 시뮬. 펼치자마자 다짜고짜 하드모드 주의. 그야 이건 게임이 아니라 인생이니까. ―박서련(소설가)
아무도 싸우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게임. 그런데 재미있는 게임. “콧바람을 쐬고 싶은 만큼 산책하는” 게임. 유라가 만들려는 아름다움을 조용히 응원하게 된다. 처음엔 작가의 블랙 유머에 낄낄 웃을 테지만 어느새 당신은 울고 있을 것이다. 심민아는 『키코게임즈』라는 아름다운 게임을 만든 셈이다. ―문보영(시인)
■ 본문에서
나는 쫄딱 젖은 채 우뚝 서서, 쾌적한 엘리베이터 안에 기가 막히게 촘촘하게 자리 잡은 사람들의 정수리를 관찰했다. 스마트폰 게임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바쁜 푹 숙인 정수리들. 출근길에 본 경기 버스 방송에 따르면, 인간 머리털의 가마 방향은 태아 시절에 정해지는 거라고 한다. 태아가 솜털 발달 단계에 어떤 위치와 방향을 잡고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 자라날 털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저스! 엄마 배 속에서 결정되는 것은 왜 이리 많단 말인가. 사람들이 다들 정수리 근처에 오래된 선택을 나름대로 박은 채 이렇게 구부정하게 서서 게임 세팅을 하느라 바쁘다고 생각하니, 하루 이틀 본 광경도 아니지만 특히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수리 우파와 좌파는 타고나는 것이다. 코스튬을 바꾸고 있는 저 파마 아저씨는 태아 시절을 오른쪽 중심으로 보냈을 것이다. 아침부터 현질한 물약을 들이붓는 중인 저 염색 머리 언니는 왼쪽 선호자였을 테다. 그렇다면, 정수리에 털이 없는 저 게임 해설 시청자 아저씨는 각성한 단독자 같은 것인지. 나는 30년 전 태아 시절을 아무래도 오른쪽으로 웅크리고 보냈던 걸까……. 그 오른쪽 가마를 따라 활발하게, 빗물 묻은 기름이 콸콸 돌기 시작한 비 내리는 아침.
(……)
나는 이곳 키코게임즈에서 게임 기획자로 일한다.(12~13쪽)
나는 월드 팀의 기다란 얼룩소로서, 누렁 일도 아니고 검정 일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얼룩의 일들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했다. 하고 또 했는데, 해야지 뭐 어쨌겠나. 화상 면접과 회의를 살피며 시차를 생각하고 신규 입사자의 입국 가능 일정을 확인해 회사가 기숙사용으로 리스트 업해 둔 숙소 정보를 전달할 때는, 일을 하면서도 내가 무슨 팀인지 혼란스러웠다. 모르긴 몰라도 일반적인 회사라면 아마도 인사 팀이 할 일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월드 팀 사람들 각자의 명절을 티나지 않게 눈치껏 챙겨 약간의 감동을 주고 팀원들이 무의식적으로 서로의 종교 문화적 금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미리미리 무형의 투명한 장애물을 치우는 동안에는, 오다가다 본 외교 의전을 주먹구구로 급조해 따라 하는 신생국가의 사수 없는 말단 공무원이 된 기분이었다. 얼떨결에 외국인근로자 관련 법을 낑낑대며 읽을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사기를 치는 가짜 변호사가 된 것 같아 무섭기도 했다. 키코식 용어와 한국 게임계의 축약어 따위를 회사 위키에 업데이트할 때나, 각국의 업계 동향과 사회 이슈를 문서 하나로 묶어 팀장님 확인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성가신 교양과목 리포트를 쓰며 잡지식을 쌓아 가는 학부생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했다.(22~23쪽)
1950년대 말에 완공된 그 극장은, 붉은 벽돌을 반원 형태로 쌓아 올린 단정한 공간이었다. 전후 폐허가 된 서울에서 극장을 세울 생각을 했던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종전도 아닌 휴전 상황에서, 그 가난하고 추운 나라에서. 그래도 예술을 하겠노라, 오직 그것만을 위한 공간을 열겠노라, 움직였던 사람들은.(72~73쪽)
공연이 시작되어 출입문을 닫을 때마다 느껴지던 이상한 진공상태에서. 잠깐 암전이 되었다가 무대조명이 툭, 떨어지기 전의 짧은 틈에서. 관객들이 고양된 가슴을 안고 일어서 박수를 칠 때. 엔딩곡 마지막 음의 진동이 마침내 부드럽게 사라질 때. 모두가 떠난 후 텅 빈 로비에 노란 실내등만 남을 때. 거기에서 먼지가 불규칙하게 회전하는 것이 보일 때. 몇 번씩 되풀이해 본 공연에서 배우들이 주고받는 아슬아슬한 애드립이 들릴 때. 그때마다 그 둥그런 것은 조금씩 조금씩 자라났다. 나는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83~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