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진실성의 작가 김병운 첫 소설집
젊은작가상 수상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수록
▶ “김병운은 소중하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어느새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김혼비(에세이스트)
▶ “이제 이 책은 다른 세상을 꿈꿔 왔던 이들에게, 내일의 당사자인 모두에게 도착한다. 이 작은 이야기들이 어떻게든 변형되고 연장되고 소용되고 살아나길 믿으며.” ―오은교(문학평론가)
한밤에 두고 온 것 7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45
윤광호 85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125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 169
알 것 같은 밤과 대부분의 끝 211
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 247
작가의 말 301
작품 해설 353
추천의 글 353
김병운의 첫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김병운은 첫 장편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에서 자기 정체성을 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배우 공상표의 용기를 다양한 형식적 재미를 곁들인 빼어난 서사로 풀어내며 주목받았다. 2년 만에 출간하는 첫 소설집에는 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포함해 2020년 이후 발표한 7편의 작품이 실렸다. 김병운의 소설들이 포착하는 “인물들의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동요”(문학평론가 오은교)는 나를 드러내는 일의 어려움이라는 전작의 고민을 이으며 또 한 번 “다시 만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 낸다.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서 화자들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타인의 자리까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의 출발점은 누구인가,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들은 자신을 뜯어낸 흔적을 여미고 타인이 머물렀던 자리를 응시하며, 신중하게 용기 내어 나아간다. “소설과 삶 사이의 복잡한 긴장을 버티”려 노력한다는 소설가 김병운의 더 깊어진 진실들이 세련된 문체와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김병운의 소설이 공유하는 감각 중 하나는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 어떤 종류의 위화감이다. 연기를 하거나 소설을 쓰는 주인공들은 진짜 나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성 소수자에 대한 안일한 재현에 불만을 느낀다. 무력감과 불만에서 벗어나려면 나의 삶을 이야기에 끌어 와야 한다. 잘못된 것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의견을 내야 한다. 분노와 불안, 해방감과 두려움의 뒤얽힘과 끝없는 자기 검열 끝에 화자들은 숨거나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고 나를 드러내 보기로 한다. “이렇게는 아니라고. 이대로는 안 된다고” 말해 보기로 한다.(「한밤에 두고 온 것」) 그 끝에 “누울 자리를 보고 누웠다는” 자기 의심이 덧붙을 때면 그것조차 피하지 않은 채.(「윤광호」) 이 인물들의 끈기 있고 절박한 용기에 “소설이 삶에서 점점 희박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소설 속에 내 삶의 농도를 높였다.”라는 작가의 말이 겹쳐진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성 소수자 정체성에 대해 쓰고 말하는 나 역시 성 소수자에 대한 무지와 혐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나에 대해 쓰기 어려운 만큼 타인에 대해 말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 머뭇거림에 당신이 쓸 소설은 ‘우리’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단호한 응답이 돌아올 때,(「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쓰는 일의 자격은 중요하지 않고 쓰는 이의 용기와 치열한 고민만이 남을 뿐이다. 나와 우리의 연결은 시간이 지나 드러나기도 한다. 소설가 지망생인 나에게 ‘정체성을 드러내는 소설을 쓰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윤광호 씨를 수신인으로 한 편지는 존재만으로 용기를 건넸던 이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 인사다.(「윤광호」) 애도조차 할 수 없었던 친구의 죽음을 기록하는 일기는 없는 채로 나의 이야기 속에 살아 있는 이를 위한 애도의 편지다.(「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 이 내밀한 형식의 소설들은 흔적을 남기고 간 이들을 기억하는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동시에 가장 먼 사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친척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의무를 다하고 엄마와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사실 가족 앞에서 완전히 솔직했던 적은 없다. 친밀한 만큼 어려운 사이. 김병운이 그리는 가족 이야기의 매력은 그 모순된 거리감에서 발생하는 웃음을 능청스럽게 놓아 둔다는 데 있다. 나의 성 정체성을 짐작하지만 모른 척하는 것 같은 엄마 앞에서 “나는 고구마보다는 남자가 더 좋더라. 아니 감자가…….”라고 말실수할 때(「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 너는 결혼하지 말라는 사촌 누나의 말에 “뭐래, 나도 결혼할 거야.”라고 맞받아칠 때(「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두 번 당할 수는 없어서 애인과 결혼만은 하기 싫었다는 엄마의 푸념을 듣고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에 대해 생각할 때(「알 것 같은 밤과 대부분의 끝」), 독자들은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주고받는 대화에 웃다가도 그 의미를 곱씹게 된다. 옆 사람과의 차이와 충돌을 예민하게 감지하면서도 이를 외면하지 않고 웃음과 유머로 그려 내는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힘이 있다. 그 이야기들은 웃음의 온도만큼의 위로를 독자에게 착실하게 전달하고, 그 유머가 벌리는 틈만큼의 변화를 끝내 만들어 낸다.
■ 작품 소개
한밤에 두고 온 것
▶ 배우인 나는 퀴어영화 시놉시스를 검토하고 있다. 첫 작품으로 인정받은 감독의 차기작이지만 나에게는 성 소수자를 이성애자의 시선으로 재현한 작품으로만 보인다. 불만에 차 있던 나는 희곡 낭독 수업에서 만난 안부현 씨의 연락을 받는다. 하루만 자신의 아들을 연기해 달라는 부탁이다.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에게 장성한 아들이 있다는 거짓말을 해 버렸다는 것. 수업에서 안부현 씨의 눈빛을 외면한 적 있는 나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 1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 소설가인 나는 주호의 집에 초대받아 그의 부인 인주와 함께 주호를 기다린다. 인주는 주호에 대해 내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은 나는 모르는 주호와 나의 이야기다. 다르게 기억된 우리라는 관계의 모양. ‘우리에 대해 대해 쓸 건가요?’ 기다리는 동안 나눈 이야기의 끝에 인주가 한 질문은 늘 쓰기에 실패한 채로 나에게 남아 있다.
윤광호
▶ 성 소수자 인권운동단체에서 만난 윤광호는 바깥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클로짓 게이인 나와는 다르다. 그는 치마를 입고 태연히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 퀴어소설 읽기 모임을 제안하는 사람, 소설가인 나에게 언젠가 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나는 오래 소식이 끊겼던 윤광호 씨의 부고를 듣게 된다.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 매형의 부고를 받고 대구에 내려간 나는 사촌 누나와 조카들을 만난다. 장례식장에서 친척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지난날을 떠올리는데, 사촌 누나 은수의 친구 중에는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한 사람이 있다. 어린 날에도 어쩐지 특별해 보였던 사람,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뚜렷하게 그려지는 사람. 그리고 은수의 아들 경진은 나에게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
▶ H씨와 나는 9월 한 달간 일기를 써서 공유하는 둘만의 워크숍을 진행한다. 원칙은 손으로 쓸 것, 날마다 쓸 것, 뭐라도 쓸 것. 나의 일기에는 물과 흙의 이야기가 쓰인다. 깊이 새겨진 자기혐오를 툭툭 내뱉으면서도 처음 보는 술 취한 아저씨가 무안해할까 봐 지하철 자리에서 선뜻 일어나지 못하는 흙과의 대화가, 아슬아슬하게 쾌락을 쫓던 물과 선뜻 연결되지 못했던 나의 마음이, 그의 전화를 외면했던 어떤 날이.
알 것 같은 밤과 대부분의 끝
▶ 나는 엄마와 함께 엄마의 애인이었던 남자의 장례식에 찾아간다. 엄마가 옛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추억에 빠진 동안, 나 또한 죽은 이를 만나기로 했던 날의 우연에 대해 생각한다. 그날 그를 기다리던 카페에서 나는 어쩐지 자신을 닮은 한 남자를 만난다.
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
▶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소설 혹은 에세이. 소설가인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만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쓴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을 결심하기까지는 한 권의 책을 쓸 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출간을 준비하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서는 엄마가 떠나지 않는다.
■ 추천의 글
김병운의 첫 작품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진실함에 대한 이야기다. 숨거나 참거나 도망치며 오랜 시간 자기 자신을 미워한 사람이 더는 자기 부정을 견디고 싶지 않아진 이야기, 몸에 새겨진 수치와 혐오의 역사를 돌아보며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드러내는 이야기, 안전과 보위로 겹을 쌓아 둔 작고 익숙한 세계에서 골목을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세계로 기꺼이 접어든 사람의 이야기, 이 책은 다시 만난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오은교(문학평론가)
김병운의 소설이 일견 “적당한 온도로 쓰인 글”처럼 보이는 것은 담담한 문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가 “적당한 지점”에서 소설을 맺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의 소설이 적당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담담한 언어들 아래에는 ‘정체성의 승인’을 둘러싼 온갖 감정의 분열과 그 안에서도 ‘인정’과 ‘긍정’의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을 기필코 낚아채는 치열과 그가 자신의 일부를 뜯어내어 쓴 것 같은 파열들이 흐르고 있고, 여기서 더 뻗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가 일부러 멈춰 서는 지점,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그의 소설에 번번이 크게 데이곤 한다. 그 뜨거운 멈춤. 더 쓰이지 않아서 더 격렬하게 존재하는 이야기. 그가 던진 말줄임표 사이사이를 나 스스로 채워 넣다가 나의 일부도 뜯겨 나가는 과정. 그런 점에서 김병운은 소중하다는 말로도 부족하고 어느새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김혼비(에세이스트)
■ 본문에서
“어쩌면 나는 안부현 씨가 내게 도움을 청한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도와주려 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나를 간파한 게 아닐까 싶어서, 그 순간 내가 당연히 상처받았으리라 짐작하고는 기꺼이 내 편이 되어 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어서. 나는 어떻게든 보이길 원하는 사람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숨어 버리는 사람이니까.”(「한밤에 두고 온 것」)
“나는 느닷없이 다시 등장한 내 책 얘기에 마냥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인주 씨가 지금까지 들려준 얘기를 곰곰이 곱씹다 이렇게 물었다.
그럼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거네요?
나를 거꾸로 걸린 그림처럼 바라보던 인주 씨가 되물었다.
그런가요?”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광호 씨에게는 어떤 기운이 있었다. 작은 키에 마르고 왜소한 체격이었음에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보다 항상 커 보였고, 광호 씨가 커다란 안경 너머로 나를 똑바로 바라볼 때는 일순간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건 광호 씨가 나를 자신의 곁으로 끌어당기는 힘 같기도 했고 자신이 목표하는 쪽으로 떠미는 힘 같기도 했다. 나는 광호 씨에게 성적으로 끌리거나 딴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광호 씨와 같은 공간에 있을 때면 어김없이 광호 씨의 존재를 의식하게 됐고, 광호 씨를 일부러 바라보지 않는 방식으로 바라보곤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쪽으로 걸어가는, 그래서 자꾸만 나의 위치와 한계를 자각하게 만드는 광호 씨의 용기를 경계하면서도 선망했던 게 아닐까 싶다. (「윤광호」)
”하지만 다음 알람이 울렸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았다. 왜냐하면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나를 흉내 내고 있다는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으니까. 누나가 얘기해서 살 것 같은 사람은 진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내가 아니고 그저 기대되는 말이나 어울리는 말, 필요한 말만 할 수 있는 나였으니까. 잠시라도 내가 누구인지 까맣게 잊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나는 내가 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계속 움켜쥐고 있었다.”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
“요즘 나는 흙이 바로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흙이 나로부터 비롯된 갖은 감정적 악취를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한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애써 멀리 에둘러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흙은 대체로 그런 사람이니 내게도 예외는 아닐 거라는 생각. 참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
“나는 엄마가 그 사람이라고 말하는 즉시 그 아저씨를 떠올렸고, 그건 내가 택시를 타도 된다는 엄마를 굳이 내 차에 태운 이유이기도 했다. 그 아저씨는 나와 인연이라면 인연이고 사연이라면 사연이 있는 사람이니까. 나는 요즘도 가끔씩 그 아저씨와 그 아저씨로부터 파생된 어떤 우연에 대해서 생각하곤 하니까. 그 아저씨를 만나기로 했으나 결국 만나지 못했 던 그날에 대해서. 그 아저씨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만날 수 있었던 한 사람에 대해서.” (「알 것 같은 밤과 대부분의 끝」)
“어째서 엄마는 내게 이토록 커다랗고 버거운 존재 인지 자문할 때마다 나는 엄마와 내가 단둘이 되어 남겨진 그날 그 순간으로 자꾸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땐 삶의 경험이 미천해 감히 형언할 수 없었던 그 감정이라는 게 어쩌면 엄마가 이 손을 영영 놓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곱씹는다. 내가 제아무리 손을 뿌리치려 해도 이 깍지는 절대로 풀리지 않으리라는 예감. 그해 나는 스물한 살이었고,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하나둘 만들어 가고 있었다.”(「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
“모두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절실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불가피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그래야 형편없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야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건 어떻게든 소설을 계속해 보려는 내 나름의 자구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그만둘 용기는 없어서, 소설이 삶에서 점점 희박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뭐라도 해 보자는 심정으로 소설 속에 내 삶의 농도를 높였다.”(‘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