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영혼의 집』, 『운명의 딸』과 삼부작을 이루는 아옌데 문학의 정수
원제 Retrato en Sepia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2년 5월 31일
ISBN: 978-89-374-6406-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452쪽
가격: 14,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406
분야 세계문학전집 406
“빛은 사진의 언어이고 세상의 영혼이란다.
그림자 없는 빛이 없고 고통 없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지.”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이사벨 아옌데
『영혼의 집』, 『운명의 딸』과 삼부작을 이루는 아옌데 문학의 정수
불의에 맞서 투쟁하고 주체적 삶을 살았던 여성들의 연대기
▶ 『세피아빛 초상』속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시공을 뛰어넘는 호소력을 지닌 매혹적인 역사 이야기. – ≪시카고 트리뷴≫
▶ 웅장하고 스펙터클한 상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흡인하는 아옌데의 놀라운 힘. – ≪북 매거진≫
1부 1862~1880 9
2부 1880~1896 133
3부 1896~1910 291
에필로그 430
작품 해설 432
작가 연보 439
라틴 아메리카 여성 해방의 역사를 제시하며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가장 뛰어난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이사벨 아옌데는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세계 곳곳을 다니며 성장했고, 삼촌인 살바도르 아옌데 칠레 대통령이 피노체트의 쿠데타에 의해 실각하며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베네수엘라로 망명했다. 그 시기에 첫 소설 『영혼의 집』(1982)을 펴냈고,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사벨 아옌데는 라틴 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계승하면서 여성, 유색 인종 등 역사적으로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삶을 조명하여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세피아빛 초상』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진정한 자신을 찾고자 했던 아우로라의 삶을 보여 주며 『영혼의 집』의 클라라, 『운명의 딸』의 엘리사와 함께 4대에 걸친, 여자들의 역사를 연결하며 삼부작을 완결짓는다.
1880년 혼혈이자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받은 충격으로 다섯 살 이전의 기억은 모두 잃어버린 아우로라 델 바예. 부와 권력을 주무르는 여왕 같은 할머니 파울리나의 손에 자라난 아우로라는 반복되는 악몽을 치유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사진을 배우게 된다. 사랑을 찾아 칠레에서 캘리포니아로 무작정 떠나 중국인 타오 치엔과 금지된 사랑을 한 외할머니 엘리사 소머스, 여성 참정권을 위해 끊임없는 투쟁을 지속하는 니베아 등 역사의 굴곡 속에서 저마다의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 여성들의 연대기를 한 가족의 역사 안에서 포착한다. 아우로라의 손으로 빚어진 그들의 초상은 곧 피와 고통으로 얼룩진 파란만장한 칠레 근현대사의 얼굴이다.
■ 진정한 자아와 자유를 찾아가는 주체적인 여자들의 항해
『세피아빛 초상』의 배경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칠레의 발파라이소다. 189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 황금 열풍에 몰려들어 칠레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과 다시 칠레로 역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기선을 타고 오가던 두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근대화 시기를 그리고 있다. 당시 칠레는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보수 정권의 몰락, 개혁의 물결, 페루, 볼리비아와 벌인 전쟁 등으로 격동의 시기를 맞았다. 『세피아빛 초상』은 델 바예 일가를 중심으로 각자의 삶의 이유를 찾고자 했던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린다. 힘든 삶의 무게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가련한 여인이 아니라, 현실에 문제의식을 던지고 욕망하는 대상을 성취하며 강인하게 살아가는 여성들을 보여 준다. 아옌데는 작품 속에서 미국에서 유색 인종과 메스티소에 대한 백인의 멸시, 차이나타운에서 성행한 성매매 사업, 혼혈 가족 등 소수자를 조명하며 문학적 지평을 확장한다. “내가 쓰는 모든 작품은 자전적 요소를 갖고 있다. 왜 나는 어떤 것을 쓰려고 작정했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나에게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아옌데의 정치적 굴곡 속에서 자유를 갈망해온 삶의 궤적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 빛바랜 ‘세피아빛 초상’에서 다시 발견하는 미래
기억은 허구다. 우리는 부끄러운 부분은 잊어버리고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만 선택하여 인생이라는 널찍한 융단에 수를 놓는다. 나는 사진과 글을 통해 내 존재의 덧없는 상황을 이겨 내고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붙들어 과거의 혼돈을 벗겨 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매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 금방 과거가 되어 버린다. 현실은 하루살이같이 덧없고 변하는 것이며 순수한 그리움일 따름이다. (430쪽)
아우로라는 유년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흐릿해진 자신의 과거를 더듬어 재구성하려고 한다. 반복되는 악몽의 원인을 포착하기 위해 시작한 사진 찍기는 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된다. 네거티브 필름을 현상하고 사진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아우로라는 자신을 둘러싼 현실과 상황에 관한 혜안을 기른다. 사진이 포착한 진실은 때론 남편의 비밀을 드러내 괴로움을 주기도 하고, 파울리나와 엘리사로 대표되는 칠레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게 만들어 준다. 상실과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나 주변의 여성들과 공감하고 연대하며 주체적인 삶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아우로라의 여정에는 늘 카메라가 함께 한다. 아우로라가 그려낸 ‘세피아빛 초상’은 19세기 후반『운명의 딸』의 엘리사, 20세기 후반『영혼의 집』의 클라라가 보여 준 여정의 중간 시점에서 과거를 받아들이고 미래의 변화를 대비하는 칠레의 여성상을 대변하며 삼부작의 대서사시를 완성한다.
아우로라의 ‘이야기하기’는 동시에 ‘글쓰기’이고, 이는 글쓰기를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주인공을 통해 구현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소설에서 아우로라의 이야기하기와 사진 찍기는 오랜 악몽을 떨쳐 내는 것, 그리고 사랑과 믿음의 상실을 치유하는 것, 그리하여 온전한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작품 해설」중에서
■ 본문 중에서
“내가 네 나이였을 때는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었다. 결혼을 하거나 수녀원에 들어가거나였지.”
“왜 수녀가 되는 길을 택하셨어요?”
“더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까. 그리스도는 인자한 남편이거든…….” (43쪽)
“내가 바라는 건 충직과 유머, 두 가지란다.”
“공부는 안 바라세요?”
“그건 네 문제다, 얘야. 네 인생으로 뭘 하든 나는 상관 안 해.” (48쪽)
만일 내 생애 가장 뚜렷하고 지속적인 기억이 할아버지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아는 모든 이의 사랑을 다 합친다 해도 비길 수 없을 할아버지의 사랑이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내 속에 중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136~137쪽)
“정직하게 쓰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은 걱정하지 말고. 네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든 사람들은 널 미워할 테니까.” (141쪽)
“사람들은 선물은 원하지 않아요. 존엄성을 지키며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싶어 하지요.” (210쪽)
“할머니. 전 이렇게 많은 미스터리를 안고는 살 수가 없어요.” 한번은 내가 파울리나 델 바예에게 말했다.
“왜 못 산다는 거니? 어린 시절이 불행한 사람들이 더 창의적이란다.”
“뒤죽박죽 엉망이 되기도 하겠지요.”
“델 바예 집안에 미치광이는 없단다, 아우로라. 존경받는 가문이면 어디나 그렇듯이 괴짜들이 좀 있을 뿐이야.” (220쪽)
“빛은 사진의 언어이고 세상의 영혼이란다. 그림자 없는 빛이 없고 고통 없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지.” (281쪽)
“그림에서 느껴지는 효과를 의도하는 거라면 차라리 그림을 그려라, 아우로라. 원하는 게 진실이라면 카메라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라.” (304쪽)
행복해질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남편이 실크 종이에 포장된 선물처럼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내가 지혜와 노력으로 하루하루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가 안심시킨 대로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 훨씬 더 좋아질 거라고 믿었다. (3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