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메로스
원제 走れメロス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6월 3일 | ISBN 978-89-374-6403-4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328쪽 | 가격 14,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403 | 분야 세계문학전집 403
“그 남자를 죽게 해서는 안 돼! 서둘러, 메로스! 늦으면 안 돼.
사랑과 진심의 힘을, 지금이야말로 알려 줘야 해.”
비범한 이야기꾼 다자이 오사무가 펼쳐 보이는 다채로운 문학 세계
다자이 문학 본연의 충만한 에너지가 넘실대는 중후기 대표 작품선
▶ 전쟁 말기라는 미증유의 혼란 속에 집필되어 그대로 온전히 패전 직후 간행되었다는 점에 『옛이야기』와 작가의 영광이 있다. ―도고 가쓰미(와세다 대학 명예교수)
▶ 이 참신한 발상! 『옛이야기』가 ‘유머 소설의 금자탑’, ‘웃음 짓지 않을 수 없는 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데는 「카치카치산」에 그 공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유숙자(「작품 해설」에서)
오늘날 가장 유명한 일본 작가 중 한 사람인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가 출간되었다. 그동안 민음사에서는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인간 실격』, 『사양』, 『만년』 등 다자이의 주요 작품을 꾸준히 출간해 왔다. 이 책 『달려라 메로스』는 다자이 문학의 중후기 대표작을 모은 것으로 『사양』과 『만년』의 번역가 유숙자가 직접 수록 작품을 고르고 우리말로 옮겼다. 표제작인 「달려라 메로스」를 비롯해 다자이의 작품을 엮은 책은 이미 여러 종 출간되었지만, 다자이 문학의 정수를 보여 주는 중후기의 대표작만을 엄선했다는 점에 이 책의 의의가 있다. 1939년 결혼을 계기로 서른 살의 다자이 오사무는 인생과 문학 모두에서 전환기를 맞이한다. 질풍노도의 청춘을 뒤로하고 가장이자 직업 작가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한 다자이의 문학 세계는 이 시기에 한층 다채로워진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에서는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 작가라는 익숙한 수식어 뒤에 가려진, 재기 발랄한 이야기꾼으로서 다자이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
■ 교과서에 실린 불후의 명작 「달려라 메로스」부터 다자이의 최고 예술 작품 『옛이야기』까지
이 책에는 열세 편의 작품이 발표 순서대로 실려 있다. 「만원」(1938)을 시작으로 「미남자와 담배」(1948)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설가로서 다자이 오사무의 원숙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하나같이 가작들이지만 대표작 『사양』과 『인간 실격』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특히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옛날이야기들을 뛰어난 필력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새롭게 써낸 『옛이야기』는 스토리텔러 다자이의 진면모가 드러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의 한 평론가는 『옛이야기』에 ‘다자이의 최고 예술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혹부리 영감」, 「우라시마 씨」, 「카치카치산」, 「혀 잘린 참새」 등 네 편의 독립적인 단편을 모은 이 작품에는 “다자이의 여유롭고 의뭉스러운 유머와 상상력이 유려한 문체 속에 비할 데 없이 조화롭게 용해되어 있다”(「작품 해설」). 뭔가 결여되어 있거나 현실에서 소외당한 주변적인 등장인물들이 오히려 그래서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2차 세계 대전 말기 폭격으로 자택이 파손되는 중에도 창작에 대한 의지로 중단 없이 완성한 『옛이야기』는 이 책의 백미다.
금기에서 풀려난 여성의 심리 변화를 그린 「만원」은 다자이가 자살 기도 등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내고 다시 창작에 힘을 쏟던 무렵 발표한 소설이다. 「황금 풍경」은 신문사 단편 콩쿠르 당선작으로 결혼 후 새로운 출발에 대한 다자이의 기대감이 행간에 묻어 있다. 「벚나무와 마술피리」는 두 자매의 우애를 드라마틱한 플롯에 담아낸 서정적인 작품이다. 산문 「아, 가을」은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이라는 문장만으로도 이미 충만하다. 개를 소재로 한 「축견담」에서는 걸출한 재담가 다자이의 개성 넘치는 문체를 감상할 수 있다. 표제작 「달려라 메로스」는 일본 중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바 있으며 다자이가 남긴 불후의 명작으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활달한 필치와 긍정적인 세계관이 작품을 감싸 안는다. 폭군을 암살하려다 붙잡혀 죽을 처지에 놓였으나 여동생을 결혼시킨 뒤 돌아와서 죽겠다고 약속한 양치기 메로스와 그의 부탁으로 인질이 되어 친구가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면 대신 처형되어야 하는 석공 세리눈티우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감동적이다.
그 밖에도 “헤어지겠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여성 고백체 소설 「여치」, 대학 입학과 함께 시작한 십여 년의 도쿄 생활을 회고하는 자전적 소설 「도쿄 팔경」, 한 여성의 비밀스러운 기다림을 그린 「기다리다」, 다자이 자신의 분신 같은, 전후 현실과 괴리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인물과 그 때문에 고초를 겪는 아내 사이에 벌어진 촌극을 그린 「비용의 아내」, 마치 한 편의 산문시처럼 읽히는 「포스포렛센스」, 어느 겨울, 거리의 부랑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소재가 된 「미남자와 담배」 등 다자이 문학의 절경과도 같은 작품들이 실려 있다.
■ 인간들의 ‘이야기’가 선사하는 문학 본연의 즐거움
다자이 오사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인 『사양』이나 『인간 실격』은 이미 전 세계인이 읽는 현대의 고전이지만, 이 작품들만으로 기억되기에는 다자이 문학의 영토가 상당히 넓다. 다섯 번의 자살 기도가 상징하는 극단적 데카당으로서의 이미지는 그의 문학 세계를 온전히, 그리고 온당히 향유하는 데 작지 않은 방해 요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문학의 본질은 어쨌거나 ‘이야기’라는 것이고, 다자이는 특정한 유파로 묶이기에 앞서 무엇보다 특출한 이야기꾼이었다. 『사양』과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달려라 메로스」와 『옛이야기』의 작가이기도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주제, 소재, 형식, 내용 면에서 이토록 다층적이고 광범위한 문학 세계를 단시간에 일궈 낸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달려라 메로스』는 『인간 실격』, 『사양』, 『만년』에 이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서 벌써 네 번째로 선보이는 다자이 오사무의 책이다. 그를 다시 만나는 독자에게든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든, 이 책은 인간들의 ‘이야기’가 선사하는 문학 본연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줄 것이다.
“다자이는 어떤 사람이었나요?”라는 신문 기자의 질문에, 생전의 작가와 친분이 있었던 한 여성이 이렇게 대답한 걸 떠올린다. “재미있는 사람이었어요. 한번 이야기 꺼냈다 하면, 끊임없이 술술 나오는 그런 사람이었어요.”(「작품 해설」)
■ 본문에서
“아아, 기쁜가 봐요!” 나직이 살짝 속삭였다.
문득 얼굴을 들자 바로 눈앞의 샛길을, 원피스를 입은 청결한 모습이 살랑살랑 뛰다시피 걸어갔다. 하얀 파라솔을 빙글빙글 돌렸다. (「만원」, 9쪽)
나는 선 채로 울었다. 험악한 흥분이 눈물로, 아주 기분 좋게 녹아 없어져 버린다.
졌다. 이건, 좋은 일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그들의 승리는, 또한 내일을 위한 나의 출발에도, 빛을 비춘다. (「황금 풍경」, 16쪽)
난, 너무나 쓸쓸해서 지지난해 가을부터, 혼자 그런 편지를 써서, 나에게 부쳤던 거야. 언니, 멍청하다고 여기지 말아 줘. 청춘이란, 굉장히 소중한 거야. 난, 병에 걸리고 나서, 그걸 똑똑히 알게 됐어. (「벚나무와 마술피리」, 25쪽)
가을 해수욕장에 가 본 적이 있나요? 바닷가에 그림 무늬 양산이 찢어진 채 밀려오고, 환락의 흔적, 일장기 초롱도 버려지고, 장식 비녀, 휴지, 레코드 파편, 빈 우유병, 바다는 불그스름하니 탁해져 철썩철썩 물결치고 있었다. (「아, 가을」, 29쪽)
여러분, 개는 맹수다. 말을 쓰러뜨리고, 드물게는 사자와 싸워 정복하고 만다는 얘기도 있잖은가. 그럴 만도 하지. 나는 혼자 쓸쓸히 받아들인다. 개의 그 날카로운 엄니를 보라. 보통내기가 아니다. 지금은 저렇듯 거리에서 무심한 척 하잘것없는 존재인 양 자신을 비하해 쓰레기통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는 시늉을 하고 있지만, 본디 말을 쓰러뜨릴 만한 맹수다. (「축견담」, 31~32쪽)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조용히 기대해 주는 사람이 있어. 난, 신뢰받고 있어. 내 목숨 따윈, 문제가 아니야. 죽음으로써 사죄를, 어쩌고 하며 마음 착한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야. 나는, 신뢰에 보답해야만 해. 지금은 오로지 이 한 가지. 달려라! 메로스. (「달려라 메로스」, 63쪽)
헤어지겠습니다. 당신은 거짓말만 했습니다. (「여치」, 68쪽)
도쿄 팔경. 나는 이 단편을 언젠가 천천히, 공들여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십 년간의 내 도쿄 생활을 그때그때의 풍경에 내맡겨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올해 서른두 살이다. 일본의 윤리에 비추어도 이 나이는 이미 중년 단계로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또한 내가 나의 육체와 정열을 더듬어 봐도, 슬퍼라, 이를 부정할 수 없다. 기억해 두는 게 좋아. 넌, 이미 청춘을 잃었어. 제법 점잔 빼는 얼굴을 한 삼십 줄 남자다. 도쿄 팔경. 나는 이것을 청춘에 대한 결별 인사로서, 아무한테도 알랑거리지 않고 쓰고 싶었다. (「도쿄 팔경」, 88쪽)
만년 젊은이는 배우의 세계다. 문학에는 없다. (「도쿄 팔경」, 89쪽)
대체 나는, 매일 여기에 앉아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요? 어떤 사람을? 아니에요, 내가 기다리는 건,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요. 나는 인간을 싫어해요. 아니에요, 무서워요. (「기다리다」, 122쪽)
성격의 희비극이라는 겁니다. 인간 생활의 밑바닥엔 늘, 이런 문제가 흐르고 있습니다. (「혹부리 영감」, 148쪽)
“사람은 제각기 살아가는 방식을 갖고 있지. 그 방식을 서로 존경할 수 없나?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도록 애쓰며 고상하게 살고 있는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성가셔 죽겠어!” 하고 힘없이 한숨짓는다. (「우라시마 씨」, 151쪽)
“네, 그렇습니다. 말이란, 살아 있다는 불안감에서 싹튼 게 아닌가요? 썩은 땅에서 붉은 독버섯이 돋아나듯, 생명의 불안이 말을 발효시키는 게 아닌가요? 기쁨의 말도 있긴 하지만, 그것조차도 천박하게 꾸며져 있잖아요? 인간은 기쁨 속에서조차 불안을 느끼는 걸까요? 인간의 말은 모두 꾸밈이에요. 잘난 척하는 거죠.” (「우라시마 씨」, 180쪽)
“내가, 너한테 무얼 잘못했단 말이냐. 반한 게 잘못이냐?” (「카치카치산」, 217쪽)
“난 말이지, 아니꼽게 들리겠지만, 죽고 싶어서,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는 것만 생각했지. 모두를 위해서도, 죽는 편이 낫습니다. 그건 뭐, 확실해. 그런데도 좀체 죽지 않아. 이상한, 무서운 하느님 같은 분이, 내가 죽는 걸 말립니다.” (「비용의 아내」, 275쪽)
“비인간인들 뭐 어때서요? 우린, 살아 있기만 하면 돼요!” (「비용의 아내」, 280쪽)
아아! 살아간다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야. 특히 남자는 괴롭고 슬프지. 아무튼 무엇이든 싸워서, 그리고 이겨야만 하니까요. (「미남자와 담배」, 292쪽)
만원(滿願) 7
황금 풍경 11
벚나무와 마술피리 17
아, 가을 27
축견담(畜犬談) 31
달려라 메로스 51
여치 68
도쿄 팔경〔東京八景〕 87
기다리다 121
옛이야기 125
혹부리 영감 129
우라시마 씨 149
카치카치산 190
혀 잘린 참새 219
비용의 아내 247
포스포렛센스 281
미남자와 담배 290
작품 해설 299
작가 연보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