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2년 5월 19일
ISBN: 978-89-374-7024-0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00 · 428쪽
가격: 16,000원
시리즈: 인문학 클래식 4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 에우리피데스의 대표작 『메데이아』가 출간되었다. 가장 지적이고 다층적인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에우리피데스는, 혁신적인 구성으로 관계의 복잡함과 미묘함을 표현하고 인본주의적 사상을 내포하여 근세 유럽의 비극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그를 “가장 비극적인 시인”이라고 평했다. 현존하는 18편 가운데 대표작 「메데이아」, 「힙폴뤼토스」, 「엘렉트라」, 「알케스티스」 4편을 실었다. JTBC 「차이 나는 클라스」, EBS 클래스e 「고전, 인간을 말하다」 등에서 고대 그리스 신화와 문학을 명쾌하게 소개해 주신 강대진 서양고전문학 권위자의 원전 번역이다.
역자 서문
메데이아
히폴뤼토스
엘렉트라
알케스티스
작가 연보
해설
● “모든 질병 중에서 가장 큰 것, 즉 뻔뻔함이지.” ―「메데이아」에서
에우리피데스는 당대 지적 풍토를 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전통적인 방식에서 탈피하는 현대성을 보여 준다. 예를 들면, 「메데이아」에서 메데이아와 이아손이 소피스트처럼 서로 논쟁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소피스트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당대 현실을 담은 것이다.
이아손: 하지만 내 생각에, 나를 구해주어서
당신이 얻은 게, 준 것보다 훨씬 큰 것 같소.
(……)
또 모든 헬라스 사람들이 당신이 현명하다는 걸 알고 있으며,
당신은 명성을 누리고 있소.
(……)
메데이아: 내가 보기엔, 어떤 불의한 자가 말을 잘하면,
그자는 더욱더 큰 벌을 갚아야 할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는 말로써 불의를 가릴 수 있다 생각하면서,
온갖 못된 짓을 감행하니까요. 하지만 그는 아주 현명하다곤 할 수 없지요.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 『메데이아』에서
에우리피데스는 지금 펼쳐지는 장면이 단지 신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이야기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에우리피데스는 매우 지적인 작가여서, 그의 작품을 그저 감성만으로 대하면 그 참된 가치를 알아채기 힘들다.”
그는 자신이 문학의 역사라는 긴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관객/독자들도 그것을 함께 느끼도록 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는, 말하자면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시학에 대항하여, 거의 ‘브레히트 시학’을 주창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는 어떤 인위성이 있는데, 그걸 숨기지 않고 오히려 거의 과시했다는 의미에서다.
—강대진, 「작품 해설」에서
● “용서하세요, 인간이 실수하는 건 당연합니다.” ―「힙폴뤼토스」에서
「힙폴뤼토스」는 젊은 파이드라가 남편의 아들 힙폴뤼토스를 짝사랑하다가 둘 다 파멸하는 이야기다. 힙폴뤼토스는 새어머니 파이드라의 사랑을 전하는 유모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그는 “내 혀가 맹세했지, 내 마음이 맹세한 것은 아니오.”라면서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다가, 어쩔 수 없이 맹세했으니 “집 안의 대들보와 벽들이 진실을 외쳐” 주기를 바란다고 소리 지른다. 힙폴뤼토스는 폭로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켰지만, 어찌 보면 파이드라에게 사실을 폭로한 것만큼의 수모를 준다.
유모: 젊으신 분,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당신의 친구들을 완전히 파멸시킬 참이오?
힙폴뤼토스: 그 말에 침을 뱉겠소. 불의한 자는 결코 내 친구가 아니오.
유모: 용서하세요, 인간이 실수하는 건 당연합니다, 도련님.
—에우리피데스, 「힙폴뤼토스」, 『메데이아』에서
이 작품은 사랑에 대한 지나친 집착 또는 과잉, 그리고 사랑에 대한 지나친 절제 또는 혐오가 대립되는 구조다. 캐릭터들이 모두 강하고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작품이기 때문에, 현대 작가들에 의해서도 자주 변주되고 있는 주제다. 여기서도 에우리피데스는 영웅 테세우스를 동네 평범한 남자처럼 그리고 있으며, 주인공이 아닌 유모에게 전체 대사의 4분의 1 정도를 배당한다. 이처럼 에우리피데스는 전통적인 작법에 파격을 주면서 비극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개척해 나갔다.
● “가장 비극적인 시인!” ―아리스토텔레스
「알케스티스」는 비극 공연에서 사튀로스극 대신에 출품한 희비극이다. 일찍 죽을 운명을 받은 아드메토스가 자신을 대신해 죽을 사람을 찾는데, 오직 아내 알케스티스만이 자진해서 목숨을 바꿔주겠다고 한다. 아드메토스는 자신의 양친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바람에 자신의 젊은 아내가 죽게 되었다며 부모를 향해 화를 낸다.
아드메토스: 정말로 당신은 비겁함에 있어 모든 사람을 능가하십니다.
당신은 그 나이가 되어서, 인생의 끄트머리에 다다랐으면서도,
당신 자식을 위해 죽으려 하지도 않고,
그럴 용기를 내지도 않았죠.
(……)
페레스: 나는 너를 집안의 주인이 되게끔 낳아주고
길러주었다. 하지만 너를 위해 대신 죽어줄 의무를 빚지진 않았다.
(……)
그래서 너도 뻔뻔하게 죽음에 대항해서 싸웠고,
정해진 운명을 넘어 살아 있는 것이다,
이 여인을 죽게 만들고서! 그러고는 나의 비겁함을
지적하느냐, 오, 누구보다 비겁한 자여, 여자보다도 못한 주제에?
(……)
아드메토스: 그러면 한창때인 사람이 죽는 것과 노인 죽는 게 같습니까?
페레스: 우리는 한 번 살지, 두 번 사는 게 아니다.
아드메토스: 그러면 제우스보다도 더 오래 사시구려!
—에우리피데스, 「알케스티스」, 『메데이아』에서
「엘렉트라」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도 같은 주제로 쓴 작품이 남아 있기 때문에, 세 작가를 비교하는 데 자주 인용되는 작품이다. “아이스퀼로스는 가문의 저주와 재판 제도의 성립에 중점을 두었고, 소포클레스는 여주인공의 영웅적 모습과 극적 아이러니, 오레스테스의 정신적인 죽음을 두드러지게 그렸다.” 반면에 에우리피데스 작품에서는 특히 ‘인물의 의외성’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엘렉트라 집안에 대해 관객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연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는가 하면, 주인공들의 성격이 신화 속에서 전통적으로 맡았던 역할과 별개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에우리피데스는 전통적인 비극 공식을 계속해서 해체하고자 했고, 그래서 더욱 혁신적이고 ‘비극적인’ 작품들을 창작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