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태어나 놀이로 성장하는 개구(開口)쟁이 오은의
천진난만 말놀이 애드리브
맹랑한 동심과 명랑한 광기의 경계에서 말랑말랑한 시를 놀다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연인이자 최초의 연인”(문학평론가 박상수) 오은의 첫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그는 다국적 인물, 다양한 문화적 코드, 음악, 영화,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까지 시 속에서 놀게 하는가 하면, 자본 문명 안에 존재하는 욕망의 허기들, “식충이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는 “모방을 모방하면서/ 모방을 모반”하고, “묻고 또 묻고/ 묻는다는 것에 대해 또 묻”는다. 언어적 혁명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에 저항하는 것이다. 단어들을 단순하게 사용하다가 그것들의 의미와 관계를 심화하고 새로운 언어적 상황을 만드는 오은의 작법은 독자로 하여금, 언어가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과 가치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게끔 한다.
■ 그의 말놀이 본능,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일단 재밌다. 만화나 소설이 아닌 시집인데 말이다. 오은은 그야말로 언어를, 시를 가지고 논다. 그의 말마따나 “말을 늘였다 줄였다 부풀렸다 쪼그라뜨렸다 스트레칭하는 모험”을 즐긴다. 오은은 고무줄 같은 시인이다. 그는 “스프링, 스프링” 봄처럼 튀어 오른다. 그의 탄성은 도무지 한계가 없다. 하지만 단순히 재밌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천진난만한 말놀이 애드리브에 쿡쿡 웃음을 터뜨리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숨겨진 “돼지들”을 발견하곤 섬뜩해지며 “뜨악해, 뜨악해, 산다는 게 뜨악해.” 하고 외치게 된다.
문학평론가 박상수의 말처럼 그의 시에는 “이주노동자와 아르누보, 긴급조치와 데리다가 공존”하고, “언어와 유희하며 현실과 관계 맺는다.” 그는 오은을 일컬어 “한국 시에서 ‘부드럽고 지적인 논리의 연쇄법’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분명 이 시인”이라고 평했다.
그의 시에는 음악처럼 무의식적인 감각과 리듬이 넘쳐 난다. 의미의 리듬과 구문의 리듬이 중첩되어 시 전체는 음악적인 긴장감을 얻는다. 이 시집의 서시 「스프링」에서 “스프링”, “텀블링”, “마블링” 등 음운상․의미상으로 연결된 단어들을 엮어 과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을 비판한다.
또한 「식충이들」은 ‘먹다’를 모티프로 하여 반복된다.
왕년에는 식은 죽 먹기로 1등을 먹었었는데, 어떤 일이든 척척 거저먹었었는데, 식욕은 왕성해지는데 먹어도 먹어도 떨어지는 게 없다니! 독하게 마음먹고 회사의 공금을 좀 먹어 볼까? 콩밥도 먹고 나이도 먹고 그러다 운 좋게 한 자리 해 먹으면 뇌물도 먹고 쓴소리에는 적당히 가는귀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직원들을 노예처럼 부려 먹고 배우자의 영혼도 야금야금 갉아먹을 테지(「식충이들」)
오은은 숫자가 구체화될수록 인간관계는 추상화되는 디지털 사회의 속성을 간파하여 인격보다는 수치화된 조건들을 더 중요시하는 디지털 방식의 인간관계를 명쾌하게 그려 낸다.
우리가 관심 있는 건 오로지 숫자뿐이다 (중략) 스프레드시트 위에 빽빽이 들어찬 숫자, 이것만이 우리를 안심시킨다 180-70이나 36-24-35 같은 수치만이 우리의 긴장을 극에 달하게 한다 우리가 침을 삼키며 숫자를 거꾸로 세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정확히 한 단계씩 상승, 상승, 상승(「엘리베이터」)
「This Hoffmann」이나 「제인」, 「한스」와 같은 시편에서는 한국어를 낯설게 만들려는 시인의 노력이 드러난다. 그는 「제인」과 「한스」에서 영어/독어의 고유명사처럼 들리는 단어들이 한국어에 속할 수는 없는지 묻는다. 그는 어떤 문화의 요소를 전형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맞선 채 한국어로 놀고 한국어로 이야기를 만든다.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3」에서 시인은 잘 알려진 속담 두세 가지를 한 문장 안에 섞어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비유적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어떤 날엔 얌전한 고양이가 스스로 방울을 달고 부뚜막에 오르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개밥 속 숨겨진 도토리를 찾으면 서당에 살지 않아도 풍월을 읊을 수 있었다”, “바늘을 훔쳐 담을 넘다가 소도둑이 된 구렁이만 만났다” 등의 시구를 통해 그는 새로운 비유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구문을 찾아서 언어를 낯설게 만드는 대신 익숙한 비유를 새롭게 사용해서 언어를 낯설게 만든다. 예를 들어 “반말을 하다가 걸리면 어김없이 목구멍에 끌려가 서 말의 구슬을 꿰는 벌을 받았다”라는 문장을 통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속담을 떠올리며 독자는 결국 “목구멍”에서 다양한 개념을 상상하게 된다.
또한 시인 김경주는 오은의 시 「섬」을 두고 “욕조에 관한 수많은 시 가운데 이 시가 유난히 곁을 차지하는 것은 어느 외로운 날, 욕조 속에서 자신의 비린 발을 꼬옥 오그리고 있는 시인을 상상하며 우리 역시 한 번은 자신의 곁을 지나갔던 ‘섬’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비린 시”라며 추천했다.
이 첫 시집을 통해 그는 이미 “어떤 현상이나 경향”, “스타일이나 수수께끼”를 이루었다. 그의 말놀이 본능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의 외침처럼 그는 이제 우리 시단의 “미래의 희망”이니까.
■ 작품 해설 중에서
우리가 종이 위에서 도모할 수 있는 모반의 힘은 결국 언어의 쇄신에서 비롯되지 않겠는가. 단어들을 단순하게 사용하다가 그것들의 의미와 관계를 심화하고 새로운 언어적 상황을 만드는 오은의 작법은 독자로 하여금, 언어가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과 가치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게끔 한다. 오은의 즉흥적인 말놀이는 모국어와 외국어의 유전자를 조작한다. 이 괴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언어라고 생각하는 것의 ‘바깥’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를 번민하게 하는 관념과 이념 같은 것들을 그대는 이제 입으로 받아 문다. 그대에게는 세상의 시작도 끝도 모두 입의 소관이다. 연인의 입술에 몰입하던 순간의 황홀한 아름다움이 준 힘으로, 그대는 입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이렇게 버티고 있다. 피 칠갑한 입으로 느낀 고통의 맛은 “쓸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그 쓴맛을 기억하는 성난 입술로, 계속해서 “쓸 것이다.” —허윤진(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오은의 시는 한국 시에서 소홀히 취급되었던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그의 놀이는 참으로 유쾌하고 통쾌하고 정교하고 날렵하다. 남성, 여성을 넘어 다양한 화자들이 등장하는 다문화주의적인 시 세계를 통해 “불길하게 방치되어 있는” 우리의 의식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확장하려 한다. 오은의 시는 “한물간 수사학”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창조와 재창조 사이에서 시의 “경쾌한 근원”을 즐긴다.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예술이란 유희에서 촉발된다는 것을, 진지함도 유희의 가면인 것을……. 오은의 시를 읽으며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의 「Tarkus」가 연상되었다. 그의 시는 키스 에머슨의 건반 연주처럼 치밀하고 풍성하며, 그렉 레이크의 보컬처럼 이지적이고 작위적이지 않으며, 칼 파머의 드럼처럼 파워풀하고 거침이 없다. 그리고 상상의 전투적 기계 동물인 Tarkus처럼 젊은 패기로 무장되어 있으면서도, 혀를 내밀어 “공기를 맛보”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그가 쏟아 낸 것이 동심과 광기 사이의 절규임을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의 다채로운 질문들에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정재학(시인)
오은은 스스로 생장한 언어의 힘으로 새로운 시적 규율을 만들어 가는 시인이다. 그는 공기의 요정인 실프의 몸짓으로 시의 무늬를 짠다. 아름답고 기괴한 음률들과 놀랍도록 다채로운 사유의 편린들이 허공중에서 서로 부딪쳐 새로운 무늬로 산화한다. 오은이 시에서 발현하는 몸은 혼몽 속에서 부유하는 몸이 아니라 실천하는 몸이다. 실천의 토대는 새로운 감각과 날 선 사유다. 그의 시에는 자본 문명이 주는 온갖 망상과 허명들, 욕망의 허기들, 음식뿐 아니라 인격까지도 먹어 치우는 “식충이들”이 존재한다. 그가 구사하는 “말놀이 애드리브”는 시인이 접한 다양한 문화적 코드, 즉 음악과 영화, 철학, 다양한 인물들의 집합소다. 이것으로 또 다른 사회학적 상상력을 실현한다. 이제 그의 시가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 낯설고 흥미로운 길목을 달뜬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어 벅차다. —이재훈(시인)
■ 차례
1부 말놀이 애드리브
스프링
말놀이 애드리브
식충이들
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This Hoffman
한스
제인
환절기—관용구로 구성된 어떤 말놀이
동물원에서
변신
7 a.m.
못다 한 이야기—Stranger In Paradise
라이터
2부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모던 타임스
세대차이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1—ver. macrohard
빨간
장면들—미장센, 파리 골목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2—ver. microsoft
닫히지 않는 창문
미니시리즈
고타분 씨가 이 시대를 사는 법
순례자들
엘리베이터
에이즈
어떤 날들이 있는 시절 3—속담으로 구성된 어떤 말놀이
폭력의 역사
3부 구체적인 밤
21세기 어린이
이상한 곱셈
포크댄스
플럭서스 요술사들
모기를 잡는 연이
개로 태어나 황소처럼 살다, 고양이로 죽다, 톰
호텔 타셀의 돼지들
보카 델라 베리타
미필적 고의
키스
구체적인 밤
동시다발
4부 존재하려는 경향
섬
0.5
스타일—김언 兄에게
당신에 관하여
존재하려는 경향
얼룩말
연인
디아스포라
발생하려는 경향
탄성한계점
타이밍
글러브
신경쇠약 직전의 남자
끌리는 모음 속으로
작품 해설/허윤진
성난 입술
“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연인이자 최초의 연인”(문학평론가 박상수) 오은의 첫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그는 이 시집을 통해 언어유희의 미학을 극단까지 몰고 간다. 그는 다국적 인물, 다양한 문화적 코드, 음악, 영화, 철학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까지 시 속에서 놀게 하는가 하면, 자본 문명 안에 존재하는 욕망의 허기들, “식충이들”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는 “모방을 모방하면서/ 모방을 모반”하고, “묻고 또 묻고/ 묻는다는 것에 대해 또 묻”는다. 언어적 혁명을 통해 사회적 부조리와 불평등에 저항하는 것이다. 단어들을 단순하게 사용하다가 그것들의 의미와 관계를 심화하고 새로운 언어적 상황을 만드는 오은의 작법은 독자로 하여금, 언어가 구성하는 사회적 조건과 가치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하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