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 상태의 사랑

김연덕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4월 25일 | ISBN 978-89-374-1949-2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60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나에게 문학과 사랑이란 나의 엉망인 상태, 엉망이면서도 환한 정념에 휩싸인 상태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유리잔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울리는 소리다.”

머물던 장소, 함께한 시간, 껴안았던 사람을
하나둘 촛불처럼 밝히는 부지런한 기억
차가운 기쁨과 뜨거운 상처 사이로
흘러가기를 멈추지 않는 액체 상태의 사랑

편집자 리뷰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2021년 첫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를 펴낸 시인 김연덕의 첫 번째 에세이가 ‘매일과 영원’ 다섯 번째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김연덕의 시들은 한결같이 꺼지지 않는 사랑을 품고 있다. 그러나 사랑을 품은 그 시들의 질감은 마치 눈의 결정 같다. 시인이 온몸으로 통과한 사랑의 뜨거움과, 그것을 시로 빚어 내고 깎아 낼 때 생기는 차가움. 에세이 『액체 상태의 사랑』은 그 서로 다른 온도에 대한 솔직하고 용기 있는 고백을 담는다. 사랑으로부터 상처가 남고, 우정으로부터 기쁨이 오며, 그 자리가 매번 뒤바뀌기도 하는 삶. 슬픔이 환희가 되고 가장 가깝던 이가 가장 멀어지기도 하는, 그 모든 상태 변화를 받아들이는 한 명의 시인, 한 명의 인간에게는 문학이 있고 시 쓰기가 있고 또다시 사람들이 있다. 김연덕은 스쳐 간 사람과 머무는 장소, 그날의 장면과 읽었던 책을 한데 기록한다. 사랑이 남긴 수치와 슬픔조차도 잊어버리기보다 기억하기를 택한 시인의 태도는 불꽃에 안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눈사람 같다. 얼음과 촛불 사이에 생기는 물처럼, 시인의 일기는 천천히 발생하고 촘촘히 흐른다. 시와 삶 사이로. 그리고 그런 시인의 문장은 상냥하고 애틋한 마중물이 되어, 사랑이 흐르고 상처가 자라고 우정이 뿌리내리는 스산하고 아름다운 정원처럼 가꿔진 시인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흐르는 발걸음이 닿는 곳

“엄마와 옛집에 다녀왔다. 종로구 부암동 산자락, 지금은 가정집 대신 박물관이 되어 버린, 내 유년기의 창백한 기쁨이자 글쓰기의 전부인 곳. 언니의 방이 있던 자리가 이제 매표소가 되어 버린, 노크만 하면 드나들었던 방문 대신 차례로 줄을 서 표를 끊고 들어가야 하는 곳. 나는 그 거칠고 높고 기이한 곳에서 태어나 11년을 살았다.”

시인은 자신이 잘 담겼던 곳들을 잊지 않는다. 그 장소는 11년 동안 살아온 옛집이기도 하고, 발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이기도 하며,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산책길의 고궁이기도 하다. 자유롭게 흘러가는 그의 문장처럼 부지런히 걷는 액체 상태의 시인은 흐르던 자신의 몸을 알맞게 담을 공간을 명민하게 찾아내고, 찾아낸 곳을 결코 소홀히 하거나 놓치지 않는다. 김연덕에게 다양한 공간들은 다채로운 감정으로 남는다. 남자 친구와 다툼 후에 그를 만나러 가던 길의 공단은 거칠고 차가운 쓸쓸함으로, <대산대학문학상> 등단의 부상으로 가게 된 런던은 함께 갔던 이들과 나누었던 신비롭고 오래된 설렘으로, 우연히 단골이 된 카페와 와인 바는 첫눈에 우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뿌듯한 다정함으로 남아 있다. 시인의 마음이 입혀진 공간은 결코 단순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의 눈동자를 통과하고 나면, 추운 겨울 할머니와 함께 있던 요양원의 모습도 건조하고 두렵게만 보이지 않는다. 그가 한 장소를 두 번 방문하기 때문이다. 처음 발걸음이 닿았을 때와 문장으로 다시 한번 닿을 때. 첫눈에 흐리고 앙상했던 곳도, 혹은 처음 본 순간부터 명쾌하고 온화했던 곳도 데생의 빈 부분을 채우듯 다시 손을 뻗어 그려 본다. 시간과 문장이 한 차례 더 어루만진 공간은 시인의 글 속에서 서서히 일어선다. 우리는 그 공간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마침내 다정한 사람에게 고일 때

“그날의 상처에 대해 쓴 것인지, 다정하고 싶은 의지에 대해 쓴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과 그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나에 대해 쓴 것인지, 오늘 만난 바위산, 부드럽게 파열되던 풍경에 대해 쓴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전혀 아름답지 않게 피로하고 어지러운 모양으로 얽힌 글이 되어 버렸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 글이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유일하게 쓸 수 있고, 써야만 하는 글이었다는 것.”

시인의 친구는 시인에게 말한다. “연덕은 사랑할 때도 꼭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것 같아. 어떻게 그렇게 성실해?” 시인은 그 말에 당황해서 자신을 부정하거나, 안도해서 자신을 부풀리지 않고 그저 다짐한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해 주세요. 차가워지지 않도록 해 주세요.” 사랑을 주고받는 일에, 그 마음에 몰두하는 시인의 성실함은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퍽 쉬운 일도 아니다.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가 그에게 조개껍데기로 엮은 장식품을 선물하면, 그는 멀리서 온 마음에 답장을 하기 위해 공방에서 유리로 조개와 소라를 깎으며 한겨울을 보낸다. 단골이 된 카페에서 편한 자리와 맛있는 커피를 건네주면, 어느 날 여행을 떠난 시인은 카페 주인을 떠올리며 그에게 건넬 빈티지 접시를 고른다. 그것은 쉬운 교환인 것 같지만 아무나 가능한 교환은 아닐 것이다. 설령 그가 경험한 모든 관계가 등가교환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의 접촉을 간직한다. 김연덕에게 사랑하는 일은 해 온 것을 후회하지 않고 해 나갈 것을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시인의 산문에는 그런 그의 사랑하는 자세가 다부진 모양으로 담겨 있다.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어, 그렇게 믿는 듯한 태도로 신념과 혼돈 사이를 거닐며 소원을 빌 듯 그 사람에 대한 일기를 적는다. 그 일기를 차곡차곡 쌓은 『액체 상태의 사랑』은, 겨울을 닮은 시를 쓰는 시인의 봄 같은 기도처럼 보인다.


 

■영원을 담은 매일의 쓰기,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
하루하루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을 넘어 오래 기록될 문학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매일 묵묵히 쓰는 어떤 것, 그것은 시이고 소설이고 일기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무심히 지나가지만 그 속에서 집요하게 문학을 발견해 내는 작가들에 의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쓰이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간을 이기고 영원에 가깝게 살 것입니다. ‘매일과 영원’에 담기는 글들은 하루를 붙잡아 두는 일기이자 작가가 쓰는 그들 자신의 문학론입니다. 내밀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쓰인 이 에세이가, 일기장을 닮은 책이, 독자의 일상에 스미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사랑에 대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왜 항상 목조 건물이나 산, 거실, 미니어처 얼음 산 혹은 미니어처 얼음 계곡 등의 공간과 모형을 사용하게 되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목조 건물, 산 등의 이미지에 유달리 애착을 갖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데, 목조 건물의 경우 서양식이라기보다 외할머니 댁이나 일본 영화 속 고택 같은, 동양식 마룻바닥과 비밀스러운 계단의 이미지를 자주 상상하며 쓰게 된다. _119쪽

얼음을 좋아하는 것은 빛과 유리를 좋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얼음은, 빛이 투과하면 반짝이며 투명해지는 부분이 생기고, 그 빛이 지속되면 녹고, 추운 데 놓아 두면 다시 언다. 이런 얼음의 속성이 마음과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 목조 주택에 앉아 얼음 산을 깎으며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 이런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장면을 생각하면 당위 없이도 다가오는 슬픔과 평화과 같은 것이 있다. _121쪽

사랑은 죽어 있는 상태와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행복하다는 감정이 ‘얼마쯤 죽어 있는 느낌’이라고 이야기한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완전한 사랑 역시 얼마쯤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상처도, 모험도, 다른 대상에 대한 사랑도 차단된 고요한 상태, 한 자리에 누워 한 장면만 볼 수 있는 상태, 그러니까 환하게 죽어 있는 상태. _133쪽

겨울나무들로 빽빽한 산이 이토록 선명한 감정들로 세워진 것이었다니. 아직 얼어 있는 하천에는 큼지막하게 부서진 얼음들이 앞뒤 없이 떠다닌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검고 날카로운 얼음의 단면. 그동안은 기차가 필요 이상 천천히 움직여 좋다고 생각했는데 곧 사라질 풍경들을 기록하려니 갑자기 너무나 빠르게 느껴진다. 옛날 장난감같이 모여 있는 컨테이너들에 대해 쓰자마자 마지막 컨테이너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색깔이 전부 벗겨진 산에 대한 문장을 한 줄 쓰기도 전에 터널 속에 비친 내가 보인다. 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나는 나를 물끄러미 건너다본다. 그리고 잠깐 사이 다시 지상에서 반대편 선로로 뛰어나가는 빛. 나에게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_249쪽

목차

2022년 2월 1일 7
2019년 2월 20일 25
2020년 1월 27일부터 2월 17일 사이의 짧은 일기들 31
2020년 3월 4일부터 4월 8일 사이의 짧은 일기들 38
2020년 4월 27일 55
2020년 5월 10일 64
2020년 7월 15일 75
2020년 9월 24일 87
2020년 10월 6일 97
2020년 11월 1일의 짧은 일기 106
2020년 11월 14일 108
2020년 12월 31일 119
2021년 1월 13일 128
2021년 1월 21일부터 3월 20일 사이의 짧은 일기들 138
2021년 3월 21일 145
2021년 4월 6일부터 9월 28일 사이의 짧은 일기들 156
2021년 10월 14일 171
2021년 12월 3일 179
2021년 12월 7일 191
2021년 12월 17일 217
2022년 1월 4일 새해의 짧은 일기 230
2022년 1월 31일 234
2022년 2월 3일 241
2022년 2월 22일 247
2022년 3월 19일 255

작가 소개

김연덕

19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18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재와 사랑의 미래』가 있다.

독자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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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찾아삼만리 2024.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