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1

원제 Mémoires d’Harien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 옮김 곽광수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12월 19일 | ISBN 978-89-374-6195-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272쪽 | 가격 11,000원

책소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최초 여성 회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대표작
페미나 바카레스코 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 수상작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죽음을 앞두고 전하는 불멸의 잠언들

▶ 황제의 목소리는 정녕 “인류의 예언적인 유언”이라고 할 만한,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으나 희망을 잃지 않은 유장하고도 웅혼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 곽광수(작품 해설 중에서)
▶ 걸작이다. 이 완벽한 작품은 너무나 아름답게 균형 잡혀 있다. – 《뉴요커》
1951년 출간한 이후 페미나 바레스코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았고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95, 196)으로 출간되었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가 근 30년간의 치밀한 고증과 치열한 집필 정신으로 남긴 역작이다. 40명으로 회원 수가 제한되어 있으며 340여 년간 단 한 명의 여성 회원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아카데미 프랑세즈는 그 업적을 인정해, 1981년 그녀를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선출했다. “사실(史實)과 부합하는 진짜 회상록”이라 평가받는 역사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로마 제국의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병상에서 죽음을 예감하고 지난날을 고백하는 일종의 회고록으로, 그의 입을 통해 잠언과도 같은 삶의 비밀을 전하고 있다. 전(前) 서울대 교수 곽광수는 10여 년에 걸친 작업 끝에 원문의 단어 하나 놓치지 않는 충실한 번역을 완성하였으며, 400개가 넘는 각주를 통해 2세기 로마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했다.

편집자 리뷰

“마지막 자유로운 인간들의 세기”의 황제 하드리아누스
파우스트적인 통찰력으로 삶의 비밀을 전하는 현인의 목소리

“키케로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는 시기는, 이교의 신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아, 인간 홀로 존재했던 유일한 시대였다.” 유르스나르는 플로베르의 이 문장에 영감을 받아 “마지막 자유로운 인간들의 세기”를 살았던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이야기를 구상한다. 하드리아누스는 말한다. “나는 단순히, 인간이었기에 신이었다.”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하드리아누스의 모습은 황제이자 탁월한 군사 전력가이고, 학자이자 시인이며, 쾌락과 정열의 인간이기도 하다. 전인적인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현자에 가까운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로마 제국의 14대 황제이자 오현제(五賢帝) 중 세 번째로 기록되는 하드리아누스가 불치병에 걸린 후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예감하고 지난날을 회상하며 자신이 후계자의 후계자로 지목한 마르쿠스에게 그동안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전하는 회고록이다. 삶과 죽음과 사랑에 대한 단상에서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사의 본질과 이상향, 황제가 지켜야 할 덕목, 권력과 제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비밀, 그리고 자신이 사랑한 소년들에 대한 내밀한 고백에 이르기까지. 하드리아누스는 때로는 한 인간으로서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고백을 전하는 동시에, 때로는 한 제국의 황제로서 파우스트적인 통찰력을 보이며 예언자와 같은 모습까지 보인다. 삶의 진실에 대한 그의 웅숭깊은 성찰은 아름답고 단단한 문장 속에서 빛을 발한다.

우리들의 모든 유희 가운데 그것은(사랑은) 영혼을 전복해 버릴 위험이 있는 유일한 것이며, 또한 그 유희를 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육체의 광기에 자신을 방기하게 되는 유일한 것이다. (중략) 인간이 이보다 더 단순하고 더 불가피한 이유들로 결정을 내리고, 선택된 대상이 이보다 더 정확히 그것이 가지는 가감 없는 환락의 무게로써 계량되며,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벌거벗은 인간을 판단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보다 더 많이 가지는 그런 선택을 나는 알지 못한다. 거부와 책임과 기여로 이루어지는 복합체, 가련한 고백, 취약한 거짓말, 나의 쾌락과 타자의 쾌락 간의 열정적인 타협, 끊어 버리기는 불가능하면서도 너무나 빨리 풀어지는 그토록 많은 관계의 끈들, 이런 것들이, 죽음의 경우에 필적하는 헐벗은 상태에서, 패배와 기도의 경우를 능가하는 겸허에서 출발하여, 매번 다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경탄한다. 육체의 사랑에서 인격체의 사랑으로 건너가는 그 신비로운 작용은 나에게 무척 아름답게 보였으므로, 나는 거기에 나의 삶의 일부분을 바쳤던 것이다.(1권, 26~27쪽)

세계의 장래는 더 이상 나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중략) 모든 것을 신들에게 맡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인간들의 정의가 아닌 신들의 정의에 신뢰를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거나, 혹은 인간의 지혜로움에 더 많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그 반대이다. 삶이란 잔혹한 것이다. (중략) 재난과 파멸은 계속 찾아올 것이며, 무질서가 승리하겠지만, 때때로 질서가 승리하기도 할 것이다. 두 전쟁 시기 사이에 평화가 다시 자리 잡기도 할 것이고, 자유, 인간성, 정의 등의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우리들이 그 말들에 부여하려고 했던 의미를 되찾게도 될 것이다. (중략) 이와 같은 단속적인 불멸성에 나는 감히 기대를 거는 것이다. (2권, 232~233쪽)

유르스나르는 “옳고 그르든 간에, 그 당대의 사람들은 죽음을 가까이 둔 황제가 초인적인 덕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며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현인의 통찰력을 부여한 이유를 밝힌다. “자신이 이 세계의 아름다움에 책임을 지고 있는 듯이 느꼈다.”라고 말하는 황제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현자의 모습을 잃지 않으며 “두 눈을 뜬 채 죽음 속으로 들어가려 노력”한다. 실제 하드리아누스 자신의 시로 마지막 회고를 마치며, 그는 위대한 황제의 모습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조그만 나의 영혼, 방황하는 어여쁜 영혼이여, 육체를 맞아들인 주인이며 반려인 그대여, 그대 이제 그곳으로 떠나는구나, 창백하고 거칠고 황폐한 그곳으로, 늘 하던 농담, 장난은 이젠 못하리니.”

치밀한 고증 속에서 “공감적 마술”로 이루어 낸, 황제의 초상
고대 로마 제국 황제 하드리아누스의 존재하지 않는 ‘진짜 회고록’

유르스나르는 스무 살에 하드리아누스에 대한 소설을 처음 구상한다. 하지만 소설을 완성한 것은 마흔여덟 살의 일이었다. 「창작 노트」에 기록되어 있는 그녀의 작업 원칙 중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관계되는 일체의 것을 연구하고 읽고 조사할 것.” 유르스나르는 근 30년간 수많은 역사박물관과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1~3세기 로마에 대한 온갖 문헌을 독파하고 비문과 비명의 기록을 모으고, 기념 건축물과 주화에 새겨진 그림과 초상을 연구하는 등 그 당시 사학계의 중요한 연구 성과를 모두 참조했다. 소설과 함께 남긴 「창작 노트」와 「자료 개괄」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광범위하고도 치밀하게 자료 조사를 하고 얼마나 치열한 고민 속에서 작품을 완성했는지 알 수 있다. 「자료 개괄」을 통해서 작품 구상의 근거도 정확히 밝히고 있다.
유르스나르에게 역사소설이란 “되찾은 시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 하나의 내적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2세기 로마의 시간을 복원하기 위해 그녀가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사실(史實)을 검증하는 작업을 거쳤다. 황제의 가치관 같은 내면의 문제에서조차 객관적인 근거가 필요했던 그녀는 여러 기록을 통해 황제의 서재를 재구성하여 그의 생각을 추적하기까지 했다. 유르스나르는 19세기 고고학자처럼 작업했다. 하지만 또한 그들이 외적인 사실에 주목하는 것으로 그칠 때 그녀는 내적인 역사, 즉 황제의 내면까지 재현해야 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상상 속에서 자신을 어떤 다른 사람의 내부에 옮겨 놓는 방법”이라고 스스로 정의한 “공감적 마술”을 방법론으로 삼았다. 그녀는 그렇게 탄생한 황제의 목소리가 역사 이상의 진실함 속에서 스스로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 그리고 어떤 중개도 없이 생생하게 황제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일인칭 서술 방식을 택했다.
유르스나르는 “한 발은 고증적인 자료 조사에, 다른 발은 공감적 마술”에 담근 채 치열한 집필을 계속했고 몇 번의 좌절 속에서도 끝내 20세기의 역작을 완성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는 2세기 로마의 모습이 완벽하게 재현되어 있으며, 역사 속 황제는 완전한 한 인간의 목소리로 소설 속에 살아 있다.
10여 년의 확고한 번역 의지 속에서 탄생한 작품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 베를렌의 『예지』, 프란시스 잠의 『새벽의 삼종에서 저녁의 삼종까지』를 번역한 바 있는, 전(前) 서울대 교수 곽광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10여 년의 시간을 바쳤다. 문체에 관한 자신의 지론을 고수하여 우리말에서 다소 어색하더라도 원문의 단어 하나 버리지 않는 충실한 축어역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그의 고집이 10년의 세월을 흐르게 했다. 지병이 악화되는 고통도 있었지만, 만족할 때까지 작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한 2세기 로마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배경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로베르 고유명사 소사전』, 『라루스 대백과사전』, 피에르 그리말의 『신화사전』 등을 참고로 하여 400개가 넘는 각주도 달았다. 고대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어휘 선택도 고심하여 결정했다. 10여 년의 세월, 역자 곽광수의 이러한 치밀한 작업 덕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보다 원전에 충실하고 온전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보이게 되었다.

작가 소개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1903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프랑스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어머니를 잃었고, 정규 교육 대신 개인 교습을 받았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는 아버지가 직접 가르쳤으며 아버지와 함께 고전 작가들과 19세기 유럽 문학을 읽고 여행을 다녔다. 영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독학으로 독일어를 공부했다. 열여섯 살에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에 대한 장시를 썼으며, 아버지가 이를 자비로 출간해 주었다. 이때부터 본명 ‘크레얭쿠르(Crayencour)’의 철자를 뒤바꾸어 만든 ‘유르스나르’를 필명으로 사용했다.

1929년 『알렉시, 또는 부질없는 투쟁에 대하여』를 잡지에 게재한 후 소설을 쓰며 유럽 여러 곳을 여행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마운트데저트 섬에 정착했다. 1951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출간하여 페미나 바카레스코 상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았으며 이때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에세이집 『확인 조건부』(1962)로 콩바 상과, 『암흑 작업』(1968)으로 페미나 상을 받았고, 그 후에도 모나코 문학상, 프랑스 국가 문화 대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받았다. 번역에도 관심이 많아 헨리 제임스와 버지니아 울프, 그리스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의 작품들을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했다.

하버드 대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네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와,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외국인 자격으로 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된 데 이어, 마침내 198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최초의 여성 회원이 되었다. 1987년 마운트데저트 섬에서 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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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서서히 다가오는 제국의 멸망과,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처절함이 느껴지는 회상록

밑줄 친 문장

로마는 인간들의 최후의 도시가 사라질 때에라야 멸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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