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마음으로

임선우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22년 3월 25일 | ISBN 978-89-374-4269-8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15x205 · 284쪽 | 가격 13,000원

책소개

어느 날, 나와 꼭 닮았지만

나보다 정확한 마음을 가진

유령이 나타난다면

편집자 리뷰

신인 소설가 임선우의 첫 소설집 『유령의 마음으로』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미 임선우라는 이름과 마주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2019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임선우는 고요하고도 능청스러운 환상을 부려 놓은 소설들을 착실히 발표해 왔으며, 풍경이 다른 섬들처럼 다양한 매력을 지닌 여덟 편의 작품들이 마침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현실은 막막하고, 관계는 지난하고, 일상은 그 모든 막막하고 지난한 것들이 반복되는 무대다. 평범한 일상에 “아무런 예고 없이”(평론가 황예인) 펼쳐지는 임선우식 환상은 “‘나’와 타인의 관계의 문을 열어 주는 매개”임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위한 역할로서 작용”(소유정)한다. 이러한 평가는 곧, 타인과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소멸해 가고 있는 현실에 임선우의 소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에 대한 답이 되어 준다. 유령, 변종 해파리, 나무가 된 사람 등 환상적 존재들은 일상적인 사건처럼 삶에 스며 인물들을 긴긴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다. 왜 내 삶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쉬이 끝나지 않는 고민들은 점점 인물의 삶 전반에 대한 고민으로 넓어지고, 독자들의 곁에도 어느새 책 속 유령이 건넨 따스한 생각들이 깊숙이 스며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사는 곳은 이미 이상하니까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임선우의 인물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유령이 빵집 카운터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에도 ‘나’는 잠시 놀랄 뿐, 그날부터 유령과 모든 것을 함께한다.(「유령의 마음으로」) 변온동물로 변해 버린 자신이 겨울잠을 잘 수 있게 야산에 묻어 달라는 낯선 남자의 요청에도 ‘나’는 잠깐 고민에 빠질 뿐, 삽을 들고 남자와 함께 산을 오른다.(「동면하는 남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곧장 수용하곤 하는 ‘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거꾸로 이미 이상해질 대로 이상해진 세계를 떠올리게 된다. 인물들이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지 생각하다가도 우리가 현실 속에서 겪어 낸 보다 극악하고 충격적인 일들을 기억해 낸다. 이런 세계에서라면 작은 환상쯤, 믿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물들의 기꺼운 마음에도, 놀라운 적응력에도 이내 끄덕거리게 된다.

 

  • 누군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이의 신중한 얼굴

『유령의 마음으로』의 인물들은 골똘한 얼굴을 하고 있다. 다만, 소설이 시작될 때에는 자신의 막막한 현실에 매몰되어 고민이 가득한 얼굴이었다면, 소설이 끝날 때쯤에는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느라 골똘해진 얼굴이 된다. 고된 삶에 치여 무거웠던 표정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위하는 데 열중하는 얼굴로 변해 가는 것. 인물들의 내면에 이렇듯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미묘한 순간을, 임선우의 소설은 세밀하게 포착한다.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의 ‘나’는 돌풍에 떨어진 중국집 간판에 맞아 즉사한 뒤 이승에서 부여받은 마지막 100시간 동안 ‘나’의 염원 대신 처음 만난 유령의 꿈을 이뤄 주고자 분투한다. 아이돌이 꿈이었던 그 유령의 노래를 도시 구석구석 울려 퍼지게 하는 데 성공하자 ‘나’는 영영 모를 것 같던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비로소 짐작해 보게 된다. 「빛이 나지 않아요」의 ‘나’는 꿈을 포기하고 얻은 직장에서 만난, 해파리로 변해 가는 고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긴다. “지선 씨가 보았을 빛, 단 한 번의 빛만을 생각할 것이다.”라는 마지막 문장의 다짐처럼, 그 생각은 ‘나’의 삶이 잃어버린 빛까지 밝혀 준다.

 

  • 나의 삶을 튼튼히 가꾸려는 이의 단단한 얼굴

임선우의 인물들은 다른 이들에게 조심스레 곁을 내어주면서도 자신의 삶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상대가 겪었을 슬픔의 크기를 짐작하고, 자신도 그만큼의 슬픔을 내보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들은 서로에게 온전히 의지하기보다는 각자의 삶을 튼튼하게 가꾸기로 한다. “그들은 제힘으로 각자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으며, 그 제힘 덕분에 상대를 적절한 거리에 둔 채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는 평론가 황예인의 해설처럼 인물들은 변함없이 자기 삶의 자리를 지킨다. 「여름은 물빛처럼」의 두 인물, ‘나’와 ‘산’이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사라진 아픔을 안고도 서로 덤덤히 그날의 일과를 나누는 것처럼. 「낯선 밤에 우리는」의 두 친구가 자주 만나 함께 밥을 먹으면서도 말하기 어려운 서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것처럼. 임선우가 내보이는 적당한 온기의 관계는 현실의 어려움, 잔뜩 엉킨 관계 속에서 휘청거리는 이들에게 정답 같은 장면이 되어 준다. 그가 제시한 관계 안에서라면 우리는 쓰러지지 않고, 오랫동안 잘 서 있을 수 있다.

 

 


 

■ 작품 소개

 

유령의 마음으로

▶ 어느 날, 일하던 빵집에 나와 똑같이 생긴 유령이 나타났다. 유령의 능력이라면 그저 나의 마음과 완벽히 똑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 유령과 모든 일과를 함께해 가며 나는 유령의 마음과, 그와 똑같이 생긴 나의 마음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빛이 나지 않아요

▶ 닿기만 해도 해파리로 변하게 만드는 변종 해파리가 나타났다. 변종 해파리는 바닷속에서도 환한 빛을 뿜는다. 그 빛은 사람을 홀려 해파리로 변하고 싶도록 만든다는 소문이 돈다. 자진해서 해파리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자리를 갖게 된 나는 한 고객의 곁을 지키며 오래 이야기를 나눈다.

 

여름은 물빛처럼

▶ 어느 날 방 문을 열자 나무로 변해 가는 낯선 이가 내 방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산. 나는 산의 부탁대로 일주일 동안만 그가 내 방에 머무는 것을 허락한다. 산이 불편하기만 하던 나는 이내 산의 뿌리에 물을 주고 그와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낯선 밤에 우리는

▶ 나는 난임 클리닉에 다니며 자주 지나던 신촌역 앞에서 중학교 때 친구 ‘금옥’을 만난다. 등에 커다란 십자가를 메고 전도 중인 금옥. 오래전 어색하게 멀어졌던 금옥은 나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 음식을 해 준다. 그 이후 둘은 매주 따로 약속을 하지 않고도 신촌역 앞에서 만나 금옥의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서로에 대해 천천히 다시 알아간다.

 

집에 가서 자야지

▶ 나는 ‘조’에게서 반려 도마뱀 ‘김재현’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김재현을 찾기 위해 건물 배관을 모두 뒤지던 조는 윗집에서 도마뱀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청소를 해 주는 대신 도마뱀을 찾아봐도 괜찮겠느냐고 부탁한다. 몇 차례의 방문에도 김재현은 보이지 않고, 나와 조, 그리고 윗집 주인은 점점 친밀한 관계가 된다.

 

동면하는 남자

▶ 극단이 망하고,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어느 날 수상한 남자의 의뢰를 받는다. 자신이 변온동물이 되어 동면에 들어가야 하니, 땅에 묻히는 것을 도와주면 1천만 원을 주겠다는 의뢰였다. 나는 그의 부탁 앞에 고민에 빠진다.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 문득 발바닥이 따가워 바닥을 살펴보니 요구르트 빨대가 바닥을 뚫고 나와 있다. 빨대를 뽑아 버리고 며칠 뒤 아랫집 여자가 찾아와 혹시 빨대를 못 보았느냐고 묻는다. 자꾸만 천장에서 흰 가루가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꽂아 둔 빨대라는 것. 나는 식탁에 마주 앉아 여자의 이야기를 듣는다.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

▶ 늦은 밤 편의점에 가다 돌풍에 떨어진 중국집 간판을 맞고 즉사한 나는 저승사자로부터 100시간의 유예 시간을 부여받고 이승을 떠돌게 된다. 마지막으로 들를 장소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아 동네 카페에 자리를 잡은 나는 옆 테이블에서 오늘 저녁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엿듣고 그리로 향한다.

 

 


 

■ 본문에서

나는 유령의 우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도달하지 못한 감정들이 전부 그 안에 머무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유령의 두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손에 닿지는 않았지만 분명 따뜻했고, 너무나 따뜻해서, 나는 울 수 있었다. 대체 어떤 유령이 눈물까지 흘리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유령이 아니니까. 유령은 우는 와중에도 그렇게 말했다.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여기까지인 것 같아. 안긴 채로 내가 말했을 때 유령은 그래, 라고 대답해 주었다.

-「유령의 마음으로」에서

 

그 뒤로도 라디오에서는 짧은 사연들이 지나갔다. 슬프지도 재밌지도 않은 사연들을 산과 나는 계속해서 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푸르른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는데 산을 쳐다봤을 때 산은 울고 있지 않았다. 산은 이제 울지 않고도 푸르른 냄새가 나는구나.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수로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흐르는 물을 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 기분. 산과 나는 이제 슬픈 마음 없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었다.

-「여름은 물빛처럼」에서

 

내가 처음으로 파견된 집은 삼대가 사는 아파트였다. ‘이경순, 82세, 병환으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 바다로 가고 싶음.’ 고객 정보란에는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이경순 씨 딸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가 보니 전날 기사가 와서 설치하고 간 욕조 높이의 낮은 수조와 이경순 씨가 있었다. 내가 인사를 건네자 이경순 씨는 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도우미라고 대답하자 그는 또다시 내게 누구냐고 물었다. 할머니께서 해파리가 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거예요, 설명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내가 누구인지 물었다.

-「빛이 나지 않아요」에서

 

 


 

■ 추천의 글

어쩌면 임선우의 소설은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인물들이 환상적인 상황과 만나게 되는 이야기라고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설명도 맞겠지만 나는 거기에 섬세하게 쌓아 온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못이 하나 빠지면서 혹은 물방울이 하나 떨어지면서 생기는 틈이 매력적인 소설이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이 꼭 그랬으니까.

─박솔뫼(소설가)

 

어떻게 죽어 버린 마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무엇도 바라지 않는 그런 상태로부터. 이 세계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에게는 그저 마음을 살리려는 데 전념하는 이야기가 필요하고, 이 작가는 어김없이 그런 이야기로 우리의 마음을 살려 낼 것이다.

─황예인(문학평론가)

목차

유령의 마음으로 7

빛이 나지 않아요 33

여름은 물빛처럼 73

낯선 밤에 우리는 107

집에 가서 자야지 139

동면하는 남자 177

알래스카는 아니지만 205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 팡 235

 

작가의 말 261

작품 해설

마음을 살려 내는 이야기_황예인(문학평론가) 264

추천의 글_박솔뫼(소설가) 279

작가 소개
독자 리뷰(9)

독자 평점

4.8

북클럽회원 6명의 평가

한줄평

책을 읽으며, 내가 이 책을 언제까지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 가늠할 수 없어 자꾸만 멈춰 섰다. 멈춰선 순간마다 내 마음에서 발생한 어떠한 변화 혹은 작용을 포착하는 것이 앞으로 이 책과 살아갈 내게 부여된 과제다. 벌써 올해의 책이 생겼다.

밑줄 친 문장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 나는 악마도 아니고 유령도 아니야. 나는 그냥 너야. 그것이 다시 말했다. 그게 더 싫어.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것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했다. 나도 너랑 똑같이 싫은 감정을 느껴. (p.11)

· 너 얘를 엄청 아끼는구나. 얘가 들어온 순간부터 마음이 좋고 편안하네. (p.14)

· 기특하고 예쁘다. 유령은 물고기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약간은 괴로울 정도로 쑥쓰러웠는데, 그것이 곧 내 감상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16)

· 그렇게 차린 아침을 혼자서 먹었는데, 평소의 두 배를 먹었다. 혹시 내가 네 몫까지 먹게 되는 건가? 내가 물었다. 아니야, 그냥 네가 많이 먹은 거야. 유령이 대답했다. (p.20)

· 잠시 뒤에 유령이 나를 끌어안았는데, 그것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 보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이해였다. (p.28)

· 그것은 꿈처럼 아름답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물고기처럼 유연하고 흐르는 물처럼 반짝이는 유령의 마음이었다. (p.32)

· 어느 순간에는 푸르른 냄새가 방 안을 가득 채웠는데 산을 쳐다봤을 때 산은 울고 있지 않았다. 산은 이제 울지 않고도 푸르른 냄새가 나는구나. 그 냄새를 맡고 있으니 수로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흐르는 물을 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것 같은 기분. 산과 나는 이제 슬픈 마음 없이도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었다. (p.101)

· 왜 하필이면 동면을 하신다는 거예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하룻밤보다 많은 밤들이 필요합니다. 남자는 의외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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