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 문학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존 치버의 전설적 장편소설 왑샷 Wapshot 가문 연작 국내 최초 출간! 전미 도서상, 하우얼스 메달 수상작

왑샷 가문 몰락기

원제 The Wapshot Scandal

존 치버 | 옮김 김승욱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12월 5일 | ISBN 978-89-374-6193-4

패키지 반양장 · 신국변형 132x225 · 424쪽 | 가격 14,000원

책소개

퓰리처 상, 전미 도서상, 미국 도서상, 도서비평가협회상, 미국 예술원 국민 훈장. 미국 작가로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다시피 한 천재 이야기꾼 존 치버의 장편 연작 『왑샷 가문 연대기』와 『왑샷 가문 몰락기』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92,193)으로 출간됐다. 작가의 재능이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한국 문학계에는 의아할 정도로 소개가 부진했던 존 치버의 대표작이다.
예리한 시대의식으로 중산층의 일상을 자신의 문학적 보고로 삼았던 존 치버는 여러 단편들을 발표하며 ‘교외의 체호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추구해 온 ‘일상성의 미학’을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그는 왑샷 가문 연작에서도 변두리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애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왑샷 가문 사람들은 세인트보톨프스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특별한 매력을 타고난 운수 좋은 사람들도 아니고, 기막히게 명줄이 긴 영웅들도 아니다. 치버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인간성 상실이라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어느 특별한 사람들의 삶을 두리번거리지 않는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을 재미있게 변형할 뿐이다. ‘촌사람’라는 말이 미국식으로도 어색하지 않다면 왑샷 가문 사람들은 그야말로 촌사람, 변두리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일상에서 거대한 현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읽어 내도록 하는 존 치버의 통찰력은 놀랍다.

편집자 리뷰

시대 전환의 거대한 압력, 왑샷 가문에 드리운 몰락의 그림자
 『왑샷 가문 몰락기』에 이르러 왑샷 일가에 닥친 세상사는 혼란스럽고 우울해져 간다. 정신병, 간통, 자살 등 슬픈 사건들의 연속이다. 리앤더는 『왑샷 가문 연대기』에서 이미 낭만적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오노라는 지금까지 자신의 권력이 되어 주었던 재산에 대해 한 번도 세금을 내지 않은 죄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다 굶어 죽고 만다. 그야말로 명예도 재력도 바닥이 난 몰락 가문의 종말이다. 도시로 나간 모지스와 코벌리의 삶은 어떠한가. ‘지상의 지옥’이라고 불리는 군사 도시 탤리퍼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의 여러 도시를 떠돌며 두 형제는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산다. 그러면서 모지스는 아내가 식료품 가게 배달원 청년과 혼외정사를 벌이는 것을 목격해야 했고, 코벌리는 국가 반역 사건에 연루되기도 한다.

자살, 동성애, 가정 파탄, 성격 장애
현대인의 ‘분열하는 정신’과 풍자로 에두르는 자기 위안
치버가 단편소설 작가로서 명성을 떨치다 장편소설로 눈길을 돌린 이유는 2차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을 겪으며 시대의 요청을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 오늘날 강력한 삶의 부조리성 때문에 나는 전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전환기를 몸으로 부딪쳤던 작가는 시대의 불안과 혼란을 작품으로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시대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기 위해 ‘세인트보톨프스’라는 근대성의 마을을 설정하고, 그곳을 인간의 낭만과 여유가 살아 있는 낙원처럼 묘사한다. 반면 산업화와 도시화로 거대해진 도시는 인간에게 ‘감내해야 할’, ‘이겨내야 할’ 실낙원일 뿐이다. 인간 본연의 도덕성이 타락하고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 전쟁 후 인류에게 열린 현대 사회란 그러한 곳이었다.
모지스와 코벌리는 도시에 정착하여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지위를 얻게 되지만 도시생활에서 두 사람은 ‘회색 도시인’일 뿐 그들에게서 인간적인 개성이나 자아를 찾아보기 힘들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한 삶은 가증한 속임수일 뿐이었고, 그 속의 인간은 나약해지고 정신병을 앓고 도덕적 양심을 잃어간다. 치버는 향수에 젖은 세인트보톨프스의 연대기와 도시 세대의 인간성 몰락기를 완성하면서, 영혼을 잃어버린 유령 같은 사람들에게 인간 정신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한다.
여기서 부조리한 세상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치버의 화려한 풍자가 시작된다. 왑샷 가문의 오노라, 리앤더, 새러는 새 시대에 적응할 나름의 행동 방식을 선택하는데, 그 모습이 하나같이 기형적이고 우습다. 그 모습 속에 지난 세대에 대한 연민이 있다. 도시에서는 정신병에 걸린 과학자가 핵 연구를 하며 지구를 쥐락펴락할 음모를 꾸민다. 냉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당시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좀 과하다 싶은 유머다. 귀신 소동은 또 어떠한가. 코벌리의 심약해진 정신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는지 리앤더의 죽음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었는지, 코벌리는 아버지 리앤더의 혼령을 보기 시작한다.
이러한 풍자는 치버가 암울한 현실에 대한 면역력이 강한 작가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가정 파탄으로 불우한 유년을 보냈고 말년에 알코올 중독으로 작가 생활에 위협을 느끼기까지 했던 그의 삶은 ‘우울하다’고 할만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삶의 진실을 배웠다. 이렇게 삶 속에서 체득한 가치관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며, 강인한 작가 치버는 사태의 우울함을 한바탕 웃음으로 유예한다.
격동기의 인간성 상실과 도덕적 타락은 분명 비극이었으나, 작가는 끝까지 유일한 희망이 ‘인간’에게 있음을 이야기한다. 욕심과 무절제가 부른 전쟁과 대공황 등의 제도적 실패 후, 자본주의에 함락당한 인간 정신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격동기의 혼란이 왑샷 가문 사람들의 심장을 할퀴고 지나간 후, 세인트보톨프스에서는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린다. 가진 것 없이 삶에 지친 사람들이 모였다. 하지만 이들이 자아내는 풍경은 더할 수 없이 인간적이고 따스하다. 온갖 부정과 슬픈 사건들은 어느새 지난 한 순간으로 남고, 치버가 진하고 엄중하게 마침표를 찍은 지점은 ‘희망’이자 ‘인간적인 것의 승리’였다.
“나는 말할 수 없이 슬픈 기분으로 3시에 눈을 떴다. 슬픔, 광기, 우울함, 절망을 연구하기 싫다는 반항적인 기분도 들었다. 나는 승리를 연구하고 싶었다.”
치버가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자 했던 정신은 확고했다. 경제 대공황과 유사 사태로 비유되는 요즘, 존 치버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혜를 줄 것이다.

속도감 있는 에피소드 식 장면 전환, 유머로 소통하는 자유분방한 문장
장편소설의 가식 없는 진보를 만난다
 “나는 플롯을 가지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나는 직관, 이해력, 몽상, 개념으로 작품을 쓴다.”
치버는 소설의 플롯이 현대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묻어 버릴 뿐이라고 생각하여 장편소설에서 플롯을 사용하지 않았다. 500쪽에 달하는 작품을 플롯 없이 소화해 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테지만 치버는 에피소드 식 장면 전환과 자유분방한 문장으로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치버만의 이야기 짜임은 이런 식이다. 주인공 리앤더 왑샷의 일기가 이야기 한가운데에 생뚱맞게 한 장을 차지하기도 하고, 로절리 영이라는 인물이 주인공인 듯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어느 순간 치버의 처분에 따라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이야기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괴짜 이야기꾼의 만담처럼 이야기는 불쑥 흘러왔다 불쑥 흘러간다. 그만큼 이야기 속에서는 다양한 갈등 요소가 짧은 호흡으로 연결되는데,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결단이 드러난 부분이다. 치버는 기발한 사건을 개발하고 구상하는 데 골몰하며 『왑샷 가문 연대기』를 완성하는 데 20년이라는 시간을 쏟았다. 즉흥적이고 속도감 있지만 결코 즉흥적으로 탄생하지 않은 이 소설은 독자에게 ‘의미심장한 사건들’을 아낌없이 퍼 준다. 돈, 자살, 동성애, 사랑에 관한 진지한 화두들. 작가는 금방이라도 내게 닥쳐올 듯 살아 꿈틀거리는 사건들로 문제를 직시해 보자는 의도다.
또한 치버는 에피소드들을 동화적인 신화로 만들어 내고자 했다. 「창세기」, 「요한복음」을 패러디한 가문의 족보 해설부터,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신화의 마을 세인트보톨프스를 창조한 점, 그리스신화에 등장할 법한 호방한 신과 여신의 이미지를 등장인물에 투영한 점 등이 그러하다. 그의 동화 같은 묘사는 리앤더의 죽음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혈기왕성하던 리앤더는 돌연 모잽이헤엄을 쳐서 깊은 바다를 향해 갔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남긴 ‘아들들에게 주는 충고’는 새 시대, 새 인류에게 바치는 유물과도 같았다.
이러한 소설 구조에 어울리는 유머러스한 문장도 작품에 개성을 더한다. 연대기라는 정적인 기록을 화려한 모험담의 세계로 확장해 주는 것은 치버의 명문장들이다. 그의 문장에는 사물을 꿰뚫어 보는 예리함이 있다. 곱씹어 읽을수록 그 의미는 깊고 새로워져, 작가가 상상한 세계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바다의 모든 것은 비너스의 것이다. 진주와 조개껍질과 연금술사의 황금과 켈프와 조금 때의 바다 냄새, 해안 근처의 초록색 바닷물, 저 멀리의 자주색 바다, 먼 곳의 기쁨과 무너지는 석조 건물의 포효, 이 모든 것이 비너스의 것이지만 비너스가 바다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가 아니다.”
“공포는 녹슨 칼날 같은 맛이 난다. 그것을 절대 집 안에 들여놓지 마라. 용기에서는 피 맛이 난다. 꼿꼿하게 서라. 세상에 감탄해라. 부드러운 여자의 사랑을 즐겨라. 주님을 믿어라.”
치버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이야기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작품을 읽어 보면 동감할 것이다.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잘 다듬어진 한 문장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는 완벽주의자인지도 느껴질 것이다. 작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살아 있는 문장을 만나 보기 바란다.

목차

1부   11
2부   213
3부   343

작품 해설 | 김욱동   405
작가 연보   420

작가 소개

존 치버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퀸시에서 ‘아무도 원치 않았던 아이’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가정의 붕괴로 인해 어둡고 외로운 유년을 보냈다. 고등학교 재학 중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첫 소설 「퇴학」(Expelled, 1930)을 《뉴 리퍼블릭》에 발표했다. 고등학교 중퇴 후 독서와 창작 연습에 매달리며 스스로 작가 수업을 했고, 문학은 그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교사로 일하며 단편소설뿐 아니라 드라마 대본, 영화 시놉시스, 잡지 기사 등 다양한 글을 썼다.

 1943년 첫 단편집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발표한 후, 『거대한 라디오』(1953), 『셰이디힐의 가택 침입자』(1958), 『여단장과 골프 과부』(1964), 『사과의 세계』(1973), 『존 치버 단편집』(1978) 등 단편집 7권을 냈고, 『존 치버 단편집』으로는 퓰리처 상을 받았다. 첫 장편 『왑샷 가문 연대기』(1957)를 발표하며 1958년에 전미 도서상의 영예를 안았고, 속편 『왑샷 가문 몰락기』(1964) 역시 문학성을 인정받아 미국 국립 예술원으로부터 하우얼스 메달을 받았다.

 ‘교외의 체호프’, ‘교외의 음유 시인’이라고 불리며 현대 미국 문학의 최고 문장가로 손꼽히던 그는 중심부의 드러난 화려함보다는 외곽의 평범함 속에서 뿜어 나오는 숨은 주제들을 발굴했으며, 미국 중산층의 일상을 고귀한 문학적 보고로 삼은 작가였다. 1982년 미국 예술원으로부터 문학 부문 국민 훈장을 받았고, 그해 뉴욕 주 오시닝에서 일흔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승욱 옮김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리스본 쟁탈전』,『동굴』, 『톨킨』, 『살인자들의 섬』, 『아스피린의 역사』, 『소크라테스의 재판』, 『망할 놈의 나라 압수르디스탄』, 『신은 위대하지 않다』, 『행복의 지도』, 『깊은 밤을 날아서』, 『분노의 포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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