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 시공을 유려하게 변주하는 독특한 시 세계일상의 해체를 통해 이름 없는 작은 이들을 해방하다
글 황성희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8년 11월 11일
ISBN: 978-89-374-0767-3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24x210 · 156쪽
가격: 7,000원
시리즈: 민음의 시 150
분야 민음의 시 150
황성희는 시 속에서 끈질기게 ‘존재와 시간’을 탐구한다.그녀는 마치 동양적, 여성적 시간 의식의구체적, 일상적, 시적 구현을 목표로 삼는 듯하다.- 시인,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김혜순
이상한 나라의 문법으로, 이 나라의 사생활(私生活)과 사생활(史生活)을 적었다.살아 숨 쉬는 개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인, 문학평론가 권혁웅
시공을 유려하게 변주하는 독특한 시 세계일상의 해체를 통해 이름 없는 작은 이들을 해방하다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21세기전망’ 동인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황성희의 첫 시집이 민음사에서 나왔다. 등단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시인 김기택과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황성희에게서 “제도화된 시 쓰기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감각”을 발견하고, “일상을 비트는 위트와 아이러니, 도발적이고 활달한 화법”에 큰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송승환은 황성희의 언어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 공명이 있어” 풍부한 의미 구조를 생산한다고 주목했고, 문학평론가 문혜원은 『2008, 젊은 시』에 황성희를 선정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다면적 자아에 감탄했다. 계간 《실천문학》이 뽑은 「첫 시집이 기대되는 시인들」 특집 역시 황성희를 잊지 않았다. 이처럼 “뜨거운 냉소”의 시인(문학평론가 이수정) 황성희는 우리 시단 최고의 기대주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황성희는 첫 시집에서 특유의 날카롭고 리듬감 있는 언어로, 역사와 불연속하는 현재를 꼬집는다. 민중사적 소재에 천착하는 동시에 이 시대는 이미 거인이 죽고 난 시대임을 끊임없이 각인시키고, 이름 없는 개인들에게 집중한다. 이토록 역사적인 동시에 개인적인 시 세계는 이제껏 없었다. 21세기적인 감각으로 해방을 도모하는 시집이다.
앨리스네 집 불면증 그냥 평범한 드라이브 후레자식의 꿈 탤런트 C의 얼굴 변천사 훙커우 공원의 고양이들 자해 공갈단편 -『그녀의 칙릿 도전기』 중에서 변명 시체 놀이 술래잡기의 비밀 난 스타를 원해 탤런트 C의 무명 탈출기 캐스팅 디렉터편 -『그녀의 칙릿 도전기』 중에서 네덜란드식 애국 소녀 검은 바지의 전설 전도사 金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 가장행렬 자막 없음 나와 영희와 옛날이야기의 작가 투명한 정원 귀남이가 안 나오는 귀남이 이야기 귀신 학교 신기한 목격담 거울과 자화상 그리고 거대한 뿌리 신격문(新檄文) 나는야 전성시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숨은그림찾기 누구 없어요? 밖에 관한 상상 정말로 투명한 점묘 개나리들의 장래 희망 꿀사과들에게 고함질문 사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돌림노래 원숭이의 간편 처세술 창밖의 비밀 보이지 않는 선수 달과 나와 선물 화성에 있다는 물의 흔적에 관한 소문 발밑에서 자꾸 뿌리가 자라는 인형 롯데리아 판타지 내가 사라지고 있는 달밤이 그림이 싫어 자연분만을 꿈꾸는 임산부의 태교 눈 거짓말 종의 기원 전설의 고향 고대가요remix웃음소리 이 세상에 없는 어린이 언제나 만우절 고마운 날마다 편히 잠드는 영희의 기술 거울에게 신나는 악몽 한 곡 분홍 신의 고백 꽃의 독백 살의의 나날 정전에 대항하는 모범적 자세 나무를 모르는 나무 가출 직전의 나비에게 작고한 金들의 세계 그렇고 그런 해프닝
작품 해설/ 권혁웅앨리스의 사생활
■ 이름 없이 버려진 것들의 이름을 부르는 시인 황성희는 ‘시힘’과 함께 한국 시 동인의 양대 산맥인 ‘21세기전망’이 활동을 재시작하며 새로이 영입한 젊은 시인이다. 황성희는 이 땅의 역사, 특히 민중사에 천착하며 보기 드문 시 세계를 확립해 왔다. 큰 기대 속에 선보이는 첫 시집에서도, 일상 속의 개인에서 시작하여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적 자아를 이야기한다. 황성희의 시는 언뜻 사회적이고 풍자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품해설에서 권혁웅의 지적대로 그러한 표현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거대 담론의 죽음을 확인할 뿐이며, 사적(史的)인 것과 사적(私的)인 것 사이의 단층은 더욱 벌어진다. 황성희는 어디까지나 개인에게 허락된 “칼날 같은 역사적 순간”, 즉 “변기 위에 앉아”서 힘을 주는 실존의 시간에 대해 쓴다.(「화성에 있다는 물의 흔적에 관한 소문」) 만약 이름 없는 개인들에게 주어진 짧은 순간이 환하게 타오른다면 세계가 잠시라도 그 이름을 불러 준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대개는 투명한 시간을 보낼 뿐이다. “아무 데도 숨어 있지 않은”데 누구도 우리의 투명한 몸을 발견하지 못한다.(「술래잡기의 비밀」) 심지어 “알몸으로 담장에 걸터앉아 거름으로 쓸 젖가슴의 껍질을 깎아”도 아무도 아는 척하지 않는다.(「투명한 정원」) 그리하여 우주적 순간은 무료한 일상이 된다. “닭의 수정란을 익혀 먹으며 익숙한 악몽을” 꿀 뿐이고(「정말로」) “텔레비전은 자신이 중계한 프로그램을 모두 기억할까.” 중얼거릴 뿐이다.(「질문 사절」) 지독하게 정체되어 있는 나머지 바닥에 닿는 몸의 어느 부분에서나 뿌리가 자란다. 몸을 돌려 누우면 뿌리들이 우두둑 뜯긴다.(「발밑에서 자꾸 뿌리가 자라는 인형」) 뿌리 내리지 않기 위해 차를 타고 달리다가, 끝나지 않는 드라이브에 지치면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몸을 섞는다. 그리고 피임 도구에서 나는 딸기향이 시간의 냄새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그냥 평범한 드라이브」)
모 목장에서 양B로 오인받아 도살당하는 양A. (……) 굶주린 늑대가 얼룩말 떼를 습격할 때 같은 무리 발에 걸려 넘어지는 얼룩말. 집었던 콜라를 놓고 우유를 살 때 그 콜라. 어느 밤 트럭에 치여 즉사한 고양이. 어느 아침가지 계속 치이고 있는 고양이. (……) 버스 맨 뒷자리 아무렇게나 펼쳐진 신문.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되는 대로 둘둘 말아 쥐고 바퀴벌레를 향해 내리치는 신문. 그 신문에 인쇄된 바퀴벌레의 터진 비명. -「개나리들의 장래 희망」에서
시인은 이 시집의 모든 페이지에서, 이름 없이 버려진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 주려는 사투를 벌인다. 작은 곤충에서 여성, 아이 등 한 번도 주역을 맡지 못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한 세계를 완전히 가지고 싶”은(「작고한 金들의 세계」) 열망에서 오는 몸짓이다. 황성희가 잊혀진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를 가두고 있던 일상의 순간들을 해체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신기한 모험을 떠났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에서도, 거울 나라에서도 돌아왔다. 우리는 그다음의 일을 알지 못한다. 그저 장삼이사의 삶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와 앨리스는 무엇을 했을까? 환상에서 현실로 귀환했을 때 삶은 모범적이지만 비루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만 심리적으로는 억압되어 있을 터, 황성희의 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황성희는 이상한 나라의 문법으로, 이 나라의 사생활(私生活)과 사생활(史生活)을 적었다. 이상한 나라의 문법이란, 거대 담론의 기술법이 아니라 미시 담론의 기술법이다. 이제 역사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개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권혁웅(시인 , 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황성희는 시 속에서 끈질기게 ‘존재와 시간’을 탐구한다. 그녀는 마치 동양적, 여성적 시간 의식의 구체적, 일상적, 시적 구현을 목표로 삼는 듯하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현재 시간’을 처리하는 방식의 놀라운 모습을 목도할 수 있다. 그녀는 “아무 데도 숨어 있지 않은 한 여자를 찾아내는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처럼 일차원적 현재를 다차원의 놀이로 변모시킨다. 그녀의 시엔 대부분의 다른 시인들의 시에서 암암리에 추구되는 순간과 영원의 변증법이 없다. 시간 너머를 추구하는 가상적 영원의 세계도 없다. 우리 존재들이 자율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허무맹랑한 상상도 없다. 끝없이 지속되는 현재의 소멸 속에서 포획된 지루한 서정의 슬픔도 없다. 다만 그녀의 시에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에다 물걸레질을 하는 여자”처럼 현재라는 피부를 스치는 미망의 존재로서, 스쳐 가는 시간이라는 존재 망각의 덫에 걸려 탈자(脫自)의 비명을 지르는 한 여자가 있을 뿐이다. 황성희의 시를 읽으면 시간이라는 절체절명의 지우개와 싸움에 빠진 한 여자가 처절한 격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여자(나)는 아무 데도 숨어 있지 않다.”로 시작하는 시를 쓴다. 반대로 “나는 계속 내 안에 없”다고도 소리친다. 현재를 직접 대면 처리하려는 투명한 여자를 내세워 “내 뱃속의 아이 속에는 내가 있을 수 없다고” 외치는 여자, 그녀의 시 속에는 이처럼 ‘현재 시간’과 싸우는 여자들이 즐비하다. 물론 이 싸움을 회피하는 건 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살아서 잠드는 일”과 “살아서 깨어나는 일”의 의미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 -김혜순(시인,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