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나뉜 미국 문학의 판도를 바꾼 문제작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이야기“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인간 2
원제 INVISIBLE MAN
출판사 민음사 | 발행일 2008년 11월 7일 | ISBN 978-89-374-6191-0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2x225 · 392쪽 | 가격 13,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191 | 분야 세계문학전집 191
주목받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흑인 문학을
가시적인 미국 문학의 반열에 올린 수작
1952년 출간된 이래 걸작으로 극찬을 받으며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 온 랠프 엘리슨의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90, 191)으로 출간되었다. 지속적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동시에 냉소적인 목소리를 잃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인간』은 흑백을 막론한, 소외 상황에 놓인 오늘날의 현대인들에게도 공통되는 고뇌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우리 시대 최고의 대담하고 빛나는 소설로 손꼽힌다. 이 작품으로 엘리슨은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하며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평가되었다.
인종차별의 핵심을 뚫고 지나는 엘리슨의 악몽 같은 여정은 그 편협함의 본질에 대한 전례 없는 통찰을 보여 주며 가해자와 희생자 모두의 마음속에 남는 지울 수 없는 상처에 대해 말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을 통해 작가 엘리슨은 그동안의 흑인 문학이 주제로 삼아 왔던 항의와 고발보다는, 미국 흑인 주인공의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이 어떻게 문학적 질서와 의미를 부여받아 예술로 전환되고 승화되는가를 보여 줌으로써 그동안 무시되어 온 흑인 문학을 가시적인 미국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이지 않는 인간』은 엘리슨이 뉴욕 할렘에서 생활하며 집필한 작품으로, 주인공인 흑인 소년이 미국 남부에서 북부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통해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1930년대 학비를 벌기 위해 뉴욕으로 건너간 엘리슨은 그곳에서 흑인 문학계의 거장 랭스턴 휴즈를 만나고, 당시 《뉴 챌린지》의 편집장이던 리처드 라이트를 소개받는다. 당시는 대공황으로 미국의 경제와 산업이 황폐해지고 이에 따라 할렘 르네상스(흑인 문화 운동)도 재정 지원의 고갈로 그 힘을 잃어버린 시기였다. 다행히도 그는 뉴욕 연방 작가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흑인 사회의 풍속을 수집하고 기록하며 계속해서 창작 활동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리처드 라이트를 비롯한 당시 작가들과 친분을 맺으며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라이트의 권고를 받아 1945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하여 7년 만에 완성한 엘리슨 생전의 유일한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은 그동안 무시되어 온 흑인 문학을 가시적인 미국 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1940년대까지의 많은 흑인 소설들은 흑인들이 받는 불평등한 대우에 대한 항의와 고발을 주제로 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친 부조리와 고난의 역사 속에서 탄생한 흑인 문학은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채 고발, 항의, 증언의 경향을 두드러지게 보여 왔다. 그러나 엘리슨은 “소설은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극적인 탐구”이며, 단순한 인종적 항변을 서술해서는 예술의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 책에서 그는 항의와 고발보다는, 미국 흑인 주인공의 고난으로 점철된 인생이 어떻게 문학적 질서와 의미를 부여받아 예술로 전환되고 승화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역사가들은 덧없이 지나쳐 가는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나 있을까? 동지회를 알기 전의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말이다. 말하자면 학문적으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애매하고 소리에 가장 민감한 전문가조차도 듣지 못할 만큼 조용한 철새 같은 존재. 그리고 너무나 모호해서 가장 모호한 말로도 묘사할 수 없을 정도이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중심부에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인은커녕 역사적인 서류에 사인을 한 사람에게 박수조차 보낼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존재들 말이다. 소설도, 역사도, 그리고 그 어떤 저술도 남기지 못하는 우리들. 우리는 어떻게 생각될까? (20장, 172쪽)
엘리슨은 자아에 대한 뚜렷한 인식을 지니고 있는 교육받은 흑인 주인공을 통해 사회적 곤경과 갈등을 극복하고 자유를 찾으려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피부색의 문제만을 다룬 편협한 소설이 아닌 예술적이고 사회적인 보편성을 갖는 우수한 작품을 창조했다. 그는 “인종주의를 배척하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선택하여 인간의 고독과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표현”하려 했으며 작가로서 흑인 사회의 대변자 역할을 거부했다.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의 주된 의미가 무엇인가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이 작품의 실험적 시도에 있다. 그리고 19세기 소설에 가장 잘 나타났던 민주주의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인 책임의식을 찾아 되돌아가려는 시도에 있다.” 1953년 내셔널 북 어워드 수상 소감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실험적 작업을 통해 기존의 흑인 문학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항의와 고발이라는 측면을 불식하고 보편적 진실을 드러내는 예술의 반열에 자신의 문학을 올려놓고자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끈질긴 천착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모든 인간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이야기
『보이지 않는 인간』의 주인공은 이름 없는 흑인 청년이다. 남북 전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으나 흑인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기에 미국 남부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우월주의에 빠진 백인 사회에서 모멸감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자기가 누구이며 어디에 존재하는지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타인들에 의해 자신의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받던 주인공은 백인들이 은혜를 베풀듯 보내 준 대학에서 사소한 실수로 퇴학을 당하고, 취업 추천을 해 주는 편지로 여겼던 총장의 추천서가 사실은 자신을 영원히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내용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현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인정해 주는 곳이라 여겼던 할렘가의 동지회에서도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임을 분명하게 인식한다.
나는 평생 동안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어딜 가나 누군가는 내게 그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려 했었다. 나는 보통 그들의 해답을 받아들였다. 비록 그 해답들이 서로 상반되고 심지어 자체적인 모순을 안고 있는 경우도 많았지만 말이다. 나는 순진했다. 나는 나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이며, 결국 나 자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남들에게 묻고 다녔다. 나는 나 자신일 뿐 그 누구도 아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을 법한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는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대는 아주 고통스러운 결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먼저 나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했다. (1장, 28쪽)
엘리슨은 이름 없는 주인공을 통해 미국 내 흑인의 상황을 보여 주고 미국의 민주주의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으며, 나아가 산업화되고 기계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소외되고 정체성을 찾아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하고 있다. 흑인들은 피부색으로 인해 개성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렸지만, 세계대전 후 산업화되고 기계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 역시 개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처럼 엘리슨이 추구한 예술적 목표는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사적인 진실에 기초하여 보다 보편적이고 공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슨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십여 년이나 살고 난 후에야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비로소 살아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한 주인공은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과 보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려 한다.
나는 낡은 피부를 털어 내고 있으며 그것을 여기 구멍 속에 남겨 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바깥으로 나간다. 그걸 버려도 여전히 보이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깥으로 나간다. 내 생각에 아주 좋은 시점 같다. 동면조차도 지나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회에 대한 가장 큰 범죄일 수 있다. 나는 동면 상태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다. 보이지 않는 인간에게도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역할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이처럼 엘리슨이 이 작품을 통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은, 21세기 새로운 미국의 대통령으로 검은 피부의 오바마가 당선됨으로써 가시적인 발전을 이룩했으며, 나아가 현대 사회의 모든 ‘보이지 않는 인간’들에게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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