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공녀 강주룡』 『더 셜리 클럽』의 작가
박서련 첫 소설집
기만적인 레벨 업 세계를 거부한
이들이 일으키는 반전과 전복의 서사,
다시 쓰는 게임의 법칙
“이걸 알아야 돼.
쥐는 세상에 얼마든지 있지만
모두가 미키마우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란다.”
기만적인 레벨 업 세계를 거부한
이들이 일으키는 반전과 전복의 서사,
다시 쓰는 게임의 법칙
박서련 소설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서련 작가는 이후 7년 동안 소설집과 장편소설, 짧은소설집, 다양한 주제의 앤솔러지와 에세이까지 장르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다방면의 소설과 글쓰기라는 실험과 모험을 감행해 왔다. 그러면서도 2018년 한겨레문학상, 2021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이루며 지금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로 공고히 자리 잡고 있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은 박서련 작가가 데뷔 후 발표한 작품들을 엮은 첫 소설집이다. 데뷔작 「미키마우스 클럽」부터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까지, 일곱 편의 작품으로 박서련 작가가 지나온 적지 않은 시간을 느슨하게 연결해 담고 있는 이번 소설집에는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등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도 겹치고 맞물리는 접점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여성의 자유와 삶이라는 근원적인 고민을 중심에 두고, 그로부터 교차하고 확장해 나가면서 차근차근 만들어 간 박서련 작가만의 다채로운 여성 서사를 만나 볼 수 있다.
작품들은 각각 모성 이데올로기, 여성혐오, 성적 대상화, 돌봄 노동, 가부장제 등 여성의 삶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는 문제들 그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박서련 작가는 이 문제에 대해 원인을 짚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는 데서 그치려 하지 않는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서 ‘당신’이 지칭하는 대상은 ‘엄마’지만, 제목에서의 ‘당신’은 작품 안의 ‘아들’이자 작품 밖의 ‘독자’를 동시에 지칭하는 것처럼, 박서련 작가는 핵심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문제를 보는 우리의 관점을 뒤튼다. 이러한 전환은 여성이 실제 경험하고 있는 모순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그 사안의 복잡성까지도 다각도로 조명한다.
시작도 끝도 없이 복잡하게 얽힌 부조리 속에서도 박서련의 여성 인물들은 지지 않는다. 계급과 성 평등을 외치며 지붕 위에 올랐던 ‘강주룡’, 성폭력 가해자에게 사적 복수를 집행한 ‘수아’, 낯선 이국에서 동명이인들과 연대해 사랑을 찾은 셜리 ‘설희’처럼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의 여성 인물들 또한 최선을 다해 분투한다. 엄청난 열기의 내적 에너지를 품고,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고, 진실을 당당히 마주하며 변화를 일으킨다.
이러한 여성 인물들의 모습은 박서련 작가의 작가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박서련 작가는 2015년 데뷔 소감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기억하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산다.”라는 말로 세월호 참사와 해고 노동자 굴뚝 농성을 기억했다. 최근 인터뷰에서는 “내가 소수자고 패배자였다는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는 말로 글쓰기에 임하는 자신의 태도를 밝혔다. 작가의 시선과 마음이 줄곧 어디를 향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서련 작가는 처음과 변함없는 자세로 세상 곳곳을 살피며 연대하는 마음으로 여성 서사의 폭을 깊고 넓게 만들어 왔다. 이번 소설집에서 우리는 박서련 작가의 변화와 성장을 마주하고, 곧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새로운 여성 서사를 보다 선명히 예감하고 기다리게 될 것이다.
■ 사랑이 자원이 되는 세계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미키마우스 클럽」은 청소년기 자녀를 둔 엄마를 주인공으로 기이한 모성을 그려 낸 소설이다.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의 엄마는 아들이 게임을 못한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자 게임 과외를 알아보고, 시험 삼아 먼저 경험해 보게 된다. 게임을 통해 엄마는 미성년 자녀의 세계, 즉 학교라는 오프라인 세계뿐만 아니라 게임이라는 온라인 세계의 현실까지도 동시에 목격한다. 「미키마우스 클럽」의 ‘나’는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멤버의 엄마이자 매니저이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딸의 비밀이 폭로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기자를 폭행하고, 그 죄로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딸의 삶과 뒤섞여 버린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본다. 한편 「곤륜을 지나」는 시어머니를, 「기미」는 엄마를 부양하는 여성의 노인 돌봄 노동을 그린다. 이 돌봄 노동에는 보상 욕구조차 끼어들 틈이 없다. 무거운 책임을 짐 지우며 삶을 송두리째 옭아맬 뿐이다. 우리가 흔히 가정을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로 정의해 왔다면, 박서련 작가를 통해 본 이 시대의 가정은 극도로 잔혹해진 자본주의사회의 표본이다. 박서련 작가는 모성을 비롯한 가족 간의 심리적 역동을 통해 애증이나 집착이라는 개인의 감정으로만 정의 내릴 수 없는, 더 큰 단위의 사회적 욕망을 선명히 드러낸다.
■ 진짜를 정의하는 주체
「보」와 「그 소설」은 자기 자신의 “진짜”를 찾아가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보」의 주인공 ‘보혜’는 목사 아버지에게서 목사 남편으로 이어지는 가부장제의 그늘 아래, 무엇도 스스로 결정해 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눈이 가려진 채 알 수 없는 갈망 속에 살아가던 보혜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꼈던 과거의 순간들 속에서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 소설」에서의 ‘진짜’는 보다 복합적인 층위로 나타난다. 소설을 도용당한 ‘나’는 그 소설의 진짜 작가가 자신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이후 ‘낙태’를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했을 때는 그것이 실제 경험인지 아닌지를 떠보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맞닥뜨리며 진실을 두고 줄다리기를 한다. 여기서 ‘진짜’는 창작물에 대한 작가의 권리부터 여성 작가를 윤리적으로 단죄하는 잣대에까지 주요한 기준으로 작용한다. 여성으로서 요구받는 ‘진짜’에 대한 증명과 한 인간으로서 찾아가고자 하는 ‘진짜’가 무수히 엇갈리는 가운데, 우리는 ‘진짜’를 정의하는 주체, ‘진짜’를 정의할 권력을 가진 주체가 누구인지 되묻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은 소설을 빠져나와, 지금 우리의 삶과 이를 둘러싼 사회를 향해 다시금 던져진다.
■ ‘우리’ 바깥의 존재
마지막 소설인 「A Queen Sized Hole」은 창작자로서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고민하는 작가 ‘승희’의 이야기이다. 맨정신일 때도, 만취해 필름이 끊겼을 때도 통장 잔액을 걱정하는 승희의 모습은 이 시대 평범한 청년의 일상과도 다르지 않다. 오래전 상처를 건드리는 옛 친구와 채무 관계로 얽혀 버린 친구가 동시에 찾아온 어느 밤, 그들과 함께 한 방에서 웃고 떠들다 자리에 눕게 된 승희는 문득 자신이 건보료와 국민연금과 전기세, 수도세 같은 것들을 하나도 계산하지 않고 있음을, “그런 것들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얼마나 산뜻한지를” 아주 오랜만에 곱씹는다.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못한 절망으로 조금씩 날을 세우던 승희의 마음이 피를 나눈 가족이나 미래를 약속한 연인도 아닌, 느슨히 연결된 끈을 잡고 갑자기 나타난 존재로 인해 순하게 잠잠해진다. 소설집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의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게 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연결된 느슨한 끈들을 조금씩 매만져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더 멀고 느슨한 연결들을 향해 상상의 손길을 뻗을 수 있게 된다면, 바로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우리를 살게 하는 ‘우리’의 의미를 새로이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본문에서
당신 아이는 특별하다. 과장도 농담도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재능을 보이고 여느 아이들보다 끈기도 있다. 다만 소통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편인데, 당신 나름대로 내린 진단에 따르면 그건 아이의 탓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 수준을 맞추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다. _ 14쪽,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당신은 분명히 ‘엄마’라고 쳤는데 화면에는 자꾸 그 단어가 지워져서 올라간다.
이거 왜 이러지?
당신의 말에 아이는 그것도 모르냐는 투로 대꾸한다.
채팅창에 욕 치면 블라인드 처리되잖아.
그건 엄마도 아는데, 엄마가 욕이니?
욕으로 쓰이니까 블라인드 되지. _43쪽,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엄마는 알죠, 니나가 거짓말 안 하는 거?
그제야 나는 아까부터 느끼던 미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챈다. 너는 회견 내내 한 번도 한쪽 눈을 감지 않았다. 내가 고쳐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너의 틱. 대중이 사랑했던 너의 틱. 거짓말하지 않는 니나의 틱. _ 79~80쪽, 「미키마우스 클럽」
바이바이, 보.
보혜는 남편 곁으로 돌아와서도 장관이라는 석양 대신에 몸속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붉어진 보니를, 보니의 몸 위에 반사된 태양의 붉은빛을 계속 바라보았다. 아름답네. _ 95쪽, 「보」
거절하는 순간 자영은, 자신이 바란 게 빨간 자전거가 아니라 그만한 횡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사는 동안 자영은 운이 좋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 자신의 삶을 내려다보는 어떤 거대한 존재가 있다면, 그가 조금은 자신을 아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한 행운이 꼭 한 번쯤은 찾아와 주었으면 하는 것이 자영의 소박한 바람이었다. _118쪽, 「곤륜을 지나」
독을 탔지? 여기에 독을 탔지?
언제나와 같은 비난이 쏟아진다. 원희는 잠자코 엄마의 밥그릇이 엎어지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엄마는 원희가 미음에 독을 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야말로 이 지긋지긋한 짓거리를 그만두고 싶은 건지도. 그렇지만 엄마. 이게 정말 독이라면 차라리 내가 먹고 싶어. _ 175쪽, 「기미」
그 나머지가 소재 삼는 것들도 그렇게 다양하다고 볼 수는 없었는데 유독 낙태 소재만은 닳고 닳은 취급을 받았고, 쓴 사람은 여지없이 뻔한 작가 취급을 받았다.
한편 나야말로 그런 소재로 소설 쓰는 여자애들을 깔보는 축에 속하기도 했다.
바보들 아냐. 그런 건 고딩 때 떼고 들어오라고.
마치 고등학생 때 낙태 한 번쯤은 다 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_188쪽, 「그 소설」
남녀 셋이 같은 방 같은 매트리스 위에서 자다니 오카자키 교코 만화 같은 상황이네. 승희는 양옆에 누운 두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혼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생각했다. 굳이 따지자면 『헬터 스켈터』 말고 『핑크』.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은 건보료와 국민연금과 전기세, 수도세, 통화료 고지서, 대출 인지세, 보증료 같은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얼마나 산뜻한지를 승희는 아주 오랜만에 곱씹었다. _235쪽, 「A Queen Sized Hole」
■ 추천의 말
이 소설집을 읽고 나면 가족제도의 거대한 그늘이 감지된다. 이는 소설의 주인공이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 자식을 키우는 엄마, (시)어머니를 돌보는 며느리/딸, 그리고 이들의 삶에 대해 쓰는 소설가(이자 딸)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곤경은 개인의 진심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건 진심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과 사회에 작동하고 있는 ‘룰’의 문제이다.
― 이지은(문학평론가)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 7
미키마우스 클럽 ◦ 47
보 ◦ 81
곤륜을 지나 ◦ 113
기미 ◦ 147
그 소설 ◦ 177
A Queen Sized Hole ◦ 205
작가의 말 ◦ 237
작품 해설
퀸 사이즈 소설과 그 여주들 ─ 이지은(문학평론가) ◦ 239
독자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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