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7호 중독
나를 살리는 게 나를 죽인다. 스마트폰중독, 쇼핑중독, 알코올중독…… 약간 지나친 의존일까, 심각한 비정상일까? 중독을 부추기는 혼란한 세계와 쾌락이 필요한 힘겨운 인생 속에서 우리가 뭘 선택할 수 있을까? 이렇게 살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몰입과 산만, 자유와 정신병 사이에서 중독자와 함께하는 한편의 인문학.
스마트폰 세상에서
스마트폰중독을
어쩌란 말인가?
《한편》 ‘중독’은 스마트폰중독에서 시작한다. 2020년 기준 한국인의 한 주 주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11.9시간이고 한국의 만 3세 이상 인구 91.1퍼센트가 스마트폰 이용자다. 이 기계를 처음 손에 잡은 최초의 시간 이후로 어느 날 사람들은 헤어날 수 없는 마력을 느끼고, 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반복하게 된다…….
이런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중독이 뭔지 이미 알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폰의 중독 설계를 파헤치는 책, 중독의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 사이에서 인문잡지 《한편》은 중독에 관해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의미를 탐구한다. 여성학, 인류학, 퀴어 연구, 임상심리학, 장애학, 문헌학, 지리학에서 경영과 음악평론, 번역에 이르기까지 열 편을 실었다.
스마트폰 속 쾌락에서
죽음에 이르는 쾌락까지
무력한 중독자로 환원되지 않는 온라인상의 실제 사람들을 만난 여성학 연구자 김지효는 「인생샷을 찾는 사람들」에서 거울을 앞에 두고 혼자 자아도취된 젊은 여자라는 이미지를 격파한다. 최근 유행하는 인생샷 찍기는 동료와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또래문화로, 사진을 보는 관객들이 거들어 온 관심 경제의 일부다. 사진을 올렸으면 무슨 평가든 감당하라는 식의 주시자들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는 글이다. 음악평론가 김민주는 「미디어중독자의 행복한 삶」에서 힙합 그룹 에픽하이 팬으로서 평론가가 되었다는 성덕(성공한 덕후) 이야기를 펼친다. 인터넷중독을 우려하는 어른들은 오프라인 세계의 고통을 감싸 안는 온라인의 삶을 모른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의사소통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디지털미디어 사용 역량을 갖추어 나가는 과정은 리스펙을 부른다. 셀카중독과 미디어중독이라는 명명이 사실 잘 모르는 것을 비난하는 방식에 불과했음을 드러내는 두 편이다.
7호의 중추에서는 과학의 이야기를 듣는다. 병원에서 완치되지 않는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 문화인류학, 장애학, 문학을 읽는다. 뇌과학에서 역사학, 인류학으로 옮겨 가는 김관욱의 「“담배, 참 맛있죠”」는 중독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품었을 법한 여러 의문들을 망라한다. ‘삶이 초래한 금단 증세’에 스스로 대처하기 위한 한 환자의 흡연을 일종의 의례로 설명하는 이 글은 최근 리추얼, 영성, 금욕을 향한 고조되는 관심을 사회와 연결할 여지를 남긴다. 의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장애인언론 《비마이너》에 기고 중인 유기훈의 「강제 치료를 둘러싼 문제」는 의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난처함에서 시작한다. 술 때문에 인사불성이거나 고집불통인 가족을 어떻게 병원에 데려갈까?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라는 근대 철학의 이상과 중독물질이 뇌를 납치한다는 정신의학의 진단은 중독자의 자율성에 관해 딜레마를 낳는다. 실마리는 중독의 원인을 몸에서 사회로 옮겨 오는 장애학에서 풀리며, 이때 자유의 의미 또한 변화한다.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중독자–예술가 곁에는 이들을 돌보는 보호자가 있다. 파트너의 회복을 위한 끝없는 도움으로 소진되는 보호자를 지지하기 위해 임상심리전문가 임민경은 무한한 헌신 대 냉정한 선 긋기라는 이분법을 비껴간다. 중독물질을 향한 욕망 자체는 제어할 수 없더라도, 행동은 조절할 수 있다. 「중독자의 곁에 있기」는 행동 조절을 위한 중독자와 보호자의 동맹을 신중하게 제안한다. 한편 연구활동가 허성원은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성행위를 중계하는 섹스 중계 중독자들의 이야기로 쾌락 속의 지루함, 해방감 속의 구속감이라는 이면적 감각을 들여다본다. 그가 만난 한 피면접자는 우연한 계기로 섹스 중계 행위를 그만두면서 자기 방치에서 타인에의 의존으로 건너간다. 이런 변화가 더 낫다고만 말할 수 없지만, 변화는 감각의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일깨우는 「섹스 중계자들의 우화」다.
약간 더 건강한 쪽으로
쾌락의 방향을 바꾸자
12세기 철학자 주희는 견해가 다른 자를 가리켜 ‘약간 중독되었다(小中毒)’라고 표현했다. 자신과 다른 학설에 빠졌다는 이유로 독에 빠졌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억누르면서 권위 세우는 일은 17~18세기 조선에서 반복된다. 문헌학자 노경희의 「불멸에 이르는 중독」에 따르면 다른 사상을 억압하는 경직된 조선에서 변화를 이끌어 낸 이들은 뭔가에 깊게 빠진 사람들이었다. 책에 미쳐 살았던 조선의 한 책장수가 다부지게 말한다. “내가 단순히 천하의 책만을 이해할 뿐일까요?”
「CEO의 ‘착한’ 경쟁 이야기」에서 사용자의 중독을 유발하는 디지털 환경에 둘러싸인 조성도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방안을 고민한다. 한 사람의 운신의 폭이라는 상투어는 장기적 관점을 채택하는 디자이너의 행동에서 생생해진다. 지리학 연구자 정진영과 일본어 번역가 지비원은 독자의 시간을 부동산 투자에서 인문서로 뺏어 온다는 《한편》의 기획에 발맞춰 통찰을 공유한다. 사람이 존엄하게 살 수 없는 집이 재생산되는 이유를 찾는 「집으로 돈 버는 세계에서」는 자유로운 상품 거래의 세목에서 평범한 욕망이 초래하는 착취를 발견한다. 이로 인한 세계의 고통은 보다 약한 쪽으로 전가될 뿐 사라지지 않는다. 끝으로 「인문서에 집착하는 이유」는 인문학을 읽고 싶다, 읽히고 싶다는 출판업 종사자의 바람을 담았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언어 내 번역’ 또는 바꾸어 말하기라는 방법은 글을 쓸 때, 타자와 대화할 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한편》은 이 바꾸어 말하기라는 실천을 2022년 새해의 목표로 권한다.
새로운 세대의 인문잡지 《한편》
끊임없이 이미지가 흐르는 시대에도, 생각은 한편의 글에서 시작되고 한편의 글로 매듭지어진다. 2020년 창간한 인문잡지 《한편》은 글 한편 한편을 엮어서 의미를 생산한다. 민음사에서 철학, 문학 교양서를 만드는 젊은 편집자들이 원고를 청탁하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젊은 연구자들이 글을 쓴다. 책보다 짧고 논문보다 쉬운 한편을 통해, 지금 이곳의 문제를 풀어 나가는 기쁨을 저자와 독자가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한편》 7호 ‘중독’에 적용된 글꼴은 미르체.(디자인 유진아)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로가 담겨 있다. 인문잡지 《한편》은 연간 3회, 1월·5월·9월 발간되며 ‘세대’, ‘인플루언서’, ‘환상’, ‘동물’, ‘일’, ‘권위’, ‘중독’에 이어 2022년 5월 ‘콘텐츠’를 주제로 계속된다.
7호를 펴내며 쾌락의 방향을 바꾸자
김지효 인생샷을 찾는 사람들
김민주 미디어중독자의 행복한 삶
김관욱 “담배, 참 맛있죠”
허성원 섹스 중계자들의 우화
임민경 중독자의 곁에 있기
유기훈 강제 치료를 둘러싼 문제
노경희 불멸에 이르는 중독
조성도 CEO의 ‘착한’ 경쟁 이야기
정진영 집으로 돈 버는 세계에서
지비원 인문서에 집착하는 이유
참고 문헌
지난 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