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DEN ÄRLIGA BEDRAGAREN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12월 6일
ISBN: 978-89-374-1775-7
패키지: 양장 · 46판 128x188mm · 248쪽
가격: 14,000원
‘무민’ 시리즈, 『여름의 책』의 작가
토베 얀손의 본격 장편 소설
다정한 거짓과 잔혹한 진실로 얽히고설킨
두 사람의 겨울 이야기
소개하는 말(수산네 링엘)
정직한 사기꾼
스스로에게 건네는 달콤한 거짓말,
타인을 잠식하는 새하얀 거짓말에 대하여
“토베 얀손의 문장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늘 생생하며 정확하고 예술적이다. 대단히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어슐러 K. 르 귄(소설가)
“토베 얀손의 소설 중 최고의 작품! 시선을 사로잡고 독창적이며 절묘하다!” -《뉴요커》
50여 개국,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기록적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무민 시리즈’의 작가이자 오래도록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 온 ‘무민’ 캐릭터의 창조자, 핀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소설가인 토베 얀손의 본격 장편 소설 『정직한 사기꾼』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안나 에멜린이 상냥하다는 말을 듣는 까닭은, 지금껏 그녀가 악의를 보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적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곱게만 자란 안나 에멜린의 선의는 어딘가 겁나는 구석을 지녔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커피를 좀 준비했어요. 커피 드시지요?”
“아니요.” 카트리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커피 잘 안 마셔요.”안나는 당황했다.
마음이 상했다기보다 놀랐다. 커피를 내놓으면 누구나 마신다. 그게 예의니까. 초대한 사람을 생각해서 말이다.
“차는요?” 안나는 말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카트리 클링이 대답했다.안나는 뭔지 모를 불안을 느끼며 창가에 서 있었다. 지금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갑자기 의욕을 잃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자신이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며 좋아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본문에서
1970년 ‘무민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성인 독자를 겨냥한 본격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토베 얀손은 1972년 『여름의 책』을 발표한 이래 여러 편의 장편을 남긴다. 그중 『정직한 사기꾼』(1982)은 독자는 물론, 비평적 측면에서도 커다란 성공을 거둔 얀손의 대표작이다. 이제 짙은 겨울로 접어든 어느 항구 마을, 이웃집 수저가 몇 개나 되는지 서로 알 만큼 손바닥만 한 이 시골 동네에 낯선 행색의 남매가 살고 있다. 카트리와 마츠 클링 남매는 금발 벽안의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새까만 머리카락, 심지어 누나 카트리는 늑대같이 매서운, 서늘한 금빛 눈동자를 지니고 있다. 이방인에게 호의적일 리 없는 시골 마을에서 이들 두 사람은 호기심과 두려움,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다. 그러나 부모 없이 홀로 동생을 키워야 하는 카트리에게 마을 사람들의 냉대는 결코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카트리는 냉혹하리만치 머리가 비상하고 꾀바르며, 특히 이해타산을 따지는 데에 능수능란하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숫자(돈)밖에 없다고. 카트리는 자신의 재능을 활용해서 법이나 셈에 도무지 재능 없는 시골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지만, 이웃들은 언제나 그런 그녀를 무서워한다. 하지만 카트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 자기 선박을 만들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사랑스러운 남동생 마츠에게 배를 선물하려면 악착같이 버티고, 힘껏 돈을 모으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던 중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이자 은둔자,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삽화가 안나 에멜린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나무숲에 꽁꽁 싸인 대저택에서 혼자 살며, 통조림 하나조차 심부름꾼에게 배달을 부탁할 정도로 세상과 왕래가 없다. 마을 사람들은 안쓰러워하면서도 잔인할 정도로 순수하고 물정 모르는 안나를 은연중 등쳐 먹기에 급급하다. 이러한 안나의 사정을 정확히 간파한 카트리는 은근슬쩍 그녀에게 접근해서 한몫 챙기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카트리는 순진무구한 안나의 살림부터 사업까지 도맡아 처리해 주면서 신임을 얻는 데에 성공하지만 상황은 전혀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되어 간다. 급기야 간단한 인사치레조차 위선으로 여기며 빈말이라면 질색하는 카트리와 상대방을 배려한다면서 마음에도 없는 선의를 베푸는 안나의 만남은, 북구의 매서운 겨울 눈보라처럼, 두 사람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사나운 파문을 일으킨다.
안나는 미소 지었고, 평소처럼 혼란스러워하지도 않은 채 말했다. “클링 양, 알아요? 당신은 정말 독특한 사람이에요. 전 이렇게 무시무시하게—정말 두렵다는 뜻으로 하는 말인데—정직한 사람은 처음 봐요. 이건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잘 들어 보세요. 당신은 젊고 인생을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제 말을 믿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의 자기 모습, 자신의 생각과 다른 역할을 하려고 하지요.” 안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덧붙였다. “저는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보아요.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니까, 오해하지는 마세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사람들은 언제나 제게 친절하게만 대했어요. 하지만 그래도, 클링 양, 당신은 언제나 당신 자신이고, 그건 어떤 느낌이냐면.” 안나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달라요. 당신을 믿게 돼요.” -본문에서
‘아, 안나 에멜린, 당신은 자기 양심에만 관심 있고, 그것만을 돌보는군요. 귀엽고 깜찍한 거짓말쟁이예요. 아이들은 당신을 사랑한다고, 여기에 와서 당신 그리고 토끼들과 함께 살려고 돈을 모은다며 편지를 쓰죠. 그럼 당신은 정말 다정하게 환영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냥 마음 편하려고 건넨 약속들은 결코 아무것도 보증하거나 변제할 수 없지요. 숨어도 소용없어요. 단지 거절하지 못해서, 따지고 보면 모든 사람들이 선하다고 자신을 속이면서, 헛된 약속이나 돈으로 멀리 밀쳐놓는 까닭은, 결국 스스로 편해지려는 것뿐이잖아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욱 꼬이고 말죠. 페어플레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당신은 대적하기 어려운 상대예요. 진실은 쇠못으로 박아야 하는데, 푹신한 매트리스에는 못을 박을 수 없으니까요!’ -본문에서
토베 얀손은 인간이란 늘 고독하고, 행복 속엔 언제나 불안 혹은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직한 사기꾼』은 ‘무민 시리즈’에서 차마 다 이야기할 수 없었던 작가의 주제 의식을 가장 온전히 반영하고 있으며, ‘본격 소설가’ 토베 얀손을 만나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더불어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 그 복잡 미묘한 면면을, 위선과 위악을, 진심과 가식을 진중히 돌아보게 한다.
토베는 뻔한 이야기로 지루하게 하지 않으며, 비본질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토베의 강점이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읽기에 거슬린다. 주인공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도, 그의 수상한 계산은 어딘가 불편하고 불순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정직한 사기꾼』에는 감정을 정화시키는, 어떤 의미에서 고대극적 요소도 있다. 등장인물이 죽지는 않지만, 주위에서 여러 가지가 죽어 간다. 인생의 거짓뿐 아니라 꼭 필요한 꿈들까지도. -수산네 링엘
‘소설가’ 토베 얀손에 대하여
조각가 아버지와 그래픽 디자이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창작 활동에 몰두해 온 토베 얀손은 일찍이 드로잉집을 엮어 내고 잡지의 삽화를 그리는 등 타고난 재능과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핀란드와 스웨덴, 프랑스의 유명 교육 기관에서 수학하며 예술가적 기량을 갈고닦은 토베 얀손은 차츰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먹물 기계’라고 불릴 만큼 격무에 시달리며 정신적 공허를 느끼던 얀손은 단지 스스로를 위해,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무민’ 이야기를 하나둘 집필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무민 시리즈’의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내 핀란드, 유럽과 전 세계로 알려지면서 엄청난 대성공을 거둔다. 마침내 동화에 수여되는 ‘노벨 문학상’이라 일컬어지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하고, 이후 다채로운 공로를 인정받으며 여러 훈장과 예술상을 거머쥔다.토베 얀손의 창작욕은 영면에 드는 순간까지 쭉 이어졌으며, 순수 미술은 물론 무대 미술, 연극과 시, 소설 등 갖가지 예술 분야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다. 특히 소설은, 토베 얀손이 ‘무민 시리즈’만큼이나 커다란 성취를 보인 영역이었고, 오늘날에도 세계 각지에서 널리 읽히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중 『여름의 책』은 북유럽 지역에선 가히 ‘국민 소설’이라 불릴 만큼 세대를 불문하고 애독되는 ‘소설가’ 토베 얀손의 대표작이며, 국내 독자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여름 한철, 찬란한 시절을 마음껏 누리고자 핀란드의 고요한 섬으로 찾아든 세 사람, 즉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손녀 소피아의 소소하지만 다정한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한편에 자리한 유년 시절의 추억, 할머니의 따스한 손길,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푸른 계절의 풍경을 환기시키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제 인생의 여름으로 나아가는 손녀와 삶의 지난한 열기를 뒤로하고 가만 다가오는 겨울을 묵묵히 응시하는 할머니의 유대는 『여름의 책』의 기나긴 메아리로 남았다. 또 ‘이야기꾼’ 토베 얀손의 재능을 여실히 보여 준 단편 소설집 『두 손 가벼운 여행』 역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여행 속에서 마주치고, 엇갈리고, 헤어지는 수많은 인연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집은 토베 얀손의 재치와 재능을 완벽히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