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태용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10월 22일
ISBN: 978-89-374-1389-6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15x188 · 284쪽
가격: 14,000원
분야 한국 문학
“절망과 어둠 속에서 엷은 빛이 드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은 허구의 언어 세계와 음악뿐이었다.”
늘 새로운 어법을 찾아 서사의 극점을 갱신하는 작가 김태용
소리와 리듬으로 만들어 낸 사랑의 사운드스케이프
여덟 개의 목소리는 여덟 개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옵니다. 여덟 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여덟 개의 구멍을 가진 것들을 떠올립니다. 무형의 리코더를 상상합니다. 리코더의 구멍은 여덟 개. 여기, 여덟 개의 목소리는 노래합니다. 삶을 기록합니다. 스스로를 기억합니다. 이 무형의 리코더는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이야기를 묻습니다. 이야기를 흔듭니다. 이야기를 비춥니다. 이곳과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마지막 하나의 구멍이 완성되지 않으면 리코더는 하나의 침묵일 뿐입니다. 숨을 불어 넣는 마우스피스의 구멍. 당신만이 리코더를 리코더로 만듭니다. -윤해서(소설가)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각각 아름다워요. 그 둘이 더해지면 허공이 됩니다. 그 둘을 곱하거나 나누면 영원이 되고, 둘을 한자리에 놓고 말하면 하나가 됩니다. 플러스와 플러스. 마이너스와 마이너스. 그것은 쉽게 셈할 수 없는(있는) 수학. 코드가 뒤섞인 음악. 끝내주는 문학입니다. -정용준(소설가)
1부 한스와 조니 그리고 차정 9
2부 차정과 차미 그리고 솔랑쥐 67
3부 차미와 솔랑쥐 그리고 제니퍼 113
4부 제니퍼와 빈센트 그리고 줄리 161
5부 줄리와 차미 그리고 하순한스 213
Sound Track of Story 268
작가의 말 271
추천의 말 274
김태용 장편소설 『러브 노이즈』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러브 노이즈』는 그 이름이 곧 한국문학의 전위로 읽히는 작가 김태용이 ‘음악’이라는 상태를 통해 도달한 무형의 서사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악보라 부르는 편이 더 적절하게 느껴질 만큼 청각과 연동된 인식의 “흔들림”으로 읽기(듣기)를 요하는 이 작품은 이어질 ‘음악 3부작’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소설이자 쓰이지 않은 것을 쓰기 위한 방식으로 ‘사운드’에 골몰해 온 작가가 맺은 한 결실이기도 하다.
그간의 소설이 보여 주었던 낯선 감각과 구분되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정조를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의 곡조는 김소월의 시 「개여울」의 한 구절로 표현된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다섯 개의 부로 구분되어 있는 이야기의 각각은 하나의 구심축을 공유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동심원처럼 번져 나가며 서로에게 스며드는 가운데 의미를 형성하고 소리를 만들며 리듬을 이루는 것이다. “모든 언어는 세 번 이상 반복하면 의미가 생긴다. 그 의미는 머릿속에서 다시 소리를 만들고, 모든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다.” 변주되며 반복되는 가운데 의미가 생성되고 그렇게 생성된 의미가 감정을 만든다. 소설이 끝난 곳에 별도로 마련된 사운드오브트랙 지면에는 실질적인 배경음악 역할을 하는 27개의 곡명이 있지만 그 음악을 재생해 보기에 이 소설은 이미 너무나도 음악적이다.
상이한 가청 영역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소리가 달라지는 것처럼 이야기들에서 중심적으로 다루는 사랑의 의미는 읽는 이가 지닌 ‘사랑의 가청 영역’에 따라 달리 인식된다. 각각의 이야기에서는 복수의 사랑이 연주된다. 허구의 사랑과 현실의 사랑, 미래의 사랑과 과거의 사랑, 육체적 사랑과 언어적 사랑, 자매의 사랑과 연인의 사랑, 그리고 오직 영감을 통해서만 만나는 영혼의 사랑이 있으며 끝내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사랑도 있다. 그중 얼마만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지는 읽는 사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고, 들리지 않는 영역은 ‘러브 노이즈’로 남는다. 이토록 아름다운 미결정 상태의 완결성이야말로 ‘음악(사랑) 소설’의 매력이라 할 것이다. 김태용이 선보이는 특별한 소설은 무한한 사랑의 음역대 안에서 우리가 청취할 수 있는 가능한 사랑의 범위, 즉 사랑의 가청 영역을 질문한다. 당신은 얼마만큼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습니까.
“모든 규칙을 깨라. 규칙이 깨진 자리에 너의 사랑이 있다.” 규칙이 깨어진 자리에 사랑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물론 사랑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러브 노이즈』는 무엇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21세기 문학의 가장 선명한 별종”으로 불리는 작가 김태용은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상대방을 비춰 주는 방식으로 인물들을 보여 준다. 우리는 “강물에 노을이 번져가는 것처럼” 외롭고 아름다운 흔들림 속에서 그들의 내면을 보고 내면에 일렁이는 그들의 사랑을 본다. 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어느 순간, 반드시 이 소설을 다시 찾아 들을 수밖에 없다. 쓸쓸함과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음악을 통해 우리가 늘 그러했던 것처럼.
■ 줄거리
소설은 두 소년이 간직한 유년의 기묘한 페이지에서 시작한다. 경기도 기린천에서 물장난을 하는 한스와 조니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이다. 한스가 물에 빠진 조니를 버리고 도망가다 자동차에 부딪쳐 다리를 절단한 이후 둘 사이는 멀어진다. 이후 조니는 절망보다는 관망을, 희망보다도 관망을 택하는 불투명하고 불량한 삶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대학에 진학한 조니는 「한스의 방」이라는 소설을 써서 대학신문의 문학상을 받고, 함께 최종심에 올랐다 떨어진 이차정이 그를 찾아온 것을 인연으로 차정과 조니는 문학이라는 ‘언어’를 공유하는 연인 관계가 된다.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세계를 점점 확장해 나가는 차정의 소설과 달리 여전히 「한스의 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니에겐 소설보다 현실이 앞서 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독일로 유학 간 차정이 뉴욕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차정의 동생 차미는 언니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를 풀기 위해 미국에서 7년째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차미는 자신의 언니가 뉴욕에서 이차정이 아니라 부사영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점점 더 시작과 끝을 규정할 수 없는 이 소설은 시작하지 않고 끝나지 않은 채 다만 계속된다.
■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자리는 어디일까?
이야기가 사라지는 자리는 어디일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도 있을까?
그건 음악과 닮은 이야기일 것이다
사라짐으로 시작하기에 음악은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음악과 닮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음악이 결코 될 수 없는
음악과 닮은 이야기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추천의 말에서
■ 본문에서
“물속 세계와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흔들림, 흔들림뿐이었다. 나는, 한스는 하나의 흔들림이었다. 물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다.”(14쪽)
“신부는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크앙 크앙 크앙. 신랑은 강물에 노을이 번져가는 것처럼 외롭습니까? 크앙 크앙 크앙. 그날 이후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망보다는 관망을, 희망보다는 관망을 택하는 불투명하고 불량한 삶의 자세를 취하게 되었는지 모른다.”(32~33쪽)
“「한스의 방」을 쓴 뒤로는 한스도, 포캣맨도, 교회 선생님도, 기린천도 전부 허구처럼만 느껴졌다.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소설이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마음을 차정 씨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글을 쓸 수 없는 마음, 말하지 못한 마음에 잠을 뒤척일 때면 차정 씨가 추천한 벌거숭이라는 밴드의 「삶에 관하여」를 반복해서 들었다.”(45쪽)
“전쟁을 겪지 않아도 전쟁소설을 쓸 수 있는 거지. 다른 나라 작가들은 잘도 쓰잖아. 왜 우리는 그게 안 되는 걸까.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도 말라고,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현실의 목소리는 너무 지지부진해. 소설의 리얼리즘은 체험 수기가 아니잖아. 민족주의! 가족주의! 빈궁주의! 감상주의! 도덕적 어눌함! 머리 없는 산책자! 이데올로기로 사지가 찢어진 사람도 있겠지. 억울하게 목소리를 잃은 사람도 있겠지. 전쟁 중에도 사랑하고 엉뚱한 모험을 하고 무언가에 홀려 살인을 했겠지. 동성애와 동반 자살도 있었을 거야. 모던하고 섹시한 전쟁소설을 써야겠어. 텅 빈 사상의 깊이와 무채색의 사나운 문체로. 제주도부터 시작해야 해. 거기서부터 모든 게 잘못되었으니까. 제주 4・3을 배경으로 어떤 여자의 손부터. 서사의 전방에서 언어 폭탄을 터트리는 나, 여성 화자로 말이야. 근데 왜 소설을 쓸 때보다 소설을 떠올릴 때 더 흥분되고 뭔가 열리는 기분이 드는 걸까. 막상 쓰기 시작하면 흥분은 가라앉고 기분의 문은 소리를 지르며 닫히고 마는데.”(57쪽)
“밤거리는 차가웠고 마른 낙엽을 밟는 소리가 온몸으로 진동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낙엽이 유칼립투스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지금 내 기분으로는 유칼립투스가 되어도 좋다. 내가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 유칼립투스라고 반복해서 부르자 유칼립투스가 되는 것이다.모든 언어는 세 번 이상 반복하면 의미가 생긴다. 그 의미는 머릿속에서 다시 소리를 만들고, 모든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다.”(151쪽)
“조니, 내가 어떻게 보여? 조니의 눈이 빛난다. 너의 눈에는 세상이 어떤 색깔로 물들고 있을까? 조니와 조니, 가엾은 조니, 이제 조니의 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조니의 눈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신문 속 조니의 눈, 화면 속 조니의 눈, 하지만 그건 조니의 눈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조니의 눈은 그해 여름에 남아 있어, 여름은 끝났고 삼십 년이 흘렀네, 하순한스는 생각한다.”(239쪽)
“한 개인의 고통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고 상대적으로 비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에게 당신의 다리를 잘라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이전과는 다른 색깔로 세상이 물들어 갔다.”(240쪽)
“절망과 어둠 속에서 엷은 빛이 드는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은 허구의 언어 세계와 음악뿐이었다.”(2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