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의 부엌에서 재투성이 오이디푸스가 튀겨 낸 맛있는 고통
일상의 방정식을 신비롭고 장엄하게 풀어낸 정채원의 시 세계
그녀의 시가 오늘 당신의 존재의 온도를 올린다
일상적인 삶의 풍경 속에서 깨달은 성찰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고 장엄하게 그려 내는 시인 정채원의 두 번째 시집이 민음사에서 나왔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눈으로 본 것이 마음에 상을 맺고, 그것이 말이 되고 글이 되는 과정에 한 점 망설임이 없”다며 그녀의 높은 필력을 극찬했고, “마음이 늘 비애와 여한의 땅을 더듬는가 싶은데, 어느새 그 젖어 있던 마음자리가 모두 바람 같고 불꽃같은 재기가 되어 한 길 높은 대기 속으로 치솟는다”며 그녀의 강인한 시적 에너지를 높이 평가했다.
시인 이문재는 정채원의 시의 시공을 초월하는 활발한 동선과 경쾌한 리듬, “신비롭고 장엄”한 “거대한 원환(圓環) 구조”에 주목하며 “가만 두고 보면, 시의 온도가, 내 존재의 온도가 올라가는 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경계에 서서 삶의 이쪽과 저쪽에 발을 담가 놓고 치열하게 살피는 경계의 시인이자,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고통의 연금술사이다. 그녀가 자정의 부엌에서 맛있게 튀겨 낸 고통의 성찬을 만끽하시라.
■ 자정의 부엌, 그녀의 은밀한 공간을 엿보다
정채원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늘 경계에 서서 이쪽과 저쪽을 동시에 응시하는 복합적 구조를 지닌다는 점이다. 「자서」에서도 그녀는 경계에 서 있다. “지하철 선로 건너편의 얼굴들을/ 남의 얼굴 보듯 바라본다./ 어느 쪽이/ 먼저/ 지금, 여기를/ 떠날 것인가,/ 마치 목적지가 따로 있다는 듯.”(「자서」)
그런 경계의 시인 정채원을 문학평론가 권혁웅은 절름발이 오이디푸스와 재투성이 소녀 신데렐라에 비유하며 “재투성이 오이디푸스”라 칭한다.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로 절뚝이며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동시에 딛는다. 신데렐라 역시 자정의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을 동시에 품는다. 오이디푸스와 신데렐라 모두 경계의 인물들이며, 둘 모두 경계를 제 본질로 삼음으로써 양쪽의 세계를 포괄한다. 권혁웅은 이 두 인물이 바로 정채원 시의 페르소나라고 말한다. 이처럼 정채원의 시는 일상과 초월, 삶과 죽음, 거짓과 진실을 왕복하며 두루 아우른다. 그녀의 시는 한마디로 오이디푸스의 일상적 모험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이승과 저승, 가는 것과 오는 것,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부는 “꽃샘바람”(「간절기 1」) 같은 시인이다.
정채원 시인에게 사랑은 \”바닥에 닿는 일\”이다. \”아직도 너를 여는 중이다. 바닥난 나를 한 번 더 혼신으로 뒤집는 중이다.\”(「모래시계」)라고 노래했듯이 처절하게 바닥을 드러내고도 다시 한 번 뒤집는 그런 사랑이다. \”오랜 응시로 자꾸만 흐려지는 과녁/ 다가올 듯 다가오지 않는 네게로 내 마음은 이미 길을 떠난다/ (중략)/ 마음 먼저 보내고 몸도 따라 보내는/ 마음 먼저 죽이고 몸도 따라 죽이는\” 그런 사랑이다. \”너의 아픔을 딛고/ 나의 아픔이 절뚝이며 건너가는\”(「십자가 창문」) 고행과도 같은 그런 사랑이다.
정채원 시인은 또한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고통의 연금술사이다. 고통의 쓸개즙을 마시며 “꽃 피우기 위해 봄마다 병들었고/ 병들기 위해 해마다 꽃을 피우기도 했다”(「골병나무」). 그녀에게 아픔은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이며, 모든 고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황금 덩어리의 질료가 된다. 이 시집을 통해 그녀는 자정의 부엌에서 맛있게 튀겨 낸 고통의 성찬으로 우리의 영혼을 배불린다.
그녀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쓰러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돌고 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외친 슬픈 갈릴레이처럼. 그래도 도는 지구처럼.
어머니, 저는 오늘도 돌아요
압력 밥솥의 추처럼
얼음판 위를 헐떡이는 팽이처럼
터질 듯한 마음의 골목골목
팽글팽글 돌아요, 돌아야 쓰러지지 않아요
당신의 경전을 맴돌면서
저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때까지
서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가면, 어머니
신대륙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얕은 곳 너머 갑자기 희망이 깊어지는 곳
그러나 희망봉 근처엔 죽음의 이빨
백상어가 헤엄쳐 다닌다지요
가장 안전한 곳은 가장 위험한 곳
상식의 말뚝에 한쪽 발을 묶고
나머지 한 발로 절뚝절뚝
기상부터 취침까지
일상의 풀밭을 뱅글뱅글 돌아요
소등 뒤에도 전갈자리 사수자리 돌고 돌다
아주 돌아 버려요
아니, 저는 더 이상 돌지 않아요
그래도,
그래도 지구는 돌지요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전문
■ 작품 해설 중에서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작품에서 이중화된 전언을 읽을 수 있다. 오이디푸스의 절뚝이는 걸음이, 신데렐라의 자정이 처음부터 양쪽의 세계를 다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의 말대로, “극과 극은 한통속이다.” 여전히 그녀의 걸음은 절뚝이고 있으며, 그녀가 앉은 자리는 자정의 부엌이다. 거기서 두 세계에 대한 통찰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곳은 ‘확신에 찬’ 갈릴레이의 마을이 아니라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이다. 우리는 이 슬픔을 재투성이 오이디푸스의 슬픔으로 읽었다. 그 슬픔마저 이중화된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바닥에 닿는 일이 네게로 가는 일인 그런 슬픔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너를 여는 중이다. 바닥난 나를 한 번 더 혼신으로 뒤집는 중이다.” 지금도 개방(開放)이 전복(顚覆)인 그런 세상이, 그녀 앞에,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 있다. ― 권혁웅(시인, 문학평론가)
■ 추천의 말
정채원에게는 높은 필력이 있다. 눈으로 본 것이 마음에 상을 맺고, 그것이 말이 되고 글이 되는 과정에 한 점 망설임이 없으니, 연공자들이라면 아마도 백 개의 기맥이 한 박자를 약속한다고 말할 것이다. 마음이 늘 비애와 여한의 땅을 더듬는가 싶은데, 어느새 그 젖어 있던 마음자리가 모두 바람 같고 불꽃같은 재기가 되어 한 길 높은 대기 속으로 치솟는다. 그래서 연공자들은 다시 수승화강(水昇火降)의 묘를 논하게 될 것이다. 주제는 넓고 형식은 다양하나, 그것들에 같은 사면을 제공하는 것도 역시 열린 기맥이다. 이 높은 에너지가 자주 뒤돌아보길, 그러나 멈춰 서지 말길 바란다. ― 황현산(문학평론가)
정채원의 시의 배경은 시공간적으로 매우 넓다. 화자의 동선(動線)이 활발하고 리듬이 경쾌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의 화자들은 편안하지 않다. ‘나’는 여러 개로 분리된다. 어디가 아프거나, 완전한 실종을 꿈꾸기도 한다. ‘나’는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삶의 방정식을 풀려고 애를 쓴다. ‘나’는 곧 우리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가 원심력적으로 달려 나가는 것만은 아니다. 그에 못지않은 구심력이 있다. ‘가만 두고 보는’ 집중의 힘이다. 나는 4부에 실린 시들에 오래 머물렀다. 거미줄에 걸린 번개오색나비가 허공이 되었다가 다시 번개를 불러오는 거대한 원환(圓環) 구조는 신비롭고 장엄하다. 가만 두고 보면, 시의 온도가, 내 존재의 온도가 올라가는 시다. ― 이문재(시인)
1부
슬픈 갈릴레이의 마을
멍멍, 아이아이
다다각시
변검쇼 1
변검쇼 2
바람궁전의 기억
부위별로 팝니다
헛소문
공터王
구름다리 위에서
아편굴로 가겠어요
각설탕이 녹는 동안
오늘은 휴관이에요
마법의 성
2부
그리운 연옥
누가, 저기, 있다
오늘의 운세 1
오늘의 운세 2
나날이 조금씩 가라앉는 섬
물풍선
흔들리는 꽃병
용호상박
니체와 쓸개즙
선잠
자주 부검되는 남자
경계에 서다
고통도 잘 튀겨지면 맛있다
모래시계
3부
전생
붉은 립스틱을 바른 미라
저, 종소리
키르키르 언덕, 키르키르
쏘울맨
골병나무
즐거운 인생
사과가 있는 정물
허공과 싸우다
비상시 문 여는 방법
내세
사선을 넘어
십자가 창문
옛날의 금잔디 동산
금성캬라멜
적멸
4부
저녁 무렵
천 년 바위에 묻다
木백일홍
울음 그치지 않는
간절기 1
간절기 2
연분
꽃 미용실
달지옥에 대한 소문
아카시아, 아카시아
특별한 밤
인동
이륙울 꿈꾸다
건너편에는 대형 거울
꽃은 져서 어디로 가나
작품 해설/권혁웅
재투성이 오이디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