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옮김 최종술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10월 10일
ISBN: 978-89-374-7545-0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40x210 · 324쪽
가격: 14,000원
분야 세계시인선 45
수상/추천: 노벨문학상
“현대 서정시와 러시아 서사시 전통 모두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한림원,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19세기 러시아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길러 준 러시아를 파스테르나크에게서 발견했다.” ―알베르 카뮈
● 차례
1부 첫 시절 Начальная пора
2월. 잉크를 꺼내 놓고 울 때다!
февраль. Достать чернил и плакать!.. 15
화로가 구릿빛 재를 뿌리듯
Как бронзовой золой жаровень… 16
역 Вокзал 17
베네치아 Венеция 19
2부 장벽을 넘어 Поверх барьеров
영혼 (오, 기억이 떠오른다면 해방된 노예 여인)
Душа 23
사람들과 다르게, 매주 그런 게 아니라
Не как люди, не еженедельно… 24
봄 (싹들이, 끈끈하게 부풀어 오른 양초 찌꺼기가 얼마나 많이)
Весна 25
7월의 뇌우 Июльская гроза 26
비 갠 후 После дождя 28
즉흥곡 Импровизация 30
마르부르크 Марбург 31
3부 나의 누이인 삶 Сестра моя – жизнь
악마에 대한 기억에 부쳐 Памяти Демона 39
이 시에 관하여 Про эти стихи 41
파스테르나크 초상화
나의 누이인 삶이 오늘도 봄비에 넘쳐흐르다가
Сестра моя – жизнь и сегодня в разливе… 43
울고 있는 정원 Плачущий сад 45
미신 때문에 Из суеверья 47
조심! Не трогать 49
노를 놓고 Сложа весла 50
봄비 Весенний дождь 51
영어 수업 Уроки английского 53
시의 정의 Определение поэзии 55
영혼의 정의 Определение души 56
창조의 정의 Определение творчества 57
우리의 뇌우 Наша гроза 58
참새 언덕 Воробьевы горы 61
사랑하는 사람이여, 네게 무엇이 더 필요한가?
Mein liebchen, was willst du noch mehr? 63
초원 Степь 66
무더운 밤 Душная ночь 69
더욱더 무더운 새벽 Еще более душный рассвет 71
무치카프 Мучкап 73
집에서 У себя дома 74
영원히 순간적인 뇌우 Гроза моментальная навек 76
사랑하는 사람이여, 끔찍하다! 시인이 사랑할 때는
Любимая ? жуть! Когда любит поэт… 77
말들을 떨구자 Давай ронять слова 79
추신 Послесловие 82
4부 주제와 변주 Темы и вариации
별들이 질주했다. 곶들이 바다에서 몸을 씻었다.
Мчались звезды. В море мылись мысы… 87
그렇게 될 수도, 달리 될 수도 있다
Может статься так, может иначе… 88
1919년 1월 Январь 1919 года 91
나를 막아 봐, 해 봐. 와, 토리첼리의 공허 안에 든 수은 같이
Помешай мне, попробуй. Приди, покусись потушить…
93
실망했어? 백조의 레퀴엠에 맞춰 우리가
Разочаровалась? Ты думала ? в мире нам… 94
전율하는 피아노가 입술에서 거품을 핥아 낼 것이다
Рояль дрожаший пену с губ оближет… 95
그렇게 시작한다. 2년쯤 Так начинают. Года в два… 96
우리는 적다. 아마 우리는
Нас мало. Нас, может быть, трое… 98
촛불을 끈 거리에서 Косых картин, летящих ливмя… 99
그럴지어다 Да будет 100
봄, 백양나무가 깜짝 놀란
Весна, я с улицы, где тополь удивлен… 102
시 Поэзия 103
수수께끼의 은밀한 손톱이 여길 거닐었다
Здесь прошелся загадки таинственный ноготь… 105
5부 제2의 탄생 Второе рождение
물결 Волны 109
여름 Лето 119
안달하지 마, 울지 마, 바닥난 힘을
Не волнуйся, не плачь, не труди… 122
다른 여인들을 향한 사랑은 힘겨운 십자가
Любить иных – тяжелый крест… 124
계속 눈, 또 눈, 참으면 그만이지
Всё снег да снег, – терпи и точка… 125
죽음의 안개 Мертвецкая мгла 127
황혼 외에는 아무도 Никого не будет в доме… 129
너는 여기 있다, 우리는 한 대기 속에 있다
Ты здесь, мы в воздухе одном… 131
무대에 설 준비를 했을 때
О, знал бы я, что так бывает… 133
모든 시대에 이리저리 꽁무니 빼던
Когда я устаю от пустозвонства… 134
4월 30일 봄날은
Весенний день тридцатого апреля… 136
백년하고도 몇 년, 어제가 아니다
Столетье с лишним – не вчера… 138
6부 이른 기차를 타고 На ранних поездах
그가 일어선다. 세기들. 겔라티 수도원
Гелаты. Он встает. Bека. Гелаты… 143
여름날 Летний день 145
소나무 Сосны 147
거짓 경보 Ложная тревога 150
서리 Иней 152
도시 Город 154
이른 기차를 타고 На ранних поездах 156
다시 봄 Опять весна 159
개똥지빠귀 Дрозды 161
7부 유리 지바고의 시 Стихотворения Юрия Живаго
햄릿 Гамлет 165
3월 Март 166
수난주간에 На Страстной 167
백야 Белая ночь 171
봄의 진창길 Весенняя распутица 173
해명 Объяснение 175
도시의 여름 Лето в городе 178
바람 Ветер 180
홉 Хмель 181
바비예 레토 Бабье лето 182
혼례 Свадьба 184
가을 Осень 187
옛 이야기 Сказка 189
8월 Август 195
겨울밤 Зимняя ночь 198
이별 Разлука 200
만남 Свидание 203
성탄의 별 Рождественская звезда 206
새벽 Рассвет 211
기적 Чудо 213
대지 Земля 215
나쁜 날들 Дурные дни 218
막달레나 1 Магдалина 1 220
막달레나 2 Магдалина 2 222
겟세마네 동산 Гефсиманский сад 224
8부 날이 갤 때 Когда разгуляется
모든 것에서 나는 Во всем мне хочется дойти… 231
유명해지는 건 꼴사납다.
Быть знаменитым некрасиво… 234
영혼 (내 영혼, 내 세계에 속한) Душа 236
무제(無題) Без названия 238
변화 Перемена 240
7월 Июль 242
날이 갤 때 Когда разгуляется 244
가을 숲 Осенний лес 246
첫 서리 Заморозки 248
황금 가을 Золотая осень 249
밤 Ночь 251
지평선이 불길하고 급작스럽다
Зловещ горизонт и внезапен… 254
길 Дорога 256
병원에서 В больнице 258
음악 Музыка 261
공백 후에 После перерыва 263
첫눈 Первый снег 265
눈이 온다 Снег идет 267
눈보라가 그친 후 После вьюги 269
모두 이루어졌다 Все сбылось 271
폭풍이 지나간 후 После грозы 273
노벨상 Нобелевская премия 275
넓은 세상 Божий мир 276
유일무이한 날들 Единственные дни 278
주(註) 281
작가 연보 287
작품에 대하여: “모든 것에서 나는 본질에 다다르고 싶다”(최종술) 297
● 러시아가 낳은 20세기 최고의 서정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 세계를 담은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가 ‘세계시인선’ 45번으로 출간되었다. 단 한 권의 소설 『닥터 지바고』로 널리 알려졌으나, 파스테르나크는 소설가 이전에 시인으로서 러시아 20세기 시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서정시인이다. 초기에 시집 『첫 시절』부터 파스테르나크를 러시아의 대표 시인으로 자리 잡게 한 『나의 누이인 삶』, 그리고 『닥터 지바고』에 부록으로 실린 『유리 지바고의 시』를 포함한 8권의 시집에서 발췌한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유명한 화가였던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 아래에서 예술가적 기질을 타고난 파스테르나크는 유년 시절 음악으로 예술 세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고향 마르부르크에서 첫사랑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후, 파스테르나크는 감정의 격동을 겪고 날카로워진 감각으로 실존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의 경험은 파스테르나크를 시인으로 재탄생시켰고, 시인은 당시의 심정과 통찰을 「마르부르크」에 고백하고 있다.
나는 벌벌 떨었다. 나는 불붙었다 꺼졌다.
나는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방금 청혼했다.
하지만 늦었다. 나는 겁먹었다. 거절당한 나.
그녀의 눈물은 얼마나 가슴 아픈가! 나는 성자보다
축복받았다.
나는 광장으로 나섰다. 나는 다시 태어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살아서 나를 아랑곳 않고
작별의 의미 속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마르부르크」,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에서
새로워진 시각으로 시를 써 내려가던 시인은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을 맞이하면서 러시아의 자유로운 시대정신에 도취되었다. 이후 파스테르나크는 개인적 체험보다 역사적 체험, 혁명의 의미,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 거시적 주제를 시로 풀어내며 시 세계를 확장했다.
● 모든 것에서 시를 발견한 ‘무경계’의 시인
파스테르나크는 인간과 자연의 긴밀한 관계성에 주목한 시인이다. 인간과 자연의 정신적 교감을 노래하며 생명과 삶의 환희를 노래했다. 자연을 의인화하여 묘사하기도 하고, 인간 역시 자연을 통해 그렸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과 자연을 상호의 틀 안에 가두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자 함이었다. 파스테르나크의 시 안에서 인간과 자연은 동등한 관계 속에서 우주적 통합을 이룬다.
초원이 우리를 판단케 하고 밤이 결정짓도록 하자.
그렇지, 그렇지 않다면 어찌 태초에
앵앵대는 모깃소리가 떠가고, 작은 개미들이 기어가고,
엉겅퀴들이 얼굴을 내밀고 양말에 달라붙어 댔겠어?
사랑하는 사람아, 그것들을 덮어! 눈이 멀 거야!
온 초원이 타락 이전 같다.
전부 평화에 감싸였고, 전부 낙하산 같다.
전부 솟구치는 환영이다!
―「초원」,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에서
파스테르나크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 했다. 이는 파스테르나크가 시를 두고 “이것은 급격하게 가득 찬 호각 소리, 이것은 으스러진 얼음 조각들이 깨지는 소리, 이것은 잎을 얼리는 밤, 이것은 두 나이팅게일의 결투”라고 말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사소하고 세세한 것, 처음 목격되는 세계의 아름다움에서 시를 발견한 시인은 시가 모든 것에 녹아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합일’의 태도는 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시적인 것’과 ‘산문적인 것’의 전통적 경계를 뛰어넘어 파스테르나크가 시 세계를 확장하도록 만들었다.
● 내적 망명 시인, 삶 전부를 창작에 바치다
러시아 혁명기에 살았던 파스테르나크는 동시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사상적 검열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닥터 지바고』의 파급력, 서정시를 새로운 수준으로 올려놓은 작가적 영향력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정치적 압력 때문에 거절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파스테르나크는 조국을 끝까지 사랑했고,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민중의 이상으로 일구어낸 혁명이 불러온 잔혹성에 의문을 품었지만, 조국을 떠나지 않고 러시아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갔다.
창작의 목적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
찬사가 아니다, 성공이 아니다.
아무 의미도 없이 모두의 입술에
오르내리는 건 수치다.
참칭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광활한 대지의 사랑을
결국 자신에게 끌게, 미래의 부름을
듣게 살아야 한다.
전 생애의 장소와 장을
난외에 표시하며
종이 사이가 아니라 운명 속에
공백을 남겨야 한다.
―「유명해지는 건 꼴사납다.」, 『끝까지 살아 있는 존재』에서
파스테르나크는 사회와 역사 속에서 ‘내적 망명’을 한 작가였다. 혁명에 바치는 서사시와 산문들을 썼고, 특히 산문에서는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의견도 가감 없이 피력했다. 죄 없는 동료들이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시인 본인도 정치적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족은 망명했지만 시인은 생의 마지막까지 조국에 남아 삶과 사회주의, 혁명의 관계를 진지하게 사색하며 작품 속에 녹여 냈다. 파스테르나크는 “나는 이제 죽을 것이다. 그러나 내 삶은 남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삶과 생명을 찬미했던 파스테르나크의 시는 코로나19 시대에 우울감과 불안감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