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33 | 분야 오늘의 젊은 작가 33, 한국 문학
“지금 여기가 외계 행성인가 싶지요?”
화성을 닮은 붉은 토양의 마을, 똑같은 얼굴로 미소 짓는 사람들
이상하고 섬뜩한 활기 아래 감춰진 끔찍한 욕망의 역사
김희선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그동안 『무한의 책』, 『죽음이 너희를 갈라놓을 때까지』 등의 작품을 통해, 반전을 거듭하며 무한히 확장하는 소설 구조로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다각도로 탐구해 왔던 김희선의 소설은 그만의 유일한 장르가 된 지 오래다. 새롭게 내놓는 이번 소설에서 김희선 작가는 광산업이 쇠한 뒤 황폐해진 마을이 SF 촬영 영화 부지로 선정된 뒤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들과 그 사건의 배후에 놓인 욕망의 연대기를 추적하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반전의 끈을 놓지 않는다.
김희선 작가가 「작가의 말」에 “그동안 나는 극동리에 대해서만 말해 온 건지도 모른다.”라고 쓴 것처럼 이번 소설은 김희선 특유의 기묘하고 다층적인 소설 세계를 기다려 온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고, 뒤이어 “앞으로도 영원히 극동리를 이야기할 테지만, 그 마을 내부에는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삶과 비밀들이 여전히 숨어 있을 것이다.”라고 쓴 만큼 이번 소설로 김희선의 작품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는 몰랐던 삶의 모습과 비밀의 얼굴을 만나는 훌륭한 모험이 되어 줄 것이다.
■거짓된 활기 너머의 진실
붉은 토양의 허허벌판뿐이던 마을 ‘극동리’가 활기를 되찾은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해가 뜨면 일어나 하루를 착실히 준비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노동을 마친 뒤 티브이 앞에 모여 앉아 마을의 번영에 관한 뉴스를 시청하며 기쁨을 나눈다. 그러나 이토록 바람직한, 너무나 바람직해 어딘가 섬뜩하기까지 한 활기는 때때로 기이한 빈틈을 보인다. 마을 시청 광장 앞에서는 한 노인이 직접 설치한 전동 드릴을 향해 전력 질주하여 이마가 뚫려 죽고, 마을의 유일한 어린아이 ‘경오’는 자꾸만 자신의 할머니가 진짜 할머니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거짓된 활기가 내보이는 빈틈을 끈질기게 파고들며 진실을 향해 서슴없이 다가간다.
■외계가 아닌 이곳
황폐한 붉은 공터가 화성의 토질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극동리는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의 촬영지로 선정된다. 마을 공터에는 우주 기지가 설치되고, 엑스트라로 동원된 마을 주민들은 우주복을 입고 공터를 질주하며, 가게 간판마다 외계 행성 이미지가 그려진다. 광산업이 쇠한 뒤 쇠퇴일로를 걷던 마을이 하루아침에 화성을 방불케 하는 낯선 공간으로 변모한 것이다.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다룬 SF 영화들이 흔히 그렇듯, 극동리가 화성처럼 변한 뒤에도 원인 모를 끔찍한 일들이 발생한다. 야산에 묻힌 시체들이 발견되고 사람들 머리 위로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러나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의 인물들은 영화를 관람할 때처럼 모든 문제를 외계 존재의 탓으로 돌릴 수가 없다. 마을은 화성과 꼭 닮은 모습이 되었지만 결코 화성이 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언가 위험한 것은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우리 곁에 이미 도착해 있다.
■모두 같은 얼굴
인간이 공통된 욕망을 가진 쪽으로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면 욕망의 모습은 이럴 것이다. 영원한 젊음, 아름다움, 부와 장수. 같은 욕망을 지녔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서로 닮아 있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의 인물들이 거울 속에서 문득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것 역시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 서로 닿아 있기 때문일 테다. “읽고 있던 자신조차 이 거대한 메스게임 혹은 플래시몹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박서련 소설가의 추천의 말처럼 소설 바깥의 우리도 같은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한 사람의 추악한 욕망이 모두를 파멸시키는 일방적인 전개가 아닌, 한 사람의 추악한 욕망이 사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하는 작품이다. 김희선의 소설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랫동안, 각자의 가장 내밀한 욕망을 자꾸만 일깨우고, 불편하게 하고, 의심하도록 만들 것이다.
■추천의 말
이야기의 문을 여는 자는 만나게 된다. 시공간이 뒤섞이며 뒤틀린 기이한 세계를. 느끼게 된다. 호기심과 긴장에 등 떠밀며 걸어가면서도 서서히 고조되는 흥분과 재미를. (……) 예측은 어긋났다. 예상은 실패했다. 판단은 유보됐다. 끝까지 궁금하고 끝까지 재미있고 끝까지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나는 책장을 덮고 정체불명의 누군가를 향해 말했다.
“이 소설 정말 훌륭하지 않아?”
─정용준(소설가)
다소의 부끄러움을 무릅쓰며, 소설 쓰는 사람이 타인의 소설을 보고 하는 솔직한 생각 중 하나를 털어놓으려 한다.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기가 얼마나 아까웠을까!’ 매력적인 소설일수록 저자가 이 작품을 얼마나 간절히 완성하고 싶었을까를 상상하게 된다.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는 그런 소설이다. 저자는 이 소설의 완성을, 독자는 이 소설과의 조우를 기념해 마땅하다.
─박서련(소설가)
■본문 발췌
우주복을 입은 엑스트라들이 웅성댔다. 벌써 몇 번째 다시 찍는 것인지 몰랐다. 어느새 깊은 밤이 되어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그들은 쉬는 시간을 틈타 은박지로 만든 것 같은 옷을 벗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고는 촬영장 구석에 놓여 있는 생수병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누구 하나 관두고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 같은 시절에 이보다 나은 부업은 좀처럼 없었으니까.
―16p
여자가 비명을 지름과 동시에 전동 드릴의 날이 노인의 이마를 뚫었다. 피와 뇌수가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노인은 팔다리를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것도 잠시, 곧 축 처지더니 제어기에 몸을 대충 걸친 형상이 되었다가 툭 떨어졌다. 주변 벤치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섰다. 카페 주인이 밖으로 뛰어나가는 걸 여자는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슬로모션처럼 느릿느릿 전개됐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도 그 순간이었다. 어떻게 지구가 이렇게 빨리 회전할 수 있지? 잠시 휘청거리던 여자는 테이블 모서리를 붙들고 겨우 일어나 벽을 짚으며 카페 출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34p
주민들은 마치 화성인이 된 것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화성을 꿈꿨고 화성을 상상했으며 극관, 대운하, 먼지폭풍 같은 단어들에 대해 공부했다. 마을 초입 식당 간판에는 별, 달, 태양계의 그림이 들어갔고, 타오르는 듯한 주황빛의 화성 사진을 곁들이지 않은 가게는 눈길조차 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영화 세트장이 조성된 공터 쪽으로 빠지는 교차로 한구석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검은색 현수막과 빛바랜 피켓을 눈여겨본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은. 한껏 들뜬 마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검고 음울한 플래카드에는 다음과 같은 구호가 흰색 페인트로 삐뚤삐뚤 적혀 있었다.
“화성은 물러가라. 여기는 지구다.”
―75p
그의 눈꺼풀이 떨리기 시작한다. 깊고 어두운 굴. 그 내부의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아버지는 어린 그의 손을 잡고 그 깊고 깊은 터널 속을 내려가고 또 내려갔다. 발밑에 아무것도 없는 듯 오직 낙하만이 계속될 때, 그가 무서워 울면 아버지는 소리치곤 했지.
―정신차려. 이게 너의 왕국이니까. 아니지. 이건 너의 왕국이 아니라 나의 왕국이야. 이제 곧 너는 나고 나는 네가 될 것이며 우린 그렇게 영원히 함께하게 될 테니까.
―81p
무중력 공간을 걷듯 붕 뜬 기분으로 산을 내려오니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 흙 묻은 삽을 비닐에 싸서 자율방범대 순찰차 트렁크에 숨기고 조수석에 굴러다니던 페트병 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냉수가 온몸을 타고 흐르자 이상한 의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대체 어디서 이런 괴력이 솟아나는 걸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피로를 견딜 수 없었고 축 처진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삶은 다 끝난 것 같았고 뭘 해도 새로운 희망 따윈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아침에 눈을 뜨면 날아갈 듯 몸이 가벼웠다.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을 전체가 기묘한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173p
무언가 위험한 것이 온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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