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진아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9월 10일
ISBN: 978-89-374-4487-6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5x205 · 288쪽
가격: 14,000원
분야 한국 문학
1부 7
2부 69
3부 157
4부 245
추천의 글 275
제자리에서 돌기, 뛰기,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조예은(소설가)
나의 윤곽, 나의 주름—황예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281
2020년 장편소설 『오늘의 엄마』를 출간하며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강진아의 신작 장편소설 『미러볼 아래서』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미러볼 아래서』는 스물일곱 살 ‘아엽’이 사랑하는 고양이 ‘치니’를 잃어버리게 되며 벌어지는 한여름 동안의 일들을 담고 있다. 전작 『오늘의 엄마』에서 아픈 엄마를 간병하며 하나뿐인 언니와 고약하고도 끈끈한 감정을 주고받는 ‘정아’의 성장을 담담하게 묘사해 낸 작가는, 신작 『미러볼 아래서』에서 가족을 넘어 친구, 이웃으로 이어지는 우리 곁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저마다의 노력에 대해 쓴다. ‘엄마의 죽음’에 이어 ‘반려동물의 실종’이라는, 몹시도 마음을 내려앉게 하는 일들을 다루지만, 그 일을 통과해 내는 강진아 작가의 인물들은 쉽게 울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엉뚱하고 무뚝뚝한 ‘아엽’의 동선을 뒤쫓으며, 그가 지나는 복잡한 마음의 경로를 함께 걷는다. 울기엔 너무 바쁘고 사실은 포기하고도 싶은 마음. 그 마음을 따라 가다 보면, 아엽이 보여 준 것만큼이나 찌그러지고 눌린 모양의 마음 하나를 맞닥뜨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우리가 오래 품어 온,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대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여름
스물일곱 살의 여름은 아엽에게 특히나 가혹하다. 졸업 후 내내 함께 일해 온 선배 부부의 회사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하고, 아엽이 그들과 일하는 걸 탐탁지 않아 했던 친구 ‘미옥’에게는 어쩐지 그 사실을 털어놓기가 힘들다.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고용복지센터에서 아엽은 아이러니하게도 영상 편집 수업 강사 ‘병선’에게 영상 편집 과외를 해 주며 30만 원을 벌게 되지만, 갑자기 생긴 30만 원은 갑자기 사라진 ‘치니’를 찾기 위해 고양이 탐정을 고용하며 아이러니하게 사라진다. 이상한 일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오랜 친구인 미옥에게는 해고 얘기며 치니 얘기며 할 수가 없는데,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선은 아엽이 면접 볼 회사를 알아봐 주고, 키우던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말에 돕겠다고 나선다. 올여름은 왜 이렇게 더운 걸까?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치니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를 미옥에게 들려줄 날이 올까? 사라진 치니를 찾을 수 있을까? 병선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바깥의 최고 기온도, 마음의 적정거리도 엉망진창인 여름. 뙤약볕처럼 뜨겁고 미러볼처럼 어지러운 아엽의 여름은 어떻게 지나갈까.
■뱅글뱅글 도는 물음표
아엽은 ‘치니를 찾아야 한다’는 낯선 목적을 지닌 채 익숙한 동네를 순찰한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전단지를 붙이다가 만난 동네의 캣맘과 차츰 가까워질 무렵, 캣맘이 건넨 질문에 아엽의 마음은 아수라장이 된다. “아엽 씨는 그런 생각 안 들어요? 치니가 왜 그랬을까.” 그 말은 곧 치니가 일부러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말, 자신의 의지로 아엽을 떠났다는 말. 캣맘의 말은 아엽이 오래 품어 온 삶의 질문을 불러온다. 왜 나는 언제나 혼자인가? 그 물음표는 타인을 겨누기도 하지만 결국엔 스스로를 찌른다. 유일하게 내 편이던 치니가 사라졌고, 그 일은 왜인지 어린 시절 자신을 떠나간 엄마를 떠오르게 하며, 이 슬픔을 유일한 친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고, 호감을 보이며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는…… 나. 문제는 전부 나에게 있는 건 아닐까? 슬픈 물음은 슬픈 마음을 부르지만, 아엽은 슬픔에 머무르지 않는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아엽은 자학의 질문을 멈춰 줄 새로운 물음표를 추가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언제나 남겨지는 쪽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다.
■최선의 마음, 마음의 최선
강진아 작가는 관계에 요령을 부리지 않고 사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물들을 그린다.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눈을 떼지 않는 이들. 『오늘의 엄마』의 정아가, 『미러볼 아래서』의 아엽이 그렇듯이. 이들은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알아채고 바로잡는 데에 조금 느리고, 새로운 친구를 받아들이는 일에 어색하게 굴지만, 결코 관계의 책임을 회피하지는 않는다. 아엽은 자신이 오랜 시간 고정해 둔 관계에 대한 편견에서 다른 면을 보려고 최선을 다한다. 자신이 언제나 배려하는 쪽이었다는 생각, 이 관계가 지속되는 데에는 나의 노력이 훨씬 컸으리라는 생각에서 한 걸음만 비껴 서 보기. 나의 입장을 말하고 타인의 사정을 묻기. 어쩌면 한 계절 동안 아엽이 해낸 가장 힘든 일은 그것이 아닐까. 치니를 향해, 미옥을 향해, 엄마를 향해 아엽이 걷고 달린 거리는 최선의 길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소중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과 이동거리를 축적하는 아엽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맺은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니가 중요해서”, “너한테는 제대로 말하고 싶은” 거라고 말하는 아엽으로부터, 소중한 이를 대하는 단순하고도 어려운 마음의 원칙을 배우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아엽은 오른팔을 뻗어 선풍기를 틀고는 치니 등에 코를 파묻는다. 목과 머리에 흐르던 땀이 날아가며 제법 선선하다. 치니도 그렇게 느꼈는지 골골골 기분이 좋다는 표시를 해 준다. 세상은 공포스럽게 더워지고 있고 하나밖에 없는 에어컨은 고장 났지만, 아엽은 괜찮다. 치니가 골골골 진동을 만들 때는모든 것이 괜찮다. 아엽은 치니의 등에 코를 더 깊이 파묻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치니 털이 콧구멍 속으로 가득 들어온다.
-10쪽
아엽에게 미옥은, 학년이 바뀌고도 바뀌지 않은 유일한 친구였다. 아엽은 교우관계라는 것을 정확하게 1년에 맞추어 시작하고 끝냈다. 초중고 12년간, 개학과 함께 친해진 친구와 겨울방학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어김없이 소원해졌다. 더 긴 관계는 아엽에게 불가능했다. 관계가 끊어지는 이유도 알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떠날 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쟁이.
-25~26쪽
더 늦어지기 전에 전단지를 붙여야겠다. 아엽은 실내등을 켜고 노트북에 프린터를 연결했다. 징징 프린터가 전단지를 뱉어 내는 동안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입을 벌린 채로 있는 서랍장과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에 값나가는 물건 따위는 없다. 서랍장과 옷장이 통째로 사라져도 괜찮다. 사라지면 안 되는 건 치니뿐이다. 유일하게 소중한 것, 아엽 인생에서 처음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 그게 사라졌다.
-61~62쪽
“무슨 일 있어요?”
아엽은 개인 수업을 못 해 주는 게 미안해서 사과부터 했다. 학생으로 불참하는 것보다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받았던 30만원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더니 조금 화를 내는 투로 병선이 답했다.
“됐어요, 그건. 수업은 천천히 하죠. 이유 물어보면 실롄가요?”
“별일은 아니구요, 고양이가 없어져서요.”
핸드폰 너머로 짧은 침묵이 이어져서 아엽은 후회했다. 그 호흡 동안 병선이 자신을 비웃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 버렸다. 그러지 말걸, 입술을 씹는데 병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키우던 고양이요?”
“그렇긴 한데요.”
“근데 왜 그렇게 말해요. 그거 큰일이잖아요.”
-92쪽
■추천의 말
아엽의 여정을 지켜보는 내내 많이 슬펐다. 내 가장 밑바닥의 부분을 간파당한 듯한 기분에 괴롭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아엽을 응원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 불완전한 존재이고, 관계라는 건 곳곳이 부식된 나무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다리는 다리. 건너야만 할 때는 온다. 눈을 꾹 감고 다리의 한쪽 끝에 머물던 아엽이 이내 발을 떼는 모습을 꼭 지켜봐 주길. 성장하고 변화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언제나 멋지니까.
_조예은(소설가)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으러 세상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사람들과 마주친다. 서로 맞닿는 순간 선명해지는 것은 나의 윤곽, 내가 이렇게 생겨 먹었구나. 나를 서운하게 하고 주눅 들게 만든 건 세상의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찌글찌글한 나의 주름을 매만지면서 그때 당황했을 그들도, 또 미숙했던 나도 뒤늦게 받아들인다. 강진아가 그려 내는 뚱한 표정의 외톨이, 하지만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걸 감싸고 있는 풍경은 절대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 이유로 결국 상대에게 가닿게 되고 마는 인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_황예인(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몇 해 전,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새집에서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전에 살던 할머니가 고양이 사료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이 집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듯 고고한 모습이었고 저는 주눅이 들어 고양이들 눈치를 살피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노랑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노랑 고양이를 알아보고, 노랑 고양이를 생각하고, 노랑 고양이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노랑 고양이는 집에 들이면 힘들어했기 때문에 야외에 사료를 두고 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행히 비가 오면 그곳에서 지내 주어서 저는 매일 비가 오기만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노랑 고양이가 하루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았습니다. 남의 집 담벼락이나 차 밑에 노랑 고양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예민해졌고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노랑 고양이를 알기 전의 제가 보았더라면 정신이 나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
노랑 고양이는 이제 없고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고양이들과 함께 놀다 보면 노랑 고양이 생각이 자주 납니다.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노랑 고양이와는 다른 형태로 지금의 고양이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노랑 고양이에게 너무 커다란 마음을 주어 버려서 다른 존재로는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겼습니다. 지금의 고양이들과 보내는 일상은, 그 구멍을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저를 스쳐 간 수많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아주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저는 고양이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2021년 가을 강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