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근대란 무엇인가?
동양적 전통과 서양적 현대가 충돌하는 근대라는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문학의 길을 걸어온 한중 대표작가 23인의 고백!
한중 문인들이 ‘근대와 나의 문학’이라는 주제 아래 한자리에 모여 발표한 글들을 모은 근대와 나의 문학을 민음사에서 출간하였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붉은 수수밭」의 모옌을 비롯하여 장종, 쑤팅, 차오원쉬엔, 진런순 등 중국 작가 11명, 그리고 한국 시문학의 거대한 산맥 고은을 비롯한 김광규, 김원일, 정호승, 신경숙, 은희경 등 12명의 한국 작가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문학의 길을 걸어오면서 가졌던 문제의식과 해결책의 모색, 여러 문화 현상에 대한 단상, 현재의 화두 등이 이 책에는 아주 사적인 목소리로 잘 녹아들어 있다.
한국 작가들에게 근대가 의미하는 것
고은은 “왜 근대에만 갇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근대는 근대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완결적이지 않다. 근대가 아무리 나의 동시대의 사유 공간일지라도 나는 그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한다. 행여 근대라는 것이 하나의 의식 장치로 고착화된다면 나는 그런 근대는 가차 없이 사절할 것이다. 근대란 근세, 중세 그리고 고대의 아득한 후예로서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근대중심주의는 커다란 지적 오류인 것이다. 나의 언어는 존재가 언어에 속하지 않거나 언어가 존재에 속하지 않는, 상호 해방을 위한 존재 언어 내지 언어 존재의 경지를 꿈꾼다. 나의 언어는 우주의 한 사투리가 될 수 있다.”라고 피력한다.
김인숙은 “문 저편, 거기에 내가 다리를 건너온 시대가 있다. 그것은 한 개인의 기억, 너무나 보잘것없었으나 누구도 보잘것없다고 비난할 수 없는 한 늙은 여인의 생이 담긴 기억이다. 늙은 엄마는 나의, 내 시대의 뿌리이다. 내가 지금 무엇을 쓰고 있든, 그것이 내 뿌리의 흔들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뿌리는 땅 속에서부터 흔들려, 비와 햇살을 향해 뺨을 내밀고 있는 연한 잎들을 고통과 설렘으로 달군다. 이것이 결국, 나의 글쓰기이다.”라면서 자신의 글쓰기의 근원은 어머니로 상징되는 근대라고 고백한다.
정양은 “가난과 부패로 얼룩진 이 지긋지긋한 시들이 어렵던 시절을 일삼아 되새기는 단순한 회고적 기록이 아니기를, 사라져야 할 것들이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 역사적 배반감을 쓰라리게 확인하는 거울이기를 기대”한다.
근대의 산물인 고독을 주제로 글을 써 온 작가 은희경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작품 세계의 근원을 밝힌다. “근대는 인간을 해방시켜 개인화했고, 그 결과 개인은 고독해졌다. 내게 있어 가장 큰 근대의 산물은 고독이다. 그러나 어떤 정서적 사회적 기계적 메커니즘에 의해서든 인간은 타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소통을 갈망하는 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며, 저마다 고독으로 성을 쌓고 있지만 누구나 사랑을 원한다는 데에 현대적 휴머니즘이 자리한다. 나는 내 소설이 인간의 고독에 대해 더 많은 관점을 갖춰 나가기를 원한다. 인식, 즉 안다고 해서 고독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문학에서 구하는 위로는 줄 수 있을 것이다. 존중받고 행복해질 인간의 권리는 어떤 세상 끝에서라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인 것이다.”
중국 작가들에게 근대가 의미하는 것
중국 작가들의 글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고민이 드러나 있다. 세계의 중심이었다가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버린 근대의 조국, 이념과 현실의 괴리, 급격한 경제 성장의 빛과 그늘, 이에 대한 문학의 대응 등 근현대에 들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조국에 대한 진단과 감상이 풀어져 있다.
“문학은 경계 설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문학은 우리의 생명 속에 존재하고, 우리의 감정 속에 존재하며, 한 세대 또 한 세대의 열독으로 형성된 공동의 경험 속에 존재한다.”―차오원쉬엔
“무수한 오락이 진정한 문학 창작과 비평, 열독 행위를 주변화하는 이 시대에 문학은 비굴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오락의 악귀’를 헌납할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의 소중하고 고귀한 본질로써 자신을 지켜 내야 할 것이다.”―모옌
한중 문학 포럼의 취지
‘일류(日流)’, ‘화류(華流)’, ‘한류(韓流)’라는 말로 표현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문화 교류가 급속히 증가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해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문학은 이 교류를 보다 깊이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우창 교수는 “문학을 통해 서로의 생각과 인문적 가치를 나눔으로써 평화와 공존을 꾀하자는 것은 이 지역의 평화와 안녕을 위한 일일 뿐 아니라 21세기 세계 전반의 진로에 지혜를 보태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한중 문학 포럼의 취지를 밝혔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모옌 역시 “명작 앞에 국경, 이념은 문제가 안 된다. 동북아 공동체가 형성되려면 먼저 국가들 사이에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 서로의 소설을 많이 읽으면 친구가 될 것”이라며 국경을 초월한 문학의 교류를 강조했다.
문학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한 한중 작가들. 이 책을 통해서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 작가들이 동양적 전통과 서양적 현대가 충돌하는 근대라는 삶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탄생시킨 주옥같은 작품들의 뿌리를 캐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작가의 글
근대와 나/고은
근대와 나의 문학/김광규
100억 달러의 아이/김연수
근대와 나의 문학/김원일
나의 늙은 엄마/김인숙
‘시간의 종말’일까, ‘시간들’일까/김진경
일상이 된 근대와 함께 살며/신경숙
세상과의 연애를 꿈꾸는 시/안도현
지난 15년 그리고 앞으로 15년/유중하
근대의 발명품, 고독/은희경
근대와 나의 문학/정양
1970년대와 나의 시/정호승
중국 작가의 글
혼란한 시대의 문학의 선택/차오원쉬엔
문학은 사회 참여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천잉쑹
추구와 자아/추푸진
‘현대성’도 필요하지만 더욱 필요한 것은 ‘민족성’이다/두안충셴
‘세계화’와 민족정신/황런커
볏짚 속의 은바늘을 찾아서/진런순
토행손과 아틀라스가 내게 준 계시/모옌
현대사와 작가의 창작 경험 서술의 무게/샤롄셩
사회 발전과 작가의 창작/양사오헝
소설의 소리/장칭구어
현대사와 중국 문학/장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