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죽이기』로 2004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작가 김주희의 첫 소설집
소심, 우울, 엉뚱, 발랄한 새로운 감성과 종횡무진 작렬하는 유머로 마이너 청춘을 대변한다
파란나비원숭이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원숭이목 긴꼬리원숭잇과분포 지역: 베트남 식성: 채식특성: 털이 파란색이고 무리를 이루지 않고 살아감.1976년 이후 자연 상태에서는 멸종한 것으로 기록되었음.호치민 동물원과 서울대공원의 희귀 동물 교환 사육으로 현재 서울 방문 중.
파란나비원숭이족(族)동물계 척추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분포 지역: 원룸 밀집 지역, 홍대 앞, 청량리역, 서울대공원 등식성: 잡식.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보다 소보로빵을 선호함.특성: 비정규직만 전전하고 연애를 해도 늘 차이기만 함.대체로 혼자 지내지만 가끔 서로 만나 밥을 먹거나 동거하기도 함.
생애 처음 쓴 장편소설『피터팬 죽이기』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김주희의 화려한 등단을 두고, 문학평론가 이남호는 “충분히 주목할 만한 문학적 사건”이라고 평했다. “언어의 질감과 목소리, 그리고 이따금 행간에 드러나는 낯섦”의 매력, “젊음의 에너지와 고뇌와 그 특유의 이상함”(문학평론가 김화영)으로 새로운 감성 지대를 개척한 김주희가 첫 소설집을 가지고 돌아왔다. 등단 후 꾸준히 발표해 온 단편들에서 이 놀라운 작가의 세계가 더욱 깊어지고 다채로워진 것을 알 수 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이 감탄한 “젊음”의 “치열함”이 얼마나 단단하게 진화했는지 이번 소설집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충격 해부, 파란나비원숭이족(族)
88만 원 세대, 이태백, 히키코모리. 신조어는 난무했지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비주류 청년들이 진짜 누구인지 시원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소설집은 아주 개인적이고 감성적인 접근법을 택하여, 기존의 어떤 작품보다 오늘의 마이너 청춘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파란나비원숭이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그들의 우울함과 발랄함을 동시에 꿰뚫어 본 것이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던 잡지사에서는 정부 보조금이 끊기자마자 해고되고(「아빠, 유령, 문법」), 대형 할인 마트 물류 센터 아르바이트 정도의 비정규직을 전전한다(「순수 취향의 악마에게 손수건을 건네지 말라」). 부모의 지원은 바랄 수 없다. 이혼, 교통사고, 연쇄 살인, 뇌졸중, 의처증 등으로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유령이 되어 찾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아빠, 유령, 문법」) 감사해야 할 판국이다. 그래서 침대, 옷장, 책상만 있는 간소한 원룸이 주 무대가 되고, 주인공들의 방은 곧 그들의 우주다. 신경림 시인의 말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배고픔은 소보로빵과 닭갈비(「파란나비 효과 하루」)로 잠시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방 안에 홀로 앉아 싸워야 하는 외로움은 젊은 주인공들을 자살로까지 내몬다. 뉴스에는 비록 청년 실업 비관 자살로 오보되지만, 사랑이야말로 여전히 가장 치명적이다(「안녕, 동물원, 안녕」).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상대는 수습 불가능하게도 게이(「페팅하러 가도 돼?」)이고, 슬슬 관심이 가던 상대는 마음을 전하기도 전에 12층에서 뛰어내려 버린다(「열대야」). 짝사랑하는 남자 애에게 자살하겠다고 협박해 봐도 홍대 앞 클럽에나 가자고 회유하며 제대로 듣지 않으니, 이들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멸종 직전인 행운의 동물 파란나비원숭이나(「파란나비 효과 하루」) 얼굴만 아는 사이인 또래 유령 정도다(「쉿, 한 사람만 아는 관계」).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면 우울하고 칙칙할 것 같은데, 이야기는 의외로 엉뚱하고 발랄하게 전개된다. 미소와 폭소가 번갈아 가며 이어지게 만드는 작가의 감각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예민한 감성은 독인 동시에 해독제이다. 너무나 예민하여 자꾸 자살하는 바람에 결국 지구에 단 한 마리 남은 마지막 파란나비원숭이가, 자살 방지 특공대로 도처에서 활약하는 아이러니에 이 소설집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세상에 또 사랑이란 말인가? 못된 사랑. 지겹고도 잔인한 사랑. 그러나 유전자에서 지워지지 않을 사랑. 인간이라는 털 없는 원숭이 종족이 멸망할 때까지 사랑은 끝내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이다. 김주희 소설 속 인물들은 죽지 않기 위해서 사랑한다. 살고 싶어서 너무나도 간절하게 사랑을 갈구한다. 이 순진하리만큼 절박한 믿음과 열망이 김주희의 소설을 애틋하고도 따뜻하게 만드는 원리다. 소설 속 인물들은 경제적 독립을 하지 못한 채 가구도 없는 방에서 외톨이로 지내며, 사랑에까지 실패한 순간 자살을 시도할 만큼 우울해한다. 외로움에 지쳐 유령이 될 정도다. 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얘기를 하면서도 곳곳에서 수시로 작렬하는 유머와 엉뚱발랄한 감성이 탁월한 우울 상쇄 에너지가 된다. 자살 방지 특공대 역할을 하는 파란나비원숭이야말로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가 선택한 대표적인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 박상수(시인, 문학평론가)
■ 줄거리
파란나비 효과 하루 ‘나’와 ‘음악 하는 서’, ‘썩은 사과’와 ‘스토커’가 동물원에서 파란나비원숭이를 구경한다. ‘나’는 ‘음악 하는 서’를 짝사랑하여 무조건 따라온 것이고, ‘썩은 사과’는 ‘스토커’와 완전히 헤어지는 조건으로 마지막 데이트를 하러 왔다. 파란나비원숭이는 예민한 성격 때문에 평소에는 통나무 속에 숨어 잘 나오지 않는데, 그날따라 네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연히 얼굴을 내밀었다 도로 들어간다. ‘썩은 사과’가 원숭이의 예민함을 비웃자 ‘나’는 발끈하여 원숭이에게 사랑한다고 외친다. ‘음악 하는 서’는 원숭이를 보고 나자 ‘나’를 내버려 두고 혼자 훌쩍 가 버린다. 충격을 받은 ‘나’는 ‘음악 하는 서’를 자극하기 위해 자살을 하겠다며 춘천으로 향한다. 하지만 기차를 끈질기게 쫓아오는 파란나비원숭이의 환영 덕택에 자살을 포기한다. 그사이 진짜 자살한 쪽은 ‘스토커’다. ‘나’는 ‘나’와 비슷한 성향이 있었던 ‘스토커’의 죽음을 슬퍼하며 서울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해 텔레비전을 틀었더니 파란나비원숭이가 실제로 동물원을 탈출했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안녕, 동물원, 안녕 ‘스토커’의 입장에서 마지막 며칠을 서술한다.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와의 관계,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 ‘썩은 사과’와의 사랑을 회상한다. 자살 직전, 마지막 데이트가 동물원이었던 것은 생애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빠, 유령, 문법 행운의 파란 원숭이에 관한 전설을 상상하는 ‘나’와 게이 친구 ‘아담’. 그런데 ‘나’의 방에 죽은 아빠의 유령이 나타난다. ‘나’는 인턴으로 있던 잡지사에서 정부 보조금이 끊기자마자 해고된 후 갑자기 문장을 쓸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유령 아빠와 소통하기 위해 메모지에 단어들을 나열한다. 결국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아빠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자, 머릿속에 문장의 법칙이 돌아온다. 순수 취향의 악마에게 손수건을 건네지 말라 매사에 회의적인 ‘나’는 늘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친구 ‘모조 예수’와 순수한 것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그 여자’의 위태로운 관계를 방관한다. 결국 ‘여자’는 청부업자에게 전 재산을 주고 ‘모조 예수’의 한쪽 다리를 망가뜨린다. ‘모조 예수’는 뒤늦게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내’가 진실을 전하자 미쳐 버리고 만다. 페팅하러 가도 돼? 유령 사건 이후 아담이 갑자기 ‘나’의 원룸에 찾아와 지내기로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담이 불쑥 나타난 것처럼 홀연 사라질 것을 예감하고 불안해진다. 결국 처음으로 크게 싸운 후, 두 사람은 성 정체성과는 상관없이 친밀하게 체온을 나눈다. 아담은 다시 떠나지만 ‘나’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열대야 살해당한 엄마의 시신에서 칼을 뽑은 후, 공원을 헤매는 소년. 옆 아파트 같은 층에서 뛰어내린 소녀 유령과 거북이의 유령을 만난다. 쉿, 한 사람만 아는 관계 일가족이 전원 사망한 교통사고 이후, 홀로 남아 혼란에 빠진 청소년 유령 위스퍼는 앞 작품 「열대야」의 소년을 발견하고 몸을 빼앗으려 했지만 얼떨결에 소년을 돕고 스스로는 소멸하고 만다.
■ 본문 중에서 “ (……)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 서의 휴대폰 번호를 아는 여자는 나밖에 없을걸?” “그럼 그 서 씨는 휴대폰을 왜 산 거래?” “아버지가 사 주셨대. 시계로만 사용하면서 이동 통신 회사와 대기업을 속으로 조롱한다는데?” “컬트적인 관계군.” ―「파란나비 효과 하루」, 29쪽 “왜 갑자기 입술을 쳐다보는 거야?” “입술을 통해 식도를 타고 계속 내려가면 심장, 간, 위가 나오겠지? 보이는 장기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기가 있어. 사람들은 이 장기를 빨아들이려고 키스를 해. 이 장기의 이름은?” 골목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마음이야.” ―「안녕, 동물원, 안녕」, 76쪽
유령은 낯선 존재다. 하지만 아빠는 낯익다. 낯설지만 낯익은 존재. 그래, 뉴 파파가 왔다고 생각하자. (……) 홀로그램 전신 영정 사진이라고 생각하자. ―「아빠, 유령, 문법」, 92쪽
“선생님! 발기했는데, 빠른 속도로 자위하고 와도 될까요?” “그렇다면 자퇴를 하고 자위하도록 해.” ―「순수 취향의 악마에게 손수건을 건네지 말라」, 107쪽
하지만 진짜 생명체 아담이 침대 쪽으로 걸어오는 부드러운 소리는 그보다 더 활기 있다. 타인이 곁에 오는 소리. 타인의 손이 움직인 순간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이 잔물결처럼 움직이는 미세한 소리가, 그 타인이 옆에 눕는 소리가, 빛처럼 강렬할 수도 있다니. ―「페팅하러 가도 돼?」, 152쪽
정자였을 때 나는 혼자 살아남기 위해 자궁으로 돌진해 들어갔겠지. 엄청난 숫자의 동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억 년 전 옛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1억 마리 정자들을 추모하고 싶어졌다. 1억 마리의 정자들은 소멸되기 직전 한마음으로 나를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르는데. 저 새끼는 태어나는 대가로 평생 혼자 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야 할 거야. ―「열대야」, 186~187쪽
― 거북 씨, 나한테 오는 길이야? ― 바다로 가는 중. ― 길을 잘못 들어왔어. 이곳은 살인 현장이야. ― 그래도 간다. 희망을 버리는 쓰레기통은 길 끝에 있는 법이다.
―「쉿, 한 사람만 아는 관계」, 221쪽
파란나비 효과 하루 안녕, 동물원, 안녕 아빠, 유령, 문법 순수 취향의 악마에게 손수건을 건네지 말라 페팅하러 가도 돼? 열대야 쉿, 한 사람만 아는 관계
작가의 말 작품 해설|파란나비원숭이족(族)에게 고함 _ 박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