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도언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8년 2월 29일
ISBN: 978-89-374-8176-5
패키지: 양장 · 변형판 135x205 · 276쪽
가격: 10,000원
분야 한국문학 단행본
“삶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비수 같”(시인 천양희)이 “선험적이고 존재론적인 고독감을 따뜻하고 열린 방식으로 접근하”(소설가 박범신)는 “김도언의 세계는 카멜레온적 감수성과 진지한 통찰력”(소설가 권지예)으로 가득하다.“작가 김도언이 거울도, 그림도 없는 요지경(瑤池鏡)을 우리의 눈에 가만히 들이댄다. 거기에, 멀어지고 가려지고 묻혔던 ‘사소한’ 것들의 음울한 귀환이 있다. 일컬어 ‘사소한 멜랑콜리’라지만, 그 어떤 통속과 무협보다 끔찍한 나의 현실이다.”(소설가 구효서)
이른바 인간의 “악취미들”을 심도 있게 파헤치며 불온한 욕망을 천착해 왔던 작가 김도언이 과감한 변신과 함께 첫 장편소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를 내놨다. 그는 이번 소설에서 극단으로 치달았던 과도한 도발을 한 꺼풀 걷어 내고 사뭇 건조한 문체에 무채색을 덧입혀 멜랑콜리의 선율을 아름답게 빚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동선에 따라 공간별로 나누어 총 89개의 신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얼핏 시나리오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독특한 점은 #89가 책의 서두에 위치하고 이후 #1부터 순차적으로 신 번호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곳곳에 심어 둔 조각과 단서를 근거로, 독자들이 인물들의 어긋난 사랑과 어긋난 관계를 일종의 퍼즐 맞추기를 하듯 읽어 나가기 바라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된다.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꿰어 맞추고 나면 독자들은 이제껏 얽혀 있던 그들의 모든 사연과 비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작가 김도언이 들려주는 아름답기까지 한 이 우울의 선율에 귀 기울일 차례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
작가의 말 작품 해설 멜랑콜리, 구원을 향한 둔주곡(遁走曲)_ 정은경
■ 탈출과 자유, 그 구원의 노래
문학평론가 정은경은 작품 해설에서 김도언의 첫 장편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를 “구원과 초월에 관한 이야기”라고 규정했다. 그것은 이 완강한 일상의 풍경 배면에 흐르는 우울의 선율이 탈출 혹은 자유, 그리고 초월과 구원의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도언은 마치 홍상수의 영화처럼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는 우리의 환멸적인 일상과 디테일을 있는 그대로 펼쳐 놓는다. 이전의 엽기적이기까지 했던 잔혹극을 표면에서 지워 버리고, 이번에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그러니까 “우리의 비루한 일상 그대로 출구 없이 ‘닫힌 하루’”를 “지독히 우울한 풍경”을 통해 가감 없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파계승인 아버지와 한센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아들이자 실패한 시인 지망생이요, 우울한 학원 강사인 주인공 ‘선재’가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 여느 다른 인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낙오자’의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사실 이 작품을 구도의 소설로 읽게 만드는 구심점을 이루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재는 53명의 다양한 인간들에게서 법을 구하여 깨달음을 얻는 『화엄경』의 동자 선재(善財)인 동시에, 파계한 아버지와 한센병에 걸린 어머니라는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침으로써 기독교적 구원을 질문하는 인물이며, 또한 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내재적 초월’을 꿈꾸는 시인 지망생이기 때문이다. 원죄를 짊어지고 초월과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 선재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무수한 인간과 현실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이토록 사소하거나, 혹은 완강한 일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남녀 주인공 선재와 소라를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선재의 동생과 소라의 남편은 군 복무지에서, 소라와 선재의 어머니는 ‘성라자로원 한센병 환자를 생각하는 모임’의 위문 행사에서, 소라의 동생은 선재의 아버지와 시내의 어느 분식집에서 등등. 결국 시간상으로 제일 마지막에 놓여야 할 #89를 처음에 배치한 것도 퍼즐을 맞추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인 동시에, 조금씩 어긋나 있던 인물들의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복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른다. 또한 소라가 선재의 어머니 김수임에게 건넨 홍시를 통해, 아주 오래전 선재의 아버지를 파계승으로 내몬 계기가 되었던 홍시를 상기함으로써 원죄에서 해방되고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 추천의 글
요지경(瑤池鏡)으로 보면 세상은 알쏭달쏭하고 묘하다. 각 진 통 안에 거울과 여러 가지 그림을 넣어 만들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긴 하지만 분명 세상의 모습은 아니다. 알쏭달쏭하고 묘한 세상을 보고 싶은 사람의 욕망이 요지경을 만들었다. 소설도 요지경이다. 통속의 거울을 달고 무협의 그림을 넣었다. 시나브로 교양인의 엄숙한 통속과 진지한 무협이 요지경에 더해졌다. 화려한 휴머니즘과 유혹적 인문주의의 풍경에 점차 눈멀어 세상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요지경이 대박을 터뜨리는 동안 뭔가는 아득히 멀어지고, 가려지고, 묻혔다. 작가 김도언이 거울도, 그림도 없는 요지경을 우리의 눈에 가만히 들이댄다. 거기에, 멀어지고 가려지고 묻혔던 ‘사소한’ 것들의 음울한 귀환이 있다. 일컬어 ‘사소한 멜랑콜리’라지만, 그 어떤 통속과 무협보다 끔찍한 나의 현실이다. ―구효서(소설가)
2005년 5월, 그의 첫 소설집을 받으며 푸른 대문 집에 입주한다. 그와 나는 집주인과 세입자 관계다. 그는 부조리한 세계로부터 이중으로 소외받아 왜소한 자들의 숙명을 수놓는다. 동사를 예리하게 겹쳐 한 폭의 태피스트리를 만든다. ‘깡통 맥주’와 ‘캔 맥주’의 어감은 ‘들이켜다’라는 동사에 이르기도 전에 다른 감각을 충동질한다. 그가 첫 장편을 내놓았다. 지리멸렬한 숏으로 이어지는 일상, 정지한 현재형, 이 ‘멜랑콜리’는 그가 만들어 낸 또 다른 환(幻)과 멸(滅)의 세계다. 그는 생활 현실과 글쓰기 작업의 대극을 누구보다 차분히 견뎌 낸다. 낯빛과 말투를 달리하며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듬직하다. 세계와 문학을 조망하는 철학은 차라리 원숙하다. 그의 글은 데뷔 이후 줄곧 다른 형용과 모색을 보였다. 내 천장은 그의 바닥이다. 그의 대지는 내 천구다. 사이, 나는 그에게서 문학적 긴장을 사사 받는다. 독자들이여, 이제 그대들이 김도언의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에 마음 한자리 세낼 차례다. ―신동옥(시인)
■ 작품 해설 중에서
이 작품은 구원과 초월에 관한 이야기다. 그 완강한 일상의 풍경 배면에 흐르는 멜랑콜리의 선율이 탈출, 혹은 자유, 초월, 구원의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하고 있다. 원죄를 짊어지고 초월과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포스트모던 ‘선재’는 길을 떠나는 대신, 일상에서 부딪치는 무수한 인간들과 현실을 향해 묻고 있다. 이토록 사소한, 완강한 일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어떻게 우주를 가로질러(across the universe) 저 최초의 인간의 얼굴과 마주할 수 있는가? ―정은경(문학평론가)
■ 본문 중에서
홍시를 받아 드는 김수임 환자의 손길이 사뭇 떨렸다. 환자는 홍시를 받아 들고는 그것을 가슴께에 꼭 품었다. 그러고 있는 환자의 눈빛이 먼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 눈앞에는 아주 먼 옛날의 고요한 절집 하나가 떠올랐다. 홍시를 가슴에 품은 환자는 파르라니 머리를 깎고 용맹 정진 중이던 젊은 스님을 생각했다. 그 수려하고 맑은 얼굴을 떠올렸다. 환자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환자는 아주 오래전 자신이 젊은 스님에게 함부로 내밀었던 홍시 한 알을 내심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군가의 꿈속에서 재현되었다. ―9쪽
새로 아버지라고 들어온 남자는 첫날부터 미진에게 눈독을 들였다. 미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그 남자의 눈이 무엇을 욕망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자기도 아는 그것을 엄마는 몰랐단 말인가. 결국 우려했던 일이 생겼다. 양아버지가 집에 들어오고 한 달이나 지났을까. 으슥한 밤에 미진은 양아버지에게 순결한 몸과 영혼을 짓밟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날 밤 미진은 울면서 일기장에 자신이 되뇌었던 말을 써넣었다. ‘착한 것은 약한 것이고, 약한 것은 착한 것이다. 난 엄마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것을 꼭 보고 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 한다. 세상의 수모를 견딜 수 있도록 강해져야만 한다.’ ―94쪽 선재는 가슴속에 왈칵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낀다. 그것은 누대에 걸쳐 쌓여 온 설움 같은 것이기도 하고, 설익은 욕망 같은 것이기도 하다. 곧 두 사람은 방바닥에 기울어지듯이 쓰러진다. (……) 그때 선재의 바지 호주머니에서, 식당에서 주워 넣었던 미진의 반지가, 아니 원래 소라의 것이었던 반지가 슬그머니 미끄러져 나온다. 반지는 방바닥에 타원을 그리며 크게 돌기 시작한다. 좨앵 좨앵 좨앵. 반지는 경쾌한 마찰음을 내며 방바닥에 타원을 몇 바퀴 그린다. 남자와 여자는 여전히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데 열중할 뿐이다. 방바닥에 그려지는 타원의 궤적이 점점 작아지면서 반지는 뱅그르르 방바닥에 살며시 주저앉는다. 빈 방 안에는 이제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그때 벽 너머에서 뿌오뿌오뿌오, 장난감 나팔 소리와 따르릉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247쪽
■ 줄거리
소록도 국립 병원에 위문객들이 찾아와 환자들에게 홍시를 건넨다. 그중에서 가장 젊은 여자 환자 김수임은 발간 홍시를 받아 들고, 오래전에 자신이 젊은 스님에게 함부로 건넸던 홍시를 떠올린다. 선재, 선규 두 형제의 아버지는 원래 출가한 스님이었고 어머니는 보살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신분을 넘어 사랑하게 된 두 사람은 파계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그 행복도 잠시, 어머니는 한센병에 걸려 소록도 국립 병원에 보내지고 아버지는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겨 집을 나갔던 것이다. 결혼 후 한 달 만에 영표가 입대하자 소라는 교통사고를 당한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결국 중풍으로 앓아눕게 된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기 시작한다. 소라의 집에 세 들게 된 선재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라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녀를 걱정한다. 선재는 소라가 만들어 내는 소리를 엿듣는 것이 좋다. 이제 선재는 소라의 소리를 모두 구별해 낼 수 있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장난감 나팔 소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 부대에서 복무 중인 선규와 영표는 야외 훈련을 나와서도 충돌한다. 선규는 자신을 가소롭게 여기는 영표에게 보복할 것을 다짐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