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버스토리: 우리에게 도착한 말
-3차적 구술시대와 모두의 주체화
-동시성과 소멸성의 클럽하우스 말하기
-박막례, 밀라논나, 윤여정의 말에 열광하는 이유
* 소설가 편혜영 · 영화감독 김초희 인터뷰
* 『우리 곁의 동물은 행복할까』 오석헌 X 『사서의 일』 양지윤 인터뷰
* 정소현, 윤고은 신작 단편소설 수록
* 메이 정 칼럼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뿌리 깊은 미국적 연원」 특별 게재
* 민음사 창립 55주년 기념 독자 인터뷰 수록
민음사 사옥 5층 복도에는 가로로 긴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액자 안에는 사자성어를 닮은, 그러나 사자성어라고는 할 수 없는 네 개의 글자가 한자로 적혀 있다. 民音天音. 반세기 전에 만들어진 표현에서 현대적 의미를 찾을 만큼 유별난 애사심을 갖고 있진 않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 그 아래를 지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앎은 있다. 사라지는 말을 붙잡아 두는 것이 책이라는 것. 의미 있는 말은 남고, 남는 말이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이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분류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혼란은 ‘클럽하우스’와 함께 시작되었다. 올해 초, 새로운 소통 방식의 출현에 달뜬 분위기 속에서 나도 초대장을 받았다. 몇몇 방에 들어가 대화를 청취했다. 어떤 방은 들어가자마자 나왔지만 다른 방은 며칠간 상주하기도 했다. 휘발되는 대화라는 점에서 쿨해 보였고, 셀럽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동시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라는 점에서 힙해 보였으나, 쿨과 힙의 대열에 합류하진 못했다. 함께하지 못했지만 혼돈과 질문은 얻었다. 사라진 말들은 다 어디로 가는 거지? 그리고 책은? 새로운 구술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이번 호 커버스토리 주제는 ‘우리에게 도착한 말’이다. 말의 현재와 현재의 말을 탐색해 보고자 했다. 디지털에서 실현된 무한적인 차원과 그로부터 생성되는 구술 문화가 ‘모두의 주체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간파하는 임형택은 이 시대의 말하기를 3차적 구술성으로 설명한다. 말하기의 퇴화와 말하기의 확장 사이에서 클럽하우스를 관찰하는 최지향은 동시성과 소멸성을 중심으로 한 클럽하우스식 말하기를 통해 쓰기에서 말하기로 옮겨 가는 온라인 소통 방식의 변화를 감지한다.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서 생각해야 봐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초도 던진다. 출판 분야에 부는 구술생애사 바람이 심상치 않다. 『가난의 문법』의 저자이자 사회학연구자 소준철은 대화와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한 구술생애사 방법론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을 분석한다. 글로 옮긴 말, 특히 문학잡지에서 두드러지는 ‘좌담’도 빼놓을 수 없는 말하기의 세계다. 신지영은 현실의 대화를 옮기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말에 가해지는 검열과 억압을 발견하기 위해 좌담의 행간에 주목한다. 폭발하는 말하기의 세계에서 지금 우리가 가장 열광하는 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박막례, 밀라논나, 윤여정으로 대표되는 할머니들의 말하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꾼의 탄생을 발견하는 이진송, 이지은의 글은 말 너머에서 오가는 이해와 감정을 통해 말의 내면과 이면을 바라본다. 그러나 변치 않는 말도 있을 것이다. 소설가 문지혁, 극작가 배삼식, 시인 백은선, 이소호는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 실패한 말들의 행로를 저마다의 언어로 기록한다. 부서지는 말들의 잔해에는 새로워지기 위해 깨지는 문학의 흔적과 흔적으로서의 문학이 있다.
에세이 코너에 새로운 필진이 합류했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유진의 ‘구체적인 어린이’는 ‘어린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안에서, 또 옆에서 들여다보는 아동문학 분야의 서평이다. 어린이를 발견하는 일이 어린이였던 우리 어른들을 재발견하는 일이기도 함은 물론이다. 지난 3월 《뉴욕 타임스》에 수록된 메이 정의 칼럼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뿌리 깊은 미국적 연원」을 특별 게재한다. 아시아 여성을 향한 미국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은 인종, 젠더, 계급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유구하게 반복되고 있다. 이 잔혹한 폭력의 구조가 미국의 일이기만 할까.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거울처럼 반사해 볼 일이다.
민음사 창립 55주년을 기념한 특별 인터뷰를 싣는다. 인터뷰의 주인공은 민음사의 오래된 친구들, 말하자면 독자, 이른바 살아 있는 릿터(Littor)들이다. 책과 문학이 그들의 일상이자 이상라고 말하는 소중한 소리를, 말과 분위기를, 《릿터》 30호에 붙잡아 둔다. 도래하는 구술의 시대가 이전의 그것과 얼마나 다르든 어떤 말은 다른 말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그중에는 문학에 진심인 사람들의 소리들이 있을 것이고, 이것은 우리의 유별난 사심이다.
2 Editor’s Note
9 Cover Story: 우리에게 도착한 말
10 — 15 임형택 모두의 주체화, 3차적 구술성
16 — 20 최지향 클럽하우스에서의 말하기
21 — 24 소준철 구술생애사라는 새로운 장르와 그 방법
25 — 29 신지영 ‘문학잡지’의 말들
30 — 34 이진송 할머니 Says
35 — 36 이지은 71세에 만난 마이크와 카메라
40 — 41 문지혁 문학을 빼고 말하기
42 — 43 배삼식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하는, 말
44 — 45 백은선 투명한 것을 오래 들여다보기
46 — 40 이소호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51 Essay
52 — 58 정용준 소설 만세 3회
59 — 63 장영은 여성, 우정을 발명하다 8회
64 — 68 김유진 구체적인 어린이 1회
69 — 74 윤경희 시와 시 4회
75 — 79 메이 정 애틀랜타 총격 사건의 뿌리 깊은 미국적 연원
81 Interview
82 — 94 편혜영×소유정 소설은 그렇게 다른 곳에
96 — 107 김초희×허윤선 고독한 친구
108 — 118 오석헌×양지윤×이수희 고민하는 동물원, 이야기하는 도서관
123 Fiction
124 — 144 정소현 단 한 번의 일
146 — 162 윤고은 우주를 건너가는 밤
164 — 184 최미래 모양새
189 Poem
190 — 191 김선오 핀 외 1편
192 — 195 김준현 매일 화성을 바라보기 시작한 너의 구조적 결함 외 1편
196 — 199 나희덕 곰의 내장 속에서만 외 1편
200 — 205 배시은 교통섬 외 1편
206 — 208 신해욱 둔기로 얻어맞았을 리 없음 외 1편
209 — 213 조용우 하나님 하늘에 계시고 외 1편
215 Review
216 — 219 이주혜 『가을』
220 — 225 박솔뫼 『지금부터의 내일』
226 — 229 오후 『전국축제자랑』
230 — 233 정기석 『재와 사랑의 미래』
234 — 237 김화진 『어쩌면 스무 번』
239 창립 55주년 기념 인터뷰 릿터Littor를 찾아서
268 — 269 Epi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