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한 지 43년, 시인 신달자가 어느덧 열한 번째 시집을 내놓았다. 섬세한 그만의 감성으로 우리 문학 여성 시를 대표해 온 그녀가 새로 내놓은 시집의 제목은 『열애』, 총 64편의 시를 담았다. 예순의 나이를 넘긴 중견 시인의 ‘열애’는 무엇을 말하는가. 시인 조정권이 말하듯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보다는 어떻게 ‘살아 낼’ 것인가를 온 삶 들어내기로 실천해 온” 그녀의 열애 대상은 당연 ‘삶’이다. 그 상처다. 온몸으로 삶을 받아 내는 수행의 자세와 뼛속 상처까지 드러내는 솔직함으로 삶의 실존론적 고뇌를 말해 온 신달자의 묵직하고도 뜨거운 고백이 여기 『열애』에 담겨 있다.
■ 삶을 향한 열렬한 구혼, 그 상처와의 열애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몸’에 관한 시들이다. 이미 많은 여성 시인들이 몸을 소재로, 한 지류를 형성해 왔으나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신달자의 몸 시는 그보다 훨씬 이전의 생래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시에 등장하는 화자의 몸에는 그녀가 지나온 삶의 모든 상처와 무게가 남아 있다.(“내 등에 세상의 바다가 다 올려져 있더군”(「등 푸른 여자」)) “지층의 갖은 장애를 맨가슴으로 문지르며/ 온몸으로 문지르며”(「정오의 바늘」) 살아온 화자는 “내 몸에 그런 흉터 많아/ 상처 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 버”(「열애」)렸다고 고백한다. 발끝의 물집 하나도 “내 생의 화두에 동참하는 고통의 꽃”(「물집」)으로 피어나고, 상처의 통증은 내가 “엎치락뒤치락 뒹굴” “연인”과 같다. 때로 육감적인 목소리로 전해지는 그녀 특유의 고백적 인생론이 몸 위에서 심화되고 또 몸을 통과하며 더욱 진한 목소리를 낸다. 이것이 신달자의 ‘열애’다.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 내고, 그 상처와도 사랑에 빠지기. 온몸으로 행하는 고행과도 같은 열애를 우리는 지금 여기서 목격하고 있다.■ 상처 받은 몸을 쓸어내리는 손, 어머니 신달자의 시에서 상처는 살갗에 새겨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뼈에 닿아 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신달자의 시가 “살이 제거된 뼈의 슬픔에 집중”해 있다고 말한다.(“뿔이 허공을 치받을 때마다/ 뼈가 패었다”(「소」), “그것은 뼈에 깊게 닿아 있는 집”(「물집」)) 몸은 서서히 늙어 가고 결국 뼈만 남는 소멸을 겪는다. 몸을 통한 신달자의 시적 조망이 닿는 곳은 결국 살의 관능성이 아닌 “늙은 몸, 또는 지친 몸의 총체적 관찰이라는 전망을 확보”(김주연, 「작품 해설」)하는 지점이다. 그녀 시의 배후에는 “트럭 한 대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 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저 거리의 암자」)처럼 “위로받지 못하는 몸들의 슬픔”(김주연, 「작품 해설」)이 늘 깔려 있다. 이처럼 위로받지 못하고, 늙고 지친 몸이 소멸로 치달을 때, 신달자는 다시 몸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매개로서의 어머니”를 환기한다. (“자기 손으로 자기 몸을 쓸어내리는 것을/ 자위행위라고 말합니다만/ 나의 손은 나의 어머니입니다/(중략)/ 내 손이 내 몸의 흐느끼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야릇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손」)) 살의 관능과 같은, 삶과의 아픈 열애를 지나 뼈에 닿은 상처를 어머니와도 같은 손길이 보듬는 것이다. 몸 위에 새겨진 삶의 상처를 열렬히 사랑하고 또한 보듬으며, 바로 다시 몸 위에 위안의 장소를 마련하는 『열애』의 그 생명력은 감동적이고도 아름답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신달자의 최근 시는 ‘몸’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많은 여성 시인들이 언제부터인가 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이른바 페미니즘 시의 전성을 구가해 온 것이 사실인데, 신달자의 몸 시는 그보다 훨씬 이전의 생래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측면이 있다. 신달자의 몸 시는, 살이 제거된 뼈의 슬픔에 집중된다. 물론 에로티시즘을 연상시키는 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뜨겁게 진행되는 현재형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시적 조망으로서의 관능성은 시인 신달자의 독특한 능력을 형성하는 중요한 모멘트다. 시가 현실을 보고 받아들이면서 행하는 상상력과 기억의 소산이라면, 관능은 이 두 요소가 가장 설득력 있게 어울려 힘을 발휘하는 역동적 순간으로 나타난다. 신달자의 관능은 식물성의 풍경까지 힘 있는 생명체로 입체화하는 일을 성공시킨다. 그리하여 비록 성애의 현장에 작용하지 않는 관능일지언정, 충분히 보존되고 고양된 상상력으로서 늙은 몸, 또는 지친 몸의 총체적 관찰이라는 전망을 확보한다. 그것은 문학의 소중한 가치인 사랑에 상응하는 아름다움이다. — 김주연(문학평론가)
소저 거리의 암자여명저 허공도 밥이다물집범종 친다강을 건너다저 산의 녹음사막의 성찬나는 폭력 영화를 본다사리고요 늪-돌확나 모텔에 들었다코스모스 영가벼랑 위의 생나무로 서다지진변태곤오른팔빈 들핸드백열애슬픔을 먹는다문학이 쌓인다곁장마건조주의보엉덩이라는 지구 별등 푸른 여자개나리꽃 핀다애무석천 년 느티나무바라본다는 것작은어머니싸리집흑조국제전화넥타이운수 좋은 날녹음 미사다람쥐와 마주 서다버들잎 강의그 여자의 방에서는귀부석사무주 구천동수선하는 여자봄 풍경녹음낙조부적아니오니계곡만해사정오의 바늘아 채석강아나는 모항에서 돌아오지 않았다우리들의 집얼음 신발손딸의 하이힐을 수선하며난 꽃 피다날으는 말설악 모정작품 해설 – 몸의 소멸과 관능, 노동 / 김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