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1996) 이후 11년 만에, 성윤석의 두 번째 시집 『공중 묘지』가 민음사에서 나왔다. 첫 시집에서 극장을 매개로 “일상의 풍경 뒤에 숨어 있는 심상치 않은 장면을 잡아내”던 서른 살의 젊은 시인은 11년이 지난 지금, “툭 굴러가고 끝내는 썩”는 관 속의 “눈알”처럼 생경한 사물과 함께 묘지 사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문학평론가 서동욱이 지적하듯 『공중 묘지』는 “끔찍한 무덤 속 풍경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한 흔치 않은 “기괴한 문학적 성과” 중 하나다.
■ 묘지의 시인, 그의 일상에서 발견한 무덤과 시체라는 삶의 비밀 — \”우리의 다음은 썩은 쓰레기이리라.\” 어느 날 시인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풍경을 일상으로 삼기로 했다. 공동묘지를 자신의 생활공간으로 삼고, 관념적인 죽음이 아닌 물질로서의 죽음을 매일처럼 대할 것을 택한 그의 인생행로는 일종의 필연이었다. 그에게 묘지는 꼭 마주해야 할 그런 것이다. 그는 기꺼이 무덤 안으로 들어간다. “무덤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어요./ 그 아래 들에는 일찍 죽은/ 아버지도 보이고/ 서른일곱에 죽은/ 아우도 보였지요.”(「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묘지로 향하는 것은 결국 누구에게나 마주칠 일이나 “우리의 다음은 썩은 쓰레기이리라. 나는 비로소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나는 아무것이었을 뿐”(「2000년 서울, 겨울」)이라고 되뇌는 시인에게 묘지는 이미 생과 다른 장소가 아니다. 한때 그도 “이 세기의 왕”이었다. “우리 삶도 영화가 될까” 하고 꿈을 꾼 적이 있으며 “죽음”이란 “나타났다 없어지는” 실체 없는 것이었다.(『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 하지만 10여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 그가 발견하는 것은 “퍼레지고 짓물러지는”(「개장」) 물질들이 말해 주는 진실이다. 모든 환상이 “헛것”이었음을.(「시여 헛것이여」) ■ 쓰레기의 정치성, 모든 보잘것없는 것들에 대한 항변“모든 것들이 나를 잘못 만났다./ 그래서 내가 탄 기차는 계속 가기만 한단다.” (「자살」) 애초에 삶은 쇠락해 있었다. “처음부터/ 왕이 아니었음을, 주인공이 아니었음을”(「눈을 끔벅거려 보이라니」) 깨닫는 것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이 ‘쓰레기통’ 속에서 발견한 생이란, 무덤 속에 ‘버려진’ 시체의 무용(無用)함과 통한다. 세상의 모든 무용하고 보잘것없는 것들 중 가장 처치 곤란하기로 대표적인 것이 아마 시체 또는 묘지일 것이다.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서동욱은 “늘 쓰레기로 남는 것들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정확히 계산된 체제의 합리적 과정이라는 이상을 방해하는 이물질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음을 폭로하는 ‘정치적 행위’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가장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것에 대해 발화하는 것은 그 자체로 불편함 또는 불쾌함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삶에서 가장 멀리 떨어뜨려 놓은, 소외된 것들에 가닿는 시인의 정직하고 성실한 시선. 자신의 시선으로 그것들의 존재를 증명하며, 시인은 “아무것도 아닌 게 가장 중요한 때의 저녁”(「자살」)을 조용히 항변한다. ■ 나의 보잘것없는 삶을 묻고 싶은 곳, 당신이라는 이름의 묘지쇠락한 삶, “서로의 울음소리”마저 “듣지 않는” ‘무연’의 상태.(「곤충들」) 우리의 보잘것없는 삶은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녀는 (중략)/ 뼈를 묻고 싶은 사막의 모래 같”다.(「오랜 사랑 1」) 문학평론가 서동욱은 “그가 묻히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타자”라고 지적한다. 결국 사랑의 욕망이라 말할 수 있는 이 ‘묻히고자 하는 욕망’은 사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망이다. 새로 태어날 수 있는 곳, 일종의 부활 의식을 행할 수 있는 곳, 그곳은 언제나 묘지의 형식을 취한다. 시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묻어 버리는 완벽한 관계로 구원을 꿈꾼다. 한없이 덧없고 쓸쓸한 ‘공중 묘지’와 같은 삶 속에서 그렇게 시인은 다른 묘지라는 출구를 찾아본다. “내가 태어난 날의 이름은 가난한 날/ 인생의 모든 출구는 쓸모없는데”(「오랜 사랑 1」) 그녀(타자)만이 이 쇠락한 삶을 벗어날 출구가 되어 줄 것만 같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버림받거나,/ 버릴 공중의 방.” (「自序」) 이곳의 생이 모두 잠시 빌린 ‘공중 묘지’인 것을. 시인의 바람 역시 저기 공중에 걸리고 또 걸려 가볍고 슬프게 이곳에 있다. ▶ 작품 해설 중에서시인의 욕망이 가닿은 새로운 언어, 세상의 모든 질서를 재편할 그 말이란, 아주 단순한 형태지만 너무 완벽하고 잘생겨서 사람들이 한 번쯤 꼭 혀 위에 올려놓고 싶어 하는 한마디, “나는 널 좋아해.”로 표현되는 사랑의 언어다. 이 위안 없는 삶에서 겨울과 봄 무덤 속으로 끊임없이 내려가는 자는 바로 이 사랑의 말 한마디, 세상이 다시 시작되게 하는 새 언어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에 눈발 날리고, 또 봄이 산허리를 감을 땐 구름처럼 풀씨를 날리는 묘지들, 그리하여 시야를 가린 눈과 풀씨의 등을 타고 저도 모르게 ‘공중에 뜬 이 집들’은 일찍 세상을 뜬 아우의 나이처럼 가볍고 슬프다. 공중에 묻힌 자들의 집은 하나하나 바람에 주소를 새긴 무연의 고장인데, 지금 막 저 언어를 배운 이는 바람이 그 집을 영영 돌려주지 않을까 봐, 새 언어를 기도처럼 계속 되뇐다. — 서동욱(시인, 문학평론가)
● 성윤석196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1990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아프리카, 아프리카」 외 2편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시집 『극장이 너무 많은 우리 동네』가 있다. 묘지 관리 일을 하기도 하는 시인은 죽음이 일상인 자신의 생활공간 속에서 시적 모티프를 얻어 꾸준한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
自序 1 사자의 서 개장 공중 묘지 1 공중 묘지 2 공중 묘지 3 공중 묘지 4 공중 묘지 5 공중 묘지 6 1과 8 사이엔 무엇이 있나 죽은 자들의 아파트에 눈이 내릴 때 소라 알박기 아우가 죽었다 일요일 1 일요일 2 일요일 3 일요일 4 불면 어느 날의 보고 넘버 포 2 구름의 우물역에서 오는 기차 1 구름의 우물역에서 오는 기차 2 구름의 우물역에서 오는 기차 3 그와 사출기 2000년 서울, 겨울 달팽이관 목련 애인 ㅁ 길에서 엎어진 뒤 화장실로 가서 바람에게서, 바람으로부터 월영동 벚나무 길 저녁 Crying Freeman 연못에 쭈그리고 앉다 장어 3 회의 유리병 속의 포도 주인과 나 곤충들 길 시여 헛것이여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를 들었습니다. 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자살 타레가 기타 교본 세월은 갑자기 흐른다 눈을 끔벅거려 보이라니 용미리 줄 괄호 안의 남자 여름 산 수인 번호 봄 샤갈 화집을 읽는 밤 스스로를 치다 오랜 사랑 2 오랜 사랑 1 작품 해설/서동욱 묘지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