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 까칠하고 자조적인데 읽다 보면 폭소가 튀어나오는 예술가의 일상,
그 어느 책보다 요코 씨를 닮은 『요코 씨의 “말”』시리즈
『100만 번 산 고양이』의 밀리언셀러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사노 요코. 이 책은 다수의 그림책과 에세이로 100만 독자들을 웃고 울렸던 사노 요코가 생전에 쓴 에세이를 토대로 기타무라 유카 씨가 그림을 덧붙여 재구성한 특별한 책이다.
그동안 글만으로 알 수 없었던 주변 인물의 인상이나 그녀가 살았던 집, 키우던 고양이나 강아지 등을 이미지로도 함께 경험할 수 있어 시크한 예술가 요코 씨의 일상을 한층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소장본이 될 것이다.
『요코 씨의 “말”』 시리즈는 현재 『요코 씨의 “말” 1 하하하, 내 마음이지』, 『요코 씨의 “말” 2 그게 뭐라고』, 『요코 씨의 “말” 3 이유를 몰라』, 『요코 씨의 “말” 4 후후훗』 『요코 씨의 “말” 5 그럼 어쩐다』까지 총 다섯 권이 출간되었다.
∎
“부부는 이유를 모르는 게 좋은 거다.”
간결하지만 깊이 있는 관계에 대한 철학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결혼했던 사노 요코. 시리즈 세 번째로 출간된『요코 씨의 “말” 3 이유를 몰라』에서는 결혼 생활과 관계에 대한 사노 요코의 속 시원한 고찰을 볼 수 있다.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은 현실에 무너지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지는 죽지 않는다.
이미지 앞에서 현실이나 진실은 짓밟아버리는 그만인 것에 불과하다.
진실을 들춰내서 쓰러져 버린 건 나다. (130~133쪽)
나는 부부 생활을 20년 했지만 10년째에는 덜그럭덜그럭 풀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한 관계였는데, 나이 젊은 친구가 “요코 씨네 부부가 저의 이상이에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얼마나 당황스러웠던지. (140~141쪽)
(부부는) 사랑이라는, 일본어에 있지만 어쩐지 서먹한 그 말을 뛰어넘는 것이다.
다소 미운 마음을 가지더라도 그 미움이 다시 미운 정이 된다.
참말로 이유를 모를 일이다.
부부에게 과학은 쓸모가 없다. (151~153쪽)
거침없는 독설과 삐딱함으로 솔직하게 자기만의 생각을 표현하면서도 사람들에게 항상 위로와 감동을 주었던 사노 요코만의 매력은 이처럼 자신의 허점마저도 냉소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에서 우러난다.
∎
“(남은 수명이) 2년이라고 확언을 받자
10년 넘게 나를 괴롭혀 온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의사에게 시한부를 선고받자마자 차곡차곡 모아둔 통장을 털어 재규어 잉글리시 그린 차를 구매한 사노 요코. 그리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차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리는 배짱. 갑자기 매일매일이 참을 수 없이 즐거워 우울증도 고쳐버린 죽음이라는 자유.
죽음에 대처하는 요코 씨의 태도는 쿨함을 넘어서 거의 즐거움에 가깝다. 그 어이없을 정도로 명랑한 낙관성에서 죽음이란 실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당연한 수순이라는 삶의 이치를 새삼 깨닫는다.
나를 계발하고, 성장을 독려하는 바지런한 책에 지친다면 잠시 이 책과 함께 소파에 누워 낄낄거리다 어느새 마음이 찡해져 먹먹해지는 순간을 체험해 보자. 모두가 인류의 달 착륙을 경이롭게 바라볼 때, 마치 모욕을 당한 기분이라며 “쟤들은 저기 왜 가는 거야, 볼일도 없이.” 하며 독설을 내뱉는 요코 씨를 보면 바르게 살기 위해 마음 졸였던 압박에서 해방되어 한층 마음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첫 번째
신의 손 7
두 번째
말 25
세 번째
노래방 기계와
쑥덕공론 45
네 번째
달님 63
다섯 번째
시끄러워라 81
여섯 번째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99
일곱 번째
두 가지 결혼 117
여덟 번째
이유를 몰라 135
아홉 번째
2008년 겨울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