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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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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 정보

부제: 서울대 인문 강의 10

정용욱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21년 2월 25일

ISBN: 978-89-374-8511-4

패키지: 변형판 135x220 · 312쪽

가격: 23,000원

분야 서울대 인문 강의, 논픽션, 인문/역사/문화


책소개

보통 사람들의 편지가 증언하는 점령기 한국인의 정치와 삶
1945~1948년 한국 현대사

한국 현대사 전문가이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저지에 앞장섰던 정용욱 서울대 교수의 신간 『편지로 읽는 해방과 점령』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점령기에 오간 편지들을 활용해 해방 직후 한국인들이 해방과 점령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했는지를 살핀다. 저자가 미국 국립문서관에서 수집한 이 편지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민심과 민의를 드러낼 뿐 아니라 동시에 점령군 당국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드러낸다. 저자는 이 편지들을 다른 사료들과 함께 분석해 한국 사회가 식민 지배와 유제 청산에 실패하고 분단과 전쟁으로 치달은 점령기의 역사적 배경과 경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이 책은 그 시기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망각을 불식시키고, 또 우리의 기억을 과거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 줄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말

서론: 과거로부터 배달된 편지, ‘해방과 미 점령’을 증언하다

1장 ‘점령’의 무게: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점령 통치와 탈식민
지도자의 환국과 민초의 귀환
미군에 보낸 일본인 편지
일본인의 ‘인양’, 조선인의 귀환
암시장과 재일 조선인
일본인 편지에 나타난 재일 조선인

2장 미군정과 해방 직후 남한 정치
통치를 둘러싼 대립
통역 정치와 테러 정치의 서막
조봉암 사신과 1차 미소공위 결렬
이승만의 정치 자금

3장 민생과 민의
북한의 토지 개혁
미군정 농지 개혁의 좌절
귀환 동포들의 주거권 투쟁
1946년의 식량 위기

4장 좌우 합작 정국
주요한 시인의 간청
좌우 합작 운동과 미군정
이승만의 ‘방미 외교’ 실상

5장 테러의 구조와 동학
여운형의 죽음
테러의 일상화

6장 1947년 여름, 미 대통령 특사의 방한
미 특사와 민생 파탄 해법
1947년 여름 — 희망 고문의 끝자락
평론가 오기영의 통찰

7장 단선・단정이냐, 통일 정부냐
미국과 소련군 철수론
김구의 북행과 남북 협상

주석
참고 문헌


편집자 리뷰

■ 광복의 기쁨과 점령의 무게

1945년 8월 15일부터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가 수립되는 1948년 8, 9월까지 한반도의 북위 38도선 이남을 미군이, 이북을 소련군이 점령했다.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인들은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었지만 동시에 외국 군대의 점령 아래에서의 독립과 새 국가 건설을 도모해야 했다. 그런데 미소공위를 통한 미・소 간 협상, 한국인의 자율적인 통일 독립 정부 수립 노력이 모두 실패로 끝나고, 한반도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부 수립이 가시화하자 점차 냉전의 언어와 논리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탈식민의 현실로부터 냉전으로 진입한 1945년에서 1950년 사이에 한국 사회는 전쟁터로 변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치・사회적 갈등의 당사자들 가운데 억압에 참여한 자들은 냉전 체제의 대립의 논리를 활용하여 이견을 억누르고, 한국 사회를 정화하려 했다. 그리고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그 유산을 부여잡고 씨름하고 있다.
해방 공간 또는 점령기로 불리는 이 시기 역사 연구는 ‘탈식민’이라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과제가 한국인들에 의해 해결되지 못하고 외세의 개입으로 결국 분단으로 귀결되는 과정과 통일 독립 국가 건설의 실패 원인에 대한 해명을 주요 목표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일어난 갈등과 충돌을 좌우 대결이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단순화하거나 사후적으로 냉전의 기원을 소급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그에 더해 당대 삶의 현장에서 이러한 사태의 전개를 매개하던 사건들의 실체는 무엇이었고, 그 시기 ‘보통’ 한국인들이 이를 어떻게 수용 또는 저항했는지 그들의 역할과 행위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해방 직후 한반도에 거주했거나 한반도로 돌아온 한국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전쟁과 식민주의의 유산을 하루빨리 극복하고,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었다.

■ 보통 사람들의 편지가 말해 주는 점령기 한국 현실

이 책은 점령기에 오간 여러 편지들을 활용해 당시 한국인들이 해방과 점령을 어떻게 보았고, 또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핀다. 이 편지들은 당대인들이 그들 자신의 표현으로 자신보다 영향력이 큰 목소리나 그 시대의 주요 사건들을 향해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보여 주는 귀중한 시선을 제공한다. 저자는 이 편지 속에 나타난 보통 사람의 인식과 통념, 사회적 여론과 소문, 개인의 감정을 단지 냉전의 영향으로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충돌하는 현실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로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편지’라는 에고도큐먼트(Ego-document)를 통해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취한다. 에고도큐먼트는 일종의 자기 고백이자 동시에 시대에 대한 증언이라는 이중의 성격을 지닌다. 즉 편지에는 개인의 심성과 사회적 사건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역사가 자료 또는 텍스트의 매개를 통해 개인 또는 집단과 연관된 세계를 보는 것이라고 할 때 편지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개인 자신의 의미와 그가 지향하는 가치를 동시에 보여 준다는 서사적 특징을 가진다. 편지 문면에 서술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차원이 아니라 편지의 작성 배경과 작성 경위, 수집・보존 경위 등 편지의 작성과 전달, 수집을 둘러싼 상황 구속성과 전후 맥락을 충분히 이해한 토대 위에서 편지 내용을 분석한다면 편지의 주관성과 우연성, 일회성, 표집의 제한성이 갖는 대표성의 문제, 내용의 단편성 등 편지 자료의 사료적 제한성을 극복하고 오히려 편지 문면이 간직한 내용 이상의 풍부한 역사성을 드러낼 수 있다.
과거로부터 배달된 이 편지들은 미국 국립문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발신인은 이승만, 김구, 여운형 등 한국인 지도자들부터 장삼이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수신인도 맥아더 장군, 하지 장군, 웨드마이어 장군 등 미군 고위 당국자들과 장성들부터 평범한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편지 자료들은 소통의 주체와 상대, 소통 방향이 다양했고, 미군이 그 편지들을 수집, 정리한 동기와 목적 역시 다양했다. 어떤 편지는 점령군 당국의 검열 이후 수신인에게 배달되었고, 어떤 편지는 압수당하여 배달되지 못했으며, 어떤 편지는 6・25 전쟁 중 미군에 의해 ‘노획’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국의 문서고(文書庫)에서 70년이나 잠자고 있는 그 편지들이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지, 오늘날 이 편지들이 후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같은 문서고에 수장된 미군정의 각종 통치 자료나 정책 문서, 보고서들, 그리고 당대에 간행된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재구성된 역사와 이 편지들이 증언하는 역사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에 주목한다.

■ 과거로부터 배달된 편지, ‘해방과 미 점령’을 증언하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은 전신, 전화 등 보다 신속하고 발달한 통신 수단을 독점했고, 그것들을 이용해 남한을 통치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주로 편지로 소통했다. 수신자가 주요 인물도 아닌 보통 한국인들 사이에서 사사로이 교환된 편지들이 왜 당국으로부터 수집되어 미국 국립문서관에 소장되어 있을까? 서신 검열 전담 기구 ‘민간통신첩보대’는 일본인 정치가들, 한국인 정치가들, 정당, 단체 들을 중요도에 따라 분류한 감시 대상자 명부를 만들어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들을 우선 검열했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의 편지도 일정 비율을 임의 추출해 검열했다. 미군은 기본적인 사회적 소통 수단인 편지들을 검열・ 분석해 여론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관계와 인간 활동을 이해하는 데 이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편지 검열을 통해 남한 사회의 생생한 여론 동향을 추적한 미군정의 의도와 달리 점령군이 수집한 편지들과 관련 보고서들은 역으로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해방 직후 한국 사회의 민심과 민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때늦은 지혜’를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점령자의 시선까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8・15 광복 이후 한반도는 해방의 감격과 점령의 엄중함이 공존하며 서로 교차했다. 그 복잡하고 역동적인 시기에, 새 국가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광장과 골목, 마을 어귀나 사랑방에 모여 시국담과 애환을 나누었던 민초들의 목소리가 이 편지들에 생생히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겪지 않은 시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고 역사는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편지들이 그 시기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망각을 불식시키고, 또 우리의 기억을 과거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끊임없이 재해석할 수 있게 새로운 영감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최근까지 충칭(重慶)에 주재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요원들 이 항공편으로 입국하는 것과 관련하여 나와 동료들이 공인 자격이 아니라 엄격하게 개인 자격으로 입국이 허락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확인하는 바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입국하여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행정적,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부로서 기능하지 않을 것을 선언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미군정이 한국인들을 위해 질서를 수립하는 데 협조하는 것입니다. (27쪽)
— 1945년 11월 19일,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백범 김구가 귀국하기 직전에 중국 주둔 미군 사령관 웨드마이어 중장에게 쓴 편지. 점령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자료로, 망명 정부 주석이라도 귀국하기 위해서는 점령군 당국의 입국 허가를 받아야 했다.

각하, (전략) 경기도 재산관리처의 니스벳 소령이 갑자기 10월 1일까지 현재 우리가 거주하는 주택의 명도를 지시한 것을 거두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합니다. 우리는 이 명도령에 당황하고 있고, 또 이것이 귀하의 승인하에 발부된 것인지 의아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 사안을 각하에게 직접 전달하려고 합니다. 곧 추위가 닥칠 텐데 지금 이 계절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고 노인과 어린이, 가녀린 부녀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동료 군인들이 우리 동네에 같이 사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네 미국인들에게 땅을 내놓지 않으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의 거주민들이 모두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받고 해외로부터 돌아왔고, 지금 양식 걱정과 입을 옷이 없어 고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닙니까? 우리는 이 불쌍한 영혼들이 살 집도 없이 어떻게 될지 말로 다 표현 할 수가 없고, 또 그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중략) 이 문제를 재고해 주시고, 귀하의 권한으로 이 명령이 가능한 한 빨리 철회될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비나이다. (15쪽)
— 귀환 동포들이 고국 정착 과정에서 겪는 간난신고를 상징하는 편지


작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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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욱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3년부터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료의 확대를 통한 역사 해석의 다양성 확보, 역사 서술 주체의 확장과 역사학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 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해방 전후 미국의 대한 정책』, 『혁명과 민주주의』(공저), 『강압의 과학』 등의 저·역서가 있다. 현재 6·25 전쟁기 심리전과 냉전 문화, 에고도큐먼트에 나타난 민중의 해방과 전쟁 경험, 한국 현대 민족주의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