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 30 | 분야 오늘의 젊은 작가 30, 한국 문학
안녕하세요?: 당신은 평화 속에 있나요?
습관 같은 인사가 새롭게 다가오는 순간
뉴욕의 한국어 강사가 묻는 낯선 안부
2010년 단편소설 「체이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지혁의 네 번째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초급 한국어』는 작가의 경험에서 출발한 자전적 소설이다. 이민 작가를 꿈꾸며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초급 한국어』의 주인공 ‘문지혁’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강사이자 번역가, 소설가인 현실의 문지혁이 떠오른다. 소설은 어디까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인가? 작가에 따르면 모든 소설은 “수정된 자서전”이다. 소설가의 삶을 ‘다른 이름으로 저장’한 결과로 생겨난 소설은 허구인 동시에 그만의 방식으로 진짜다. 문지혁이 보여 주는 또 다른 진실인 『초급 한국어』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어를 바라보게 하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삶을 한 발짝 거리 둔 채 돌아보도록 한다. ‘초급 한국어’ 수업에서 출발한 9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소설은 100점일 수 없는 인생의 이야기, 모든 게 정답처럼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 안녕, 낯선 한국어로 묻는 안부
안녕하세요? 이 인사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뉴욕 한 대학교의 ‘초급 한국어’ 강의실, 학생들의 질문에 고민하던 ‘문지혁’은 칠판에 이렇게 적는다. Are you in peace? 당신은 평화 속에 있나요? 학생들이 왁자지껄 웃는 와중에도 ‘안녕’이란 두 글자에 대한 질문은 계속 남아 있다. ‘안녕하냐’는 질문에 습관처럼 ‘잘 지낸다’라고 대답할 때, 사실 우리는 스스로의 안부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그럼에도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안녕’이야말로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이처럼 이방에서, 낯선 언어로 한국어를 다시 보는 일은 새로운 질문거리를 남긴다. 소설 속에서 ‘문지혁’은 낯설어진 한국어 문장들에서 자신의 과거를, 가족을, 꿈을 돌아본다. 작품 전체가 ‘초급 한국어’ 교재처럼 구성된 이 소설은 기초적인 한국어의 문장들에서 ‘나’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이름 묻기’를 통해 자신의 이름과 그 이름을 준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시간을 묻고 답하기’ 부분에서는 과거와 현재에 대해 고민한다.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 학생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어떻게 기억될까? 어느새 낯설어진 한국어로 묻는 그 질문들은 한국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우리 모두를 향한다.
■ 이방에서 ‘나’인 채로 살아남기
『초급 한국어』는 도전하고 실패하는 이야기다. 소설 속 ‘문지혁’은 어떻게든 소설을 써야 한다. 그것은 “가슴이 시키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소설 창작에 뛰어든 그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너는 소설을 쓰기에는 너무 반듯해.”라는 조언 아닌 조언뿐이다. 뉴욕의 한 대학교에 한국어 강사로 채용된 후에는 모든 게 잘 해결될 것만 같지만, 세계 도시 뉴욕에서 살아남기란 녹록지 않다. 1퍼센트를 위한 경제 시스템을 비판하는 월스트리트의 시위대를 보며, 그 99퍼센트에도 끼지 못한 ‘문지혁’은 생각한다. 나는 뭘까? “제3세계, 파 이스트 아시아에서 온 (구) 유학생 (현) 외국인 노동자, 강사 신분증에 적힌 것처럼 ‘논 레지던트 에일리언’인 나는?” 이민 작가라는 꿈을 향해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보잘것없고 이민자로서의 위치 역시 불안정하기만 하다. 『초급 한국어』에는 이 냉혹한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더불어 그럼에도 꿈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의 욕망이 담겨 있다. 현실을 알면서도 현실성 없는 꿈을 꾸는 주인공을 볼 때, 그 간극에서 건조하지만 따뜻한 유머가 비칠 때, 주인공의 모습이 현실의 나와 겹쳐지며 소설은 알 수 없는 위안을 준다.
■ 추천의 말
이 소설은 우리의 언어를 타인의 눈에 비추어 보게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마침내는 아릿한 아픔을 남기며 삶과 세계를 성찰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책을 덮으면서 서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른다. Are you in peace? 당신은 평화 속에 있습니까?
―이장욱(시인, 소설가)
『초급 한국어』의 액체근대는 말 그대로 물렁물렁하고 가변적인 세계이다. 한국어는 제1세계로 진출했으나 그만큼 물화되었고, 세계화 시대의 새로운 노동자들은 세련된 화법과 세계 시민의 품위를 가졌으나 딛고 선 땅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할 만큼 불안정하다. 너는 아마도 너희 학교의 천재일 테지, “살다 보면 다 똑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내려는 비통과 어쨌든 살아 남겠다는 욕망”이 새 시대의 지형지물에서 어떤 유머로 표현되는지 이 작품은 기념비적으로 보여 준다.
―박민정(소설가)
■ 본문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없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39쪽)
열 살 즈음의 나는 이름이란 게 뭐라고 생각했을까? 명사처럼 내 이름도 영어로 번역이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문지혁은 영어로도 문지혁이라는 것을,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혹시 나는 지금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49쪽)
지혜의 말이 또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했다. 나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이 뜨겁고 아리고 부끄럽고 억울한 감정에 죄책감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 어떤 감정을 단어 하나로 표현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66쪽)
잘 지내냐는 말은 무력하다. 정말로 잘 지내고 있는 사람에게도, 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잘 지낸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오히려 나의 진짜 ‘잘 지냄’에 관해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73쪽)
우리는 아이온에 둘러싸인 채 크로노스 속을 살아가는 존재다. 무심하지만 규칙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시간 감옥의 죄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에는 가끔씩 크로노스가 찾아오는데, 이를테면 화살이 날아가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전과 이후가 갈라지고, 한번 일어나면 결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따라서 시간을 묻는 방법은 두 가지여야만 한다.
1 크로노스를 물을 때: 지금 몇 시예요?
2 카이로스를 물을 때: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요?
나는 학생들에게, 두 번째 시간에 관해 묻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들에게 내 수업은 어떤 시간으로 기억될까?(127~128쪽)
1 코리안 알파벳
2 안녕하세요?
3 저는 애덤 홍이에요
4 어디에 있어요?
5 한국어를 공부해요
6 중간고사: 구술시험
7 동생이 두 명 있어요
8 서점에서 친구를 만나요
9 마이클의 하루
10 서울 날씨가 참 좋지요?
11 기말고사: 짧은 극 만들기
12 그레이스 피리어드
작가의 말
추천의 글
독자 평점
3.8
북클럽회원 11명의 평가
한줄평
밑줄 친 문장
1 크로노스를 물을 때: 지금 몇 시에요?
2 카이로스를 물을 때: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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