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티즘의 빛으로 비추어 본 보편사
금기와 이단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적 유서!
머리말
1부
시작: 에로스의 탄생
I 죽음에 대한 인식
1 에로티즘, 죽음, ‘악마’
2 선사 시대 인간과 동굴 벽화
3 죽음에 대한 인식과 연결된 에로티즘
4 라스코 동굴 ‘우물’깊숙한 곳의 죽음
II 노동과 유희
1 에로티즘, 노동, ‘작은 죽음’
2 이중의 신비를 품은 동굴
2부
끝: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I 디오니소스 혹은 고대
1 전쟁의 탄생
2 노예와 매춘
3 노동의 지상권
4 종교적 에로티즘의 발전에서 하층 계급의 역할
5 에로틱한 웃음에서 금기까지
6 비극적 에로티즘
7 위반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
8 디오니소스적 세계
II 기독교 시대
1 기독교의 단죄부터 병적 열광까지 혹은 기독교부터 악마 숭배까지
2 회화에 다시 등장한 에로티즘
3 마니에리즘
4 18세기의 리베르티나주와 사드 후작
5 고야
6 질 드 레와 에르제벳 바토리
7 현대 세계의 변천
8 들라크루아, 마네, 드가, 귀스타브 모로 그리고 초현실주의자들
III 결론을 대신하여
1 매혹적인 인물들
2 부두교의 희생 제의
3 중국의 형벌
옮긴이의 말
우리는 에로티즘과 도덕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불합리함을 깨닫게 되었다. 발작적인 쾌락의 폭력이 나의 심장 깊숙한 곳에 있다. 동시에 그 폭력은 죽음의 심장이다. 그것이 내 안에서 열리고 있다! 인간적 삶의 모호성은 곧 발작적인 웃음과 오열의 모호성이다.
인간적 삶의 모호성은 그 삶의 바탕을 이루는 합리적 타산을 눈물들과 일치시킬 수 없음에 기인하며…… 끔찍한 웃음과도 일치시킬 수 없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이성의 유치한 과오를 잊게 할 첫걸음이다. ―본문에서죽음은 눈물과 연결되고, 때때로 성적 욕망은 웃음과 연결된다. 하지만 웃음은 보이는 것만큼 눈물과 다르지는 않다. 웃음의 대상과 눈물의 대상은 언제나 사물들의 규칙적인 리듬, 일상적인 흐름을 끊어뜨리는 폭력과 관계된다. -본문에서
에로티즘이 동물적인 성적 충동과 다른 것은 원칙적으로 노동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목적의식을 지닌 추구라는 데 있으며, 그 목적은 바로 관능이다. 에로티즘의 목적은 노동의 목적처럼 획득, 증대의 욕망이 아니다. -본문에서
에로티즘의 탄생은 인류가 자유로운 인간과 노예로 나뉘는 과정보다 앞선다. (중략) 노동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킨 것은 전사가 아니라 노예다. 그리고 노동이 변화시킨 것도 바로 노예다. 노동이 노예를 변화시켰기에, 노예만이 문명의 풍요를 창조할 수 있었다. 특히 지성과 과학은 주인의 명령에 따르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만 했던 노예들의 노력이 빚어낸 결실이다. 오늘날의 세계가 누리는 산업적 부는 신석기 시대 이후로 예속된 대중, 불행한 다수가 수천 년 동안 행한 노동의 결과다. -본문에서
20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철학과 문학, 경제학과 신비주의, 고고학과 예술사, 미학을 종횡무진하며 다채롭고 독보적인 사유를 보여 준 금기와 이단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의 마지막 저작이자 사상적 유서라고 할 수 있는 『에로스의 눈물』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신경 매독으로 눈이 먼 아버지와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 아래서 성장한 조르주 바타유는, 자신의 불안과 공포, 죄책감을 바탕으로 독특한 사유를 구축한다. 그는 파리 고문서 학교를 졸업하고 한평생 사서로 봉직하면서도 자기 영혼을 사로잡은 극단적인 경험―상처 입은 황소에게 죽임을 당하는 투우사, 청나라 베이징에서 행해진 능지형 등―을 해명하고자 다양한 사상과 학문, 문학과 예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까닭에 바타유의 글쓰기는 보통의 철학 논문이나 학술서와 다를 뿐 아니라, 소설이나 시를 대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늘 파격적이었다.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그의 관점은 언제나 ‘상식’을 뛰어넘는, 이를테면 이질적이고 이단적이었기에 항상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죽음, 에로티즘, 쾌락, 종교, 소비, 증여, 금기, 지고성 등 바타유의 사상적 유산은 후대 수많은 사상가들―푸코, 데리다, 솔레르스, 크리스테바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에로스의 눈물』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원적인 영역을 ‘이해’하고자 했던 조르주 바타유의 기나긴 사상적 역정(歷程), 그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저작으로, 비교적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저자가 전개해 낸 사유의 핵심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바타유는 이렇게 선언한다. “이 책은 단 한 가지 의미를 지닌다. 자기의식에 눈뜨게 해 주기!”라고 말이다. 그는 벌써 『선사 시대의 미술』에서 탐구했던 주제, 최초의 인류가 동굴 가장 깊숙한 곳에 남겨 둔 놀랍도록 아름다고 신비한 작품, 즉 라스코 벽화로 돌아간다. 바타유는 사냥당한 물소 앞에서 새의 머리를 하고 발기한 상태로 장렬하게 죽어 가는 존재,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벽화를 마주하고는 전율한다. 삶과 죽음의 쾌락, 전혀 다른 듯 보이는 생사의 무분별한 혼돈이 빚어내는 즐거움을 목도한 바타유는 ‘인간 존재’의 근원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 그동안 문명과 종교가 은폐해 온 ‘에로티즘’의 실체를 폭로하기에 이른다. 인류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노동을 통해 ‘인간다움’을 획득했지만 인간다워지는 만큼 진정한 존재의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노동은 목적의식―전쟁, 계급, 국가 등을 낳고, 증대와 성장, 진보를 바라며 삶과 죽음이 모호하게 뒤섞인, 관능만을 추구하는 에로티즘을 멀리 밀어내 버린다. 이때 기독교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생식을 제외한―관능뿐인 쾌락을 모두 단죄하였던 기독교는 ‘인간 존재’를 폭력적으로 억압, 왜곡하였지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에로티즘에 더 큰 힘을 허락한다. “금기는 자신이 금지하는 대상에 고유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조르주 바타유는 고대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축제를 거쳐, 기독교의 종교화, 18세기 리베르티나주(기독교 교리에 반항하던 자유사상가)와 사드, 19세기 현대 미술과 20세기 초의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고찰하며 ‘에로스―에로티즘’과 ‘인간 존재’의 실체를 설파한다. 끝으로 저자는, 결론을 대신해서, 부두교 의식과 희생 제의, 산 채로 살점을 도려내는 능지형을 언급하는데, 한평생 비평과 연구, 소설의 형식으로 (조심스럽게) 탐구해 온 바타유 사상의 진면목을, 가장 날것의 상태로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음사의 『에로스의 눈물』은, 바타유의 문제작 『하늘의 푸른빛』, 「사드 전집」을 펴내며 커다란 송사에 휘말렸던 편집인 장자크 포베르의 판본 대신, 최신 전집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바 있는 단행본 판본의 『에로스의 눈물』은, 포베르의 개입으로 인해 본문과 무관한 백여 점의 도판이 곳곳에 수록되어 있었다. 물론 바타유는 포베르의 편집을 마음에 들어 했으나, 텍스트의 흐름을 따라가기에 어려움도 있었다. 본문을 살필 때 꼭 필요한 48점의 이미지만 남기고 저자의 텍스트를 중심에 둔 이번 『에로스의 눈물』은, 심오하고 은밀한 조르주 바타유의 사상을 조망하고 이해하는 데에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관문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