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같은 것을 향해 물음표를 그리는 시인의 손
사라진 것들을 잊지 않으려는 시인의 마음
2016년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서하 시인의 첫 시집 『진짜 같은 마음』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진짜 같은 마음』은 씨앗의 성질을 닮았다. 어떤 망치로 내리쳐도 깨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지만 어떤 계절을 만나면 부드러운 초록 잎으로 열리는 씨앗의 아이러니. 시인은 이처럼 하나의 존재가 지닌 상반된 성질, 하나의 사건에 대한 상반된 해석 사이를 파고든다. 집에는 폭력이 있는 동시에 사랑도 있고, 학교는 공포스러운 곳이기도 하지만 공포를 이기게 해 주는 친구 역시 그곳에 있다는 것. 문은 외부와 나를 차단하는 벽이기도 하고 외부와 나 사이를 열어 주는 창이기도 하다는 사실들. 시집은 얼핏 상충하는 것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이 세상의 진실을 잔뜩 머금고 있다. 우리는 시집의 제목인 『진짜 같은 마음』을 두고 ‘진짜에 가장 가까운 마음’이라고 읽을지, ‘진짜 같지만 진짜는 아닌 마음’이라고 읽을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시 안으로 깊이 빨려드는 동시에 바깥을 향해 활짝 열릴 것이다.
■‘진짜’라는 말이 가린 것
원한다면 보여 줄 수 있어요!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단,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주머니 만든 사람도 모르니 주의할 것.
―「슈가캔디 마운틴 호두마을」에서
인간의 마음은 진짜 나쁘기도, 진짜 선하기도 하다. 이서하는 진짜라고 믿던 것들에 물음표를 달아 스스로에게 겨눈다. 사람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미워하며,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준다는 진실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 마음들에 대해 쓴다.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을 헷갈린다고 쓰고, 우리의 진심이 우리의 욕심일 수도 있다고 쓴다. 인간의 탓을 인간의 탓이라고 쓴다. 욕심에서 비롯된 현혹, 욕망에서 비롯한 허위는 종(種)을 가리지 않고 약자를 향한다. 본래의 서식지에 쫓겨난 새, 가정과 학교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친구, 전쟁 후 마녀사냥을 당하는 여자들. 저지른 과오보다 나아지기 위해, 보다 인간이기 위해 우리가 다시 들어다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진짜’ 이후의 결과, 의도가 아닌 행동이다. 이서하는 과학자의 눈으로 거짓 없이 보고, 필경사의 손으로 핑계 없이 적으며, 시인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새와 친구와 가족을 부른다. 그리하여 비로소, “숲의 진짜 주인이 걸어 나온다”.(「날아오는 총알을 늦추려거든」
■‘같다’라는 말의 가능성
그 문을 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에티카」에서
‘~하는 것 같아.’라고 말하면 사실을 유보하는 말이 되는 동시에 그럴 가능성을 인정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같다’는 말이 지닌 여러 의미 중 이서하가 끝내 쓰고자 하는 것은 유보보다는 가능성 쪽이다. 그러므로 ‘같다’는 말은 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은 다른 세계를 받아들이거나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다치게 한 것 같아.’라고 말하는 듯하다. 인간의 역사 속에 산재한 폭력의 장면을 본 뒤, 스스로 휘두른 폭력을 인정하는 것이 인간의 가능성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폭력을 직시한 시인은 더 이상 유보하지 않는다. “1618년 마지막 도도새 죽다”, “1770년 모아새 멸종” 같은 폭력의 사실에 대해서는 최대한 단정적으로 쓰기를 택한다.(「내 두개골의 넓이와 두께를 재려거든」) 어떤 가능성을 믿는 만큼, 어떤 가능성을 배제하는 순간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진짜 같은 마음』은 가능성의 문이 달린 집이다. 세계가 잃어버린 것들의 집. 그러나 시인이 잊어버리지 않은 것들의 집.
■본문에서
이를테면 이런 마음, 평생을 가난하게 살던 어느 노부부가 공사판에 나가 함께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저녁
간식으로 받은 노란 앙금이 들어간 빵을 함께 나눠 먹으며 어휴 달다, 달어 같은 말을 하는
진짜 단 것, 목구멍에 차도록 단 것
(……)
이제 나오지 말라며 빵을 건네받은 것이 꿈속의 일이었던가 엊그제의 일이었던가
별의 별소리가 다 있고 별 일이 다 있는
진짜 같은 마음
-「꿈에서 꺼낸 매듭」에서
당신은 인간입니까. 시멘트입니다. 당신은 남입니까. 검정입니다. 당신은 미장이입니까. 작품입니다. 당신은 혼합입니까. 스케치입니다. 당신은 평면입니까. 맞은편입니다.
진짜 시멘트 벽 같다, 진짜 콘크리트 표면 같아 재미없는 사람은 같은 말을 반복해
-「콘크리트 균열과 생채기, 얼룩, 그리고 껌딱지로부터」에서
아직도 보고 있을 수도 있다, 비에 젖은 나무를그리고 있을 수도 있다, 수채화는 물이 중요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숨을 참을 수도 있다
무엇을 시작할 때마다 그때가 생각난다
텅 빈 강당에 앉아 본 적 없는 그 나무를 그리던 때가
-「우리는 맞았다」에서
손댈수록 불투명해지는 구정물처럼
그 안에 무엇을 품고 있을지
쉽게 이해하지 않기로 한다그래도 삶은 어떤 믿음으로 나아가고
끊어진 전선처럼 떼를 지어 떠나는 개미들
-「폭우」에서
■추천의 말
인간의 책임을 배제하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 오기(誤記) 없는 쓺. 그렇게 쓰는 자의 ‘할 수 있다’는 중얼거림은 우리의 마음에 닿을 수밖에 없어서, 우리는 그의 시를 따라 부지런히 걷다가도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팔레트에 모인 색으로 어떤 미래로 향하는 문을 그려 본다면 이서하는 캔버스를 가득 채울 만큼의 커다란 문이나 여러 가지 색을 칠한 화려한 문을 꿈꾸지 않는다. 주어진 재료로 그릴 수 있는 보통의 크기이지만 단단한 문 하나가 그의 것일 테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는 문, 하지만 잃어버린 것이 ‘거기’에 있고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희미하고도 분명하게 새어 나오는 문일 것이다. “하나가 열리면 모든 게 보인다”(「호출」)는 말에 따라 문고리를 당긴다. 그곳으로 향하는 걸음은 늦출 수 없다.
-작품 해설에서 │소유정(문학평론가)
1부
입사식 13
좋게 얘기해서 15
너희는 현재를 살거라 18
선물과 도둑 20
완벽한 복 22
숨탄것 24
있는 그대로 26
콘크리트 균열과 생채기, 얼룩, 그리고 껌딱지로부터 28
꿈에서 꺼낸 매듭 30
그 건물 하나 32
행 34
정크 시티 36
않을 수 없지 않은가 38
그런가 하면 40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에 대한 42
호출 44
2부
6교시 49
의심 52
탁희에게 54
차 례
후문 56
내 두개골의 넓이와 두께를 재려거든 57
모르는 지침서 60
나쁜 수업 62
둘 64
슈가캔디 마운틴 호두마을 66
나빠지지 않는 관계 69
오해를 좋아하지만 72
모자이크 백반 74
인식의 도구들 7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집 78
어떤 미래의 80
다시 찾는 82
3부
선산에 있는 85
도도와 모아 86
언제라도 늙은 88
바다 사는 연습 90
날아오는 총알을 늦추려거든 93
잃어버린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96
우리는 맞았다 98
폭우 100
불의 원료 102
스테이플러 104
파고 107
물의 다발 110
변양 112
4부
고정관념 117
붉은 모델 118
그런 퍼포먼스 119
다른 것이 있다면 122
플란다스의 개 124
에티카 127
신발은 인간이 벗은 두 발로 서 있다 130
일라와디 132
사신 133
인드라 136
소동 138
shadowing 140
작품 해설–소유정
탈피의 기록 159
독자 평점
4
북클럽회원 4명의 평가
한줄평
밑줄 친 문장
진짜 단 것, 목구멍에 차도록 단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