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속이지만 코는 고백한다!”
시대와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냄새를 기록한 작가
조지 오웰의 삶과 문학을 코로 읽다
탁월하고도 편집증적인 전기 작가 존 서덜랜드는 오웰을 새로 읽어 냈다. 그리고 냄새에 대한 오웰의 천부적인 감각을 알아차렸다. 최근 자신의 후각을 잃은 존 서덜랜드는 오웰 삶의 코를 찌르는 랜드마크들을 이 책에서 하나하나 밝혀 준다. ―《뉴요커》
“눈은 속이지만 코는 고백한다!”
시대와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냄새를 기록한 작가
조지 오웰의 삶과 문학을 코로 읽다
2012년 후각 기능을 상실한 영국의 문학 평론가 존 서덜랜드. 그는 코의 세포막이 시들던 시기에 오웰의 작품을 다시금 천착하게 된다. 오래전부터 알았던 문학이 주는 위안 속에서 스스로를 쉬이기 위해 시작한 오웰의 독서는, 긴장을 해소하는 대신 새로운 긴장을 서덜랜드에게 안긴다. 오웰의 많은, 아니 모든 글에서는 지독하리만치 생생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서덜랜드는 편집증적인 성실성으로, 본인의 무기인 문학 비평을 통해 한 사람의 생을 냄새 맡았고, 그 결과물을 『오웰의 코』라는 이름으로 내놓았다.
많은 문학가들의 생은 종료와 동시에 철저한 소독 작업을 거쳐 청결하게 보존되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오웰의 잘 덮인 발자취를 헤집어 나가는 존 서덜랜드의 독특한 평전은 많은 오웰의 팬과 독자에게 낯선 고통이리라. 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쓰거나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게 쓰는대신, 아름답지 않은 것을 아름답지 않은 그대로 써내린 오웰을 상기해 본다면, (악취를 포함한) 냄새를 포착하고 주목하는 독파는 오웰을 읽는 가장 알맞은 태도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삶과 작품에 서린 독특한 냄새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 여정에서, 우리는 냄새나는 시대를 외면하지 않은 한 소설가의 깨끗한 의지를 발견하게 된다.
코를 잃은 사람의 냄새 찾기
“그 냄새가 얼마나 선명한지! 당신은 교회에서 풍기는 냄새를 잘 알 것이다. 특이하고 눅눅하고 텁텁하고 썩은 것 같으면서도 달큰한 그런 냄새. 초의 끈적임이 살짝 깃들어 있고, 아마도 향냄새 조금과 쥐의 기미도 느껴진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는 노란 비누와 모직 드레스 냄새가 드리운다. 하지만 지배적인 것은 죽음과 삶의 냄새가 뒤섞인 듯한 감미롭고 텁텁하고 퀴퀴한 냄새다.” ― 조지 오웰, 유년 시절을 추억하며
오웰은 감별력이 각별히 뛰어난 후각을 타고났다. 그는 어떤 향이든 그 원료를 명확히 서술하고 구별해 내는 비글의 희귀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릭 블레어(당시 그의 이름)의 끔찍한 준비 학교에 관한 묘사를 읽은 사람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악취에 관한 구절에서는 세인트시프리언스에서 학생들이 매일 견뎌야 했던 목욕이라는 시련이 다뤄진다. 중심을 이루는 것은 “전신 목욕탕의 점액질 물”이었다. 그리고 치즈 냄새를 풍기던 늘 축축한 수건. 그리고 해변에서 곧바로 들어오는 탁한 바닷물로 채워진 지역 내 온천탕으로 겨울에 이따금 가던 일. 그 물에 떠다니는 사람 똥을 한 번 보았던 기억. 그리고 기름때 낀 개수대가 있는 탈의실의 땀냄새, 그리고 이곳과 연결된 더럽고 무너져 가는 화장실. 잠금 장치가 전혀 없던 그곳의 문. ― 본문에서
2012년 건초열을 앓았던 문학 평론가 서덜랜드는 후각을 상실했다. 냄새나지 않는 사물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고생하던 그에게 조지 오웰은 제인 오스틴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다른 ‘실감’으로 다가왔다. 『맨스필드 파크』와 『노인과 바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1984』는 냄새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1984』는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가 4월 추위를 피해 빅토리 맨션의 유리문을 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건물로 들어서자 그를 반기는 것은 “삶은 양배추와 오래된 누더기 발판 냄새”다. 원기를 회복하려고 한 잔 따른 빅토리 진은 “중국 쌀 증류주같이 역겹고 느글거리는 냄새”를 풍긴다. 담배 한 대를 피운 스미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파슨스의 아파트로 호출되는데, 여기에는 “삶은 양배추 냄새”보다 지독한 이웃의 땀냄새가 기다리고 있다. 몇 시간 전에 자리를 비운 누군가의 땀 냄새를 저토록 민감하게 맡을 수 있다니, 그런 인물을 창조하고 묘사해 내다니, 서덜랜드는 오웰의 소설을 읽는 수많은 방법 중 ‘냄새 서술 비평’만큼 흥미로운 것은 없으리라 예감한다.
기계 냄새를 혐오했으나, 가정용 조명의 파라핀 냄새는 달콤하게 느꼈던 조지 오웰. 뭇 20세기 작가들 중에서도 많은 시간을 파라핀 틸리램프 아래서 독서하고 글 쓰는 데 보낸 오웰의 삶을 서덜랜드의 안내로 둘러보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서덜랜드는 오웰의 문학과 산문 곳곳에서 버마의 티크, 영국 목초지, 여러 빈곤의 냄새, 죽어 가는 인류의 분위기, 타자기와 덜 마른 잉크 냄새를 찾아내어 알려 준다. 『오웰의 코』에는 조지 오웰의 삶을 다룬 본문 외에도 『목사의 딸』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냄새 서술을 자세히 설명한 문학 비평이 실려 있다. 특히 “하류층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라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상징적인 문장은 오웰의 정신세계를 여는 열쇠가 된다.
끔찍한 네 마디 말…… “하류층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오웰이 건강을 헤쳐 가면서까지 성인기 삶에서 제일 좋은 시기를 버마에서 보낸 이유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이유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커리와 그가 성장했던 인도 근무 경력, 영국인 집의 희미해져 가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백단향, 등나무와 티크의 복합적 냄새가 그를 소환했기 때문이었다. 코를 풀 때마다 친구인 시릴 코널리가 손수건 산업의 환경에 대한 훈계를 늘어놓곤 했다고 오웰은 농담했다. 아마도 오웰은 자신 어머니의 빈달루나 처트니 향을 맡을 때마다 인도 아대륙과 식민주의의 윤리에 관해 의구심을 품었을 것이다. 실제로 버마에는 젊은이를 도취시키는 향이 존재했다. ― 본문에서
제거할 수 없는 냄새와도 같은 한 개인성에 대한 통찰
나는 저주받았다. 돈도 한 푼 없었고 허약했으며 못생겼다. 인기도 없었고 만성적으로 기침을 해 댔으며, 겁쟁이였다. 나는 냄새를 풍겼다. ― 오웰, 여덟 살의 에릭 블레어를 기억하며 자신의 코앞에 무엇이 놓였는지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투쟁해야 한다. ― 오웰(1946)
1936년 당대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후각을 우선으로 하여 악취로 진단할 사람이 오웰 말고 누가 있겠는가? “사회주의는, 적어도 이 섬나라에서는, 더 이상 혁명과 독재자 타도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것은 괴팍함과 기계 숭배,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멍청한 광신적 추종 냄새를 풍긴다. 그 냄새를 재빨리 제거하지 않는다면 파시즘이 승리할 수도 있다.” 연례 노동당 전당 대회에서 열화와 같은 성원을 불러일으킬 만한 문구는 아니다.(동지들이여, 우리 냄새를 개혁합시다!) 하지만 진정 오웰다운 문장이다. ― 본문에서
짧은 생을 살다 간 조지 오웰은 막연한 존재로 남아 있다. BBC에서 일했음에도 변변한 음성이나 영상 자료 하나 없으며 흐릿한 사진 몇 장이 전부인 오웰을 추적한 많은 전기 작가들이 저서의 제목에 Unknown(알려지지 않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괜한 일이 아니다. 생애에 관한 물리적 단서가 적다면, 문학적 심상으로써 한 인물을 주조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본질을 밝힐 수 있음을 『오웰의 코』는 말해 준다.
조지 오웰은 1903년 6월 25일, 인도 벵갈에서 가난한 “4등급 보조 서리 아편 중개 요원”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8번째 생일 선물로 준 『걸리버 여행기』에서 오웰은 평생 그리워할 자연의 냄새를 처음으로 읽어 낸다. 그는 명문 사립학교의 학생으로서, 가계의 빈곤을 장학금으로 겨우 메웠다. 오웰은 “이튼이 배출한 가장 이튼 학생답지 않은 이튼 학생”으로 장학금은 챙기는 반항아에 가까웠지만, 오웰의 문학 경력에 있어서 모교의 친구들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아델피》, 《오브저버》, 《호라이즌》과 같은 신문에 오웰의 글을 실어 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쪽방촌」이나 「교수형」과 같이 투명하며 무계급적인 걸작 산문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가난하며 문단에서 환영받지 못한 오웰은 이내 코스를 이탈한 엘리트들이 흘러 들어가는 ‘식민지’로 향했고, 인도 식민지 경찰관으로서 막사의 ‘하류 냄새’와 동시에 버마 고유의 향기를 맞닥뜨린다.
정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당신은 1880년대의 인도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이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이다. 조각된 티크재 가구, 구리 쟁반, 벽에 걸린 먼지투성이 호랑이 두개골, 트리치노폴리 엽궐련, 아주 매운 피클, 해 가리기용 헬멧을 쓴 남자들의 누런 사진들, 응당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하는 힌두스타니어, 호랑이 사냥과 1887년에 푸나에서 스미스가 존스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이야기들. ― 본문에서
버마 지부의 경찰관 일을 끝내고 유럽으로 돌아온 오웰은 얼마 되지도 않던 재산을 절도당한 뒤, 단시간 내에 하층민이 된다. 그는 반기듯 가난을 맞아 가난을 이해하기로 결심하고, 일련의 하층민들과 마주치고 기아 직전까지 갔고, 식당에서 접시닦이로 일하던 경험 등을 담아 식욕을 달아나게 만드는 이야기집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발표한다. 이때 파리에서 건강을 돌보지 않은 탓에, 오피탈코생(병원)으로 호송되기도 한다. 어딘가 중세적인 분위기를 띠는 병실에 들어선 오웰은 “근원을 추적할 수 없는 이상한 친근감”을 느낀다. 물론 이 친근감은 냄새에서 오는 것이었다. “기다랗고 다소 천장이 낮고 어둑한 병실에서는 수근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놀라울 정도로 서로 가까이 배치된 침대가 세 열씩 놓여 있었다. 그곳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다. 대변 냄새 같았지만 달큰함도 섞여 있었다.” 가난한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찰하던 오웰은 가난한 자들이 어떻게 죽는지까지 목격하고 냄새 맡은 셈이다.
영국 사회는 콧대 높은 사람들부터 씻지 않는 대중까지 위계 질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었고, 오웰에게 계층이란 무엇보다 냄새의 문제였다. 그런 오웰의 마음 한켠에는 톨스토이 식의 헐벗은 농부의 삶이 이상향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지성 아일린과 결혼한 오웰은 시골 스토어스의 오두막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다. 마당에서는 닭과 염소를 기르고, 뒤뜰에서는 계절마다 수확한 것을 먹고 내다 팔았다. 스토어스의 오두막은 수백 년 된 건물이었고 여러 곳에서 물이 샜다. 전기도 실내 용수도 공급되지 않는 오두막에서 조지 오웰은 칼로 가스통으로 난방했고, 파라핀 틸리램프를 썼으며, 시골 냄새로 요양의 시기를 채웠다.
결혼 다섯 달 후,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는데, 이때 아내 역시 동행한다. 의무가 아닌 스스로 시작한 탐험으로서의 전쟁 경험을 일단락한 오웰 부부는 부유한 관광객이라고 속이고 피하고 뇌물을 주어 가며 프랑스 국경을 겨우 넘는다. 이로써 “스페인 내전에 오웰이 남긴 작은 각주”는 다행으로 끝을 맺었다.
영국에 돌아온 오웰을, 동료 사회주의자들은 작가의 위치에서 끌어내리고자 공모한다. 등에 칼을 꽂는 식이 아니라 은밀한 배척과 부드러운 검열이 가해졌다. 『동물 농장』을 통해 드러난 괴짜 성향은 포용할 만했지만,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사회주의자를 향해 겨눈 칼날은 오웰의 괴짜 성향을 이단으로 간주하게 했던 것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 오웰은 가열한 노력을 기울여 1949년 3월 『1984』를 완성한다. 완성된 원고는 석 달 후에 출판되었고, 그해 9월 결핵으로 입원한 오웰은 1950년 1월 생을 마감한다.
발표 당시 “정작 1984년에는 골동품이 될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던 『1984』는 후각 비평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1984』는 “모든 온전한 냄새가 과거의 것이 되어 버린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다.
냄새가 존재하던 시기의 후각적 유적은 줄리아의 머리칼, 윈스턴과 줄리아가 오브라이언의 호화로운 거주 구역에서 맡고서 어리둥절해했던 좋은 커피와 와인의 향, 기름 램프에서 “청결하지 않지만 친근한 냄새”(전형적인 좋은 식별력)가 풍겨 나오던 차링턴 씨 고물상의 고색창연한 방향, 그리고 가장 황홀한 것은 “희미하게 역겨운 냄새”(또 다른 좋은 식별력)를 풍기는 초롱꽃들이 무리 지어 있는 “황금색 전원”에서 목가적인 유일한 사랑의 장면에 등장한다. 그 외에는 파슨스의 땀(더 끔찍한 것은 그들이 101호실을 기다릴 때 마주했던 그의 똥 냄새), 삶은 양배추(냄새가 오래간다는 이유로 오웰이 미워하던 요리), “주석 냄새가 나는” 차와 커피, 빅토리 담배, 썩은 창자 냄새가 나는 빅토리 진과 고기인 척하는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물질이 든 스튜 냄새가 있다.
『오웰의 코』는 말한다. 나쁜 냄새를 풍기는 것보다 나쁜 것은 냄새나지 않는 것임을. 다양하고 온전한 냄새가 나기 힘든 전체주의 사회와 시대를 경계했던 오웰의 삶 전반을 훑어 내려간 저자는 의문으로써 책을 마친다. “21세기인 지금, 오웰의 후각이 우리의 공기를 감지해 줄 수 있다면, 이 세계는 어떤 냄새를 풍길 것인가?”라고. 존 서덜랜드는 표백된 글과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 냄새와 개인성을 복원함으로써, 조지 오웰을 다시 읽게 한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만큼 세계가 좁아진다고 했던(「교수형」) 조지 오웰의 말을 떠올려 보자면, 이 연구자의 노력 덕분에 세계는 아직 좁아지지 않았다.
들어가기 전에
들어가면서
오웰의 삶
부록1 블레어/오웰의 담배 일지
부록2 『목사의 딸』의 냄새 서술
부록3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냄새 서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