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 속 또 하나의 우주,
쏜살 문고로 만나는 대문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 세계
데뷔작부터 마지막 작품, 주요 에세이를 아우르는 10권 선집 마침내 완간!
“뻔뻔하고 대담한 작가. 만약 그가 좀 더 살았더라면 분명 노벨 문학상을 탔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사상가, 비평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없는 일본 문학은 꽃이 없는 정원일 뿐이다.”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문학 연구가, 번역가)
“그저 탄식할 뿐! 다니자키의 작품은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소설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니자키는 천재다!” 미시마 유키오(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국민 작가’라 할 만하다. 나는 그처럼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를 사랑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소설가)
‘쏜살 문고’는 2016년 여름 첫 권을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다종다양한 프로젝트를 이어 오며 오십 권을 돌파하였다. 소규모 오프라인 서점과 출판사의 상생을 도모한 ‘쏜살 문고×동네 서점 프로젝트’(2017~2018), 책의 물성을 실험한 ‘쏜살 문고 워터프루프북’(2018~2019), 2019년 겨울 삼 년의 준비 끝에 발표한 ‘여성 문학 컬렉션’에 이르기까지, 민음사의 ‘쏜살 문고’는 문고판 도서의 활성화뿐 아니라 다채로운 도전을 시도해 왔다. 지난 2018년, ‘문고 속의 문고’를 기치로 세상에 선보였던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을 2020년 1월, 마침내 완간하였다.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필두로, 미시마 유키오, 가라타니 고진 등 일본 문학의 주요 인사들이 앞다투어 상찬한 작가이자 다양한 문체와 주제, 형식을 넘나들며 현대 문학의 지평을 확장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세계를, 데뷔작에서부터 말년의 대표작, 주요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엄선해 엮은, 전체 열 권 규모의 ‘작가 선집’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세계적 규모의 인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비하면 다소 생소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니자키는 “좀 더 살았더라면 분명 노벨 문학상을 탔으리라.”라는 세간의 평가대로, 당대 가장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였을 뿐 아니라, 실제로 노벨 문학상 후보에 여섯 차례 넘게 지명되는 등 비평 면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이룩한 문학가였다. 이러한 대외적 평가 말고도,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여러모로 주목해 볼 만한 작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 불리며, 다방면(중학생 시절에 쓴 비평문으로 벌써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과목에 두각을 드러냈다고 한다.)에 재능을 보였다. 특히나 언어 감각이 출중했던 다니자키는 거미가 긴긴 실을 자아내듯 극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를 써내는 데에 탁월했다. 그의 천부적인 문재(文才)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한층 정려(精麗)해져, 한어와 아어(雅語, 일본 고전 문학에 쓰인 고급한 언어), 시의성 있는 속어와 다양한 방언에 이르기까지 한 작품을 쓰면서도 마치 여러 작가가 머리를 맞댄 것처럼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그뿐 아니라, 주제 면에서도 수천 가지 빛깔로 분광하는 스펙트럼처럼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 줬다. 한평생 에로티시즘, 마조히즘, 페티시즘과 같은 자신의 주요 관심사를 기본적으로 유지하면서도, 역사 소설, 풍자 소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일본 고전 설화, 낭만적인 로맨스와 메타 소설을 연상하게 하는 파격적인 형식까지 시도하며 놀랍도록 변화무쌍한 행보를 이어 나갔다.
이번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은, 육십여 년에 이르는 문학 역정 내내 경이로운 우주를 펼쳐 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한 대작가의 작품 세계를 일대기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끔 열 권의 책으로 구성하였다. 다니자키의 전 작품을 예고하며 장차 싹틀 모든 맹아를 품은 데뷔작 「문신」(『소년』에 수록)부터 초기 대표작 『치인의 사랑』,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여뀌 먹는 벌레』, 『요시노 구즈』, 그리고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틴토 브라스 등 해외 거장들의 격찬을 받은 에로티시즘 문학의 절정 『열쇠』, 작가의 고유한 미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집 『음예 예찬』에 이르기까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문학 세계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 한편 정교하고 우아한 문체 탓에 번역하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다니자키의 작품은,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명예 교수 김춘미 선생의 진두지휘 아래,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및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진,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 문예 번역상’에 빛나는 양윤옥 선생까지 국내 최고의 번역가들이 모여 우리말로 옮겼다. 더불어 책의 표지는 이빈소연 일러스트레이터가 총책을 맡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치명적이고 농염한 문학 세계를 독특하고 섬세한 이미지로 풀어냈다. 해당 ‘선집’ 열 권의 표지를 한데 모으면 한 폭의 병풍 그림이 되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리고 본문은 새로 출시될 산돌정체로 디자인하여, 그야말로 읽고 보고 모으는 재미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도록 했다.
미증유의 문학 세계를 개척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들을 통해 우리나라 독서계의 폭과 깊이가 더욱 확장하기를 바라본다.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 작품 목록
소년 다니자키 준이치로 | 박연정 외 옮김
금빛 죽음 다니자키 준이치로 | 양윤옥 옮김
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춘미 옮김
여뀌 먹는 벌레 다니자키 준이치로 | 임다함 옮김
요시노 구즈 다니자키 준이치로 | 엄인경 옮김
무주공 비화 다니자키 준이치로 | 류정훈 옮김
슌킨 이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 박연정 외 옮김
열쇠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효순 옮김
미친 노인의 일기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효순 옮김
음예 예찬 다니자키 준이치로 | 김보경 옮김
별일 아니다. 그녀와 결혼하고부터 이 긴 세월 동안, 그는 어떻게 이혼해야 할지 하는 문제만을 계속 고민하며 살아왔다. 헤어지려는 일념밖에 없는 남편이었다. 문득 그렇게 생각하니, 스스로의 냉혹한 모습이 가나메 자신에게도 생생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해 주지 못하는 대신 모욕감만큼은 결코 느끼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썼지만, 여자한테 그런 배려가 가장 커다란 모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창부든 현모양처든, 억척스럽건 얌전하건 간에, 이런 남편을 둔 아내의 쓸쓸함은 도대체 누가 어찌 견뎌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본문에서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선집’의 네 번째 작품 『여뀌 먹는 벌레』는 일본 문학계 최대의 스캔들이라 불리는 ‘오다와라 사건’의 내막과 다니자키 문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일컬어지는 ‘고전 세계로의 회귀’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전무후무한 ‘문제작’이다. 1920년 무렵부터 다니자키와 첫 아내 지요(千代) 사이의 불화가 거세지고, 이때 사토 하루오(시인·소설가)가 두 사람을 중재하다가 지요를 동정하게 되면서 일종의 삼각관계를 이룬다. 다니자키는 사토에게 아내와 이혼하겠노라고, 지요의 앞날을 막지 않겠노라고 호언하지만 결국 당초의 약속을 파기하면서 다니자키와 사토는 ‘절교’하게 된다. ‘성적 취향’이 맞지 않으므로 부부가 이혼한다는 발표조차 1920~1930년대의 정서로서는 굉장한 충격이었는데, 심지어 아내가 친구와 재혼하도록 공공연히 장려함으로써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0년 후 끝내 다니자키와 지요가 이혼하고, 사토와 지요가 재혼함으로써 ‘스캔들’ 또한 일단락되는 듯 보였으나, 그에 앞서(1929) 다니자키가 유명 신문에 『여뀌 먹는 벌레』를 연재, 즉 ‘다니자키-지요-사토’의 관계를 소설 형식으로 ‘보도’함으로써 다시 한 번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여러 논란과 송사에 휩싸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여뀌 먹는 벌레』는 작가의 가장 개인적인 고백이자 다니자키 문학의 분수령으로서 여전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특히 이 작품은 『만(卍)』과 함께, 1924년 다이쇼 모더니즘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치인의 사랑』 이후, 다니자키가 전통문화의 숨결을 간직한 간사이 지방으로 돌아서는 과정을 뚜렷이 보여 준다. 활동사진(영화)에 대한 관심이 분라쿠 등 일본 전통 예능으로 옮겨 가고, 다니자키 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에로티시즘의 양상도 ‘모던’에서 ‘고전’으로 급격히 변화한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가나메와 미사코는 슬하에 외동아들(히로시)을 둔 평범한 부부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 ‘보통’의 부부라 하기에는 적잖이 기묘하다. 가나메는 자신의 취향을 잘 이해해 주고, 가정을 잘 돌보는 데다 세련된 외모의 아내 미사코가 싫지만은 않다. 미사코 또한 별 탈 없이 집안을 꾸리고, 아들과 장인을 성심껏 챙기며 여전히 숙맥 같고 철부지 같은 남편 가메나가 밉지 않다. 그러나 둘 사이에 냉기가 자리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무랄 데 없는 동거인이지만, 사랑을 나누는 부부로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다만 세간의 눈이 무서워서, 아들 히로시가 가여워서, 무시무시한 정 때문에 차마 입 밖으로 ‘이혼’을 거론하기가 비참해서 둘은 오로지 침묵한 채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아내 미사코도 남편 가나메도 각자 정부(아소와 루이즈)를 둔 채 거짓 부부를 연기하는 생활이 차차 거북하고 고통스러워진다. 정녕 쓰디쓴 여뀌도 ‘즐거이’ 먹는 벌레가 따로 있다고 했던가?(‘여뀌 먹는 벌레’는 우리말의 ‘짚신도 제짝이 있다.’에 해당한다.) 이때 이혼 경험이 있는, 가나메의 사촌 히데오가 중재에 나서지만 역시나 부부 문제는 아내와 남편 두 사람밖에 모르는 수수께끼다. 결국 전통 예능에 심취한, 조금은 독특한 취미를 지닌 장인에게까지 미사코와 가나메의 불화가 알려지고, 두 사람의 번민은 더욱 깊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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