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이 작품의 마지막 줄에는 To the happy few 라는 헌사가 붙어있다. 이 작품이 지향하는 것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영혼들과의 만남이다.
나폴레옹의 전투, 이탈리아의 법정 음모, 그리고 아름다운 로맨스가 함께 어우러진, 19세기 프랑스 문학의 대표작.
▶ 『파르마의 수도원』은 출간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 <세계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스탕달의 마지막 작품이다. 특히 너무나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스탕달의 인물들은 현대의 독자들에게 여전히 신선하고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뉴욕 타임스▶ 행복을 추구하고 이탈리아를 사랑하는 스탕달. 그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작가는 없다. ― 사르트르 ▶ 『파르마의 수도원』은 볼테르적인 아이러니와 프랑스적인 재치가 넘치는 작품이다.― 프루스트
『파르마의 수도원』(1839)은 스탕달이 고향을 떠나 많은 인생의 영욕을 겪고 난 후 만년에 쓴 작품이다. 『적과 흑』(1830)의 쥘리앵 소렐처럼 야심 많고 대담하고 도덕감이 결여된 주인공 파브리스 델 동고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정열과 욕망을 펼치는 이야기이다. 이탈리아를 동경해 온 것으로 유명한 스탕달은 16세기 이탈리아의 기록에서 얻은 소재에 나폴레옹의 서사시를 가미하여 『파르마의 수도원』이라는 대작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적과 흑』과 더불어 스탕달의 대표작으로 꼽는 이유는 벨리슴Beylisme, 즉 일체의 도덕적인 고려를 떠나서 지성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정열을 마음껏 펼치는 것만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작가의 주관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파르마의 수도원』은 앙드레 지드가 <프랑스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는 작품이며, 동시대를 살았던 발자크 역시 <모든 면에서 완벽함이 돋보인다>고 극찬한 작품이다.
스탕달 자신의 정열을 투사한 독특한 인물 창조
스탕달은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개성이 뚜렷하고 독특한 인물들을 창조하여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감명을 준다. 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파브리스, 재치가 넘치고 열정적인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 마키아벨리적인 모스카 백작. 그리고 아름답고 순수한 클렐리아. 특히 주인공 파브리스는 평생 열정을 간직해 온 스탕달 자신의 열망을 투사한 인물이다. 그러면서 촌스럽고 못생긴 외모로 늘 실연의 좌절과 열등감을 겪었던 스탕달 자신과는 반대로 수려한 외모의 파브리스는 늘 아름다운 여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스탕달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파브리스도 신념에 부풀어 나폴레옹 군대를 따라 나선다. 그러나 자신이 정말 전쟁에 참여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워하는 파브리스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풋내기이다. 실수투성이에 무모할 정도로 열정만 앞서 곧잘 스스로 위험을 초래하곤 하지만, 독자들의 파브리스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한결같은 순수함 때문이다. 파브리스는 나이가 들고 고위 성직자가 되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후에도 이러한 순수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처럼 파브리스의 변하지 않는 젊음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동시대 작가 발자크는 파브리스를 두고 <같은 소설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로 탁월한 인물을 창조해 냈다>고 말할 정도이다.
스탕달의 소설론 <벨리슴>
발자크, 플로베르와 더불어 19세기 프랑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스탕달의 소설론은 <벨리슴Beylisme>으로 요약된다. 자신의 본명 벨Beyle에서 비롯된 벨리슴은 일체의 도덕적인 고려를 떠나서 지성을 자유롭게 행사하고 정열을 마음껏 펼치는 것만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는 작가의 주관을 말한다. 스탕달에 의하면 행복은 이기주의의 명령에 따르는 데 있으며 이기주의야말로 모든 행동의 동기이다. 『적과 흑』의 쥘리앵은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파르마의 수도원』의 파브리스는 자신의 아들을 되찾으려는 이기심으로 아들의 죽음을 초래하고 사랑하는 클렐리아를 불행에 빠트린다. 그러나 스탕달이 추구하는 행복은 명예와 부와 같이 세속적인 가치가 아니다. 스탕달은 『파르마의 수도원』에서 세속적 성공과는 무관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그려 보임으로써 진정한 삶의 의미를 성찰하고자 했다. 특히 『파르마의 수도원』은 <소수의 행복한 사람들에게 바친다To the Happy Few>라는 헌사로 끝난다. 이 작품이 지향하는 것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영혼들과의 만남이다. 파브리스가 나폴레옹을 숭배하지만 그 자신이 엄밀한 의미의 공화주의자는 아니다. 또한 고위 성직자의 길을 걷지만 역시 파브리스가 출세를 바라서도 아니다. 파브리스가 많은 좌충우돌 끝에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찾은 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감옥 안이었다. 그곳에서 파브리스는 클렐리아를 향한 열정으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이처럼 스탕달이 말하는 <행복한 소수>는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 비굴함 속에서는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 감각과 본능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정열을 가지고 사랑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반쪽, 그것도 아름다운 반쪽을 알지 못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파브리스가 클렐리아와의 사랑에서 변하지 않는 행복을 찾은 것은 아니다. 클렐리아는 남의 아내가 되었고, 아들 상드리노는 크레센치 후작의 아들로 자라고 있다. 하지만 스탕달이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행복 자체가 아니라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듯이 파브리스의 가치는 그 태도에 있는 것이다. 『파르마의 수도원』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이처럼 파브리스가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에 대한 유쾌한 비판
『파르마의 수도원』은 파브리스라는 영웅의 일대기를 그린 서사시이며 사랑의 노래이다. 동시에 이 작품에서 지나칠 수 없는 점은, 재치와 통쾌함이 가득 차 있어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화정 시절을 그리워하는 스탕달은 아래에 예시된 경우처럼 전제 군주제의 모순을 유쾌하게 비틀고 있다.
라베르시 후작부인을 편드는 많은 인사들이 이야기를 퍼뜨려 놓은 덕분에 대공도 여느 파르마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브리스가 2,30명의 농부들을 불러 모아 마리에타를 두고 감히 자기와 겨루려 든 한 괘씸한 희극 배우를 때려죽였다고 믿고 있었다.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궁정에서는, 마치 파리에서 유행이 진실을 좌우하듯이, 맨 처음 능란하게 일을 꾸미는 자가 진실을 좌우하는 법이다. (제12장)
전제군주가 다스리는 작은 궁정에서 완벽히 수행되는, 아마도 유일한 국정 분야를 꼽으라면 그것은 바로 정치범들의 감시일 것이다. (제17장)
자신들의 위험은 생각하지도 않고 한술 더 떠서 떠들어 대기를, 무자비한 경찰이 이 괘씸한 파브리스의 탈출을 도운 가엾은 병사 중 여덟 명을 총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주의자 인사들까지도 파브리스가 자신의 경솔한 행동 때문에 불쌍한 병사 여덟 명을 죽게 만들었다고 비난하게 되었다. 이처럼 작은 나라의 전제 정치는 여론의 가치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제22장)
이처럼 『파르마의 수도원』에 흐르는 분위기는 전제 군주제를 향한 스탕달 자신의 비판이다. 파브리스가 열렬한 나폴레옹의 신봉자라고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파브리스는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고위 성직자가 되며,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은 미모와 재치로 독재자로부터 정치적 이득을 얻어 낸다. 하지만 작품 끝에서는 변화된 공국을 볼 수 있다.
파르마의 감옥은 텅텅 비었고, 백작은 막대한 재산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에르네스트 5세는 신하들로부터 토스카나를 다스린 대공들의 훌륭한 치세에 비유되어 칭송을 받았다. (제24장)
파브리스의 숭고함과 그를 지켜 주려는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의 열정과 그녀를 사랑하는 모스카 백작의 충성이 파르마라는 작은 공국의 전제 군주를 결국 독재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것을 가볍게 암시하고 있다.
줄거리
밀라노 공국 델 동고 후작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파브리스는 자신이 숭배하는 나폴레옹을 따르기 위해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그러나 이 영웅을 찾아 나선 길에서 그가 한 일이란 어수룩한 실수투성이 끝에 뭐가 뭔지도 모르고 워털루 전투에서 군인들을 쫒아 다녔을 뿐이다. 파브리스가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는 형이 그에게 씌워 놓은 자유주의자라는 혐의다. 그 때문에 파브리스는 밀라노에서 도망치게 되는데, 다행히 그에게는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고모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이 있다. 그녀는 파르마의 재상인 모스카 백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백작의 제안에 따라 그녀는 정치적 거래를 위해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이 되고 파르마 궁정에서 권세를 얻는다. 이제 파브리스에게는 산세베리나 공작부인과 모스카 백작의 보호 아래 미래의 파르마 대주교라는 빛나는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고모가 자신에게 보여주는 애정에 부담을 느낀 파브리스는 <마음의 변덕>을 일으켜 시골 떠돌이 극단의 여배우인 마리에타와 장난 같은 연애를 벌이고, 이 여배우의 기둥서방이었던 광대 질레티의 질투를 자극하여 결투 끝에 그를 죽인다. 이 사건은 파르마 궁정 내의 모스카 백작의 정적들에게 백작을 몰아낼 빌미가 된다. 그리하여 체포된 파브리스는 파르네제 탑 꼭대기 방에 감금되어 독살될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파브리스는 감옥에서 성채 사령관의 딸인 아름다운 클렐리아와 사랑에 빠진다. 파브리스는 예전에 코모 호숫가에서 그녀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산세베리나 공작부인은 결국 파브리스를 탈옥시키는 데 성공하여 파르마를 떠나지만, 클렐리아를 그리워하는 조카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한편 공작부인은 복수를 위해 대공의 암살을 꾸미고, 그의 후계자인 에르네스트 5세의 총애를 얻어 다시 파르마로 돌아온다. 한편 클렐리아는 사랑하는 파브리스의 탈옥을 도움으로써 아버지를 배반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버지가 강권해 오던 크레센치 후작과의 결혼을 승낙하고 만다. 이제 부주교가 된 파브리스는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성직자의 길을 걷지만, 그의 관심은 온통 클렐리아와의 사랑을 되찾는 데 쏠려 있다. 결국 불륜의 사랑으로 클렐리아와의 행복한 몇 년이 흘러간 뒤, 파브리스는 클렐리아가 낳은 자신의 아들 상드리노를 자기 곁으로 데려오려는 생각을 해낸다. 그러나 이 무모한 계획은 아이의 죽음을 초래하고, 절망한 클렐리아도 곧 죽고 만다. 그러자 파브리스는 세상과 담을 쌓고 파르마의 수도원에 은거하다가 일년 후 죽는다. 산세베리나 공작부인 역시 사랑하는 조카가 죽자 얼마밖에 더 살지 못한다.
스탕달 Stendhal(1783-1842, 본명은 마리 앙리 벨Marie-Henri Beyle)
프랑스 그르노블 출생. 귀족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엄격한 아버지 아래에서 자랐으며 외할아버지인 앙리 가뇽으로부터 문학에 대한 애착과 계몽사상을 물려받았다. 1800년 나폴레옹 군대를 따라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에 갔으며 러시아, 프러시아 등을 다니며 외교관으로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1814년 나풀레옹이 몰락한 후로는 7년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머물면서 음악, 그림, 연극을 즐겼다. 이때부터 사용한 스탕달이라는 필명은 당시 유명한 예술 비평가인 빙켈만이 태어난 도시 슈텐달에서 따온 이름이다. 1830년 7월 혁명이 일어나자 새 정부에 의해 트리에스테 영사로 임명됐고 이때 소설 『적과 흑』을 발표하였다. 스탕달은 외가가 14세기에 프랑스로 건너온 이탈리아 가문이라는 점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했으며 이러한 동경이 말년의 작품『파르마의 수도원』에 잘 나타나 있다.
원윤수 옮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졸업. 소르본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교 문학박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저서로 『스탕달과 낭만주의』『스탕달정열적이고 자유로운 한 정신의 일대기』 외, 번역서로는 『커뮤니케이션의 횡포』 외 다수가 있다.
임미경 옮김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문학박사. 서울대 강사. 학위 논문은 「스탕달의 글쓰기와 자기 탐구」이며, 번역서로는 『어느 전쟁 영웅의 당연한 죽음』 등이 있다.
파르마의 수도원 2 작품 해설 / 스탕달과『파르마의 수도원』 스탕달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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