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Le moulin de Pologne
출판사: 민음사
발행일: 2000년 10월 1일
ISBN: 978-89-374-6039-5
패키지: 반양장 · 변형판 134x224 · 216쪽
가격: 10,000원
시리즈: 세계문학전집 39
분야 세계문학전집 39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 장 지오노의 후기 대표작. 그동안『나무를 심은 사람』, 『소생』 등 자연 친화적 작품을 통해 전원작가로 알려져 온 장 지오노의 전후 문학세계를 대표하는 이번 작품은, 자연의 목가적인 풍경보다는 운명과 인간을 둘러싼 검은 사슬과 죽음의 알레고리를 묵시적이고 비의적인 어조로 그리고 있다.
전후의 비극적 세계관을 반영한 장 지오노의 후기 대표작장 지오노 작품 세계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전기는 남프랑스의 전원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합일을 이룬 조화로운 삶을 예찬하는 데 할애되고 있다. 작가의 범신론적이고 신화적인 우주관은 당시 정신적인 가치의 추구를 갈망하던 많은 젊은이들의 추종을 받게 되고, 그의 사상은 나아가, <인간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의 원초적인 근원을 되찾아야 한다>는 지오니즘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양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지오노는 커다란 사상적 굴곡을 겪게 된다. 지금까지 인간을 위협하던 가장 큰 힘으로 인식되던 자연은,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인간 군상의 폭력성 앞에 그 권좌를 내주게 되는 것이다. 후기의 작품에서 자연은 더 이상 평화로운 안식처가 아니라 인간이 무력하게 감수해야 하는 잔혹하고 적의에 가득 찬 힘으로 나타나고, 그에 덧붙여 교활한 인간 존재의 이면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한다. 요컨대 지오노의 전기 작품들이 소박한 환경보호론적 이상주의를 대변한다면 후기 작품들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숙명적인 힘과 맞선 인간의 모험을 통해 숭고한 정신성의 추구로 기울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상적 변화의 중심에 바로 이 작품 『폴란드의 풍차』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 운명 비극의 현대적 변용『폴란드의 풍차』에서 지오노는 종래의 시적 이미지나 은유를 버리고 갖가지 사건들을 긴박하고 밀도 있게 펼쳐 놓고 있다. 주요 인물은 예전처럼 자연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 속의 인간이며 아울러 주제도 더 이상 인간과 세계의 조화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운명의 관계가 취급되고 있다. 그것은 청년 시절의 지오노가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등을 읽으며 머릿속에 각인시켰던 인간의 숭고한 존재론이 발현된 것이기도 하다.이 작품은 그 줄거리만을 보더라도 5대에 걸친 코스트 가문의 죽음을 다룬 뚜렷한 비극의 성격을 띠고 있다: 폴란드의 풍차라는 한 영지의 소유자인 조제프 씨를 소개하면서 이야기는 그곳에 처음으로 정착한 코스트 가문의 비극을 환기하고 있다. 코스트는 사고로 아내와 두 아들을 연달아 잃고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피해 이곳에 정착한다. 남아 있는 혈육은 두 딸을 운명의 잔인한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그는 그녀들을 너무도 평범한 가문의 형제에게 시집보낸다. 그녀들에게 내려진 운명의 저주가 희석되기를 바란 것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나날도 잠깐, 결혼한 자매가 낳은 아들딸들이 다시 사고로 죽어 가면서 이들 가문의 저주는 대물림된다. 마을 사람들은 살아 있는 그들을 <유령>이라 부르며 경계하고 철저한 격리와 비아냥 속에서 그 존재를 무시한다. 코스트의 증손녀인 쥴리는 또래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 때문에 갑작스런 경련을 일으켜 아름다운 얼굴 반쪽이 흉하게 일그러지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런 그녀를 불행 속에서 구해 준 것이 바로 조제프 씨이다. 그는 마치 메시아와 같이 등장하여 음울한 영지 폴란드의 풍차를 지상의 낙원으로 가꾸어 놓는 마법의 수완을 발휘한다. 그러나 이런 행복도 잠시, 한갓 인간에 지나지 않는 조제프 씨이기에 그 역시 나이가 들어 숨을 거두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조제프 씨의 죽음과 함께 폴란드의 풍차는 다시 예전의 버려진 영지로 전락해 버리고 코스트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레옹스는 창녀와 함께 달아나 버린다.
5대에 걸친 코스트 가문의 죽음을 다룬 이 작품은 뚜렷하게 비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인간을 초월적인 힘에 의해 운명지어진 영웅들이 그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한 싸움이 그리스 비극의 골격이라면, 가문에 내려진 저주의 희생물이 되는 코스트 가의 싸움 속에서 우리는 운명에 도전하는 영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장 지오노는 작품 속에서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도발하고 호소하고 유혹하는 사람의 은밀한 욕망 앞에서 몸을 기울이는 사물들의 지능>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지오노에게는 세계와 삶의 의미는 운명에 도전하거나 운명을 자기 앞에 끌어들이는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그러한 싸움에 동참하는 이들에게만 이름을 부여하고 있다.
장 지오노 Jean Giono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마노스크에서 출생했다. 열여섯 살에 은행 점원으로 취직한 지오노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등 고전 문학을 섭렵하며 상상력을 살찌운다. 서른 살에 마침내 인생의 행로를 바꿔 소설 쓰기에 입문한다. 『언덕』,『소생』등 그의 초기 작품들은 남프랑스의 전원을 무대로 자연친화적 삶을 그리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불굴의 평화주의자가 된 지오노는 2차 세계대전을 맞아 적극적인 반전 활동을 펼쳐 1939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투옥된다. 이후 그의 작품에는 자연의 질서와 평화를 해치는 비열한 인간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작가는 문명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말년의 작가는 주로 여행 기행문을 쓰며 영화 제작에도 참여한다. 이후 프랑스 문학계에 미친 공로를 인정받아 공쿠르 문학상 종신 심사위원과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앙레드 말로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 명의 소설가로 자기 자신, 알리 몽테를랑, 그리고 지오노를 손꼽은 바 있으며, 앙드레 지드는 지오노의 작품을 읽고 <프로방스 지방에 새롭게 태어난 베르길리우스>라고 칭송했다.